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8월호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입니다”

구청장만 9번 역임한 정영섭(鄭永燮) 광진구청장

  • 박은경 < 자유기고가 >

    입력2004-09-01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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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겨울, 엄청난 폭설로 광진구 일대는 교통이 마비됐다. 천호대교에서 군자교, 구리시로 넘어가는 길과 아차산 주변 길이 눈으로 통행이 끊겼다. 정구청장은 구청 공무원을 전원 집합시켜 눈발을 헤치고 30분을 걸어서 현장에 도착했다. 그때 시각이 오후 서너 시경.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 거들었지만 작업이 끝난 시각은 밤 9시였다. 일흔이 다된 구청장이 손수 삽을 들고 눈을 치우는데 부하직원이 게으름을 피우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직원들은 녹초가 됐고 정구청장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어릴 때 별명과 달리 성인이 된 후 직장에서 얻게 되는 별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등뒤에 붙어 이력서 아닌 이력서 행세를 하면서 인생행로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좋은 별명을 만들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7월2일 서울 광진구 제3대 민선 구청장에 취임한 정영섭(鄭永燮·70) 구청장은 1997년 펴낸 저서 ‘바보 구청장’에서 사회적 성공과 별명의 연관관계를 독특한 철학으로 풀어냈다. 아니나 다를까. 정구청장의 이름 뒤에는 늘 ‘직업 구청장’ ‘만능 구청장’ ‘구청장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서울시가 ‘최장수 구청장’으로 뽑은 정구청장은 1978년 도봉구를 시작으로 성북·종로·동대문·중구·강남구청장(임명직)을 거쳐 정년퇴임한 뒤 1995년 광진구 민선 초대 구청장에 오르면서 또다시 구청장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후 광진구에서 재선, 3선에 성공함으로써 구청장만 아홉번째 역임하는 드문 이력의 소유자가 됐다. 민선 3기 임기까지 구청장 재임기간만 계산하면 26년에 이른다. 1958년 성동구청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한 공무원 재임기간은 올해로 44년째다.

    “붓대로 장난치지 마라”

    강산이 네 번 바뀌고도 남을 세월 동안 시말서 한장 쓰지 않고 외길을 걸어오며 행정달인이 된 정구청장이 내리 세 번 민선 구청장에 당선된 데는 남다른 비결이 숨어있을 법하다. 특히 일흔 고령에도 불구하고 ‘젊은 피’와 ‘개혁’을 부르짖은 민주당 김태윤(41) 후보를 2만여 표차로 따돌리며 주민들의 마음을 쏠리게 한 저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정구청장은 “공직생활 동안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말은 ‘붓대로 장난치지 말라’는 맏형의 충고였다”고 한다. 그는 그 말속에 녹아있는 형의 절절한 한을 잊지 않았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일제 식민지 막바지에 일본인들은 군량미 조달에 혈안이 됐다. 농민들로부터 강제로 벼를 공출했고, ‘부역’이라는 미명으로 인력을 마구잡이로 동원했다. 당시 같은 민족이면서도 일제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반장이나 구장(동장), 면서기는 벼 공출량을 정하고 인력동원에 앞장섰다. 못 배우고 힘 없는 사람들은 더 큰 시달림을 당했는데, 정구청장의 형은 그때 겪은 억울함과 분이 평생 뼈에 사무쳤다. 그래서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동생에게 “학식과 직분을 이용해 못 배우고 힘 없는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들지 말라”고 일렀던 것이다. 정구청장은 “민원을 처리할 때나 민원인과 대화를 나눌 때면 언제나 형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는 것 같다”며 형의 한마디 충고를 지금도 민원처리의 귀감과 좌표로 삼고 있다.

    광진구는 일년에 한 번씩 동별로 ‘터놓고 얘기합시다’라는 행사를 연다. 주민들은 그때마다 구청에 대해 할 말이 많다. 하소연이나 화풀이 상대 노릇은 언제나 정구청장이 자청한다.

