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팜랜드 전경. 독일풍의 건물들이 이색적이다.
요즘 ‘친환경’이 대세다. 초등학생도 ‘환경친화적’이란 말을 예사로 쓴다. 소를 그려보라고 하면 초원부터 그린다. TV에서 본 유럽의 목장이 교본이다. 친환경 작물이 아니면 찬밥 신세가 되는 것처럼 이제 축산물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은 친환경 유기농 작물이 있듯, 항생제를 전혀 쓰지 않고 유기농 사료만 먹고 자란 소와 닭, 돼지 등 유기농 축산물이 백화점 진열장에 올라온다.
목장이 체험관광지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가축과 같이 놀고 먹이도 주고 분뇨도 치워보고 고기도 먹을 수 있는 곳. 들판과 사육장이 1차산업인 농업·축산업과 2차산업인 농축산물 가공업, 3차산업인 음식업·숙박업·관광업이 서로 결합한 ‘6(1+2+3)차산업’의 현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농정공약에도 농축산업의 6차산업 확대, 축산분뇨의 고품질 비료화, 친환경 축산물 집중육성 등이 포함돼 있다.
축산의 뉴 패러다임
드넓은 초원에 서 있는 미루나무 한 그루. 푸른 하늘과 맞닿은 초원 위에는 소 양 염소 말 등 가축 여러 마리가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붉은 기와를 얹은 뾰족 지붕의 그림 같은 집들에선 음악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자연, 사람, 가축, 기르는 자와 길러지는 존재의 구분이 힘든 곳. 가축들은 초원의 풀을 먹고 자라고, 그 분변은 유기농 퇴비가 되어 풀을 자라게 하며, 그 풀은 다시 유기농 사료가 되어 가축을 길러내는 곳. 한 줌의 풀도 버려지지 않고 오염물도 나오지 않는 자연과 자원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곳이 있다.
유럽이나 호주의 한적한 시골 풍광을 떠올리겠지만, 서울에서 1시간 30분 정도만 가면 이런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농협중앙회가 운영하는 안성팜랜드와 농협사료 경기지사다.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일대 129만㎡(39만 평)에 자리 잡은 이곳에선 친환경 축산과 유기농 축산, 농축산 테마관광공원, 체험축산, 신성장동력 육성 등 박 대통령의 농정공약이 실현되고 있다. 6월 5일 축산업의 6차산업화와 친환경 축산 현장을 실제로 보고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각종 곡물의 파종 절기인 망종이자 ‘환경의 날’이었다.
오전 10시쯤 경부고속도로 안성IC에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 안성팜랜드 정문에 도착하자 단체관광을 온 사람들이 매표구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데가 있었네…”라는 말들이 들려온다. 그림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유럽풍 건물들과 그 뒤로 펼쳐진 초원. 얼마나 넓은지 저 멀리 있는 가축이 작은 점으로 보일 정도다. 입구에 자리 잡은 한우식당들이 출출한 기자를 유혹한다. 그래도 일단은 일이 먼저. 단호하게 돌아섰다. 정문을 통과하니 왼편과 중앙으로 독일풍 건물들이 보이고 오른편에는 분수대와 넓은 광장이 자리 잡고 있다.
광장 중앙에 비석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한독목장 기념비’. 그 옆에 있는 안성팜랜드 역사관에 들어가니 기념비를 왜 세웠는지 알 수 있었다. 안성팜랜드의 옛 이름은 ‘한독낙농시범목장’이다. ‘한독’은 한국과 독일을 뜻한다. 1969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독일에서 차관을 들여와 목장을 만든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축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당장 허기를 덜어줄 쌀 한 톨이 아쉬웠던 시절이었으니 축산업 발전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를 짐작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