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다툼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이던 아서 밸푸어(Balfour)가 영국 국적의 저명한 유대인 로드쉴드(Rothshild)에게 서한을 보내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를 인정한다는 약속인 밸푸어선언을 하면서 분쟁의 싹이 텄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8년, 이 선언을 믿은 유럽 거주 유대인들이 가방을 한 개씩 들고 현재의 이스라엘 땅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60여 년에 걸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끝도 없는 갈등의 시작이었다.
2011년 9월24일, 팔레스타인의 임시수도 라말라 시내 중심에 있는 마나라 광장에는 시민 1만2000여 명이 모였다. 이날은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지위를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하는 날이었다. 압바스는 뉴욕에서 개막된 제66차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 승인 결의안을 제출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압바스 대통령이 제출한 결의안에는 1967년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점령하기 이전 상태의 국경으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팔레스타인이 유엔의 정회원국이 된다는 것은 그동안 이스라엘에 당한 설움을 딛고 국제사회에서 정식국가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가슴 벅찬 역사적 순간을 보기 위해 많은 시민이 몰려든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취재진과 광장 주변의 골목과 건물 옥상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무대 위에 설치된 대형 TV스크린을 통해 압바스의 연설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숨을 죽였다. 압바스의 유엔 연설은 감동적이었으며 연설이 끝나자 인파 곳곳에서 박수갈채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연설을 지켜보던 대학생 모하마드 아로프(21)는 흥분에서 “여기 모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열기를 느끼세요? 우리는 이제 국제사회로 가는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오늘부터 팔레스타인은 더 이상 폭탄이나 터뜨리는 문제아가 아닌 정식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과 맞서 당당히 싸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인파 속에선 대형 팔레스타인 깃발이 흔들렸고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원한다’라는 구호도 나왔다. 사실 현실적으로만 보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있는 한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은 거의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첫 삽에 불과한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만으로도 열기와 환호의 도가니에 빠진 것이다.
유엔 정회원국에도 도전
팔레스타인의 결의안이 제출된 후 유엔의 절차는 이랬다. 제출된 결의안을 안보리에 넘겨 15개 이사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거부권을 행사하는 국가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예상대로 미국이 “팔레스타인의 국가 수립 문제는 협상을 통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노력이 좌절되더라도 옵서버 국가로 지위가 상승되므로 팔레스타인으로서는 밑져야 본전이었다. 옵서버 국가가 되면 세계보건기구, 유네스코, 국제형사재판소(ICC)와 같은 유엔 기구에 정식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정착촌, 자국의 난민 문제 등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기할 수 있으며 유사시 유엔평화유지군 파견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은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 등 서방의 반대로 독립국 지위 획득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되자 영리하게 유네스코에 먼저 가입하는 쪽으로 우회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안보리와 달리 거부권 규정이 없는 유네스코를 발판 삼아 유엔 총회에서 최종적으로 국가 자격을 인정받겠다는 외교적 전략이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이 국제사회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유네스코에 가입된 것이다. 예상대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반대했지만 이미 대세는 팔레스타인 편이었다. 당당히 유네스코 회원국으로 발돋움한 팔레스타인은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이 확정될 경우 유네스코 재정의 22%나 되는 700만달러의 재정 지원을 보류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데이비드 킬리언 유네스코 주재 미국대사는 “이번 표결은 미국의 유네스코 지원을 어렵게 할 것”이라며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이스라엘도 외무부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은 중동평화협상 재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지만 역부족이었다.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에 가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로 인한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은 예고한 바와 같이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회원국 가입 통과가 확정된 직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유네스코에 대해 재정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가 된다는 데 대해 유네스코 지원금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쓰는 미국이 언뜻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 조치는 엄연히 1990년 미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의한 것이다. 이 법은 팔레스타인에 국가 지위를 부여하는 유엔 기구에 대해 미국 정부가 재정지원을 금지토록 하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된 이유나 미국이 이렇게 결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국가 탄생을 막는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때문이다.
