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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방산 ‘산지기’ 이우원

서산에 해 지면 동산에 달 뜨니 ‘건달’이 일낼 때가 됐다!

묵방산 ‘산지기’ 이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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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시절 요트를 타고 놀 만큼 부유하던 남자가 30여 년 후 남의 종중산 재실에서 산지기로 살아간다? 사람들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인생이 그토록 ‘망가졌는지’, 동정의 시선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변산반도 묵방산 재실에 사는 일포 이우원 선생은 “화려하지만 실속 없는 세속에서 떠난 지금이
  • 진정한 삶”이라고 했다. 서산에 지는 해와 동산에 떠오르는 달, 시누대 빽빽한 능선과 조개 펄떡이는 갯벌이 바로 그의 삶터다.
묵방산 ‘산지기’ 이우원

10여 년간 변산반도 묵방산 재실에서 산지기로 살아온 이우원 선생은 “따뜻한 구들방에서 지인에게 차를 대접할 수 있는 시골 생활은 전혀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예술품이란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연의 대용품’ 같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자연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자연과 유리된 삶이다. 예술이란 자연을 접할 수 없는 문명과 도시의 산물이다.

많은 돈을 투자해 예술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진짜 예술품은 대자연이다. 대자연의 모조품이 예술품인 것이다. 진품은 자연이고 ‘짝퉁’은 예술품 아니겠는가. 자연에서 살면 그게 곧 예술이다. 자연에서 못 사는 사람에게나 예술품이 필요하다. 명산대천을 노니는 것이 멋진 삶이다. 어떻게 하면 산에서 살 수 있는가. 산에서 사는 건 쉽지 않다. 산에서의 삶을 정리해보니 몇 가지 노선이 있다.

첫째는 출가해 승려로 사는 삶이다. 사찰은 명산에 자리잡고 있어 승려가 되면 자연스럽게 산에서 살게 된다. 그렇지만 세속을 포기하고 승려가 되는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둘째는 깊은 산속에서 불을 질러 농사를 짓는 화전민이다. 그야말로 변두리 인생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없어졌다. 요즘 산에서 불 지르면 대번에 산림법 위반으로 잡혀간다.

셋째는 산지기 생활이다. 산을 지키는 직업이 산지기다. 문중의 선산(先山)이나 또는 재각(齋閣)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고전적인 직업이라 할 수 있으나 아직 명맥을 유지한다.



넷째는 수목원 직원이 되는 길이다. 꿩 대신 닭, 최선책이 없으면 차선책을 강구하라 했던가. 산 대신 수목원에서 생활하는 것도 바람직한 삶의 노선이 된다. 월급도 받으며 수목 가운데서 살면 아무래도 인간사 스트레스에 덜 시달릴 게 아닌가. 봉급은 약간 적어도 상관없다. 독일에서는 수목원에 종사하는 것을 아주 좋은 직업으로 여긴다고 한다. 하지만 수목원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다. 수목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춰야 할 게 아닌가.

태인 허씨 재실에 사는 부부

이 중 세 번째 노선, 산지기의 삶을 택한 사람이 있다. 변산반도의 묵방산(墨房山) 재실(齋室)에 사는 일포(一布) 이우원(李宇源·55) 선생과 부인 변주원(卞柱元·47)씨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전국에 비어 있는 재실이나 재각은 매우 많다. 한국에 존재하는 수백개 성씨 중 대부분이 종중산(宗中山)을 관리하는 재실을 두고 있는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거의 비게 됐기 때문이다. 경쟁자가 별로 없으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이러한 재각, 재실에 들어가 살 수 있다. 완전히 땅 짚고 헤엄치기다. 전국의 재실, 재각, 고택, 서원 등을 어림잡아 보면 3만여 곳에 이른다. 살아줄 사람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우원 선생은 전북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묵방산 자락에 있는 태인(泰仁) 허씨(許氏) 재실에 살고 있다. 변산반도 가운데쯤 되는 위치다. 변산은 수천개의 산봉우리로 이뤄졌는데, 봉우리 높이가 모두 고만고만하다. 보통 해발 300∼400m다. 우뚝 솟은 산, 말하자면 주산이 따로 없다. 변산반도는 이런 봉우리 수천개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이 봉우리 중 하나가 묵방산이다. 야산에 가까운 산이라 이렇다 할 볼거리는 없다. 변산의 다른 봉우리들이 대부분 바위로 이뤄진 암산인데 비해, 흙이 덮여 있는 묵방산은 토산에 가까워 묘를 쓰기에 적합하다. 바위산은 살기(殺氣)로 보기 때문에 묏자리를 쓰기에 좋지 않다.

재실로 들어가는 능선 모퉁이에 푸른색 시누대(山竹의 일종)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어 초행길의 나그네를 반긴다. 역시 집 주위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있어야 품격이 느껴진다. 야생 시누대밭은 방문객으로 하여금 청림(靑林)의 유현(幽玄)함을 실감케 한다. 이것이 시누대가 풍기는 매력이다.

밭을 지나니 산자락에 대략 4칸 규모의 와가(瓦家)가 있다. 걸려 있는 편액에 ‘추원재(追遠齋)’라고 씌어 있다. ‘조상을 추모하는 재실’이라는 뜻이다. 오른쪽 백호에서 갈라져 나간 지맥이 안산을 이룬다. 이른바 백호본신(白虎本身)이 안산인 형국이다. 이럴 경우 장남보다는 차남이, 남자보다는 여자가 먼저 발복(發福)한다는 설이 있다. 또 주변엔 인가가 보이지 않는다. 독립가옥이라 산지기가 살 만한 격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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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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