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는 예쁘면 된다’는 관념은 커리어 패스의 문제
- 영재교육 안 받아…어릴 때 과학전람회 참여한 게 밑받침
- 통신지능은 고객 맞춤서비스 위한 인프라
- 정치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 아니다
- 고시망국론, 사회시스템이 이공계 출신 가치창출 밀어주지 못한 결과
- 편하게 살기보다 보람 느끼는 삶 살고파 한국행
얼마 전 한나라당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이 윤 박사에게 전국구 1번을 제의했다. 젊은 여성 공학자가 한나라당의 낡은 이미지를 분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금배지 제의를 사절했다. 정치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신문 방송에 윤 박사 인터뷰가 꽤 많이 나왔다. 포털사이트나 언론재단 카인즈(KINDS)에서 ‘윤송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인터뷰 기사가 줄줄 쏟아져 나온다. 윤 박사를 ‘신동아’ 인터뷰 후보로 정해놓고 이런 자료들을 섭렵하던 중 한 신문에 실린 그녀의 와이드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언론 인터뷰를 자제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자꾸 신문에 실리니까 부모님이 걱정하세요. 일은 안하고 신문에만 도배를 하고 있다는 핀잔을 들었어요.’
인터뷰 교섭이 어려울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윤 박사와 5회에 걸쳐 대담을 한 동아일보 학술전문기자 김형찬 박사를 통해 교섭했더니 아니나다를까 인터뷰를 사절했다. 낭패였다. 마침 주말에 SK텔레콤 조정남 부회장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윤송이씨를 상무로 발탁한 SK텔레콤 임원인사가 화제로 올랐다.
이야기 끝에 최근 인터뷰 자제 선언을 한 윤 박사를 ‘신동아’ 인터뷰에 불러내달라고 부탁했다. 조 부회장의 도움으로 인터뷰가 이뤄졌다.
“얼짱도 엄연한 한 가지 ‘성공의 길’”
4월5일 식목일, 서울 무교동 SK빌딩 11층 SK텔레콤 CI(Communication Intelligence) TF팀장 방에서 윤 박사를 만났다. 휴일이라 넓은 사무실에 달랑 두세 명 직원만 나와 있었다.
-평소 휴일에도 근무합니까.
“아녜요. 인터뷰 때문에 나왔어요.”
-아이쿠, 미안하게 됐습니다. 매스컴에 자주 나온다고 집에서 혼났습니까.
“부모님과 함께 살거든요. 똑같은 얘기가 자꾸 나오니까 읽는 사람도 식상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어요. 또 팀원들은 일하는데 나는 몇 시간씩 인터뷰나 하고 있으면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식목일에 인터뷰하자고 했어요.”
윤 박사의 언론 인터뷰는 일반 국민과 학생에게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공계 이미지를 고양하는 효과가 크다. 고시 합격과 의대 진학을 최고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서 윤 박사는 이공계의 희망이요 샛별이다. 그녀의 인터뷰가 심각한 이공계 기피 현상을 바꿔놓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 역할을 피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기업홍보 효과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인터뷰 자제를 당부한 부모님이 이 글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용모가 학부생 정도로 보여요.
“감사합니다.”
-일부 여성단체들은 미스코리아 대회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그러나 미모가 여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여자는 예쁘면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이 남성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성 쪽에도 있어요. 여권이 신장되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면서 이런 인식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지만. 실력과 노력으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여성으로서 ‘여자는 예쁘면 된다’는 사회 일각의 고정관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재미있는 질문인데요. 커리어 패스(Career path)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커리어 패스’는 우리말로 ‘출세의 길’ ‘성공의 길’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남성은 요리도 못하고 빨래도 못하고 애를 못봐도 싸움만 잘하면 장땡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여성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것을 잘하지 못해도 예쁘기만 하면 시집 잘 가서 행복하게 사는 커리어 패스가 역사적으로 검증됐습니다. 여성은 호모지너스(homogenous·동질의) 집단이 아닙니다. 여자의 미모는 한 가지 성공의 길일 뿐입니다. 얼굴 못생기고 아무것도 못해도 바이올린 연주만 잘하면 되더라는 여성도 있는 거죠. 골프만 잘 쳐도 성공하는 여성도 있구요. 여성을 단순하게 규정하려는 시도는 잘못이에요. 여자 안에서도 다양하니까. 남자 안에서 다양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위 ‘얼짱’도 그저 하나의 길일 뿐이라는 말이네요. ‘비(非)얼짱’ 여성들한테 희망을 주는 발언이군요.