    “민원인이 제게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구청장에게 화내고 욕한다 해도 나무랄 일이 아니죠. 아무리 심한 말로 다그쳐도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면 대부분의 주민들은 절반쯤 화가 가라앉아요.”

    그래도 안되면 음료수를 권하고 밥을 사줘가면서 “천천히 얘기하자”고 다독거린다. 그럴 때는 민원은 해결해주지 않고 왜 밥을 사주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도 정구청장은 태평이다.

    “구청장한테 화내고 고함지르는 것부터가 지방자치의 긍정적인 면모입니다. 과거처럼 관청의 문턱이 높으면 주민이 주인 되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될 리가 없어요.”

    정구청장은 지방자치시대가 열리기 오래 전에 구청의 문턱을 낮추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성북구청장으로 재직할 때 그는 1년 동안 구청장실 문을 열어놓고 지냈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시국이 어수선하니까 주민들이 불안해서 우왕좌왕했어요. 그렇게 오다가다 마주치는 구청장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안심하는 모습을 보고 아예 방을 개방했죠. 그 바람에 갖가지 민원이 담당 공무원 손을 거치지 않고 구청장실로 폭주하는 바람에 혼쭐이 났습니다.”

    그가 구청장 시절 내내 교훈으로 삼았던 일화가 있다. 그가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재직할 때인 1973년 5월5일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개장했다. 행사준비를 위해 시청에서 간부회의가 열렸는데, 구청장 한 사람이 불참했다. 시장이 “구청장 왜 안 나왔냐”고 다그쳐 묻자 당황한 직원이 엉겁결에 “어린이날이라 자녀들 데리고 구경갔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대노한 시장이 호통쳤다. “어린이날은 구청장이 남의 애들 돌보는 날이지 제 새끼 돌보는 날인 줄 알아!”

    이후 정구청장은 부하직원들에게 “즐거운 명절날 집앞에 쓰레기가 넘쳐흐르면 기분 좋을 주민이 없다. 주민이 즐겁고 편안하게 휴일을 보내려면 공무원에겐 공휴일이 ‘특근의 날’이 돼야 정상”이라고 상기시킨다.

    1995년 성동구에서 분구된 광진구는 당시만 해도 아차산 등 녹지지역을 제외하고 개발이 가능한 면적의 97%가 주거지역이었다. 상업지역이 전무한 상태였고, 다른 자치구에 비해 지역개발이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던 그해 7월 정구청장이 부임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지역구 개발의 싱크탱크 역할을 맡을 ‘구정(區政)연구단’을 발족시킨 것.

    “초대 민선 구청장이다보니 구청 자체적으로 행정을 기획하고 홍보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습니다. 관선 구청장이 이끌던 30년 관행의 구청 기능이 완전히 바뀌던 시기였죠. 열악한 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우선 독자적인 구정 방향을 설정해야 했고, 지역여건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는 게 시급했습니다.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경영 마인드를 도입하는 일도 발등의 불이었죠. 십수년 구청장을 해본 저로서도 쉽지 않은 과제였어요. 그래도 오랜 경험 덕분에 그럴 때일수록 서두르지 말고 장기적인 포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20·30대의 젊은 석·박사 출신 전문 연구인력을 중심으로 연구단을 만들었습니다.”

    재정형편도 열악한데 연구인력에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혹시 이들이 이상만을 고집해 공무원들과 불협화음을 만들고 실무행정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연구결과만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많았지만 기우였다.

    연구팀을 주축으로 진행한 조직개편 작업은 성과가 두드러져 내무부로부터 상까지 받았다. 장애인이 공공시설물을 직접 다녀보고 평가하는 공공시설물 장애인 평가제, 자치구 차원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광진환경선언’ ‘스트리트 퍼니처(지붕이 있는 버스정류장·가로등·휴지통 등)’ 개념을 도입한 광진구 상징 보행가로 등은 지금의 광진구를 상징하는 제도·거리·문화로 구체화됐다.

