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8월 폭발한 필리핀 마닐라 마욘 화산.
플리니식(plinian) 분출 양식이라고 일컫는 이 화산활동은 83~117km3의 화산재와 부석 형태로 마그마를 뿜어내 화산재의 분출기둥이 대기 중으로 25km 이상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화산재와 부석층은 편서풍의 영향으로 동쪽과 동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멀리 동해를 지나 일본 혼슈 북부와 홋카이도 남부지역에 화산재 비를 뿌렸다.
이 중 가벼운 화산재의 일부는 지구 성층권 내에서 제트 기류를 타고 지구를 몇 바퀴 돌다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에 뿜어져 나온 고온의 화산재와 부석들은 화산회류(火山灰流)의 형태로 화산체의 산 사면과 계곡을 따라 주변 약 60km까지 흘러가 쌓였다.
1000년 전의 대분화 사건 이후에도 역사적으로 백두산에선 지난 300년간 여러 번의 화산 분화 활동이 있었다. 고증을 통해 백두산 화산 분화 역사기록을 검토한 결과, 1668년(6월2일), 1702년(6월3일) 및 1903년(5월)의 기록만이 천지(天池) 칼데라 화산의 분화사건으로 확인됐다.
그 외의 화산 기록은 백두산 주변의 근세 화산체가 분화한 사건의 기록으로 확인됐다(예컨대 1597년 10월7~8일의 분화기록은 함경도 삼수군 지역, 1724년 5월23일의 기록은 함경도 홍원현 지역, 1900년의 분화는 백두산 북부 돈화(敦化)현 북부지역). 그리고 1413년과 1898년은 제시된 원문 기록에서 분화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연구 자료의 문제점
1999년 이후 중국 국가지진국 천지화산관측소에서 천지 칼데라 화산에 대해 계절성 미세 지진 관측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마그마가 미약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천지 주변 100km 이내의 지역에서 ‘진도 2’ 전후의 미진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는 천지 칼데라 밑에는 액체 상태의 녹은 암석, 즉 마그마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1991년 8월29일 12시45분 천지 북서쪽 외륜산인 백운봉 부근의 천지를 두르는 환상단층 지역에서 연기가 분출됐다. 백운봉 남쪽에서는 분기공이 약 10m 높이로 솟아올랐으며, 이때 유감지진(有感地震·지진계는 물론 사람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지진)이 있었다고 한다. 역사문헌 기록을 보면 100년 내지 200년 이내의 시간 간격으로 소규모의 분화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일본 NHK는 백두산 화산 분화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고 이 틈을 타서 거란이 침입하자 발해제국이 멸망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백두산의 대폭발 시기를 연구하는 중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은 화산재 속에 파묻힌 탄화목(炭化木)의 탄소동위원소 연대 분석을 통해 발해제국이 멸망한 서기 926년보다 뒤인 서기 960년경에 백두산 천지 화산 분화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백두산 화산 분화가 발해의 멸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연구 결과에서는 화산 분출에 연관된 목탄이나 나무 시료에 대한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서기 760~960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한다. 백두산 화산 분화가 발해의 멸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주장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백두산 화산 분화의 정확한 연대를 산출하려면 북한 쪽 백두산에서 확보한 여러 시료가 필요하다. 10세기 분출물에 대한 지층의 분포 상태를 보면 대부분이 북서풍(또는 남서풍)의 영향으로 동쪽 또는 동남쪽 북한 땅으로 고온의 화산재와 부석이 흘러가서 쌓였으므로 북한 지역의 백두산 영역에서 많은 탄화목 시료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연구에 사용된 자료는 중국측 백두산에서 채취한 것이다. 또 연구에 사용된 대부분의 탄화목이 원 산림의 식생지에서 수직으로 서 있는 나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화산회류나 화산이류(火山泥流), 토석류(土石流)에 의해 이동돼 수평으로 넘어져 있는 나무의 탄화목을 대상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