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카스테라’의 표제화를 직접 그렸다. “손재주는 타고난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조기 축구회 수준”이라고 했다.
비틀즈의 링고 스타와 함께하는 버스 우주여행, 전생에 영국의 훌리건이었던 냉장고, 대왕오징어의 습격을 받는 현대인, 하늘에서 오리배를 타고 나타난 세계의 난민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 사람들을 구겨 넣는 ‘푸시맨’…. 도대체 이 작가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겼기에 냉장고에서 훌리건을, 유원지 오리배에서 ‘세계시민연합’을 떠올리는 걸까.
이 소설집은 기발하지만 읽고 난 후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삼미’를 읽을 때의 청량음료 같은 맛도 줄어 있었다. 오히려 가슴이 갑갑해졌다. 주인공은 백수, 알바, 인턴, 실직자, 난민 등 하나같이 사회의 아웃사이더이자 유예된 신분의 사람들이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주인공 고교생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알바’로 지하철 푸시맨을 하다가 출근하는 아버지마저 구겨 넣는다.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소리날까봐 방귀마저 뀌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고시원에 사는 대학생의 이야기다. ‘아, 하세요 펠리컨’의 주인공은 전문대 졸업 후 일흔세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어도 취직을 못하고 결국 한적한 유원지에서 오리배를 관리한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엔 취업을 위해 직장 상사의 성 노리개도 감수하는 인턴사원이 등장한다.
세계의 냉혹성과 주인공이 처한 열악한 상황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실종된 아버지는 기린이 되어 나타나고(‘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유에프오와 대왕오징어의 습격을 받는다(‘코리언 스텐더즈’ ‘대왕오징어의 기습’). 지구는 원래 눈을 끔벅이는 거대한 ‘개복치’였고(‘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전생이 훌리건인 냉장고는 부모는 물론 중국과 미국까지 먹어버린다(‘카스테라’). 도대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인터뷰를 위해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조용하고 자분자분하게 받았다. 처음 통화했을 때도 그에게서 소설 속 주인공처럼 기발하고 유쾌한 입담을 듣길 원했었다. 하지만 달변은 고사하고 농담 한마디 듣지 못했다. 심지어 기자가 건넨 농담에도 웃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웃겼다. 이런 솔직함으로 말이다.
“언제든 상관없어요. 저, 정말 하는 일이 없거든요.”
나무늘보처럼 집에서 글만 쓴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결국 기자가 인터뷰 시간을 정했다. 7월5일 예술의전당 앞에서 그를 만났다.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노랗게 물들인 펑키 스타일에 반바지, 히피풍의 안경에 피에로가 그려진 초록색 시계를 차고 나타났다.
-머리는 왜 잘랐어요?
“그냥 혼자 즐기는 거예요. 이번 소설집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 데뷔 앨범과 같이 가려고 했거든요. 단편 10편을 수록한 것도 그의 데뷔 앨범에 10곡이 실렸기 때문이고요. 지미 핸드릭스 사진을 들고 동네 미용실에 가서 ‘이렇게 해달라’고 했죠. 그다지 비슷한 것 같지는 않지만 ‘지미 형님’에게 헌정하는 기분도 들고.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