    구정연구단에 대한 초기 투자는 정 구청장의 민선 1, 2기 재직시기 동안 다양한 성과물로 나타났다. 문화복지시설이 전무한 상태에서 광진정보도서관, 광진문화센터, 중곡사회복지관, 노인정, 어린이집 등 48개의 문화·복지인프라를 구축해 공공복지시설을 확충했다. 특히 광진정보도서관과 광진문화센터는 전국 최고의 문화시설로 평가받고 있다.

    “지방자치는 흔히 지방자치, 지방행정, 지방경영의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주민자치는 생활자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민이 자율적으로 지역 토양에 맞는 생활자치를 함으로써 생활의 질을 높이고 주민복지를 실현하는 것이죠.”

    지방자치=주민자치

    정구청장의 지방자치, 나아가 주민자치 마인드에서 나온 대표적인 것이 자원봉사시스템이다. 지난해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처 공동주관으로 열린 제3회 공동부문혁신대회에서 광진구는 자원봉사시스템으로 장관상을 수상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자원을 활용해 공공예산을 절감했을 뿐 아니라 주민 주도형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공공부문 혁신사례로 평가받으면서 각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자원봉사시스템은 무려 101개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구청 자원봉사센터가 직능별·영역별로 각 민간 자원봉사단체들의 조직을 지원하고, 이를 수요자와 연결해주는 방식이다.

    순수 민간단체 중심의 21개 자원봉사기관협의체, 21개 전문 봉사단, 20개 중·고등학교 자원봉사단 지도교사 모임, 10개 자문모임 등에서 1만3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연간 41만여 명이 자원봉사 혜택을 입고 있다. 광진구 전체 구민수가 40만명이 채 안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자원봉사를 자청한 주민들은 이삿짐도우미, 사랑의 빵 나누기 봉사대, 아차산 지킴이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구청장은 직원들에게 주민자치를 강조하는 한편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산업”이라고 주지시킨다. 기업이 고객을 왕으로 모신다면 자치단체는 주민을 왕으로 생각해 관료주의적이고 행정편의 위주의 일방적인 행정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행정리콜제’를 도입했다. 구청에서 처리한 업무의 내용과 시기 등에 불만이나 잘못이 있을 때 이를 보상하거나 재처리해주는 제도다. 가령 공무원의 잘못으로 부당하게 세금을 매겼을 때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계산해 돌려주고, 구청측의 시행착오로 두 번 이상 구청을 방문한 경우나 민원이 법정기한 안에 처리되지 못한 경우 민원인에게 1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주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사업을 추진할 때 주민자치위원회를 통해 주민직접투표제를 실시함으로써 집단민원 발생을 미리 막고, 부조리 신고센터와 규제개혁의견 건의를 받는 등 주민을 참여시키고 그들의 의사를 듣는 제도도 다양하게 갖췄다. 특히 ‘민원해결방’은 주민들 사이에 말 그대로 ‘해결사’로 통한다. 주민생활 전반에 걸친 민원이 이곳을 통해 들어오면 담당 간부가 현장에 달려가 실태를 확인한 다음 구청장이 민원인을 직접 만나 도움을 준다. 1996년부터 3년 동안 이렇게 해결된 민원이 5500여 건에 이른다. 21개 부서 120명의 직원들로 구성된 ‘생활민원 빨리처리반’은 각종 생활민원을 ‘30분 이내 출동, 3시간 이내 처리’한다.

    광진구 노유동 소재 일명 ‘로데오거리’에서 5년째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K씨는 “가게 앞에서 며칠째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데, 구청이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영업손실과 불편이 크다”며 구청에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자 담당 공무원이 곧바로 달려와 현장을 살펴보고 돌아갔는데, 다음날 불편사항이 풀렸다고 한다.

    “광진구에서 10여 년째 살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구청 문턱이 낮아진 걸 피부로 느낍니다. 가끔은 동장이 시찰을 나와서는 ‘영업하는 데 어려운 점이 없냐’고 물어온다니까요.”

