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규모인 7조8000여 억원이 투입돼 건설된 인천공항이 개항한 것은 21세기의 초엽 2001년 3월22일이었다. 이처럼 새시대를 연 인천공항은 활주로를 힘있게 달리다 날렵하게 도약하는 여객기처럼, 한국을 번영된 미래로 이끄는 견인차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항 4개월도 지나지 않아 인천공항은 구설수에 올랐다. 인천공항 옆 유휴지에 골프장을 짓기로 한 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특혜 시비가 그것이다.
인천공항이 어떤 공항인가? 동북아의 중심공항을 목표로 건설된 공항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 사는 사람들이 작은 여객기나 열차를 이용해 인천공항에 모여들고, 이곳에서 대형 여객기로 갈아타 유럽과 미주로 날아간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올 때는 대형 여객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한 후, 작은 여객기나 기차 등으로 갈아타 한·중·일의 도시로 흩어지는 것이다. 중심공항은 대형 공항을 짓는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치밀한 계획과 그 계획을 달성하려는 중단 없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 동북아 중심공항의 지위는 부지불식간에 빼앗기게 된다.
박람회의 천국 프랑스 파리
동북아에는 중심공항을 목표로 만들어진 공항이 여러 개 있다. 일본 도쿄의 나리타(成田)와 홍콩의 첵랍콕공항, 중국 상하이(上海)의 푸동(浦東)공항은 이미 영업중인 중심공항이다. 인천공항이 이들을 누르고 동북아 최고의 중심공항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 다행히 인천공항은 항공기의 이·착륙 이용료가 싼 편이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에만 의존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 기존의 중심공항들이 공항 이용료를 낮춰 출혈경쟁을 불사한다면, 신생아인 인천공항의 수지는 급격히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심공항이 되기 위해서는 손님을 오게끔 하는 정밀한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인천공항 주변에서 국제행사가 자주 열리고 행사장 접근이 용이하다면, 인천공항은 상당한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다. 둘째로는 항공과 철도 교통의 유기적인 결합이다. 인천공항을 항공기의 이·착륙뿐만 아니라 다양한 열차가 도착하고 출발하는 곳으로 만든다면 더욱 더 많은 손님이 몰려들 것이다.
유럽 최대의 공항은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샤를 드골2공항이다(이하 드골2공항). 지난 8월 말 기자는 TGV 제작사로 유명한 프랑스의 알스톰사와 드골2공항을 취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TGV는 ‘고속열차’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Train a ̄Grande Vitess’의 머리글자를 딴 약어다. 이 말을 영어로 바꾸면 ‘Train for High Speed’가 된다).
드골2공항은 그 크기 때문에 유럽의 중심공항이 된 것은 아니다. 파리는 적잖은 외국 손님을 끌어들이는 세계적인 관광도시이지만 프랑스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였다. 파리를 세계적인 박람회 도시로 만든 것이다. 파리와 그 주변에서는 ‘파리에어쇼’를 비롯해, 직물전시회·의류박람회·국제패션쇼 등이 연중 무휴로 펼쳐진다. 박람회에 오기 위해 드골2공항에 내리는 승객이 연 300만명이다. 파리를 박람회 도시로 만듦으로써 드골2공항은 연 300만의 승객을 창출한 것이다.
공항 주변에 호텔 지역을 만들자
이처럼 수많은 박람회를 위해 프랑스는 드골2공항 인근에 대형 박람회장을 만들었다. 드골2공항에 내린 외국업체 대표는 파리 도심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박람회장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또 프랑스는 드골2공항과 박람회장 부근에 대규모 호텔 단지를 조성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비즈니스맨들은 호텔을 구하려고 ‘교통지옥’인 파리로 들어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드골2공항은 2A·2B·2C·2D·2F의 다섯 개 터미널로 구성돼 있다(2E터미널은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 이 중 가장 큰 2F터미널과 2D터미널 사이 회랑에는 350개의 방을 갖춘 쉐라톤호텔이 있다(그림1 참조). 이외에도 드골2공항 주변에는 호텔들이 군(群)을 이루고 있는데 객실은 모두 3000여 개에 달한다. 따라서 1분 1초가 아까운 비즈니스맨들은 공항 주변의 호텔에 투숙해 일을 본 후, 재빨리 파리를 떠날 수 있다. 손님들이 편리하게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재빨리 파리를 떠날 수 있게 한 것이 드골2공항을 유럽 최고의 중심공항으로 만든 요인이었다.
서울은 어떤가. 서울에서 대표적인 도심인 강남구 삼성동에 코엑스 전시관이 있다. 때문에 외국 비즈니스맨들은 국제선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도착해, 다시 1시간 이상 차를 타고 교통이 혼잡한 삼성동으로 달려와 코엑스 인근의 호텔에 투숙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복작이는 삼성동은 더 더욱 ‘콩나물 시루’가 됐다. 한국을 처음 찾은 외국인이라면 삼성동 일대에 몰려든 인파에서 한국의 활력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을 자주 찾는 비즈니스맨에게는 ‘교통지옥’에 불과할 뿐이다.
앞서 밝혔듯 인천공항은 주변 유휴지에 골프장을 지으려다 특혜 시비가 불거졌다. 인천공항공사가 골프장을 지으려고 한 것은 보다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파리에서 만난 한 토목 전문가는 이렇게 비판했다. “골프장이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인가? 아무리 큰 골프장이라도 최대 1000명 이상은 수용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골프장과 박람회장은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용할 수 있는 사람 수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인천공항공사가 정말로 돈을 벌고 싶다면 무엇이 더 많은 사람을 유인하는지부터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한다.”
강동석(姜東錫) 인천공항공사 사장의 최대 고민은 빠른 시간 내에 돈을 버는 것이다. 빠른 시간에 투자비를 회수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벌고 그 돈을 공항 확충 공사에 재투자하는 것만이 인천공항을 확고부동한 동북아의 중심공항으로 만드는 길이다. 이 전문가는 이렇게 충고했다.
“비즈니스맨의 소비력은 관광객 이상이다. 그들은 회사 체면 때문에 고급 호텔과 고급 식당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는 비즈니스맨의 소비력을 유치할 수 있도록 드골2공항 주변에 박람회장과 고급 호텔지대를 만들어, 파리 시내에 못지 않은 또 하나의 고급 소비지대로 만들었다. 인천공항 주변에 골프장이 들어섰다고 생각해보자. 한국 현실에서는 골프장 주변에 러브호텔과 주점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영종도는 고급 소비지대가 아니라 인천의 월미도처럼 노래방과 횟집 그리고 여관촌이 번성하는 저급 소비지대가 될 것이다. 인천광역시와 인천공항공사는 영종도를 드골2공항 주변으로 만들 것인가, 월미도로 만들 것인가. 인천시와 인천공항공사는 발상의 전환을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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