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이 광고에서 이나영의 이미지는 철저히 기획된 결과물이다. 긴 머리를 과감히 잘라내고 짧은 커트 머리로 변신한 것은 젊은 여성층에게는 물론 남성에게도 충분하게 어필했다. 그가 CF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이미지 메이킹 덕분이다. 한 설문조사에서 ‘화장품 모델로 전지현보다 이나영이 낫다’는 의견이 상당수 나온 것을 봐도 광고시장에서 이나영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모델만 기용한다는 화장품 광고업계에서 이나영이 장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답은 마스크의 ‘독특함’에서 찾을 수 있다. 이나영의 얼굴은 퍽 이채롭다. 빼어난 외모를 뽐내지 않으면서도 눈길을 끌고, 별다른 카리스마는 없으나 뭔가 있을 듯한 신비감을 준다.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는 많지만 이나영처럼 모호한 이미지의 배우는 흔치 않다.
화장품 광고에서 중요한 것은 클로즈업된 얼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다. 배우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느끼도록 하는 게 화장품 광고에서 주로 취하는 방식이다. 얼굴을 TV 화면에 꽉 찰 만큼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것. 이는 내로라하는 미모의 여배우들에게도 적잖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만큼 욕심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장품 모델은 당대 최고 미인만이 차지해온 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못생겨서 거울을 싫어해요”
그런데 이나영의 얼굴이 그런 광고에서 더욱 빛난다는 게 퍽 흥미롭다. 그는 단 한번도 ‘컴퓨터 미인’과 같은 별칭으로 불린 적이 없고, 그에 버금가는 찬사를 들어본 일도 없다. 오히려 개성 있는 외모라는 평을 듣는 게 보통이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이마는 넓은 편에 속하고, 쌍꺼풀도 한쪽이 진해 눈 크기가 짝짝이다. 콧날도 그리 높지 않고, 얇고 갸름한 입술은 도톰한 입술을 선호하는 요즘 추세와 맞지 않는다. 심지어 이나영 본인도 “못생겨서 거울을 싫어한다”는 얘기를 털어놓을 정도다.
그렇지만 조막만한 얼굴에 자리잡은 이목구비의 조화는 클로즈업 화면에서 무척 돋보인다. 눈이나 코, 입술 각각의 단점보다는 전체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장점이 훨씬 깊이 부각되는 것이다. 그래서 ‘깨끗함’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이나영의 이미지가 대변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숱한 톱스타를 제치고 여러 광고에 이나영이 등장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독특함이 주는 신뢰 때문이다. ‘이나영은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은 아이러니하게도 믿음을 준다. 최근 이나영은 장동건과 함께 한 카드회사의 모델로 출연했는데, 이는 그가 ‘장동건급’의 모델가치를 발휘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나영의 연기세계도 외모 못지 않게 독특하다. 한국의 방송·영화계에서 이나영이 차지하는 위치 또한 남다르다. 이나영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단연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다. 그가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영화 ‘후아유’를 마치고 잠시 쉬던 때였다. 당시 이나영은 지금까지 몸담고 있는 소속사 ‘스타제이’로 옮긴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같은 소속사 식구인 양동근과 함께 캐스팅됐다.
이나영이 연기한 ‘전경’은 참으로 독특한 캐릭터다. 그의 꾸부정한 자세가 ‘전경’이라는 인물 안에서는 그럴 듯하게 어울렸고, 광고에서와는 달리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겉모습 또한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때 선보인 보헤미안 스타일의 옷차림도 유행을 탔다. 무엇보다 ‘광고에서처럼 예쁘지 않은 이나영’을 본다는 즐거움도 있었다.
어눌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전경은 ‘네 멋대로 해라’를 쓴 인정옥 작가 특유의 문체가 고스란히 녹아든 캐릭터였다. 감정의 기복 없이도 이나영의 대사는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녹아들 수 있었다. 이나영은 “평소의 내 말투가 자연스럽게 나왔을 수도 있다”며 작가의 세심한 눈썰미에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