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전에도 나타난 대중영합주의의 폐해
표(票) 의식해 정책타이밍 놓친 정치인 향한 힐난
‘신동아’ 창간호에 실린 영국 런던 석간신문 ‘이브닝 스탠다드’ 만평. ‘맥도널드 총리는 본체는 그대로 두고 그림자만 닦으려 애를 쓴다’는 설명이 달렸다. [동아DB]
노동자 출신인 맥도널드 총리는 1924년에 이미 10개월 동안 총리로 재직했으나 내각 불신임을 받아 하차했다. 이후 1926년 영국에서는 170만 명의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의 기로에 놓인 탄광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대대적 총파업을 벌였다. 당시 표를 의식한 보수당 정권은 어정쩡한 대응으로 일관했고 세금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결국 보수당에 실망한 영국 국민은 1929년 6월 다시 맥도널드 총리를 선택했다.
그러나 넉 달 뒤인 1929년 10월 경제대공황으로 세계경제는 직격탄을 맞았고, 이듬해 영국 실업자는 250만 명으로 급증했다. 맥도널드 총리로서는 진퇴양난이었다. 맥도날드 내각은 이미 1929년에 실업수당을 올려놓은 터였다. 이를 지급하면 국가경제는 파탄 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결국 공공부문 임금인하와 실업수당 대폭 삭감을 단행하며 최대한 재정적자를 줄여야 했지만 국무위원들과 노조의 반대로 실행할 수 없었다.
이즈음 나온 이 만평은 ‘문제의 본체(본질)를 해결해야 한다’고 힐난한다. 만평 때문인지는 모르겠어나 맥도널드 총리는 1931년 영국 보수당·자유당과 손을 잡고 ‘국민정부(National Government)’라는 거국내각을 구성해 실업수당 문제를 헤쳐나갔다. 이후 1935년 총리직을 사임하고 1937년 11월 사망할 때까지 추밀원 의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