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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1970년대 패기 넘치는 영웅 신화의 주인공

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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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이대근은 김두한, 김춘삼, 시라소니 등을 연기한 선 굵은 액션스타였다.

1974년 만들어진 ‘실록 김두한’은 김효천 감독의 두 번째 김두한 영화다. 김효천 감독은 6년 전 ‘팔도 사나이’란 영화로 한 번 김두한 이야기를 만들었었다. 당시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두한이라 짐작되는 주인공의 이름은 휘였다. 영화에 김두한의 실명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두한이라 추정되는 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장동휘. 영화가 시작되면 장동휘는 이미 종로 바닥의 영웅이다. 하지만 완전히 패권을 거머쥔 것은 아니다. 그 앞에는 태산과도 같은 권력을 지닌 일본 야쿠자와 일본 헌병들이 있다. 일본 헌병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야쿠자만큼은 종로 바닥에서 몰아내고 싶은 것이 장동휘의 생각이다. 그런 장동휘에게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닌 싸움꾼 하나가 나타나 도전을 한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용팔이. 장동휘는 그를 원 펀치로 제압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용팔이는 무릎을 꿇고 장동휘를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한다. 장동휘의 인품에 반해버린 것이다. “좋은 동생이 생겼구나” 하고 용팔이를 거둬들인 장동휘는 전국에서 자신의 왕좌를 노리고 올라온 한다하는 싸움꾼과 대결하고, 그들을 동생으로 거둬들인다. 그뿐이 아니다. 이름난 싸움꾼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장동휘는 그곳으로 가서 그 지역의 싸움꾼과 일전을 치러 그를 거둬들인다. 그리하여 전국 팔도에서 내로라하는 주먹들이 장동휘 휘하에 모여들고 장동휘는 그들과 힘을 합해 야쿠자와 대결을 벌인다. 송강의 인품에 반해 그의 휘하로 모여든 108명의 호걸. 즉 수호지의 세계다.

김효천 감독은 김두한의 실명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영웅 김두한의 탄생 편을 만들어낸다. 김두한 단 한 명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은 거지가 돼 깡통을 들고 동냥질하지만 고귀한 혈통을 지닌 소년. 그 소년이 각성해 밑바닥에서 출발해 정상에 오른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아더 왕의 이야기, 주몽 이야기,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담과 같은 세계다. 즉 영웅 신화인 것이다. 그 영웅 신화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배경으로 들어와 그 역할에 어울리는 청년 영웅의 모습을 지닌 이대근을 내세워 당시에는 볼 수 없던 명쾌한 영웅담을 만들어낸 것이다. 장동휘에 이은 제 2대 김두한의 탄생이고, 동시에 새로운 세대 액션 히어로의 탄생이었다.

파격적인 캐스팅

당시만 해도 무명이던 이대근은 TV 방송국 공채 탤런트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문턱이 높은 영화계로 진출하려 기회를 노리던 그는 1960년대 말 최무룡 감독의 액션 영화 ‘흑점. 속 제3지대’로 처음 충무로 영화계에 발을 내디딘다. 이대근은 최무룡이 한국 최고의 배우라 생각해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최무룡이 주연·감독·제작한 영화가 줄줄이 흥행에 실패해 도산하자 이대근은 방송국으로 돌아가 ‘수사반장’에서 범인 역할 같은 조연으로 생활하다가 ‘실록 김두한’ 단 한 편의 영화로 액션 스타가 됐다. 어떻게 당시 무명이던 이대근이 액션 영화의 주연이 됐을까? 김효천 감독은 감독이라기보다는 협객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의 협객 기질은 선 굵고 투박한 영화의 내러티브와 남자 주인공 캐스팅에서 드러나는데, 무명이라 할지라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기꺼이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도박을 즐겼다. 그의 그런 행동은 이후에도 곧잘 나타나는데 인물도 매력적이지 못한 조연 출신 이강조를 갑자기 주연으로 승격시켜 시라소니 역을 준 것이나, 당시 하이틴 영화의 조연이던 진유영을 ‘인간시장’의 주연으로 내세운 것. 당시 무명이던 윤승원을 갑자기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본 대부’를 만든 것 등이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협객 맹상군이나 수호지의 협객 조개처럼 자기 휘하로 들어오는 사람을 마다않고 보살피다 그들을 비장의 카드로 내세워 일을 도모하는, 영화계에서는 좀 보기 드문 파격적인 캐스팅을 하는 감독이었다. 이런 캐스팅이 마냥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김효천 감독은 박노식·장동휘로는 청년 김두한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대근 내면에 숨은 마그마를 직감으로 알아차려 캐스팅한,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의 성공작이었다.

‘실록 김두한’ 이후 이대근은 김효천 감독과 ‘협객 김두한’을 촬영한다. 영화의 첫 장면이 김두한의 무덤인 속편은 전편보다 더 재미있었고, 김두한이 전편부터 자신의 뒤를 쫓아다닌 일본 고등계 형사에 의해 감옥으로 들어가는 라스트는 장대했다. 그리고 1975년 한 해에 이대근의 영화가 무려 6편이나 개봉된다. 이대근은 이 시기를 ‘영화 세 편 출연하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던 때’로 회고한다. 1970년대 초. 이소룡 영화가 들어오면서 명동 깡패를 다룬 깡패 영화들은 시들해져간다. 1960년대를 주름잡던 최고의 액션 배우들. 장동휘, 박노식, 최무룡의 영화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면서 한국 극장가에는 홍콩 무술 영화와 비슷한 한국 무술 영화들이 액션 영화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1975년이 되면서 한국 무술 영화가 차지하던 자리에 다시 한국 깡패 영화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깡패 영화는 모두 이대근 주연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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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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