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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재벌 ‘정신적 고향’ 줄지은 기부, 웅장한 결실

클리블랜드 미술관

美 재벌 ‘정신적 고향’ 줄지은 기부, 웅장한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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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클리블랜드 미술관 개관식에는 웨이드 1세의 손자인 웨이드 2세가 참석했다. 손자도 문화사업에 관심이 많아 미술관 이사회의 초대 부의장을 맡았다가 1920년에는 의장에 올랐다. 미술관은 공공시설이지만, 이를 만들고 유지한 주역은 재벌들이었다. 재벌의 공익 정신이 미국 사회를 기름지게 만들어왔다는 사실이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도 읽힌다.

레너드 한나 주니어(Leonard C Hanna Jr·1889~1957)가 아니었다면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결코 오늘날 같은 위상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이 미술관에는 인상파 및 후기인상파 유명 작품이 유달리 많은 편인데, 이 중 절반은 한나가 기증했다. 필립스 컬렉션이나 게티 미술관 같은 훌륭한 개인 미술관을 만들 만큼의 소장품을 보유하고도 한나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개인 미술관을 세우는 대신 공공미술관에 기증했다.

한나는 클리블랜드 태생으로 예일대 출신의 인텔리 사업가였다. 잠시 철강업을 하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느라 사업을 중단했고,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와 광산업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했다. 광산업은 위험부담이 크지만 성공하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다.

한국에도 광산업으로 재벌이 된 이가 있다. 일제강점기 북한에서 금광 발굴에 뛰어든 최창학이란 인물이다. 그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었다. 광복 후 김구 선생이 귀국하자 자신이 살던 저택을 김구 선생에게 내줬다. 그 집이 그가 암살될 때까지 머문 경교장이다. 그러나 최창학은 미술관도, 미술품도 남기지 않았다.

한나는 광적인 예술품 수집가이자 연극 애호가였고, 예술 후원자이자 복싱과 야구 등 스포츠팬이었다. 전문가 도움 없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무조건 구입했지만, 훗날 소장품 대부분이 명품 대열에 든 것을 보면 안목이 탁월한 인물이었다. 각종 자선단체에 평생에 걸쳐 9000만 달러를 기증했는데,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액수로 기부 내역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길다고 한다. 미술관 봉사활동도 즐겨 했다. 1914년부터 클리블랜드 미술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1920년부터는 작품확보위원회에도 참여했다. 사망할 때는 미술관에 3300만 달러의 유산을 남겼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에게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후손인 셈이다.



美 재벌 ‘정신적 고향’ 줄지은 기부, 웅장한 결실
빌 게이츠가 300억에 구입

나는 주로 미술관 2층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보고 싶은 그림이 대부분 2층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미국 사회상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두 미국 작가의 작품이 시선을 끌었다. 조지 빌로스(George Bellows)의 ‘샤키 살롱의 수컷(Stag at Sharkey´s)’과 윌리엄 마운트(William Mount)의 ‘음악의 힘(The Power of Music)’이다.

‘샤키 살롱의 수컷’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샤키 살롱에서 벌어진 복싱 경기 장면을 그린 그림. 샤키 살롱은 빌로스 화실 건너편에 있는 유명한 살롱이다. 빌로스가 이 그림을 그린 1909년에 복싱은 불법이었지만, 개인 살롱이란 점을 이용해 샤키 살롱에선 공공연하게 복싱 경기가 벌어졌다. 당시 복싱은 뉴요커들이 즐긴 밤 문화 중 하나이면서 서민들의 중요 오락거리였다. 복싱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동물적 본성을 끄집어내는 스포츠다. 당시 복싱은 싸움 구경을 즐기며 도박까지 곁들이는 사행성 오락이었다. 미국으로 몰려든 이민자들의 정서가 이런 것 아니었나 싶다.

이 그림은 복싱 경기를 매우 실감 나게 묘사했다. 빌로스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 화가임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운동선수의 특징을 잘 잡아냈다. 선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실감 나게 포착했다. 경기의 격렬함도 현장감 넘치게 묘사됐다. 흥분한 관중의 모습도 생생하다. 그림 앞에 서면 마치 실제로 링 옆에 서서 복싱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빌로스는 20세기 초반 사실주의 미국 화가다. 오하이오 주 태생으로 오하이오주립대 재학 시절 야구선수와 농구선수로 활약했다. 프로야구단 입단과 잡지사 삽화작가 제의를 동시에 받았을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하지만 그는 1904년 뉴욕으로 옮겨와 예술가의 삶을 시작했다. 빌로스는 사회개혁을 주창한 급진주의자였다. 그런데 ‘보수 재벌’ 빌 게이츠가 1999년 빌로스의 1910년 작품 한 점을 무려 2750만 달러(약 300억 원)에 구입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더니 둘 사이에 통하는 데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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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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