“얼짱도 엄연한 하나의 길이죠.”
-일상생활에서는 실례가 되는 질문도 인터뷰에서는 할 수 있거든요. 답변하기 거북하면 노코멘트 해도 됩니다. 스스로의 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노코멘트 할래요.”
과기대 수석졸업, 만 24세에 MIT 박사
여기서 잠깐 윤 박사의 커리어 패스를 살펴보자. 서울 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졸업했다. 한국과기대(KAIST)를 수석졸업한 뒤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 3년6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만24세의 나이였다. 논문주제는 ‘감성을 가진 합성캐릭터(Affective synthetic character).’ 합성캐릭터는 인간과 기계의 대화를 중재하는 디지털 존재다. 그는 이 논문으로 미국컴퓨터공학협회(ACM)가 매년 전세계에서 단 한 명을 골라 주는 최우수학생 논문상을 받았다.
미디어랩에 처음 갔을 때 박사과정 3년차의 미국 남학생이 자신을 소개하며 윤 박사에게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윤 박사가 학위를 받고 귀국해 지난해 와이더댄닷컴 이사로 근무할 때 그 남학생으로부터 곧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이메일이 왔다. 윤 박사가 빠른 것일 뿐 그 남학생이 늦은 건 아니다. 보통의 경우 학위를 받는 데 6~8년이 걸린다.
MIT 미디어랩에서 윤 박사는 6명과 팀을 이뤄 로스앤젤레스 전시회에 출품하는 합성캐릭터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다. 그녀는 석달 동안 하루 20시간씩 작업을 강행했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마감일에 맞춰 프로젝트를 완성한 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수면부족과 과로가 원인이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급히 날아온 동생의 간호를 받으며 일주일 동안 잠만 잤다.
-그렇게 집중하고 몰두하니까 박사학위도 남보다 훨씬 빨리 딴 것 아니겠습니까. 머리만 좋은 사람보다 집중하고 몰두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 천재형이라 생각합니까. 아니면 집중하는 노력형이라고 생각합니까.
“게으름을 많이 피워요. 천재도 아니구요.”
MIT 미디어랩 소장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디지털 전도사’로 통한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1995년 출판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원자(물질)의 시대는 가고 비트(정보)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네그로폰테 교수에게 직접 배웠습니까.
“네그로폰테 소장은 강의하거나 연구지도하지는 않아요. 내외부적 코디네이터 역할을 합니다. 내 아이디어에 대해 가끔 의견을 주고받았죠. 전세계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랩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15년 후 생활양식의 변화를 몰고올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데서 그분의 역할을 찾을 수 있습니다.
네그로폰테 스위치(switch·전환)라는 게 있어요. 1980년대만 하더라도 TV는 무선이었습니다. 전원만 꽂아놓으면 방송국에서 TV까지 무선으로 신호가 왔습니다. 당시 전화는 모두 유선이었죠. 그런데 네그로폰테 교수가 TV가 무선이고 전화는 유선이지만 곧 전화는 무선으로, TV는 유선으로 바뀔 거라고 예측했죠. 네그로폰테 교수는 다양한 응용분야에서 그런 식으로 어떤 기술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연구를 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과학에 관심
윤 박사는 서울 양천구 목동 단독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70~80년대 목동은 도시와 농촌의 중간지대였다. 서울 쪽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반대편으론 논밭이 펼쳐졌다. 곤충채집을 하며 8시간씩 집 뒷산을 헤맸다. 길을 잃지 않으려 지도를 그려 가지고 다녔다. 양 옆으로 아카시아 나무가 늘어선 길이 있었다. 아카시아꽃이 폈다 지면 길이 흰 꽃잎으로 뒤덮였다. 바람에 실려오던 아카시아 꽃향기. 산에는 잠자리 사마귀 무당벌레 서식처가 있었다. 가다보면 호박밭도 나타났다.
부친 윤호식(56)씨는 서강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고 산업은행에 근무하다 한국증권금융으로 옮겨 상무를 지내고 2002년 퇴임했다. 어머니 이지수(54)씨는 한글 서예가로 국전 심사를 하기도 한다. 자녀를 위한 기도문, 이해인 수녀의 시, 정철의 사미인곡, 성경구절을 궁체로 즐겨 쓴다. 윤 박사는 어머니에게서 예술적 소양을 물려받았다. 서예도 배웠고 바이올린 연주도 즐긴다. 과기대에 다닐 때는 그림 동아리 ‘그리미주아’를 만들어 활동했다.
