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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원조 스타’ 최은희

“김정일은 나를 김일성에게 바치려 했어요”

한국 영화 ‘원조 스타’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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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은희의 절망, 외로움이 신상옥을 北으로 불렀다
  • “中情 요청 받고 영화배우 X양 결혼 거들어”
  • 국제영화제 최초 수상 배우는 강수연 아닌 최은희
  • “김지미에겐 ‘춘향전’ 패배의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다”
  • 신·최 커플은 대한민국 간통죄 被訴 1호
  • 바람기 있었어도 하나뿐인 사랑은 신상옥
  • “내 평생의 한은 아이 낳지 못한 것”
한국 영화 ‘원조 스타’ 최은희
영화배우 최은희(崔銀姬·76)씨는 분당 신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싼 산자락 빌라촌에 산다. 상부(喪夫)한 미망인은 검은 옷차림이었다. 안방 신상옥 감독(향년 80세) 영정 앞에서 촛불이 탔다. 영정 위에는 예수상 성서 연도(煉禱)책, 옆에는 장미꽃 화병이 놓여 있었다. 신상옥 최은희 부부는 1954년 결혼해 부부이자 동료 영화인으로 52년을 함께 살았다.

응접실에는 신 감독과 최씨가 인생의 고비 고비에서 찍은 사진들이 놓여 있었다. 70대 후반을 맞은 최씨의 얼굴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에 나온 30대 초반 주연 여배우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장례 치른 지 한 달이 다 돼가는 데도 현실로 믿어지지 않아요. 서재에서 금방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아요. 장례식에서 공군 군악대가 ‘빨간 마후라’를 연주할 때 위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신 감독을 회고하던 최씨의 눈가에는 간간이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사진을 찍는 동안 신 감독이 앓던 신병(身病)에 대해 설명했다.

“신 감독이 북한에서 탈출하다 붙잡혀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단식투쟁을 벌였더랍니다. 단식 8일째 의식을 잃었다는군요. 깨어보니 북한 의사가 수액을 놓아주고 있었대요. 북한의 의료기기는 위생상태가 열악합니다. 이때 C형 간염에 감염됐어요. 그동안 잠복해 있다가 20여 년 만에 발병해 두 번이나 간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불귀(不歸)의 객이 됐습니다.”



이 인터뷰는 ‘최은희 신상옥 납북수기, 김정일 왕국’의 저자 김일수(동아일보 전 홍콩 특파원)씨의 도움으로 성사됐다. 최씨는 장례를 치른 후 신문, 잡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숱하게 들어왔지만 일절 사절했다. 그러나 각별하게 지낸 김일수씨의 권유를 뿌리치지는 못했다. 김씨는 인터뷰에 동석해 최씨가 기억이 가물거릴 때마다 평소 신 감독에게 들은 이야기를 ‘리바이벌’하며 기억을 되살려줬다.

최씨의 딸 명희씨가 차와 과일을 내왔다. 부모가 북한에 납치됐을 때 고등학교 2학년이던 명희씨는 이 사건으로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다. 그녀는 부모가 행방불명되는 바람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시골 총각과 연애 결혼해 1남 3녀를 뒀다. 신 감독이 첫 번째 간이식 수술을 받을 때 명희씨의 남편(서동엽)이 “아내를 곱게 잘 길러줘 너무 고맙다”며 장인에게 간을 제공했다. 서씨는 지방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한다. 장례 이후 큰아들 정균(영화감독)씨와 명희씨가 번갈아가며 분당 집에 와 어머니의 수발을 들었다. 기른 자식이 낳은 자식보다 낫다.

“쟤들이 그때 당한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둘이 한창 사춘기에 들어섰는데 어머니가 행방불명되고 아버지도 사라졌지요. 충격이 얼마나 컸겠어요. 다행히 나쁜 길로 안 빠지고 잘 살아줘 참 고맙게 생각해요.”

-신상옥 감독의 영화인생 60년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마디로 영화 미치광이였죠. 영화에 살고 영화에 죽은 사람입니다. 가정생활 자체가 영화였으니까요. 우리에게 집필한 시나리오를 나눠주면서 화장실에서 한 챕터씩 보라고 하죠. 화장실에 앉아서도 책 보고, 앉으나 서나 영화 생각밖에 없었던 분입니다.”

신 감독은 세상 떠날 때까지 남북한과 미국 할리우드에서 100편에 가까운 영화를 찍었다. 그는 도쿄미술전문학교를 나와 미술감독으로 일하다 1952년 김광주 원작의 ‘양공주’를 각색한 ‘악야(惡夜)’로 데뷔했다. 마지막 작품은 2002년 ‘겨울 이야기’. 미개봉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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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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