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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련열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가장 고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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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위 공무원은 여러 가지 사회적인 혜택과 높은 급여를 받는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그동안 들어간 밑천을 뽑자’는 심경으로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런 ‘당연지사’의 틀과는 정반대의 인물이 있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덜어주고 세상을 구하고도 대가를 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고귀하다.
노중련열전

일러스트레이션·이우정

인간의 삶은 무척 복잡하고 미묘하다. 얼굴 모양처럼 성격도 체질도 마음도 제각각이어서 일정한 틀을 만들기 힘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대 중국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살기에 선악의 기준도, 인품을 평가하는 내용도 다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들이 갖는 공통점은 ‘사심’이 없다는 것이다. 백범 김구의 마지막 휘호는 ‘사무사(思無邪)’다. 김구는 이 글을 쓴 후 흉탄을 맞았다. 그래서 이 휘호에는 혈흔이 남아있다. 선비는 생각에 사심이 없는 사무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사마천이 이야기하는 노중련은 전국시대 전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선비의 본분을 지킨 인물의 전형이다. 제나라 사람인 노중련은 뛰어난 인물이었음에도 벼슬에는 나아가지 않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살았다. 그가 조나라에 있을 때의 일이다.

진나라의 백기가 조나라 군사 40만명을 몰살하고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다. 조나라는 진나라가 무서웠다. 진나라 군사들은 조나라 동쪽 한단을 포위하고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나라 효성왕은 주위 제후국들에 구원을 요청하면서 안전부절못하고 있는데, 조나라를 도와주던 위나라의 객장군인 신원연이 평원군을 통하여 효성왕에게 말했다.

40만 몰살하고 포위



“진나라가 갑자기 조나라를 포위한 까닭은 이렇습니다. 이전에 진나라 소왕은 제나라 민왕과 힘을 겨루어 제(帝)라고 일컫다가 곧 제라는 칭호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제 제나라 민왕은 더욱 쇠약해졌고, 진나라가 천하의 으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진나라가 한단을 포위한 것은 틀림없이 한단을 욕심내서가 아니라 다시 제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신을 보내 진나라 소왕을 제로 높여 불러준다면, 진나라는 기뻐하며 군대를 거두어 돌아갈 것입니다.”

명분이 중요했던 시절이지만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이게 뭐 어려운 일인가 싶다. 시쳇말로 “형님”이라고 하면 봐주겠다는 이야기인데 평원군은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여기에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었다. 국가 간 외교는 문장 하나로 참혹한 결과가 오기도 한다. 평원군 역시 당대 뛰어난 관리였지만 끙끙 앓고만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노중련은 평원군에게 그 제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물었다. 평원군은 “얼마 전 진나라와의 전쟁에서 40만의 군사를 잃었고 지금은 한단까지 진나라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노중련은 그의 태도를 보고 실망한다. 그리고 신원연을 만날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신원연은 노중련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의 평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나면 이길 자신이 없었다고나 할까. 마주앉은 자리에서 노중련은 한동안 침묵한다. 신원연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지금 진나라 군사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 이 성을 왜 떠나지 않는가? 그리고 불안한 성 안의 사람들과는 달리 당신은 아무 것도 바라는 것 같지 않은 모습이다. 무슨 연유인가?”

그때 노중련은 춘추시대의 올곧은 선비인 포초를 예로 든다. 포초는 현실에 불만을 품고 나무를 안고 굶어 죽었다는 인물이다. 노중련은 포초가 성질이 더러워서 이런 저런 꼴 안 보려고 죽었다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했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 본론을 말한다.

“저 진나라는 예의를 내버리고 적의 머리를 많이 벤 것을 가장 큰 공적으로 숭상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군사들을 권모술수로 부리고, 백성들을 노예처럼 다룹니다. 그 같은 진나라 왕이 제멋대로 제가 되어 천하에 잘못된 정치를 편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에 빠져 죽지 그의 백성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군을 뵌 것은 조나라를 돕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원연은 “선비로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있지만, 호랑이 늑대와 같은 진나라의 공격을 어떻게 막고, 어떻게 조나라를 도울 것인가”라고 묻는다. 노중련은 “위나라와 연나라가 조나라를 돕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신원연은 “내가 위나라 왕의 뜻을 가지고 지금 마주하고 있는데 어떻게 도울 수 있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아주 간단한 대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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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시인 whonj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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