    구청측 사정으로 민원 처리가 늦어지면 주민들은 구청 홈페이지의 ‘구청장에게 바란다’로 들어가 항의한다. “주택가까지 파고든 퇴폐이발소와 오락실을 왜 단속하지 않느냐” “주차라인이 길 양편에 있어 출근시간에 몹시 혼잡하다. 거주민도 불편하니 일방통행으로 바꾸라” “민원 제기성 글을 올렸는데 바로바로 등록되지 않는다”…. 오전 8시30분에 출근하는 정구청장의 일과는 구민들의 하소연 청취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주민들과의 만남이나 승강이가 행정의 밑거름이 된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이처럼 주민들의 불만과 지적을 귀담아듣기 위해 마련한 것이 ‘주민 아이디어 모집제도’다. 예를 들어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부근 인도에 불법주차 차량이 많아 보도블럭이 깨지고 보행자들의 불편이 크다. 보도와 차도 사이에 가드레일을 설치하면 좋겠다”는 의견은 지적한 장소 일대에 가드레일이 설치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아이디어를 낸 대학생은 구청으로부터 포상금 10만원을 받았다.

    광진구는 민선 자치단체 출범 이후 복지·환경·경영 등 각 분야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이는 각종 수상경력으로 드러났다.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삶의 질 향상부문 최우수단체상 수상, 서울시 선정 최우수 자치구(실업대책·경제활성화 분야), 전국 기초자치단체별 대민 서비스 친절도 4위, 행정자치부 선정 최우수 자치구, 서울시 선정 시정개혁 분야 최우수자치구, 서울시 선정 시민만족도 계약 분야 최우수자치단체 등이 그것.

    광진구는 특히 복지분야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받는데, 그중에서도 노인복지에 가장 역점을 뒀다. 자치구 사상 최초로 경로당에 컴퓨터 40대를 들여놓아 화제가 됐고, 노인들에게 ‘노인복지카드’를 발급한 것도 다른 자치구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했을 만큼 시선을 끌었다.

    노인복지카드를 가진 사람이 회원으로 등록된 관내 각종 업소를 이용할 경우 최고 50%까지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광진구에 사는 65세 이상 노인의 84%(1만5700여 명)가 복지카드 혜택을 받고 있다.

    노인복지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게 된 배경을 설명하던 정구청장은 “노인에게 정이 많이 간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고생하신 어머니를 한번도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며 목이 메인 듯 잠시 말문을 닫았다.

    정구청장은 일제의 압박이 최고조에 달하던 1932년 12월 경북 의성에서 여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늘그막에 본 아들이라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6·25가 터지자 홀로 된 어머니를 남겨두고 학병으로 자원입대했다.

    그가 소속된 6사단 수색중대 3소대원은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적군에 밀려 영천까지 밀려 내려갔다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북진했다. 고향 의성을 거쳐 안계를 지나 다인 방면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정구청장은 미처 피란을 떠나지 못한 어머니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어머니가 살아계신 걸 확인한 후에야 어머니를 남겨놓고 입대할 때의 무거웠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어요. 저를 더할 바 없이 아끼셨는데, 제가 직장을 구하기 전에 돌아가셔서 제대로 모셔보지도 못했죠. 봉급 타서 제 손으로 고기 한 근 못 사드린 게 지금도 한으로 남아 있어요.”