-어머니는 예술인이고 아버지는 금융인인데 과학도의 길을 걷게 된 건 누구의 영향인가요.
“주변에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위인전 전집을 사주었다. 12권짜리 위인전 전집에서 마지막 11, 12권이 과학자편이었다. 에디슨 아인슈타인 퀴리부인 등 유명한 과학자는 모두 등장했다. 다른 분야의 위인들은 한 번씩 읽고 넘어갔는데 과학자편은 반복해서 읽었다.
인터뷰중인 윤송이 박사.
5학년 때는 서울시 과학전람회에 식물의 광합성 작용에 관한 통계적 분석을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창경궁 옆 서울과학관에서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그녀는 과학전람회에 출품할 실험을 디자인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소양을 갖추어갔다.
6학년 때는 무당벌레에 관한 연구로 금상을 받았다. 무당벌레 중에는 진딧물을 잡아먹는 육식 무당벌레와 가지 잎, 감자 잎을 먹는 초식 무당벌레가 있다. 그녀는 무당벌레의 식습관이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인지를 실험으로 밝혀냈다. 무당벌레 알이 깨어난 뒤 육식 무당벌레 새끼에겐 가지 잎을 주고, 초식 무당벌레 새끼에겐 진딧물을 주었다. 모두 먹이를 먹지 않고 굶어죽어 무당벌레의 식습관이 유전과 관련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특별히 영재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지도받고 과학전람회에 참여한 것이 오늘을 있게 한 밑받침이 됐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과학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누구입니까.
“안성진 선생님이에요. 과학전람회 출품도 권유하시고, 다른 학생들이 하지 않더라도 소신을 갖고 관심 있는 새로운 일에 계속 도전하라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양명초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 영일여중에 수석합격했다. 천재소녀란 별명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물상 담당 이정민 교사가 관심을 갖고 지도해주었다.
“내가 수업시간에 이상한 질문을 많이 했어요. 그럴 때면 이 선생님이 이러이러한 책을 한번 읽어보고 나서 방과 후에 다시 얘기해보자고 하셨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교실 안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선생님이 도와주신 거죠. ‘너 영재야’ 하고 모아놓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관심에 맞게 자연스럽게 해주는 편이 도리어 도움이 됐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깊은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인 거죠. 그 선생님은 어떤 지식을 주었다기보다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도서관이나 대형서점에 가서 어떤 책을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주말마다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뒤졌습니다.”
길눈 어두운 ‘과기대의 전설’
영일여중을 수석졸업하고 서울과학고에 진학했다. 과학고에 들어가면서 그녀의 탐구활동은 날개를 달았다.
“중학교에서는 학생마다 소질과 관심이 다 다르잖아요. 과학고에서는 저와 궁금해하는 대목이 일치하는 애들이 많았어요. 그런 점이 참 좋았죠. 말이 잘 통하지요. 이거 한번 해보자 하면 함께 탐구하는 분위기였죠. 우리가 영재라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지만 같이 실험해볼 수 있는 동료들이 한꺼번에 생겨 너무 좋았어요. 그런 면에서 과학고는 아주 훌륭한 교육기관입니다.”
그녀가 미국 MIT에서 공부할 때 SBS에서 ‘카이스트’란 드라마를 방영했다. 작가가 대전 과기대에 내려와 학생들을 인터뷰하며 소재를 취재했다. 과기대에서 윤 박사는 전설로 남아 있었다. ‘카이스트’에서 주인공 혜성(이나영 분)이 윤 박사의 전설을 재현했다. 윤송이 학생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다 불현듯 실험문제의 해답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식판을 놓고 실험실로 가버렸다. 함께 밥을 먹으려던 학우들은 황당했다. 드라마에서는 조금 과장되게 윤송이 학생이 식판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연출했다.
그녀는 길눈이 어두워 지도를 그려 그것을 보면서 강의동과 기숙사를 찾아다녔다. 동네에는 간판이 있어 길 찾기가 쉬웠지만 대학교엔 간판 없는 건물들만 있었다. 나무 몇 개 지나 오른쪽으로 가면 무슨 수업하는 데가 있고…. 이런 식으로 지도를 그려 한달 동안 갖고 다녔다. 목동 뒷산에서처럼. 드라마 ‘카이스트’에선 항상 길을 못 찾고 헤매다 어리뜩하게 웃는 학생으로 묘사됐다.
