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유독 안보 긴장 상황이 자주 빚어지는 아시아에서 CMIM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나아가 동북아의 협력을 공고히 이끌어낼 수 있을까. UC 샌타바버라의 국제정치경제학과 교수인 필자는 동아시아지역 금융통합 움직임은 역내 안보 긴장과 공동의 정체성 부족으로 인해 대부분 상징적인 선에 머물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뛰어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된다면, 금융지역주의를 향한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동아시아 국가들이 현재의 안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글로벌 아시아’ 2011년 여름호 기고문을 번역, 게재한다.
동아시아 지역의 금융지역주의와 안보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동인(動因)은 무엇인가? 동아시아 금융 협력은 이론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추진되어왔지만 실제로는 역내 안보 긴장 탓에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각국 상호간 보다 밀접한 통화 및 금융 관계 실현을 위한 임시적 조치들이 실행된다면 역내 안보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경우 각국 정부가 상호 공조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게 되고 서로의 국익이 보다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내 금융지역주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겠지만, 역내 국가들의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가 담보되지 않는 한, 향후 이러한 노력을 통한 성과는 아주 미미할 것이다.
현재까지 동아시아가 일궈낸 괄목할 만한 성과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다. CMI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 회원국과 한국, 중국, 일본을 합친 ASEAN+3 회원국들의 합의 하에 2000년 5월 출범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탄생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양자 간 통화스와프협정(BSAs)을 통해 상호 유동성 지원의 근간을 마련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스와프협정(swap agreement)은 중앙은행끼리 주로 환시세(환율)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서로 자국 통화를 예치할 수 있게 하는 협정을 말한다. CMI의 본 스와프협정은 기껏해야 600억달러 규모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초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라는 명칭 아래 모인 기금 규모는 1200억달러에 달했다. 이 기금을 통해 한 회원국이 필요로 할 때 동원할 수 있는 유동성이 커졌다. 이로 인해 CMIM이 역내 국가 간의 보다 밀접한 금융 통화 관계를 설정하는 근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중요한 것은 CMIM이 새로운 공동 의사결정 프로세스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동기금이 양자 간 스와프협정을 대체한다면, 자금 확보에 대한 결정은 다수결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지역적 금융 통합을 향한 진일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과장된 감이 없지 않다. 현재의 양자간 통화스와프협정을 통해 기금규모가 확대되긴 했지만, 향후 예상되는 필요 액수에 비하면 현재 기금 규모는 여전히 작다. 게다가 현재의 지배구조 역시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전원 합의 방식을 근거로 해 각국 국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이 적용될 것이다. 각국 정부 역시 독단적인 행보를 취하면서 통화 및 환율 정책을 자국의 입맛에 맞게 펼치는 행태가 지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돈은 각국 중앙은행의 국가보유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CMIM이 다분히 상징적인 성격이 짙고 기껏해야 국가 간 최소한의 친선 행위에 불가하다는 인상을 면하기 힘들다. CMIM의 실질적인 영향력은 눈에 띄지 않으며, 출범한 지 10년이 넘은 현재까지 회원국 어느 누구도 CMI(치앙마이 이니셔티브) 혹은CMIM(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을 통해 대출을 받은 사례가 없다.

2010년 10월29일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 이날 회의에서는 상호 유동성 지원을 골자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체제 등이 논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