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7일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후반기 농정을 이끌어갈 책임자로 김동태(金東泰) 농림부 장관이 임명됐다. 그는 1970년대부터 농림부의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관료 출신으로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 농림부 차관을 지냈다. 1998년엔 소값 파동이 최대의 숙제였다면, 지금은 쌀값 하락 문제가 난관으로 등장했다. 인터뷰는 10월13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장관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장관으로 취임한 지 한달 넘게 지났습니다. 소감부터 말씀해주시죠.
“사실 저는 장관이 될 줄도 모르고 ‘금년에는 농림부가 쌀값 때문에 어려움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했는데, 막상 장관이 되고 보니까 ‘어려운 때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농촌 출신이고 농업학교를 나오고 농림부에서 오래 근무했으니까 ‘나보고 봉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장관님께서는 현재의 밑바닥 農心을 어떻게 느끼고 계십니까.
“쌀농사를 짓는 분들은 대개 나이가 많고 영세농이에요. 그분들은 쌀값이 해마다 큰 폭으로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정부가 계속 지원해주기를 바라는 거죠. 그러니 쌀값이 떨어지는 요즘,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농림부는 8월29일과 9월24일 두 차례에 걸쳐 쌀값안정 대책을 내놓았고, 9월4일엔 중장기 쌀산업 종합대책(9·4대책)을 발표했다. 전농과 한농연 등 농민단체는 특히 8·29대책과 9·4종합대책에 강력히 반발했는데, 농촌 현장에서는 일관성 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농림부는 최근까지 쌀 증산에 치중해 왔지만, 이번에 나온 대책을 보면 증산을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냐’며 반발하는 모습입니다.
“시점을 무시하면 안된다고 봐요. 1995년에 정부가 대북 쌀지원을 35만섬 했는데 그해는 냉해 때문에 작황이 나빴어요. 그랬더니 1996년 쌀재고가 169만섬까지 내려갔잖아요. 그때 농림부 공무원들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요. 만일 쌀이 모자라서 수입하겠다고 발표하면 아마 전 농민이 들고 일어났을 거예요. 그래서 농림부는 어떻게든 쌀 수입을 막기 위해 빈 땅이 있으면 무조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증산 쪽으로 간 거죠.
1996년부터는 작황이 계속 좋아서 재고가 차츰 늘어났어요. 제 생각에 재고가 넉넉해진 2000년쯤, 서둘러 정책을 전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하지만 농림부 공무원들이 보수적이인데다 속된 말로 방정 떨다가 재해가 올 수도 있으니까 조심했던 거죠. 그러다 올해 작황을 보고 이제는 중장기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양보다 질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정책기조를 세운 겁니다.”
―쌀 재고가 충분한 상황에 간척사업은 왜 하느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논 면적이 해마다 평균 1만7000ha씩 줄어들고 있어요. 10년 뒤 17만ha의 논이 사라지는데 새만금 간척지의 논면적은 고작 2만8000ha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남한의 쌀 소비량이 줄어도 공급량이 부족한 사태가 올 수 있습니다. ‘친환경 농업’을 도입한다는 전제에서 새만금 간척지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8·29일 대책과 9·24일 보완대책을 보면 수매량 등 주요내용이 많이 바뀌었는데, 이것은 농민들의 주장을 반영한 것입니까. 아니면 8월29일 이후의 작황 등을 고려하신 것입니까.
“둘 다죠. 8월29일 농림부 발표가 나왔는데도 농민들이 계속 불안해하고 내용에 대해서 비난이 쏟아졌잖아요. 8월29일에는 올해 작황을 3650만섬으로 잡았는데, 9월20일이 되니까 3750만섬까지 되겠더라고요. 공급량이 달라졌으니 대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거죠.”
“쌀도 상품이다”
9·4 쌀산업 종합대책은 한갑수(韓甲洙) 전농림부 장관이 발표했다. 한 전장관은 자민련 소속으로 9월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DJP공동정부의 마지막 국무회의에 참석한 뒤 사표를 제출했다. 말하자면 9·4대책은 한 전장관이 농림부를 떠나면서 내놓은 대책인 셈이다.
―물러나는 장관이 중요한 국가정책을 제시했습니다. 후임 장관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의미는 있겠지만, 왠지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한 전장관께서는 그만두기 전에 한국농업에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합니다. 벼농사의 기본틀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서 어려운 얘기를 한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농림부는 ‘품질위주로 정책 전환’이라고 표현했지만, 이게 따지고 보면 증산정책 포기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예요. 쌀도 상품입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품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그걸 누구한테 팔겠습니까. 2004년이면 쌀도 재협상해야 합니다. 물론 정부는 관세를 매긴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지만, 상대가 있기 때문에 예측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하려면 품질개선밖에 없어요. 다른 나라에서 어떤 쌀이 들어오더라도 우리 쌀을 찾도록 만들어야죠.”
―현재의 ‘약정수매제’ 대신 ‘공공비축제’ 방안을 검토한다는 부분도 농민들을 자극한 것 같습니다. 마치 정부가 2004년 이후 수매를 포기한다는 것처럼 비쳤는데….
“WTO(세계무역기구) 협정 때문에 수매량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2004년이 되면 지금 가격으로 계산했을 때 정부가 500만섬도 수매하지 못해요. 올해에 575만섬을 수매하면서도 쌀값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하잖아요. 2004년이면 정부수매가 농민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으니까, 차라리 농민들에게 더 좋은 공공비축제로 가자는 얘기였습니다. 그걸 갖고 농민단체에서는 2004년부터 정부수매가 없어지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건 아니죠.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검토과제일 뿐이에요.”
―검토과제를 농민들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나요.
“아이디어나 방향제시 정도로 봐주세요. 쌀농가가 100만이나 되다보니 의견수렴 자체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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