    정구청장은 ‘솔선수범’과 ‘현장행정’을 가장 중요한 공직자의 자세로 여긴다. 성북구청에 근무할 때다. 새벽 2시경 수해로 산사태가 일어나 안암동 산비탈 동네 수로가 무너졌다. 가옥이 부서지고 인명피해가 났다는 보고를 접한 정구청장은 곧장 현장으로 달려갔다. 흙탕물 속을 뚫고 다니며 피해를 확인하고 응급보수를 서둘렀다. 가까스로 급한 불을 끄고 나자 걱정이 됐다. 엄청난 항의와 민원이 구청으로 쏟아져 들어올 게 불 보듯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로 복구작업이 모두 끝난 며칠 뒤 주민들은 뜻밖에도 감사패를 들고 그를 찾아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밤새 주민들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지난해 겨울에는 폭설로 광진구 일대의 교통이 마비됐다. 천호대교에서 군자교, 구리시로 넘어가는 길과 아차산 주변 일대 길의 통행이 끊겼다. 정구청장은 구청 공무원을 전원 집합시켜 눈발을 헤치고 30분을 걸어 현장에 도착했다. 그때가 오후 서너 시경. 인근 군부대 장병들까지 거들었지만 겨우 작업이 끝난 시각은 밤 9시였다. 일흔이 다된 구청장이 손수 삽을 들고 눈을 치우는 마당에 어느 직원이 게으름을 피우겠는가. 직원들은 녹초가 됐고 정구청장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 2월 완료한 광나룻길 수계분리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정구청장은 여러 차례 현장을 시찰했다. 하수관을 묻을 땅속까지 직접 내려가 공사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는 빈틈없는 상관 덕에 직원들은 현장 시찰 때마다 자료 준비로 죽을 맛이었다. 아는 게 너무 많아 직원을 주눅들게 하고 긴장하게 만드는, 피곤한 구청장이 바로 그다. 그런 직원들의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구청장은 틈만 나면 자치단체 공무원의 복무 태도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읊어댄다.

    “흘러가는 물에 몸을 담그고 가만히 있으면 떠내려갈 수밖에 없다. 제자리를 지키면서 끊임없이 움직여야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는다. 그래봐야 현상유지밖에 안된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현상유지에 기울이는 노력보다 몇 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구청장은 나름의 ‘민선 구청장론’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첫째, 선거 공약사업은 표를 준 주민만이 아니라 지역주민과의 약속이다. 그래서 자치단체의 재정적 여건이나 현실적 상황, 전문가의 자문, 지역주민의 여론을 고려해 융통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둘째, 성과 위주의 사업추진은 지양해야 한다. 자칫하면 실질적인 혜택이 주민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주민이 낸 세금만 낭비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주민들의 민원이나 요구에 임기응변적인 시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다 보면 졸속행정, 장님행정이 되기 십상이다. 장기적 비전에 맞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넷째, 문제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과 직관력을 갖춰야 한다.

    다섯째, 무조건 튀고 보자는 깜짝쇼로 행정을 이끄는 것은 지방자치의 기본이념에서 벗어난다.

    여섯째, 공무원들은 자치단체의 홍보요원이자 봉사자들이다. 자치단체장의 손발이 되어 뛰는 공무원에 대해 특별한 애정과 포용이 필요하다.

    직급의 상하를 불문하고 모든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미덕이 도덕성과 청렴성이다. 정구청장은 자칫 시비와 불명예를 부르는 청탁에 관한 한 철저하게 스스로를 관리해왔다고 자부한다. 민원성 청탁은 귀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만 이권청탁만큼은 철저히 배제한다는 것. 그 때문에 대학 시절 하숙집 한방에서 뒹굴며 동고동락하던 친구와의 오랜 연(緣)이 끊겼다.

    “몇해 전 저를 찾아와서 ‘어린이대공원 앞에 집을 짓는데, 7∼8층으로 지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더군요. 건축허가가 날 수 없는 지역이었죠. 친구를 설득했지만 듣지 않았어요. 끝내 거절했더니 그후로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고위 공직자였는데, 아마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것 같아요. 공직자로 몸담고 있는 이상 도리없는 일이지만, 절친한 친구를 잃은 게 지금도 가슴 아픕니다.”