미국 정치판을 들여다보면 공화당과 민주당 할 것 없이 유대인이 대거 포진해있다. 미국의 주류 사회도 유대인이 주름잡고 있다. 이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 어떤 불리한 상황이 오면 미국 정부를 압박해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미국과 이스라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맹방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가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에 엄청나게 불리한 미래를 예고한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세계 평화를 위해 테러리즘을 응징하는 안보 전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팔레스타인을 마음대로 공격했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의 지지를 얻어 팔레스타인이 정식 국가가 된다면 이스라엘의 이런 정치적인 입장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러니 이스라엘과 미국은 결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국제사회 등장을 막는 것이다.
이 두 나라의 의지대로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은 쉽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이 정회원국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9개국이 지지하고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가 없어야 한다. 팔레스타인은 8개국의 지지를 얻었으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위원회는 지난 11월 초 팔레스타인에 유엔 정회원국 지위를 부여하라고 안보리에 추천하는 안건을 놓고 안보리 15개 이사국이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고 결정했다. 팔레스타인의 꿈은 좌절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팔레스타인은 만약 유엔 정회원국 승인 요청이 좌절되더라도 패배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필자에게 익명을 요구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리는 “유엔 정회원국 가입 좌절은 예상했던 일이다. 그보다 우리는 앞으로의 대안을 추진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 우리가 국제기구를 통해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를 알릴 수 있고 외교적 도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유엔 정회원국 가입 시도의 성과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재정지원 중단 발표
이번 유네스코 가입으로 팔레스타인은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이 외교적 능력을 인정받은 계기가 됐으며 과거의 무장 테러리스트 국가라는 오명을 버리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합법적인 길을 선택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 후 많은 나라가 지지와 박수를 보냈다. 아이슬란드 의회는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투표를 진행해 총 63표 가운데 찬성 38표로 가결했다. 브라질 외교부도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이 확정되자마자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정회원 가입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정회원 가입안에 대해 팔레스타인 독립국 건설을 지지해온 브라질은 찬성표를 던졌다. 팔레스타인이 유엔 정회원국 승인을 신청했을 때 중국 외교부의 훙레이 대변인은 “팔레스타인과 아랍국가 인민이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권리를 회복하는 것에 대해 중국은 일관되게 지지해왔다. 독립국가를 세우는 것은 팔레스타인 인민의 필수적인 권리”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 시도는 여러 나라의 지지를 이끄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비록 유엔 정회원국 가입은 좌절되었지만, 팔레스타인은 위와 같은 국제사회의 지지로 힘을 받았다. 이미 유네스코 정회원국 가입에 성공한 팔레스타인은 다른 유엔 산하 국제기구 가입도 추진 중이다. 이브라힘 크라이쉬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 주재 팔레스타인 특사는 “팔레스타인 외교관들이 전날 유네스코 정회원국 가입을 이뤄낸 성과를 발판으로 다른 16개 유엔 산하 기구에 진출하기 위한 신청 절차를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크라이쉬 특사는 유네스코 총회의 투표 결과는 더 광범위한 유엔 기구 회원국 자격을 얻는 데 하나의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국제기구와 유엔기구에 합류하는 것”이라며 “유엔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기구 가운데 하나인 유네스코에 정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하나의 선례를 만든 만큼 다른 유엔 기구들에 합류하는 데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의 이런 계획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편에 서서 옹호하던 미국 정부를 당황스럽게 했다. 당장 미국이 유네스코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복으로 단행하려던 지원금 거부가 문제가 된다.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 외에도 나머지 16개 유엔 산하기구의 정회원국이 된다면 미국의 유엔 기구 재정지원 중단이 잇따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유엔 기구의 관계가 단절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공조를 강조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유엔과 유엔기구에서의 영향력은 미국이 그동안 세계 안보를 다루는 데 중대한 무기였다. 