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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뜸의 대가 김남수

“일자무식도 침쟁이가 될 수 있소, 다들 배워서 남 주자고요!”

침뜸의 대가 김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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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몸 안에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으며, 아픈 자리에 믿음의 나무를 심는 사람. 60년 넘는 세월 동안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치료해준 역사의 증인.
  • 그는 수천년에 걸쳐 내려온 민간요법인 침과 뜸을 통해 나눔과 희생의 정신을 실천해왔다. 오직 낮은 데로 임하며 ‘침뜸 전파’에 앞장서온 아흔의 침쟁이는, 아이 같은 환한 미소로 삶을 긍정한다.
침뜸의 대가 김남수
뜸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내가 사로잡혀 있는 생각이 있으니 우선 구당 선생의 환자 이야기에서 출발하겠다. 1915년생이니 선생은 살아온 세월만으로도 역사의 증인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초야에 묻힌 촌로가 아니었고 60년 이상, 역사 현장에서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을 안방에 눕혀둔 채 만났으니 할말이 숱할 수밖에 없다.

나는 구당(灸堂) 김남수(金南洙·90) 선생을 인터뷰하면서 그가 쓴 책 세 권을 단숨에 읽은 후 자연스럽게 뜸 예찬론자가 됐다. 나는 실제로 매일 스스로 뜸을 뜨고 있다. 난생 처음 해봤지만 어렵지 않았다. 책에서 본대로, 선생이 일러준 대로, 잘 말린 쑥을 쌀알 반톨만하게 비벼 뜸자리에 얹어놓고 선향으로 불을 붙여주기만 하면 끝이다. 순식간에 타버리니 뜨거울 새도 없다.

그러나 들인 노력에 비해 효과는 탁월해서, 묵직하던 몸이 순간에 거뜬해지는 것을 매번 경험하는 중이다. 시간이래야 한 10분이면 족하고, 5000원을 주고 쑥 한 봉지를 사면 석 달을 쓸 수 있고, 잠깐 뜨거운 것말고는 부작용이 생길 일도 없다. 이러니 예찬론자가 되지 않고 배기겠는가. 더구나 뜸은 김남수란 특출한 인간이 새로 개발한 비방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수천년 동안 이어온 전래 민간요법인 것이다.

“장준하는 혼자 산에 갈 수 없었다”

내가 먼저 꺼내고 싶어 안달하는 이야기는 북한산에서 실족사했다고 알려진 장준하 선생에 관한 내용이다. 그해 구당 선생은 장준하 선생에게 왕진을 갔더랬다.



“저기 제기동 청파초등학교 앞에 집이 있습디다. 지붕 바로 위로 고압선이 지나가는데, 어지간히 어렵게 사신다 싶데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집마저 사글세였다고 합디다. 허리 디스크로 꼼짝을 못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거동은 물론이고 앉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기침도 못할 만큼 디스크가 극심합디다. 나한테 침뜸 치료를 받은 후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다섯 번쯤 치료를 받은 후 통증도 많이 사라졌고 지팡이를 짚긴 해도 방 안을 왔다갔다할 정도는 된다고 기뻐했거든요. 그 얼마 후에 산에서 실족사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기가 막혔지요.”

기사를 읽고 또 읽어도 그건 거짓말이었다. 지팡이 없이는 집 안에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낮은 계단조차 올라서지 못하던 사람이 등산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장준하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치료한 사람이 나였을 겁니다. 나는 의술자로서 거짓 없이 증언할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 그후 오늘까지 아무도 날 찾아와 그걸 물어본 사람이 없어요. 장 선생은 절대로 혼자서 산에 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또 한 사람, 구당 선생을 역사현장에 증인으로 서게 한 인물은 김재규다. 1979년 10월25일 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구당 선생에게 침을 맞았다. 장충동 중앙정보부장 공관에서였다. 그해 봄부터 김재규 부장은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구당에게 침을 맞고 있었다. 침 맞으려고 누워서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옷을 벗고 긴장을 풀고 누웠으니 절로 편안하게 이야기가 오갔다.

“김재규에게 갈 때는 거의 자정 넘은 시각에 정보부 차가 날 데리러 와요. 비상등을 켜고 신호를 무시한 채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갑니다. 그러지 말라고 말려도 자기들은 그저 지시를 따를 뿐이라고 해요. 처음 공관에 간 날, 혼자 널따란 방에 앉아 있던 김 부장이 대뜸 ‘나 잠 좀 자게 해주시오’ 합디다.

불면증은 원인이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 마음의 병입니다. 심장에 화가 몰리거나 간 경락인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이 흥분해서 일어납니다. 팔뚝과 등을 보니 간질환을 가진 사람에게서 보이는 간반(肝斑)이 아주 심하더군요. 먼저 심장의 화를 다스려놓고 머리의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백회혈을 수습하고, 간장에 기(氣)가 흘러드는 간유혈을 잡아 침을 놓았지요. 침 놓고 뜸 뜨는 사이 그 사람은 조용하게 잠이 들더군요.”

침뜸으로 효과를 보자 김재규 부장은 밤마다 정보부장 공관으로 구당을 부른다. 거의 매일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그사이 둘은 상당히 가까워진다. 침을 맞고 뜸을 뜨면서 불면증은 치료됐고 간반도 거의 사라져가는 중이었다. 제도가 잘못되어 침구술의 맥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구당의 울분에 김 부장은 몹시 안타까워하며 박 대통령과 직접 만날 약속을 잡아준다. 1962년 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침구사 제도의 부활을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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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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