    공직자로서 오랜 세월 살얼음판을 걷듯 스스로를 단속하며 지내온 그이지만, 지난 선거를 전후해 자신을 둘러싼 잡음과 원성이 불거진 것을 비껴가진 못했다. 일부에서는 잦은 당적 변경을 빌미 삼아 “필요에 따라 당적을 옮기는 사람”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정구청장은 민선 2기 자치단체장 선거를 몇 개월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후 한나라당에 들어가 2기 구청장에 당선됐고, 이후 또다시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리고는 지난 6·13 선거 직전에 한나라당에 다시 들어갔다. 이에 대해 정구청장은 “구청장 후보로 공천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구청장은 당적을 갖지 않고 당과 여·야를 떠나 행정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당 사정과 정치상황에 따라 구청장의 입지가 흔들리면 지방자치단체의 성공은 요원해요. 그렇지만 행정공무원으로서 앞으로 계속 일하려면 선거에서 이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풍토상 당을 떠난 무소속 후보가 선거에서 이기기는 어려워요. 그게 현실입니다.”

    6·13선거 당시 변호사 출신의 서울시의회 의원인 민주당 김태윤 후보는 ‘판공비 등 구정의 투명한 공개’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정구청장은 판공비 지출내역을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판공비를 쓴 대상 인물이나 기관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모든 지자체 단체장에게 판공비를 공개하도록 한다면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판공비를 안 쓰겠다거나 없애겠다는 말을 간혹 하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발상입니다. 공무원 연금과 판공비는 공직사회의 부정을 방지하는 데 기본이 되는 제도예요. 원칙대로만 하면 공무원 사회에서 관행이 되다시피 한 뇌물상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수단이 판공비입니다.”

    월마트 유치 논란

    지난 선거를 앞두고 주민 김모씨는 구청 홈페이지에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해 여름 테크노마트 앞 빈터에 지하공영주차장을 건설한다고 해놓고 월마트가 단독 신청해 사업자로 선정된 것으로 안다. 구청이 상습 교통난과 주차난 해소를 내세우며 주민에 대한 공개나 의견개진 기회도 없이 밀어붙이다가 주민들의 반대와 연명 항의에 따라 사업이 미뤄진 것으로 기억한다. 유보됐다면 다시 추진할 계획이 있는지, 지방선거가 끝나자 연내 착공한다는 얘기가 도는데 사실인지 밝혀달라. 월마트가 사업자로 선정된 과정과 배경도 궁금하다. 구청은 추진과정에 대한 정보와 관련자료를 공개하기 바란다.”

    공영주차장 건설을 둘러싼 잡음에 대해 정구청장은 “공청회를 통해 주민들을 꾸준히 설득할 생각”이라며 “지하에는 월마트와 주차장을 들이고 지상은 공원으로 꾸밀 예정이다”고 밝혔다.

    “개발사업에서는 집적이익을 고려합니다. 대형 상권이 형성되면 한 지역에서 주민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습니다. 또한 주민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 좋죠. 하지만 교통혼잡을 우려한 지역 주민과 상인들의 반대로 당초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어요. 월마트가 안 들어온다 해도 투자비와 건축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웬만한 기업이나 사업자가 나서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정구청장의 발목을 잡는 또 하나의 문제는 재정자립도다. 광진구의 재정자립도는 2000년 45.6%, 2001년 42.3%, 2002년 현재 40.6%로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이에 대해 정구청장은 “자체재원이 많은 중구·송파구·서초구·강남구 등 4개 구를 빼면 재정자립도는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구가 거둬들일 수 있는 자체재원 외에 서울시에서 구마다 여건에 따라 배정하는 교부금, 보조금 등 의존재원을 많이 타면 탈수록 재정자립도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

    광진구 기획예산팀 신현식 주임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무 사업도 벌이지 않고, 따라서 의존재원을 가져다 쓰지 않고 복지부동하면 재정자립도는 올라간다”고 설명한다. 광진구는 1998년부터 수계분리공사와 하수관로 확장공사 등 500여 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사를 시작한 후 서울시로부터 약 250억원을 지원받았다. 또한 1999년부터 정부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 폭을 늘이면서 들어가는 비용이 국비 50%, 시비 25%, 구비 25%의 비율로 확대 충당됐다. 이 두 가지 요인이 광진구의 재정자립도를 떨어뜨리는 주원인으로 작용했다 게 구청측의 해명이다.

