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황비홍(黃飛鴻)’

천당이냐 지옥이냐, 대륙이 풀지 못한 100년 묵은 과제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입력2006-06-08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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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쉬커(徐克) 감독이 연출하고, 리렌제(李連杰)가 주연을 맡은 영화 ‘황비홍’은 단순한 오락 무술 영화가 아니다. 중국에서 최초로 서구에 문을 연 광저우를 배경으로 19세기말 위협적으로 밀려드는 서구 문명과 중국 전통문화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곤혹스러워하는 중국 민중의 삶을 담고 있다. 한 세기를 넘어 1990년대 초 미국에 대한 중국인의 모순된 감정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황비홍(黃飛鴻)’

    음식문화가 발달한 광저우 시내의 먹자골목.

    광둥성의 성도(城都), 광저우 하면 역시 음식이다. 그래서 “먹는 것은 광저우에서(食在廣州)”라는 말도 있다. 중국인이 워낙 먹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중국인의 종교는 ‘식교(食敎)’라고 보는 편이 옳다고 하면, 식교의 가장 열렬한 교도가 바로 광둥 사람이다. 중국인 가운데 광둥 사람의 위가 가장 크다고 얘기한다. 날아다니는 것 중에서는 비행기만 빼고, 네 발 달린 것 중에서는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는 이야기는 바로 광둥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뱀, 고양이, 원숭이, 쥐, 지네, 박쥐까지 죄다 먹는다.

    뱀요리는 광둥 사람이 2000년 전부터 먹어온 광둥의 대표 음식이다. 뱀을 그렇게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 이는 세계에서 광둥 사람이 유일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먹어본 중국요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광둥요리집에서 먹은 뱀요리다. 닭고기로 국물을 낸 탕이라고 생각하고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뱀 국물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먹지 않았을 테지만 여하간 맛은 일품이었다. 뱀요리라는 걸 모른 채 다시 한 번 먹어보고 싶을 정도다.

    광둥 사람은 ‘음식이 가장 좋은 보약’이라는 생각에 여러 가지 기이한 재료로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고 보신(補身)한다. 차를 마실 때도 다양한 보약재를 우려낸 ‘량차(凉茶)’를 마신다. 광둥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얌차’ 습관이다. 광둥 사람은 찻집에서 차에 곁들여 죽이나 딤섬을 먹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광둥의 죽은 종류가 다양하고 맛이 일품이다.

    광둥요리는 중국요리 중에서 외국인이 즐기기에 가장 좋다. 음식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더욱이 해외 화교 가운데 광둥 출신이 가장 많아서 광둥요리 역시 세계로 퍼져 나갔다. 오늘날 중국요리가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모두 광둥요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것은 내 것, 네 것도 내 것’



    ‘황비홍(黃飛鴻)’

    1991년 쉬커 감독이 연출한 영화 ‘황비홍’

    광저우는 중국 제일의 부자 도시다. 2005년 중국 도시 거주 인구 1인당 연평균 소득을 조사한 결과 광저우 사람의 소득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광저우 사람은 기질적으로 부자일 수밖에 없다. 우선 광저우 사람은 돈 버는 것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돈 버는 수완이 뛰어나고, 돈 버는 것, 부자가 되는 것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숫자는 8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는 3이나 9다. 그런데 돈 좋아하고 부자가 인생의 꿈인 광저우 사람들이 8을 제일 좋은 숫자로 바꾸어버렸다. 8의 광둥어 발음이 ‘돈을 벌다(發財)’라고 할 때 ‘발(發)’의 발음과 같아서 8을 부(富)를 가져다주는 숫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화번호, 차번호에 8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고, 건물을 지을 때 층계 수를 8개로 할 정도다. 광둥인의 이러한 숫자 관념이 차츰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가 지금은 모든 중국인이 8이라는 숫자를 좋아하게 됐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사람의 경제관념을 비교한 이런 농담이 있다. 베이징 사람에게는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이다.’ 곧 내 것 네 것 구분이 없는 것이다. 상하이 사람에게는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다.’ 내 것 네 것 구분이 확실하다. 반면 광저우 사람에게는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광저우 사람은 이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경제적이라는 이야기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고 부자를 부러워하는 것이 광저우의 전통이고, 광저우 사람의 천성이다.