-자신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보며 기분이 어땠나요.
“그냥 재미있었어요. 그 드라마에서 이 사람이 누구라고 지칭한 건 아닙니다. 어떤 개인의 삶을 극화한 게 아니고 학교 분위기를 묘사하면서 몇 가지 에피소드를 빌려간 거죠.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윤 박사는 머리 좋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는 근거로 길눈이 어두운 것을 들이대는 버릇이 있다. 실제로 길눈과 지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바버라 피스와 앨런 피스가 함께 저술한 ‘왜 남자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여자는 지도를 못볼까’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은 여성과 남성의 뇌구조가 달라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공간감각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있다. 그러나 언어감각이나 감정표현은 여성 쪽이 우월하다.
윤 박사는 1975년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26일에 태어났다. 눈이 많이 오던 날이었다. 아버지가 첫딸의 이름으로 ‘눈송이’에서 ‘송이’를 따왔다. 할아버지가 살아 있었더라면 한문 이름을 지었을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는 한글서예를 하는 어머니의 영향이었는지 순한글 이름을 지었다. 세 살 터울의 동생 이름은 하얀(26)이다.
“노래 있잖아요. ‘송이송이 하얀 꽃송이.’ 그러니까 나는 송이고 동생은 하얀이죠. 합하면 하얀 송이.”
동생 하얀도 언니와 같이 서울과학고를 나와 서울대 자연대 분자생물학과를 수석졸업했다. 하얀은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여동생도 서울대 분자생물학과 수석졸업
윤 박사는 고등학교 때 수학과 물리 과목을 좋아해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뇌의 연구로 이어졌다. 동생은 고등학교 때 생물과 화학을 좋아해 학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분자생물 중에서도 뉴로사이언스(신경과학)와 페르몬(곤충의 의사소통에 쓰이는 물질)을 연구하고 있다. 각기 다른 과목을 좋아했는데 뇌로 수렴된 것이 신기하다고 윤 박사는 말한다. 그녀는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 동생의 코멘트를 듣고 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 미국으로 국제전화를 걸어, 동생으로부터 “지금 새벽 4시”라는 핀잔도 여러번 들었다.
“나는 공학도라서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지능시스템을 만들지요. 기억이나 연상을 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접근합니다. 가설에 맞춰 실제 시스템을 만들어 잘 작동하면 공학자로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지요. 동생은 자연과학을 하니까 내가 연구하려는 것에 대해 실제로 동물의 바이올로지컬 시스템에 그런 게 있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재미있죠.”
-무얼 잡숫고 딸 둘을 이렇게 잘 낳을 수 있는 건지, 부모께 물어보고 싶어요.
“하하하. 왜 그러세요.”
윤 박사의 아버지는 4남2녀의 셋째라서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아들 낳으라는 압력이 덜했던 것 같다.
-초중고교 때 지능지수(IQ) 검사를 해봤을 것 아닙니까. 얼마나 나왔습니까.
“IQ 검사를 해봤는데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아신다고 해요.”
-어머니한테 안 물어봤어요?
“세 자릿수인 건 분명해요.”
-동아일보(2003년 7월18일자)에 아버지가 세상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더군요. 아버지가 전수해준 세상 사는 법을 독자들과 공유하면 어떻겠습니까.
“겸손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항상 바르게 살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어머니는 어떤 가르침을 주었나요.
“엄마는 항상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고 하시지요. 누구에게나 다 배울 게 있는 거래요. 사람마다 관점과 처한 입장이 다르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나한테 중요한 거랑 상대방한테 중요한 거랑 다르니까 처음부터 ‘그게 아니야’라고 하지 말고 다른 것 속에서 뭔가를 찾아보라는 말씀이십니다.”