미국이 만약 이들 기구에 대해 재정지원을 끊는다면 결국 해당 기구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다. 미국이 지원금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던 유네스코만 보더라도 회원국이 2년간 분담금을 체납할 경우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유네스코와 연계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팔레스타인의 회원국 가입을 허용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 기구는 구글이나 애플 등 미국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방파제 다. 만약 미국 정부가 지원금 중단 카드를 들고 나오면 이들 기업이 앞으로 다른 나라에서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을 길이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핵 비확산 문제를 다루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팔레스타인이 가입하고 미국이 IAEA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하면 문제는 더 커진다. 북한과 이란에 대한 핵 확산 문제에 누구보다 예민한 입장인 미국이 이 기구에 대한 지원금을 중단한다면 세계 여론은 미국을 비난하는 쪽으로 흐를 것이며 미국 안보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이들 기구들은 미국의 국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정부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도 “유엔 기구들에 대한 자금지원 중단이 이들 기구 내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시인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옵션들이 가능한지를 놓고 의회와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 입장이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팔레스타인 여파로 국제기구 지원금 중단 카드를 꺼내 든 미국 정부에 대한 자국 여론도 좋지 않다. CNN 방송은 지난 11월1일 “유엔 기구에 대한 자금지원 중단은 미국 영향력의 손실 이상을 의미한다”면서 “자금지원 중단은 미국 국가이익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방송은 “미 의회가 팔레스타인을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유엔 기구들에 대한 자금지원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적인 권한을 행정부에 주지 않을 경우 벌을 받는 곳은 단지 팔레스타인만이 아닐 것”이라고 보도했다. AP는 “미국은 주요 대외 현안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한 더 이상 `슈퍼파워’가 아니라 ‘극도로 힘이 없다’는 뜻의 ‘슈퍼파워리스(super powerless)’로 불려야 할 처지라고 최근 보도했다. 미국이 이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쓸 카드가 없다는 의미다.
지원금 중단은 이제 팔레스타인을 압박할 카드가 아닌 미국 스스로를 옥죄는 카드로 작용하고 있다. 또 유네스코가 교육, 표현의 자유, 재해방지 등 여러 분야에서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하는 국제기구라는 점도 미국에 상당히 불리하다. 아무리 이스라엘 눈치를 보느라 바쁜 미국이라 해도 약소국인 팔레스타인 때문에 인도주의적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유네스코와 단절하고 지원금마저 중단한다는 것은 세계 여론을 악화시킬 소지가 있다.
난감한 처지의 미국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은 세계에서 제일 시끄러운 분쟁지역이다. 국제 뉴스에선 빠지지 않고 팔레스타인 뉴스가 등장한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1969년 팔레스타인의 전설적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를 PLO 의장으로 임명하고 이스라엘과 투쟁해왔다. 1988년 11월 PLO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천명했지만 이스라엘이 여전히 팔레스타인 지역의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명목상의 국가일 뿐이었다. 그래서 PLO는 이스라엘을 제거한다는 기존의 목표를 포기하고, 대신 독립적인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면서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안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내부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이 바람에 PLO는 온건파와 과격파로 나뉘게 된다. 그 과격파에서 파생된 것이 바로 하마스다. 아랍어로 이슬람 저항운동이라는 뜻의 하마스는 1970년대 후반에 문화운동으로 시작됐다. 1987년 이후부터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주장하며 무장 게릴라 활동으로 돌아서 2001년 이후 이스라엘 내에서 벌어진 자살폭탄 테러를 주도했다. 하마스의 지도자는 이슬람 법학자 아하메드 야신으로 온건한 PLO와 대립하며 중동평화교섭에 반대했다. 그는 줄곧 폭력노선을 지지해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줄곧 고수했는데 PLO가 이런 이스라엘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하마스의 무력 투쟁론은 더욱 시민들의 지지를 받게 됐다. 결국 팔레스타인 내부는 강경파인 하마스와 비교적 온건파인 PLO의 파타에 속하는 압바스 세력, 이렇게 두 세력으로 완전히 나뉘게 됐다. 한동안 하마스가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정권을 잡았으나 그들의 노선이 너무 과격해 이스라엘과의 분쟁이 끊이지 않은데다 팔레스타인 경제정책에도 등한시해 압바스 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겼다.
