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근 ‘4대’.
아침밥을 지어야 하는데 쌀이 없어서 부엌 한켠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 아내. 등록금을 내지 못해 창피하다며 학교에 안 가겠다고 버둥거리는 아이. 병원비가 없어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예술가. 사정이 이렇게 절박한데도 ‘예술가의 가난은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운이 좋으면 예술작품이 돈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1950∼60년대를 살았던 한국의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과연 ‘운수 좋은 날’이 얼마나 됐을까.
이쯤에서 이야기의 실체를 밝히자. 해외의 그림 경매장에서 한국인의 그림으로는 최고가 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고 박수근(1914∼65) 화백의 이야기다.
통상 그림엽서 한 장 크기를 1호라고 하는데, 박수근의 그림은 호당 1억5000만∼2억원을 호가한다. 그러니 그의 그림 몇 점만 지니고 있어도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련만, 그의 아들과 손자의 가난은 2005년 2월에도 ‘현재진행형’이다.
3대에 걸친 가난
아버지의 그림이 그렇게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으나, 박수근 화백의 장남 박성남(58·서양화가)은 호주 시드니에서 18년 동안 청소부로 일하면서 ‘한 목숨 걸어놓고’ 그림을 그린다. 박수근의 큰손자 박진흥(32·서양화가)은 경제적 부담이 적은 인도의 델리미술대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하고 역시 새벽에 청소를 해서 번 돈으로 호주 웨스턴시드니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한 후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3대째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작고하던 해(1965년)의 박수근(左). <br>박수근이 그린 컷들.
필자에겐 박수근과 관련해 궁금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한국전쟁 통에 만난 박수근의 이야기를 소재로 ‘나목(裸木)’이라는 데뷔작이자 출세작을 쓴 소설가 박완서에 대한 궁금증이다. “박수근과 박완서는 연인 사이였다” “‘나목’은 소설의 형식만 취했지, 사실은 두 사람의 실화를 쓴 논픽션이다”라는 등의 풍문이 떠돌았기에 이참에 그 궁금증까지 함께 풀어볼 작정이었다.
부끄럽지 않느냐? 바람 사나운밤중엔 춥지 않더냐?벌거벗은 김장철의 나무야
낮엔 햇볕이 따사롭고밤엔 별빛 정겨우니고단했지만 외롭진 않았지요
맨땅에 앉아 있는 노인들과흰옷 입은 아낙들, 아기 업은 소녀담을 게 없어 슬픈 보퉁이를머리에 이고 귀가하는 사람들어디선가 포성이 들려오면하던 말을 멈추었던우리… 벌거벗은 나무들1952년 겨울, 서울의 초상화
뿌리 끝엔 봄에의 향기가애닯도록 절실한 나목*
*박완서 소설 ‘나목’에서 인용- 윤필립 詩 ‘박수근·박완서의 裸木’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