    정구청장은 ‘바보 구청장’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렇듯 책으로나마 펴낼 수 있게 된 것은 재직중 시말서 한장 쓰지 않았다는 자부심과 긍지에서 비롯됐다고 하겠다. 이 책이 지방화시대를 맞이하여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자 하시는 분들과 관리직으로 애쓰는 많은 공무원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되어 주민을 행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민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여 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동시에 좋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서 지방자치행정 발전에 작은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인사는 결과를 보고 누구나 수긍하고 그만하면 공평하다는 평을 받게 해야 한다. 양심에 따라 누구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인재를 등용하는 한편 자기편 사람은 최소한으로 기용하는 것이 보다 객관성 있는 인사가 될 것이다. 인사는 전리품(戰利品)이 아니다”라는 귀절도 나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최근 그를 둘러싸고 심각하게 확대된 잡음 중 하나가 낙하산 인사다. 광진구 서점 대표, 교수를 포함한 주민 1000여 명이 ‘광진정보도서관 부적격 인선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고 지난해 10월 서울시에 광진정보도서관 부적격 인선관련 감사를 청구하면서 시비가 불거졌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도서관장과 사서과장 등 두 자리에 대해 대상인물을 1월말까지 교체 임명토록 했다. 감사 결과 광진구의 위탁을 받은 광진문화원측이 도서관 경력자나 사서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도서관장 자리에 전직 광진구청 국장 출신 인사를 임명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서과장 역시 전문 자격증을 가진 사람 대신 약사 출신 인사를 임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 감사 결과에 대해 광진구청측은 ‘도서관장 내년 1월 교체, 사서과장 5월중 교체’를 약속했다. 실제로 지난 5월 사서과장이 사표를 냈고, 문제의 도서관장도 함께 물러났다. 이때가 6·13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5월27일이었다. 두 사람의 사표가 수리되면서 낙하산 인사를 둘러싼 잡음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공석으로 남아 있던 두 자리에 문제의 두 사람이 한 달 만인 6월27일 다시 복귀하면서 파장이 확대됐다. 선거가 끝난 지 불과 2주일 만에 광진문화원과 광진구청의 협의로 원직 복직된 것. 이들과 함께 도서관 관리과장으로 정아무개씨를 발령낸 것 때문에 일이 더욱 복잡하게 꼬였다.

    정씨는 광진구청 과장 출신으로 정구청장의 측근이자 인척이다. 서울시는 정씨에 대한 대책위원회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0억원이 넘는 예산을 쓰는 도서관을 관리하기 위해선 행정 경험자가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7개월 가까이 끌어온 인사 잡음과 관련해 정구청장은 이렇게 심경을 밝혔다.

    “도서관장은 우리 구청의 전직 국장입니다. 도서관 설립계획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그가 직접 발로 뛰며 관여했기 때문에 충분히 관장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서과장에 대해서는 5월중 사표를 수리하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후 사서자격증을 땄기 때문에 사서과장 자리로 돌아오는 데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한편 그는 “선거 때 상대방이 이 건을 물고 늘어져 쟁점화할 것을 우려해서 두 사람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분명하게 항변했다.

    “전국적으로 도서관장직을 맡은 사람 중 70% 이상이 일반 공무원입니다. 저도 사회인이고 당적을 가진 정치인이에요. 270여 개 자치단체에서 이 정도 인사 재량권도 없는 구청장이 어디 있습니까. 이를 두고 정실인사로 문제 삼는다면 할 말이 없어요. 그러나 약속대로 내년 1월 전까지 이 문제를 깨끗이 정리하겠습니다.”

    한순간에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 그동안 ‘열린 행정, 투명한 행정, 주민에게 신뢰받는 행정’을 강조해온 행정의 달인이 사소한 인사문제로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것은 의외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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