그동안 이 두 세력은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서로 치열하게 정권다툼을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만 국제사회에 부각됐지만, 사실 팔레스타인 안에서 벌어진 이 양대 세력의 싸움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팔레스타인 유엔 정회원국 가입과 유네스코 가입은 압바스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사업이었다. 과거 무력투쟁으로 일관하던 하마스에 비해 압바스는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이스라엘에 대적하겠다는 온건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자살폭탄테러나 이스라엘 로켓 공격 등 대부분의 무력투쟁은 하마스에 의한 것이다. 이 무력투쟁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땅이 조용한 날이 없자 차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하마스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한 사건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하마스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게 했다. 10월18일, 5년 전 하마스에 의해 납치됐던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25)와 팔레스타인 포로 1027명의 포로 교환이 극적으로 성사된 것이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불린다. 이스라엘 정부는 샬리트 병장 단 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1077명의 팔레스타인 포로를 내줬다. 이 맞교환이 성사되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두 진영에서 환호가 터졌다.
팔레스타인 내부 갈등
샬리트는 이스라엘 방위군 소속으로 2006년 6월 가자지구 접경지인 이스라엘 남부 케렘 샬롬의 어느 검문소에서 하마스에 의해 납치됐다. 하마스 무장세력 조직원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는 비밀 지하터널을 통해 잠입해 그를 끌고 가버린 것이다. 이스라엘이 충격에 빠졌던 이 사건 초기에는 이스라엘 정부가 샬리트를 구하기 위해 군사작전까지 전개했으나 실패했다. 그 뒤 샬리트 사건은 장기 사건으로 돌아섰고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 양측이 꾸준한 협상을 했지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2009년 9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여성 수감자 20명을 풀어주는 대가로 건네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 샬리트가 살아있음이 확인됐다. 그전에도 이스라엘 병사 납치 사건이 몇 번 있었지만 대부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이 테이프로 샬리트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샬리트의 부모는 더 이상 정부의 결정만 기다리지 않고 2010년 6월27일 아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12일간의 도보 행진을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늙은 부모는 아들 사진이 새겨진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샬리트의 석방을 호소하며 걷고 또 걸었다.
수도 텔아비브에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관저 앞까지 진행된 이 도보행진은 이스라엘 시민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많은 사람이 샬리트의 부모 뒤를 따라 걸으며 이 도보 행진에 동참했다. 아들과 딸을 군대에 보내는 이스라엘 부모들 입장에서 샬리트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총리 관저 앞에는 샬리트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이스라엘 시민 약 1만5000명이 모였다. 동참한 시민들에 의해 시위대가 만들어졌다. 그들은 샬리트 부모와 함께 “샬리트는 아직 살아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는 자유의 몸이 되어야 한다”고 총리 관저를 향해 외쳤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식을 돌려달라’는 부모 앞에 이스라엘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그 어떤 대가는 바로 샬리트와 이스라엘에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포로의 맞교환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한 명씩이 아니라 하마스는 1000명이 넘는 포로와 샬리트를 맞교환하기를 요구했다.
이 조건은 이스라엘로서는 엄청난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 5년이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이스라엘 국민들은 정부를 규탄했다. 아들이 군대에 가 있다는 레베카 스테인(45)은 “내 아들이 샬리트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우리 정부도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샬리트를 살려오지 못한다면 이런 정부를 믿고 어떻게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나”라고 말했다. 징병제인 이스라엘로서는 부모가 국가를 믿고 자식을 맡겼는데 그 자식이 5년간 납치되어 생명을 위협받는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정부로서도 감당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또한 팔레스타인이 유엔 정회원국 가입 시도를 하며 전 세계의 눈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쏠려 있었다. 이스라엘은 항상 가해자라는 따가운 국제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이스라엘 정부는 1대 1077이라는 파격적인 맞교환에 동의했고 샬리트는 돌아왔다.
