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업체에서는 오전 7시30분이 되면 작업자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와 같이 통근버스를 운용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 작업자들은 자기 차량이나 카풀(Car Pool) 차량으로 알아서 출근한다. 별도 작업 지시가 없어도 어제 일하던 위치로 이동해 7시50분쯤이면 어김없이 작업을 시작한다. 12시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모두가 제 자리에서 열심이다.
간혹 반장이나 중간 책임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추가 지시를 할 뿐이다. 일과시간 중 그들이 단체로 어떤 모임을 갖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연말 연휴를 보내고 새해 첫 출근을 하는 날에도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바로 작업장으로 향했다.
반면 한국 기업의 아침은 이채롭다. 작업시간 전 반별로 반장의 주도 아래 회합을 갖는다. 작업 시작 전에 체조를 하는 회사도 있고, 군대처럼 구보를 하는 회사도 있다. 반별 회합에서는 안전구호를 제창하고, 서로 격려하는 박수를 치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과장이나 부장이 주재하는 단체 조례도 있다. 매월 한 번 운동장 조례를 갖고, 공장장의 긴 연설을 경청한다. 애국가도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도 빠뜨리지 않는다. 신년 첫 출근 때는 전사원이 오너나 대표이사의 거창한 신년사를 듣고, 이어서 각 부서장의 장황한 당부 말씀을 듣는 것도 한국적인 특성이다.
유럽 업체에서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휴식시간이 없다. 작업시간 중에 커피를 마시거나 잡담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작업시간 중간에 부여된 5분여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쉬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 즉 회사와 근로자는 서로 ‘약속에 충실’한 것이다.
약속에 충실한 유럽 기업
하지만 한국의 업체에서는 작업시간에도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담배를 피워 물고 커피를 마시며 잡담하다가 관리자가 다가오면 슬그머니 일어나 작업 자리로 돌아간다. 그나마 관리자가 오면 작업장으로 돌아가던 예의(禮儀)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한국 기업에서는 일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많다.
직접 부서(직접 일을 하는 부서)에서 낮에 할 일을 다하면, 잔업거리가 없어진다. 간접 부서(직접 부서를 지원하는 부서)로서는 저녁에 할 일이 많아진다. 상사들이 퇴근하는 저녁 7~8시까지는 자리에 있어야 하므로 낮에 너무 열심히 일하면 오히려 곤란하다.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잔업을 염두에 두고 쉬엄쉬엄 해나가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찾아볼 수 없다. 유럽 기업들은 주 5일 근무가 아주 확실하다. 필자는 혼자 지내므로 주말에 별로 할 일이 없다. 주말에는 1주일의 보고서를 본사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전화 사용을 위해 가끔 사무실로 나가곤 한다. 그러나 토요일에 출근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 혼자다. 유럽의 현장 근로자와 간접 부서 요원들은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쉴 때는 철저히 쉰다. 대부분 3개월 근무한 후 2주의 휴가가 주어지는데, 휴가 때 확실히 자기 인생을 즐긴다. 이때 에너지를 충전하고 이것이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
한국은 어떤가. 회사에는 오전 7시가 넘자마자 도착했는데도, 회사 일은 빨라야 저녁 7~8시가 돼야 끝난다. 일정에 없던 회의, 하향식 업무지시, 수시로 내려오는 번외업무, 부서간의 실적경쟁, 이따금 동원되는 각종 행사에 직원들은 몸과 마음이 지쳐 버린다. 접대와 경조사 방문으로 저녁 시간도 한가롭지 않다. 번거로움은 주말에도 이어진다. 휴일에 회의 일정이 잡히기도 하고 체육대회·단합대회·산행·자연보호 청소·가두 캠페인 등 잡다한 행사가 많다. 자연 다음날 피곤할 수밖에 없어, 낮에는 적당히 쉴 곳을 찾는다.
내가 삼성에서 일할 때는 하루 12~13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주 44시간 근무는 허울 좋은 구호일 뿐이었다. 간혹 집안에 일이 생겨 하루를 쉬려해도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간접직일수록 눈치 보기가 심하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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