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된 ‘신라면’.
필자가 생각하기에 일본에서 손님이 줄을 서 있는 음식점은 대체로 라면집이었다. 올여름엔 도쿄(東京) 도심인 시나가와(品川)구의 주택가에 있던 유명 라면집이 수백미터씩 줄을 서 있는 손님들로 인한 소음과 담배꽁초 등으로 이웃주민들에게 폐를 끼쳐 하는 수 없이 가게를 이전키로 했다는 내용이 TV에까지 보도됐을 정도다.
일본 텔레비전의 음식관련 프로그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업종도 초밥집과 라면집이다. 수많은 라면 관련 잡지가 발행되는가 하면, 매주 라면애호가들이 지역별로 매기는 ‘맛있는 라면집 베스트 10’등의 랭킹도 발표된다. 신축 대형건물 한 층에 ‘라면 스퀘어’식으로 이름을 붙인 밀집형 라면전문식당가도 있고, 매년 라면집 주방장들이 라면 맛 실력을 겨루는 ‘라면직인(職人) 챔피언전’도 열린다. 10월 현재 일본 전역에는 8만여 개의 라면집이 영업하고 있다.
라면에 인생을 건다
한국 분식점에서 파는 라면은 출출할 때 때우는 간식 개념이지만, 일본 라면집에서 파는 라면은 주식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돼지 뼈인 ‘돈고쓰(豚骨)’를 푹 곤 국물에 그 가게에서 만든 자가제(自家製)면을 넣어 끓인 뒤 편육 몇 점과 삶은 달걀 등을 얹어 내놓는 ‘돈고쓰라면’이나 ‘미소(味·된장)라면’, ‘쇼유(醬油·간장)라면’등이 가장 일반적이다. 라면 가격도 종류와 양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600~1000엔 선으로 싼 편이 아니다. 다른 음식 한끼 값과 비슷하다.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이후 2000년대 중반 한때 회복기미를 보이던 일본경제는 2008년 리먼쇼크 이후 엔고와 디플레이션 심화 등으로 다시 혼미상태다. 일본경제의 재생이 불투명해지자 소비자는 더욱 지갑을 열지 않으며 저가상품을 찾고, 메이커나 외식기업 등은 고객을 잡기 위한 저가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엔 300~ 500엔대의 싼 라면 등을 파는 면류(麵類) 대형체인점인 ‘고라쿠엔(幸樂苑)’‘히데이 히다카야(日高屋)’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작은 라면집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20~30대의 젊은이다. 체인라면집이 아닌 경우 몇 평밖에 안 되는 좁은 공간에, 머리띠를 두른 젊은이 혼자서 만들고 서비스하는 식이 일반적이다. 이런 가게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대체적으로 식권발권기가 설치돼 있다. 구멍가게 같은 라면집이지만 장사가 어느 정도 된다면 회사 등에 취직하는 것과 같은 직장을 구하는 셈이 되므로 젊은이들 중엔 라면가게에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몇년 전 TV에서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집’으로 소개된 신주쿠(新宿)의 라면집 ‘무사시(武藏)’의 젊은 주방장은 가게 옆에 별도의 연습장까지 차려놓고 라면 끓이는 연습을 하며 라면창작에 몰두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라면(拉麵)은 원래 중국음식
그렇다면 일본에선 왜 이렇게 라면이 인기 있는 음식이 됐을까?
본래 라면은 중국음식으로 한자로는 ‘납면(拉麵)’이라고 쓴다. 중국에서는 ‘노면(老麵)’‘유면(柳麵)’이라고도 했다. ‘납면(拉麵)’이 일본 발음으론 ‘라멘’이 된다.
메이지(明治)유신(1868년) 직후인 1870년대 요코하마(橫濱) 등 일본의 개항장에 들어온 중국 사람들이 라면을 노점에서 만들어 팔면서, 일본에 라면이 처음 알려지게 됐다. 당시에는 라면이란 명칭이 아니고 ‘지나(支那)소바’‘남경(南京)소바’라고 불렸다.
이후 일본 여기저기에 이 중국 라면을 파는 점포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구 일본군으로 중국에 출정한 뒤 1945년 8월 일본 패전 후 라면 만드는 법을 어깨너머로 익힌 사람들이 귀국해, 포장마차에서 중국라면을 만들어 팔았다. 전후 물자가 궁핍하고 경제사정이 어려운 시기에, 값싼 재료에 맛있고, 영양도 있는 라면은 일본에서 인기 있는 식품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