이스라엘 정부가 정치적으로 세계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데다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보호하겠다는 의지로 인도적 결정을 내린 결과였다. 하지만 이 결정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반발도 일었다. 포로를 맞교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테러로 희생된 이스라엘 희생자 유족들은 포로 맞교환을 중지해달라며 이스라엘 대법원에 청원했다. 맞교환으로 풀려날 팔레스타인 수감자 중에는 그동안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감행했던 사람이 많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석방자 명단에는 2002년 해안도시 네타니아에서 29명을 숨지게 한 자살폭탄테러의 모의자 나세르 야타이마나 예루살렘 폭탄 테러로 11명을 살해한 왈리드 안자스 등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중범죄자를 포함해서 이스라엘인을 살해하거나 폭행한 재소자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가족을 죽인 사람을 1000명 넘게 풀어준다는 것에 이스라엘 희생자 유족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대법원은 “포로교환은 법원의 권한에서 벗어난 정치적 결정”이라며 테러 희생자 유족이 낸 교환 중지 청원을 기각했다.
이에 대해 요르단 포스트는 “법원이 양국 간 합의에 제동을 걸 경우 샬리트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1077명의 포로를 내어주더라도 한 명의 병사를 살리는 길을 선택하는 인도적인 결정을 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역사적인 대규모 포로 맞교환이 성사되었다. 샬리트 병장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던 날, 팔레스타인도 울고 이스라엘도 울었다. 기자회견에서 샬리트는 “수많은 사람이 나의 석방을 위해 힘써줘서 감사하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좋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샬리트의 석방을 촉구하며 농성했던 그의 가족들도 고향 미츠페 힐라에서 살아 돌아온 아들 샬리트를 만났다. 샬리트의 아버지 노암 샬리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기쁨을 전했다.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풀려난 팔레스타인 포로들도 가자지구로 돌아왔다. 팔레스타인 정부 지도부와 포로의 가족들은 라파에 모여 이들의 귀환을 맞이했다. 살아 돌아온 1077명의 팔레스타인 포로들이 귀환하면서 현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10년간 이스라엘 감옥에 있던 남편을 만난 아이야 아흐만(39)은 “아이가 겨우 한 살 때 아이 아버지가 이스라엘군에게 잡혀갔다. 그날 이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10년간 면회 한 번 가지 못하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이제 남편이 돌아왔으니 나도 마음 놓고 하루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남편을 풀어주는 데 노력한 팔레스타인 관계자와 알라에게 감사드린다”며 소감을 전했다. 하마스의 납치가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가족들을 만났다. 팔레스타인 곳곳에선 이들을 환영하러 거리로 몰려나온 인파로 붐볐다. 시민들은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환호했다. 하마스 측은 “가자시티에서 약 20만명의 시민이 모여 귀환자들을 대규모로 환영했다”고 공식 성명을 내며 돌아온 이들을 환영했다.