‘익스플로이테이션’과 ‘익스플로레이션’
-우리 사회가 너무도 여러 갈래로 찢겨지다 보니 의견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감정적으로 미워하지요. 광화문에서 열린 찬탄집회와 반탄집회에서도 극렬한 언사들이 나오잖아요.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체의 학습이론에 익스플로이테이션(exploitation)과 익스플로레이션(exploration)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익스플로이테이션은 이용, 익스플로레이션은 탐험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아기개미가 음식을 가지러 갈 때 어디에 맛있는 게 있을지를 배워야 하잖아요. 어릴 때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되도록 많이 돌아다녀요. 오늘은 여기 가봤는데 맛있는 걸 찾았어. 다음에는 다른 델 가봐야지. 이렇게 가능한 옵션들을 탐험하는 게 익스플로레이션입니다. 익스플로이테이션은 10군데를 가봤더니 2번 길로 가는 게 가장 좋았으니까 앞으로 2번 길로 가기로 마음먹는 태도지요.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베스트 날리지(Best knowledge)를 써먹는 것이 익스플로이테이션이죠. 탐험심이 뛰어난 개미라면 10개의 길을 가보고 나서 또 다른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11번째, 12번째 길을 찾아가겠죠. 익스플로레이션과 익스플로이테이션이 조화를 이뤄야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고 개체와 집단의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두뇌 연구할 때 자주 사용하는 개념이죠.”
-나 같은 사람은 익스플로이테이션할 나이이군요.
“위원님은 아직 젊으시잖아요. 그렇지만 점점 익스플로이테이션의 비율이 높아지겠지요. 개체가 나이 들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계속 익스플로레이션을 하는 것이 별로 효율적이지 않아요. 왜냐하면 10개를 해보고 좋은 것을 하나 발견했다면 다음에 몇 개 더 해보더라도 더 좋은 것을 찾을 확률이 낮거든요. 익스플로레이션은 모 아니면 도, 때론 아주 꽝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익스플로레이션과 익스플로이테이션은 항상 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눈과 귀를 막아버리는 행위지요.
익스플로이테이션으로 안정된 생활을 끌어가는 것도 중요하고 익스플로레이션으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 게 사회 안에서 다양성으로 나타나야죠. 모두 다 익스플로레이션만 한다면 언젠가 소진될 겁니다. 사회발전이 정지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익스플로이테이션만 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어떤 패스(path)든 내가 아는 것만 옳고 다른 것은 틀리다는 태도로는 사회발전을 도모하기 어렵지요. 항상 익스플로레이션이 일어나는 사회가 건강하고 그런 걸 통해서 누군가는 익스플로이테이션을 할 수 있는 거죠. 익스플로이테이션과 익스플로레이션이 서로 존중할 때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 비슷한 얘기 같기도 하고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보수·진보하고는 달라요. 내가 아는 게 전부고 내가 아는 게 정답이라고 얘기하는 게 익스플로이테이션입니다. 익스플로레이션의 경우 기존의 것은 다 아니고 이거에 답이 있을 거라고 얘기할 수는 없죠.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지요. 새로운 것이 더 있지 않을까 물어보는 것은 필요하죠.”
-어느 인터뷰에서 사고의 리더(Thought leader)가 되겠다는 말을 했던데 무슨 의미입니까.
“어릴 때는 늘 작은 호롱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조금 앞에서 보고 내가 본 걸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역할을 말하는 거죠.”
-윤 박사가 태스크포스팀장을 맡고 있는 통신지능이란 뭡니까.
“통신서비스가 점점 복잡해지잖아요. 휴대용 단말기가 여러 가지 네트워크에 연결돼 다양한 서비스를 받게 됩니다. 무선 인터넷 하나만 해도 고객들이 어려움을 느낍니다.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찾으러 가기 전에 지레 포기해버리는 일이 많지요. 서비스 사업자 입장에서 고객이 어떤 시간에 어디 있고, 개인 취향은 무엇인지 등등 고객의 컨텍스트를 알고 있다가 그 고객에게 맞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겁니다.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 또는 서비스 제공방식을 통신지능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반복해서 대답하다보면 지겹겠지만 미래의 휴대전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도 휴대전화 하나로 인터넷도 하고 크레디트 카드, 교통카드 기능도 하는데요.
