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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민원 제기하는 나라, 보복 없는 나라가 진정한 경제강국

자유롭게 민원 제기하는 나라, 보복 없는 나라가 진정한 경제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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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K의원 김모 원장의 평화로운 삶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은 2007년 8월. 어느 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직원이 갑자기 병원에 들이닥쳐 실사를 하겠다며 수납대장부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김 원장은 이미 예약된 환자가 있으니 진료가 끝난 뒤 관련 자료 등을 찾아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더구나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터라 자료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평원 직원은 처음엔 잠시 기다려주는 듯하더니 이내 진료실을 박차고 들어와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영업정지를 받을 것”이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 원장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얼굴이 새빨개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 원장은 “치료에는 환자와 의사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같이 있던 환자가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했겠느냐”며 당시의 악몽을 떠올렸다. 결국 김 원장은 더 이상 진료를 하지 못한 채 환자들을 돌려보내야만 했다. 심평원 직원은 통상 6개월인 실사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겠다며 그동안의 관련 자료를 모두 내놓으라고 다그쳤고, 김 원장은 불합리하다며 이를 거부하고 실사팀을 바꿔줄 것을 요청하는 민원을 냈다.

되돌아 온 민원서류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 컸다. 김 원장은 결국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혐의로 영업정지 1년, 면허정지 7개월, 벌금, 환수금 5배 부과 등의 조치를 받은 것은 물론 검찰에 기소돼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됐다. 충격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며 억울한 사연을 청와대, 인권위, 국민권익위 등에 제출했다. 그러나 모든 민원은 보건복지부(현 보건복지가족부) 민원실을 거쳐 자신의 조사를 맡았던 담당 사무관에게 전달됐다. 자신이 낸 민원서류를 당사자인 공무원이 전화로 읽어 내려가자 김 원장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서울지법 북부지원은 지난해 8월 김 원장에 대해 “심평원 직원이 임의로 자료 제출을 요구한 부분과 관련 실사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한 것을 거부한 피고인의 행위를 위법하다 볼 수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히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문서 없이 심평원 직원이 3년간의 관계 서류 제출을 요구한 것은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18세기 조선 정조 시절, 황해도 곡산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이유는 군포대금을 200냥에서 900냥으로 올리는 등 관의 횡포가 심했기 때문이다. 이에 조정에서는 다산 정약용을 부사로 임명하면서 주동자를 처형하도록 명령했으나, 부임 길에 주동자를 만난 정약용은 주동자 이계심의 시위 사유 10가지를 듣고 그를 무죄방면했다. 나아가, 다산 정약용 선생은 그에게 “너는 관이 천금을 주고 사야 할 사람이다”고 하면서 “관이 현명해지지 못하는 까닭은 민이 제 몸을 꾀하는 재간을 부리고 관에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다산 선생과 보복금지 정책



모든 정부 규제는 민원 기업들이 불합리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면 결국은 개선된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바로 민원 기업들에 대한 보복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업인들이 부담 없이 불합리한 규제에 대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소기업 규제 개선의 핵심 과제이자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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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기업호민관 mhlee@homi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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