1대 1077 맞교환
하마스와 대립하던 압바스 자치정부수반도 귀환한 석방자들을 ‘자유의 전사’로 부르며 이번 포로 맞교환을 축하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만 축제 분위기가 아니라 압바스 정부와 하마스도 서로 한목소리를 내며 이들의 귀환을 축하했다. 라파에서 팔레스타인 포로 귀환 환영행사에 참석했던 정부 사회복지국 직원 마젠 디로프(40)는 “지금처럼 압바스 정부와 하마스가 손발이 맞아 정부를 운영한다면 우리도 독립국가로서의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전에 정부 회의를 하면 서로 우울하게 바라보며 화만 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웃으며 ‘미래의 계획’을 논의한다. 이제 국제사회만 우리를 도와주면 팔레스타인도 독립국가로서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라말라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요세프(57)도 “나는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지금까지 내 눈으로 팔레스타인의 모든 역사를 경험한 사람이다. 지금 같으면 그동안의 설움과 울분쯤은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우리 팔레스타인 사람 1077명을 구해온 하마스나 유네스코 가입에 성공한 압바스 둘 다 지금 팔레스타인의 영웅이다. 친구들이나 이웃들까지 모이면 ‘지금처럼 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며 팔레스타인 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시민들의 마음에 보답하듯이 2010년 11월에는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인 파타당의 압바스 정부와 하마스가 과도정부 구성에 합의하고 2012년 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그동안 하마스가 현 압바스 정부의 살람 파야드 총리를 거부해온 것이 화해의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압바스 정부가 하마스의 뜻대로 파야드 총리를 배제하고 새 과도정부를 구성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양측의 협상은 급진전됐다. 익명을 요구한 압바스 정부의 관리는 “정부와 하마스가 서로 의기투합해 과도정부를 만든다면 이것은 엄청난 정치적 발전이다. 그동안 하마스와 파타 이 두 정파가 항상 대립했는데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위해 거국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샬리트와 1077명의 포로 맞교환은 전쟁과 자살폭탄으로 반세기동안 얼룩졌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 진영을 모두 축제 분위기로 만들었고 무엇보다 팔레스타인 정치세력 간에 화합을 만든 사건이었다.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 가입이나 유엔 정회원 가입 시도와 같은 정치력에 눈을 뜨게 된 데는 최근 널리 보급된 인터넷과 통신 시설의 발달이 한몫을 했다. 그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구도만 있었다. 하지만 발달한 인터넷과 통신 시설을 통해 다양한 구도의 바깥 세상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수도 라말라에는 PC방이 제법 많이 보급돼 있다. 시청 앞 골목 끝에 있는 한 PC방 안에는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이 삼사오오 모여들어 인터넷을 하느라 바쁘다. 대학생 요세프는 “거의 매일 PC방에 온다. 주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다른 나라 뉴스도 보고 영화도 다운받아 본다. 그러다보면 다른 나라의 새로운 문물이나 최근 동향을 잘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들은 트위터나 유튜브를 즐겨 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최근 아랍 국가를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는 ‘아랍의 봄’도 이들의 눈을 뜨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쉽게 말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부응하듯 압바스 정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디어에 대한 태도만 봐도 팔레스타인 정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스라엘은 취재진에 대한 배려가 아주 대단했다. 이스라엘 정부 취재를 왔거나 기자회견에 참석한 외신 기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취재환경을 제공한다. 프레스카드도 지급하고 식사를 못한 취재진에게 커피와 간단한 스낵까지 제공한다. 정부 관계자에 대한 인터뷰도 한 번 요청하면 반드시 피드백을 준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정말 최악의 취재요건이다. 인터뷰 요청을 하고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프레스센터도 형식적으로 정부 관리 몇 명을 두었을 뿐 외신 기자를 대하는 것이 주먹구구식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취재는 냉탕 온탕을 번갈아 다니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합리적이고 성의 있는 이스라엘 정부를 서구 언론은 선호한다. 그러나 유네스코 가입 뉴스가 전해질 때 팔레스타인 정부는 미디어 센터를 만들어 외신 기자들에게 일일이 자원봉사자까지 붙이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그리고 외신기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보도자료를 돌리는 성의를 보였다. 이것만 봐도 팔레스타인이 정치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스라엘의 보복
압바스 정부는 유네스코 가입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외교력을 세계에 과시하며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며 하마스는 파격적인 포로 맞교환을 이끌어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다. 여기에 서로 단일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하니 팔레스타인이 급속한 정치적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항상 사건 사고 뉴스만 타전하던 외신기자들도 필자와 ‘요즘처럼 팔레스타인 뉴스를 전한다면 이 땅에 희망이 보이지 않겠는가’라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하마스가 이번 포로교환을 계기로 더 많은 납치 비즈니스를 하지 않을까 하는 일각의 우려도 있지만 팔레스타인이 국제기구를 통해 외교적으로 계속 부상한다면 이것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과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로 하마스의 극단적인 폭력에도 지지를 보낸 적이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유네스코의 정회원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국제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기에 옛날처럼 무작정 납치에 뛰어들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과 같은 외교적인 노력으로 유엔이나 국제사회를 설득하며 독립국가를 향한 열망을 조금씩 실현해나간다면 팔레스타인에도 평화가 올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국제사회도 더 이상 팔레스타인이 중동의 천덕꾸러기로 죽고 죽이는 싸움에 몰두하는 테러리스트 국가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팔레스타인이 무력투쟁을 버리고 세련되고 합법적인 외교 정책으로 들어서기를 바란다. 