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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인, 조르바를 찾아서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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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인, 조르바를 찾아서

‘그리스인 조르바’<br>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482쪽, 1만800원

마침내 나는 서가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꺼내 들었다. 독자여, 이제야 불멸의 자유인 ‘조르바’를 소개함을 용서하시라. 굳이 이유를 밝히자면, 나는 그리스로 향하지 않고는 조르바를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7월14일 오후 9시, 아테네 남서쪽의 외항(外港) 피레우스 항구. 크로노스 팰리스 호가 위용을 자랑하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태양은 번갯불처럼 뜨거웠고, 어둠은 늦게 찾아왔다. 세계에서 몰려온 엄청난 이방인들 틈에 끼어 크레타행 크로노스 호에 승선했다.

연일 40℃에 육박하는 태양의 잔광 속에 후끈한 열기와 땀 냄새, 그리고 멀리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어우러져 야릇한 전율을 일으켰다. 5층 객실에 짐을 풀고, 8층 선상으로 올라갔다. 물결은 잔잔하고, 미풍이 불고 있었다. 어느덧 바다 저편, 아니 하늘 저편에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저 달이 지고 해가 뜰 즈음이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태어나고 묻힌 크레타에 도착할 것이었다.

항구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裸身)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죽기 전에는 읽으리라, 마음먹는 소설들이 있다. 너무 유명해서 읽기도 전에 내용을 거의 알아버린 소설들, 예를 들면 호머의 ‘오디세이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단테의 ‘신곡’, 스탕달의 ‘적과 흑’과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그리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우리는 호머에 의해 고대 그리스와 그 사람들을, 보카치오와 단테에 의해 14세기 이탈리아와 그 사람들을, 스탕달과 플로베르에 의해 19세기 중반 프랑스와 그 사람들을, 도스토예프스키를 통해 19세기 말 러시아와 러시아 사람들을, 그리고 카잔차키스를 통해 20세기 그리스와 그리스 사람들을 비로소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그리스란, 20세기를 거쳐 현대의 그리스란, 조르바를 통하지 않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조르바란 누구인가.

나는 주머니에서 단테 문고판을 꺼내 들었다. … 어디를 읽는다? ‘지옥편’의 불타오르는 암흑? … 인간의 희망이 최고의 감정 기준이 되는 대목으로 들어가? 나는 마지막을 취했다. … 문득 방해를 받고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 두 개의 눈동자가 내 정수리를 꿰뚫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급히 유리문 쪽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앞의 책 중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서사적인 골격은 작가(카잔차키스의 분신)이자 크레타 섬의 갈탄광산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사업을 도모하려는 ‘내’가 만나고 겪은 조르바라는 그리스 사내 이야기다. ‘나’는 어릴 때부터 초인(超人)에 관한 야망과 충동에 사로잡혀 이 세상일에 만족 못한 채, 온통 책/문자의 세계에 빠져 살아온 인간. 반면 조르바는 문자로 기록하거나 기록된 책/문자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유로운 본능과 직관을 좇으며 살아온 인간. ‘나’의 정확한 나이는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며, 카페에서 내가 전하는 조르바의 나이와 첫인상은 아래와 같다.

키가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 하나가 유리창을 코로 누른 채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겨드랑이에다 다소 납작해진 보따리를 하나 끼고 있었다.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냉소적이면서도 불길같이 섬뜩한 그의 강렬한 시선이었다. … 그는 나를 가늠해보는 것 같았다. 자기가 찾아다니던 사람인지 아닌지 보는 것 같았다. 시선이 만나자 그 낯선 사람은 힘차게 팔을 뻗어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탁자 사이를 지나 내 앞에 우뚝 섰다. “여행하시오?” 그가 물었다.

-앞의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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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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