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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

‘그래비티’

과학은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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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지난 10월 개봉된 미국 영화 ‘그래비티(Gravity)’는 실제로 지구 대기권 밖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은 실감나는 우주 영상을 선보였다. 영화 제목은 ‘중력’을 의미한다. 연출을 맡은 알폰소 쿠아론은 멕시코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위대한 유산’(1998)을 내놓은 바 있다. 멕시코에서는 부유층 청년들의 일탈을 다룬 ‘이 투 마마’(2001) 같은 독특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래비티’는 중반까지 단 한 번의 컷도 없이 이야기와 동작을 연속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영상연출의 새로운 경지를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영화의 광활한 우주 이미지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스탠리 큐브릭·1968)와 비견된다. 또한 이 영화에서 우주인은 결국 우주복과 우주선에 갇혀 있는 신세라 폐소공포증, 귀소본능,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다. 이런 점은 ‘솔라리스’(안드레이 타르콥스키·1972), ‘컨택트’(로버트 저메키스·1997)와 비교할 만하다.

대기권 밖 우주인들의 사투

‘그래비티’는 우주선 ‘스페이스 셔틀 익스플로러’호를 타고 지구 대기권 밖으로 나가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인 3명에 대한 이야기다. 베테랑 우주선 조종사 매트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천체망원경 엔지니어이자 박사인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 하버드대를 졸업한 인도인 천문학자 샤리프(팔두트 샤르마)가 그들이다.

스톤은 천체망원경을 수리하고 있었고, 코왈스키와 샤리프는 우주복 뒤에 달린 로켓 추진기를 이용해 우주를 유영 중이었다. 작업이 끝나갈 무렵, 미국 휴스턴 관제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소련이 고장난 인공위성 한 대를 미사일로 격추했는데 이에 따른 연쇄작용으로 주변의 인공위성들이 동반 폭발했다. 이어 잔해가 폭풍처럼 지구 궤도를 따라 공전하게 됐고 그 궤도에 있던 허블 망원경 쪽으로도 들이닥쳤다.



첫 번째 충돌로 샤리프가 사망했다. 망원경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스톤 박사를 코왈스키가 간신히 구조했다. 이 잔해들의 공전 주기가 90분이라는 점을 알게 된 이들은 90분 전에 익스플로러 호를 타고 지구로 귀환하려 했다. 그러나 익스플로러 호도 잔해 폭풍으로 파손돼 사용할 수 없었다. 산소와 추진기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코왈스키와 스톤은 인근에 있는 소련 소유즈 우주 정거장으로 향했다.

소유즈 승무원들이 이미 탈출 캡슐을 타고 떠났고, 남은 캡슐은 대기권 진입 시 사용할 낙하산이 펼쳐져 있어서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코왈스키는 소유즈에서 잠깐 머물다 그로부터 비교적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국 우주정거장 천공으로 점프할 것을 제안했다. 소유즈에 거의 당도할 무렵 다시 사고가 터졌다. 스톤이 우주로 떨어져 나가려는 코왈스키를 가까스로 붙잡게 된다. 이 상태로는 둘 다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한 코왈스키는 스톤의 손을 놓아버렸고 스톤은 소유즈의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스톤은 소유즈 캡슐 안에서 휴식을 취한 뒤 탈출용 캡슐을 작동시켰지만 낙하산이 몸체에 걸려 쉽게 분리되지 않았다. 스톤은 탈출을 포기하고 고통을 줄이려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그녀의 환영에 코왈스키가 들어와 천공까지 가라고 스톤을 독려했다. 스톤은 소유즈 캡슐이 천공에 접근하자 점프해 간신히 천공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그녀는 천공의 캡슐을 타고 지구로 귀환하는 여정에 올랐다.

과학에 의한 종말 가능성

이 영화는 시작 20분 동안 광활한 우주,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허블 망원경을 고치는 3명의 인물만 보여준다. 영화 내내 등장인물은 이들 3명밖에 없다. 샤리프는 영화 초반에 죽기 때문에 영화 중반까지 등장인물은 스톤과 코왈스키 둘뿐이다. 코왈스키가 떨어져 나간 이후에는 스톤만 화면에 보인다. 영화는 스톤과 코왈스키의 대화, 스톤의 독백으로 이야기의 대부분을 끌고 나간다.

눈길이 가는 것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인데, 코왈스키는 스톤에게 “엔지니어가 되기 전에는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스톤은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절체절명의 순간 가족사를 이야기하고 관객이 주인공 개인의 이러한 사적인 세계에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할리우드 영화의 관습이다.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컨택트’도 비슷하게 구성돼 있다. 주인공 엘리노어 애로웨이(조디 포스터)가 천문학자가 된 것은 어린 시절 죽은 아버지(테드 애로웨이)로부터 ‘외계에 있는 그 누군가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수해 아마추어 무선통신을 한 것이 계기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애로웨이는 외계인과 접촉하는데 이때 외계인은 그녀의 기억을 스캔해 그녀 아버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컨택트’는 인간에게 가장 낯선 공간인 우주와 가장 낯선 존재인 외계인을 다루면서도 역설적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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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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