아직은 유엔의 정회원국이 되지 못했지만 코소보, 바티칸처럼 준회원국 지위를 얻게 되면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의 분쟁 문제를 국제사회로 끌고 갈 수 있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문제나 이스라엘의 무고한 팔레스타인 시민 학살을 국제형사재판소로 가져가 국제법에 근거해 제소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자살폭탄 같은 테러로 이스라엘과 대응할 필요가 없다. 이는 앞으로 팔레스타인에 의한 대(對)이스라엘 투쟁에 새로운 길을 예고하는 것으로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팔레스타인은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 필자가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살폭탄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마스의 한 관리는 “국제사회가 우리 팔레스타인에 주목하게 하려면 생명을 버리면서 자살폭탄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래서 자살폭탄이 팔레스타인의 대명사가 됐고 이것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구실만 제공할 뿐 분쟁의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이제 팔레스타인이 유엔의 한 부분으로 자살폭탄이나 납치를 버리고 평화의 길을 모색한다면 팔레스타인 문제가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이런 달콤한 팔레스타인의 꿈도 잠시였다. 이스라엘의 사정은 달랐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복이 즉각 시작됐다.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이 결정 난 하루 만에 이스라엘은 하마스 고위인사를 팔레스타인 수도 라말라 외곽 그의 자택에서 체포했다. 체포된 하마스 고위인사는 하산 유세프로 그의 아들 오와이스와 함께 자택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체포됐다. 이스라엘은 그를 체포하면서 이유를 단지 ‘하마스와의 연계’라고만 할 뿐 구체적인 혐의 내용도 밝히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같은 날 하룻밤 사이에 10여 명의 팔레스타인도 체포됐다. 하마스는 즉각 이스라엘의 유세프 체포를 규탄하면서 ‘그에 따른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에 가입하자마자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집중 공격한 이유에 대해 팔레스타인 유력지 알 파타의 알라딘 압둘(34) 기자는 “하마스를 자극해 언제나 그랬듯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이 서로 로켓을 쏘면서 무력 충돌을 주고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이번 하마스 인사 체포는 하마스를 자극해 하마스가 다시 폭력으로 자신들을 공격하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처사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테러에 대한 대응이라는 또 다른 정당성을 확보해주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 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군사적으로 자극할 수도 있다는 전망은 이미 나와 있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스라엘 의회에 참석해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에 가입한 것을 비난하면서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로서는 팔레스타인이 국제기구에 가입하거나 국제사회에서 정식 국가 지위를 인정받게 되면 지금처럼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배적 관계를 포기해야 한다. 거기다 팔레스타인이 국제사회에서 정식국가의 지위를 인정받으면 이스라엘군이 자행하는 침략 행위에 대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 혐의로 제소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데 이 또한 이스라엘에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 된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문제도 언제든 분쟁을 만들 수 있는 뇌관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 후 특별 내각회의를 열고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에 주택 2000가구를 새로 짓는 등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속도를 낸다고 밝혔다. 동예루살렘에 1650가구가 들어서고, 나머지는 서안 에프라트와 마알레 아두밈 유대인 정착촌에 건설되는 이 계획은 그동안 팔레스타인의 반발을 불렀다. 그 지역이 주로 팔레스타인 사람 거주 지역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유대인 지역을 대거 확대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는 일시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자금 송금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스라엘은 매달 자국 항구를 통해 들어오는 팔레스타인 상품에 매겨지는 관세를 팔레스타인 측에 전달해왔다. 한 달에 약 1000만달러로, 팔레스타인 예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팔레스타인 경제의 절반이 달린 이 돈은 이스라엘의 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을 압박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이런 조치를 내렸다. 이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조치는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과 관련한 첫 번째 결정”이라며 “앞으로 8개 부처 장관이 참여하는 회의에서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에 대한) 추가 대응을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유네스코와의 관계 단절도 고려 중이다.
