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최초 공개-1989년 YS가 장쩌민 中공산당 총서기에 보낸 密書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2-07-23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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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공개-1989년 YS가 장쩌민 中공산당 총서기에 보낸 密書

    1989년 7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장쩌민 중국공산당 총서기에게 보낸 밀서.

    “대한민국 정통 야당인 통일민주당 총재로서 중국을 방문해 양국 상호이해와 발전적 관계를 증진시키고, 동북아의 긴장 완화를 위한 기회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상호 교류를 통해 전통적 형제관계가 회복되길 기대합니다.”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이던 1989년 7월,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중국공산당 총서기에게 밀서(密書)를 보낸다. 밀서에는 “소련과 미국을 방문해 동북아 평화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고, 허담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도 만나 한반도 평화구축에 대한 논의를 했다”며 중국 총서기와의 만남을 요청하는 글이 담겨 있었다.

    당시 중국 총서기는 신예 장쩌민(江澤民). 1989년 6월 4일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발생하자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자오쯔양(趙紫陽)이 실각한 직후 장쩌민이 정치 전면에 나섰다.

    앞서 YS는 1989년 6월 2일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발렌틴 라므티노프 소장 초청으로 한국 정치인으로는 처음 미수교국 소련을 방문했다. 여당도 아닌 야당 총재가 소련을 방문한 것은 당시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이 밀서는 소련 방문 이후 ‘힘을 받은’ YS가 중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미국인 2명에게 전달한 것이다. 가로 80cm, 세로 24cm의 두루마리에 한자와 한글을 섞어 썼다. 조사와 술어를 뺀 내용 대부분을 한자(번체자)로 써 중국인들도 어떤 내용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했다. 23년간 밀서 복사본을 보관한 A씨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당시 중국 외교부에 밀서를 전달하러 갔더니 외교부 인사가 ‘1주일 전에도 YS 밀서가 전달됐다’고 하더라. 지인 B씨가 전달한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YS 측 인사는 나와 B씨에게 각각 전달을 부탁한 것이다. 혹시나 전달하지 않을까 의심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언짢았다.”

    그는 밀서 전달자와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렸다. 정보기관의 요청 때문으로 보였다. 기자는 YS 측에 밀서 사진을 보내 진짜 밀서인지를 문의했다. YS는 김기수 비서실장을 통해 “직접 작성한 게 맞다”면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당시 중국은 미수교국이었지만 야당이 먼저 ‘대시’한 거였는데, 톈안먼 사태로 공산당이 외부세력을 경계하고 있을 때 우리가 문을 두드린 것이다. 한국 정치인으로는 처음 미수교국인 소련을 방문한 경험도 있었다. 그런데 누구에게 밀서를 전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중국과의 접촉은 극비리에 진행됐다.”

    이 밀서가 장쩌민 총서기에게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YS는 “1994년 3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장 주석이 나의 아침 조깅을 위해 3일간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부근에서 조개탄을 태우지 말라고 특별 지시할 정도로 호의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극비로 진행했지만, YS는 여러 경로를 통해 당시 중국 방문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보인다. A씨 외에 고(故) 이대우 부산대 명예교수(전 중국연구소 소장)도 YS의 방중(訪中)을 도왔다. 그는 수교 전 중국 고위급 인사와 채널을 가진 ‘중국통’이었다. 2008년 8월 기자와 만난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초 공개-1989년 YS가 장쩌민 中공산당 총서기에 보낸 密書
    “YS의 중국 방문을 위해 1988년 7월 홍콩을 거쳐 중국에 들어갔다. 당시 국제신탁투자공사 국제연구소 화디(華?) 소장을 만났는데 그는 당시 최고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직접 보고하는 사람이었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고위직 인사와 런민(人民)일보 사장 등을 소개해줬고, 그들과 만나 YS의 방중 의사를 전했다. 나는 한 달 뒤 한국에 돌아와 YS에게 ‘방중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은 418만 명,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은 220만 명이다. 해마다 638만 명이 자유로이 오가는 시대에 23년 전 ‘밀서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20년 전 8월 24일 한중수교가 없었다면 지금도 누군가 밀서를 들고 중국 외교부를 노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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