    베이징 사람이 논쟁을 좋아하고, 어떤 일의 동기를 따진다면 광저우 사람은 논쟁보다 현실을, 동기보다는 일의 결과를 중요하게 여긴다. 중국인은 기본적으로 경험주의자다. 어떤 일을 할 때 먼저 돌을 던져보고 그 반응이 어떤지 확인한 뒤에 실행할지 말지를 정한다. 중국 정부가 광저우 일대를 경제특구로 만들어 시장경제 도입을 실험한 것도 먼저 돌을 던져 갈 길을 묻는(投石問路) 중국인의 삶의 태도가 반영된 것이다.

    ‘황비홍(黃飛鴻)’

    광저우 시내 한가운데 있는 중산 기념당. 앞에 있는 것이 광저우 출신 쑨원의 동상이다.

    이러한 신중함이 종종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소극적인 기질로 나타나기도 한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중국인은 좀처럼 자신이 먼저 나서려 하지 않는다(不敢爲天下先). 한국인처럼 불같이 달려들거나 앞뒤 가리지 않고 부딪쳐보는 도전 정신이 부족하다. 자신이 먼저 실험용 돌이 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보고난 뒤 길을 가려고 한다.

    중국 최초의 개항장

    그런데 광둥 사람은 다르다. 광둥 사람의 기질을 반영한 광둥 사투리가 있다. 중국어로 ‘나 먼저 가’라고 말하거나 ‘나 먼저 갈게’라고 말할 때, 표준어인 푸퉁화(普通話)의 어순은 ‘我先走’이다. 주어, 부사, 동사의 순서다. 그런데 같은 말을 광둥어로는 ‘我走先’이라고 한다. 동사가 부사보다 먼저 온다. 행동을 먼저 하고 그 결과는 뒤에 따지는 광둥 사람의 기질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다른 지역 중국인과 달리 광둥 사람은 기꺼이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하겠다고 나선다(敢爲天下先). 그래서 광둥 사람을 상징하는 한자로, 흔히 ‘앞 선(先)’자와 ‘빠를 쾌(快)’자를 든다.

    돈벌이와 부를 중시하며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광둥 사람의 기질이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과 만나면서 광저우는 날개를 달았다. 경제특구로 지정된 후 초고속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광저우는 중국이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첨병이자,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고, 그런 만큼 개혁개방의 혜택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누렸다.

    그러나 멀리 보면 광저우가 지금처럼 발달하게 된 토대는 청나라 때 만들어졌다. 1685년 중국은 영국의 끈질긴 통상 요구에 따라 마침내 외국과의 무역을 위해 광저우를 개방했다. 이로써 광저우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외국에 개방된 항구로 중국이 해양세력, 특히 서양과 만나는 창구 노릇을 했다. 중국 최초의 개항장으로서 서구 근대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광저우는 중국과 서구가 대결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광저우가 근대 이후 숱한 혁명의 발상지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근대 위기를 가장 먼저, 가장 절실하게 체험한 광저우 일대에서는 청나라를 타도하고 새로운 중국을 만들려는 혁명 운동이 끊임없이 시도됐다. 이곳에서 홍수전(洪秀全)은 중국 전통사상과 기독교를 결합한 태평천국 운동을 시작했고, 쑨원(孫文)은 공화제 혁명을 일으켰다. 캉유웨이(康有爲)는 서구 침략으로 인한 근대 위기에 맞서 유교적 대동사회를 실현해 중국을 개혁하려 했고, 그의 제자 량치차오(梁啓超)는 중국인을 근대적 국민, 민족주의 의식을 지닌 국민으로 만들어 중국의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은 광둥에 농민교습소를 차려 농민혁명의 씨앗을 끼웠고, 광둥 코뮨을 세우기도 했다.

    서구의 침략으로 인해 시작된 위기 속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의 개혁 실험이 광저우인들에 의해 혹은 광저우에서 이루어졌다. 그런 까닭에 광저우 도처에 널려 있는 혁명 유적지를 광저우 사람은 자랑스러워한다. 광저우에서 싹튼 근대 개혁과 혁명의 씨앗들은 속속 내지로 북송되어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그 열매를 맺었다. 근대 정치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