문화유산은 누가 지키나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은 당장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자치지구 안의 역사유산을 두고 벌이는 다툼으로도 번졌다. 팔레스타인은 유네스코 정회원국으로서 자치지구 안 역사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을 위해 서안과 가자지구의 역사유산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올리기 위해 준비 중이다. 팔레스타인은 성경에도 나오는 성지로 유명해서 수천 년 된 역사적인 유적지가 많다. 예수의 탄생지 베들레헴과 탄생지 교회 등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달라고 유네스코에 이미 신청했고 유네스코는 정식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성경에 나오는 고대 도시인 예리코의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 중이다.
한편 이스라엘도 자치지구 안의 옛 도시 헤브론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헤브론은 유대인에게는 구약에 나오는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성지다. 이곳은 유대교와 이슬람교 모두 선지자로 추앙하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그들의 아내들이 묻힌 곳이다. 이미 이스라엘은 지난해 헤브론의 선조들 무덤과 베들레헴의 라헬 무덤을 이스라엘 국가 유산으로 등록했다. 팔레스타인이 유적지에 신경 쓰지 못한 지난 수십 년간 이스라엘은 서안이나 가자지구에서 역사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했다. 자치지구인 서안의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가에 마련된 고대 박물관은 이스라엘이 발굴한 비잔틴(동로마) 시대의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관리했다. 헤브론은 이스라엘이 그동안 군사적으로 통치했던 곳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이 유네스코 회원국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유적지의 보존을 두고 서로 자신들이 관리를 하고자 한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자치지구 안 유대의 역사유산도 팔레스타인 문화의 한 부분이며, 앞으로 자신들이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이에 반발하는 것은 이슬람인 팔레스타인이 유대교 선조의 무덤까지 관리하겠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이스라엘 고고학자는 “그동안 총과 폭탄을 들고 폭력을 쓰던 팔레스타인이 갑자기 고상한 척하며 유물과 유적지를 관리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그들보다 우리가 유적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많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손에 그 유적들이 넘어가는 것은 ‘유적이 손상’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반발했다. 이에 팔레스타인 고고학자는 “우리도 당당히 유네스코의 회원국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지키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노하우가 떨어지는 부분은 유네스코와 충분히 상의해서 해결할 문제이지 이스라엘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유네스코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알 수는 없지만 서로 유적을 관리하겠다는 논쟁이 일어난 만큼 앞으로도 더 많은 유적지 분쟁을 예고한다.
이스라엘의 보복과 새로운 분쟁이 팔레스타인을 가로막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국제사회에 외교적으로 정치력을 발휘할 예정이다. 유엔 산하에 있는 기구들에 가입하고 새해 5월에 과도정부 선거를 치르면 팔레스타인은 명실 공히 새로운 국가 탄생의 초석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이렇게 국제사회에 눈을 뜬 것은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려는 팔레스타인 정부와 국민의 자발적인 노력 때문이었다. 베들레헴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이브라힘 아세프는 “유네스코 가입으로 팔레스타인이 앞으로 치러야 할 많은 희생이 예고되고 있지만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팔레스타인이라는 독립국가가 탄생하려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성장통이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의 성장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 고통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부디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새로운 팔레스타인 탄생이 가능할지는 앞으로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