
이른 새벽에 봄나물 캐러 나보다 먼저 산을 오른 아주머니들. 새벽은 깨어 있는 사람 몫이다.
봄에는 새롭게 보는 것이 많다. 그래서 ‘봄’이라 했을까. 새싹이 돋아나는 걸 보고, 나무에 꽃망울이 터지는 걸 보면서 많은 시인이 봄을 읊었다. 하지만 나는 소리를 듣는 데서 봄을 먼저 느낀다. 고요한 산골의 어느 봄날. 산을 오르다가 처음으로 듣는 새소리는 아주 각별하다.
내 몸을 깨우는 소리들
우리 동네는 3월 초라고 해도 아직 새들이 활발하게 울지 않는다. 집 둘레에 사는 텃새인 참새나 까치가 우는 정도다. 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기에 날마다 듣지만 별다른 느낌을 못 받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들리는 멧비둘기 울음소리. 구구우 쿠우구. 구구우 쿠우구. 먼 산등성이를 타고 울려온다. 낮은 소리로 느릿느릿.
무엇이든 처음이 주는 느낌은 강렬하다. 그중에서도 짝을 찾고 짝을 맺는 거라면 더 그런 것 같다. 첫사랑, 첫 고백, 첫날밤…. 멧비둘기들은 보통 4월이 돼야 활발하게 우는데 이 놈은 꽤 급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멧비둘기 첫 울음소리는 더 애잔하다. 그 떨림이 사람의 가슴을 파고든다. 하던 일을 멈추고 고요히 소리를 들어본다. 구구우 쿠우구. 구구우 쿠우구…. 내게는 ‘너는 지금 뭐하니, 너는 지금 뭐하니’ 하고 물어보는 소리로 들린다. 그래서인지 이 날은 하루 종일 멧비둘기 울음소리가 귓전에 남았다.
오랜만에 논밭을 둘러본다. 지난 가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논밭에는 일거리가 널려 있다. 쉬엄쉬엄 정리하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들판 햇살을 받아서인가 집둘레에도 지저분한 게 눈에 많이 뜨인다. 거무칙칙한 겨울 빛이 봄 햇살에 무거워 보인다. 겨우내 안 하던 청소를 다 한다. 늦게나마 봄 꽁무니를 따라간다.
봄은 날마다 변한다. 새소리도 하루하루가 달라진다. 멧비둘기를 시작으로 앞산에서 꿩이 ‘꿩 꿩’ 하면 뒷산 꿩도 ‘꿩 꿩’ 한다. 청딱따구리는 ‘삑 삑 삑 삐’. 낮에만 새가 우는 게 아니라 밤은 밤대로 우는 새가 따로 있다. 밤에 우는 새소리는 으스스하거나 구슬프다. 호랑지빠귀는 ‘삐이이 삐이이’. 부엉이는 ‘부엉부엉’…. 봄에는 밤낮 없이 새들이 운다.
그러니 잘 때 자고, 깰 때 깨지 않으면 새소리는 스트레스다. 행여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면 밤에 우는 새소리 때문에 마음이 더 싱숭생숭하다. 늦게 잠들어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면 까치 우는 소리가 시끄러울 때가 있다. 그것도 바로 집 앞 나무에 앉아 ‘꽈악! 꽈악!’ 하며 악을 쓰듯 울 때는 화가 날 정도다. 조금 참자 하다가 계속되면 밖으로 나가 돌멩이를 집어던지고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몸이 봄을 따르지 않으면 새소리도 짜증스럽다.
사실 대부분의 새소리는 더없이 아름답다. 딱새, 박새, 휘파람새, 밀화부리…. 일하다가 밀화부리 우는 소리가 들리면 뭔가에 홀린 듯하다. ‘삐삐루 삐리리 삐….’ 아예 일손도 놓고 소리에 빨려든다. 말할 수 없는 어떤 기쁨이 차오른다. 검은등뻐꾸기 소리는 에로틱하다. 이 새 울음소리를 말로 적자면 ‘호 오 홋 오’인데 적고 나서 다시 읽어 보면 영 새소리가 아니다. 새소리에서 리듬을 빼고 글자로만 적으면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