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방송을 진행하는 허참씨.
▼ 어머님께 ‘가족오락관’ 종영 소식을 알리기가 가장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어머님이야 당신 자식이니깐, 매주 봤지. 채널을 아예 9번에 고정했어. 팔순이 넘어서 할 일이 있나. 언젠가는 방송시간대를 오후 6시10분에서 오후 5시10분으로 옮기니깐 ‘왜 안 나오느냐’고 해서, 시간대를 옮겼다고 했더니 ‘누가 보냐, 벌건 대낮에’라고 했어요. 그런데 프로그램이 종영되고 방송에 안 나오니깐 ‘왜 안 나오느냐’고 또 연락이 왔어. 그래서 내가 ‘가서 말씀드리겠다’고 했어. 후배랑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후배가 ‘참이 형 가족오락관이 없어졌어요’라고 먼저 말했어. 어머님은 ‘니 것하고 송해씨 것(전국노래자랑) 두 개 봤는데 그럼 나는 뭘 보냐’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내가 라디오에서 매일 방송한다고 하면서, SBS 라디오에 다이얼을 고정시킨 라디오를 갖다드렸어.”
기자는 사실 ‘가족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의 경쟁력에 관심이 많다. 가족오락관은 상품으로는 ‘장수상품’이며, 기업으로 따지자면 ‘장수기업’이다. 경쟁이 치열한 방송가에서 가족오락관은 도대체 어떤 힘이 있어 26년을 지속해왔을까.
“MBC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몇 년 동안 몸부림쳤는데 안 됐어. 경쟁력이라? 우선 주부 방청객이야. 이 분들은 수고료 받고 출연한 방청객이 아니야. 자발적으로 와서 응원하고 즐기는 분들이야. 지금까지 11만명이 출연했어. 지금도 신청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어. 어떻게 해. 프로그램을 부활할 수도 없고. 이들이 ‘가족오락관’과 세월을 함께했어. 유사 프로그램은 아줌마도 아니고, 수고료 받는 젊은애들을 방청객으로 갖다놓았어. 방송의 활력소가 방청객이야. 이게 첫 번째 경쟁력이야. 두 번째는 출연진의 경쟁력이야. A급이 나왔어. 세월이 가면서 순발력과 재치가 있는 사람 위주로 출연했는데, 그 사람만으로도 진행이 됐거든. 세 번째는 뭐니뭐니 해도 계속 변화를 주는 시스템이야.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를 넣었어. 우리가 가끔 헛다리를 짚는 경우도 있었어. 너무 앞서가는 것도 안 돼. 기가 막혀. 반 보만 앞서야 돼. 확 앞서가면 안 먹혀. 당시 너무 앞서가서 우리가 사장시킨 코너가 다른 프로그램에서 지금 뜨는 게 있어. 31명의 PD가 거쳐갔는데 대부분 ‘가족오락관’을 통해 ‘입봉’(처음 연출을 맡는) 했어. 이 사람들은 ‘가족오락관’이 처음 맡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열정이 있어.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만들다보면 프로그램이 좋아져.”
시장에서 성공하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전략을 설명하는 경영학 강의를 듣는 느낌이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 ‘소비를 리드하지만 너무 앞서가는 것은 피할 것’ ‘새로운 실험’….
▼ ‘가족오락관’은 실험적인 시도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노래방 프로그램의 원조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가족오락관’에서 탄생한 코너가 450개가 넘어요. 그런데 보통 3~6주 하면 뜨는 프로그램을 알 수 있어. 호응도가 높은 코너는 6개월은 가지. 실험적 요소를 넣은 코너를 넣었다가 호응이 없으면 내리고 호응도가 높은 코너가 가는 거야. 그래서 프로그램이 오래 살아남았지. ‘고요속의 외침’처럼 반응이 좋은 코너는 아주 장수 코너였지.”
▼ 경영인들이 프로그램의 성공요인을 배워야 하겠네요.
“참 고민 많이 했어. 낱말 맞추기 코너인 ‘스피드게임’도 러닝머신(트레드밀) 탄 채 하거나, 팔굽혀 펴기를 하고 한다거나, 탁구공을 집어가면서 한다던가. 참 희한한 것 많이 했어. 스피드 게임을 자꾸 변형했어.”
‘왁·자·지·껄’이 ‘왕·X·X·털’로
▼ 혹시 ‘가족오락관’을 진행해오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1980년대 출연진이 헤드폰을 끼고 앞사람과 뒷사람에게 4글자의 단어를 설명하는 ‘이구동성’ 코너가 있었어. 그때 원래 정답은 ‘왁·자·지·껄’이었는데, 가운데 두 글자인 ‘자·지’는 문제가 없었어. 그런데 네 번째 사람이 ‘껄’을 ‘털’로 잘못 들었는데, 첫 번째 사람은 ‘왁’을 ‘왕’으로 잘못 들었어. 결국 ‘왕·X·X·털’이라는 민망한 말이 나온 거야. 녹화장이 뒤집혔지. 고의로 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일단 심의실에 올려 방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지. 결국 방송이 나갔고, 재방송까지 여과 없이 나갔어.”
▼ 방송 뒤에 문제는 안 됐나요.
“고의가 아니었는데 뭘. 나중에 담당 PD가 약간의 문책성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만 있었고. 큰 문제가 없었어.”
▼ 개인적으로 ‘이구동성’이라는 코너는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말이지만 사람에 따라 이해하는 내용이 다를 때가 많거든요.
“바로 그런 거지. 코너에서 보면 똑같은 과제물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해. 한 사물을 보고 저렇게 생각이 다를 수가 있다는 점을 절감하지. ‘가족오락관’ 게임들이 유치원에서 과제물로도 많이 쓰였어. 어떤 대학교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교재로도 사용했고.”
▼ ‘가족오락관’ 진행하면서 딱 한 번 빼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즘은 해서 안 되지만, 그 시절에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가 가로수를 받은 적이 있었어. 그 때문에 당시 함께 진행하던 정소녀씨가 단독진행을 했지. 사고로 코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하려고 했는데 정소녀씨 혼자 진행하기가 힘들다며 병원에서 나오라는 거야. 그래서 수술을 못 했어. 그래서 지금도 한쪽 콧구멍이 막혔어. 평생 숨을 한쪽 콧구멍으로만 쉬어. 담배연기를 품으면 한쪽으로는 ‘퐁’ 나오고, 막힌 쪽은 ‘솔솔’ 천천히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