“휴대전화는 친구라고 생각하면 돼요. 아주 간단한 예로 요즘 전화번호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휴대전화가 전화번호부 기능을 갖기 때문이죠. 스케줄 정리도 해주고 필요한 정보와 뉴스를 다운로드받아 어디서나 시간이 날 때마다 읽을 수 있게 해주지요. 의료 서비스도 받을 수 있죠. 휴대전화에 측정기를 붙여 맥박이나 혈압 상태를 병원에 보내면 담당의사가 보고 당장 조치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중에 시간 날 때 한번 들러도 되는지 결정합니다. 방송 엔터테인먼트의 플랫폼도 되죠. 옛날엔 워크맨을 가지고 다녔지만 이젠 휴대전화로 음악을 듣는 세상이 된 거죠. 휴대전화는 은행 업무를 대신해주고 외워야 할 것을 대신 외워주는 비서이자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과 똑같은 기능을 가진 로봇이 실제 남자와 섹스도 하면서 다른 여성의 질투를 유발하는 줄거리의 영화가 있었지요. 그런 로봇이 미래에 가능하다고 봅니까.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죠. 영화에 나온 로봇 여성은 사람을 모방한 것입니다. 지능은 덧셈 뺄셈을 하는 능력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10층 건물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두려움을 느끼고, 어두운 굴에 들어가면 공포를 느끼죠. 또 어떤 것을 경외하거나 좋아하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정말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과 똑같이 느끼고 사람과 비슷한 정도의 지능을 가지려면 일단 사람과 사이즈가 비슷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인간의 뉴런 같은 10의 11승(1011)이나 되는 메트리얼을 인간 크기의 사이즈에 넣기 위해서는 사람과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걸 굳이 공장에서 만드는 것보다는 인체를 통해서 만드는 것이 낫지요. 만약 사람하고 똑같은 사이즈와 재료에 바이오 메트리얼로 만들어지고 똑같은 구성으로 돼 있다면 그건 사람으로 수렴되는 거지요.
휴대전화에 부여하는 지능은 휴대전화스러운 지능이지 사람과 비슷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비용이나 효율성 면에서도 떨어질 테구요.”
-최근에 어떤 영화를 봤습니까.
“태극기 휘날리며.”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주변 사람들과 이 영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영화 프로덕션 면에서는 마무리나 빛의 처리, 카메라 각도 같은 영상기법이 정말 수려하고 잘됐다고 공통적으로 말했지요. 완성도가 높은 영화입니다. 내용 면에서는 서로 갈리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전쟁의 비극,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족애는 사상을 뛰어넘는 가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개인과 집단의 갈등을 생각했습니다.
형 진태(장동건 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입니다. 진태에겐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그의 첫 번째 가치는 동생을 지키는 것이죠. 집단의 프리즘으로 보면 이 사람은 국군 쪽에서 싸우다 갑자기 180도로 바뀌어 공산군의 선두에 섭니다. 맨마지막엔 다시 180도 전환해 공산군에 총을 겨눕니다. 말도 안되게 휙휙 사상이 바뀌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일관적이거든요. 조직의 논리와 개인의 논리가 극명하게 상충되는 현상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와 윤 박사가 연구하는 통신지능이 접합되는 부분은 없습니까.
“영화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입니다.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2시간짜리 영화를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영화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툴(tool)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과 관련한 서비스로 발전할 수 있겠죠.”
-국회의원이 좋은 자리거든요. 보좌관 비서관이 여럿이고 기사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의원 사무실이 나오고 여러 특권이 따릅니다. 이공계 출신이 국회에 진출하면 과학발전을 위해서도 예산 또는 정책적 측면에서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쉽지 않은 기회를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의 여러 구성원이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사회가 건강합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사회에 가장 기여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정치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과학의 정치학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정치는 국운을 가르고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줍니다. 남녀의 사랑에도 정치가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과학도 정치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중국의 경우 이공계 출신들이 나라의 지도부를 구성해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에서는 과학자들도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해요. 정치는 매우 중요하고 잘해야 되지요. 과학자와 이공계 출신도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하는 것보다 만드는 게 더 좋아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편인가요.
“게임 하는 것보다 만드는 걸 더 좋아해요. 스토리 쓰고 캐릭터 만들고, 이러는 거 좋아해요.”
-대학 강단으로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기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 앞에 서서 가르치는 일은 뭔가 많이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학도는 사람들이 행복감을 갖고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와 기술을 개발하는 데서 무엇보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것을 제일 잘할 수 있는 곳이 기업입니다.”
-매킨지 서울사무소에선 주로 어떤 일을 했습니까.
“하이테크나 미디어 회사들의 전략과 M&A를 담당했습니다.”
-SK텔레콤으로 옮긴 이유는요.
“발전된 기술을 활용할 기반이 갖춰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재력이 있는 회사입니다.”
-최태원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에 관여했다고 하더군요.
“궁극적으론 회사의 요구와 나의 관심이 맞았기 때문에 옮기게 됐죠.”
-한국의 대기업에서 상무가 돼 이 정도 방을 차지하려면 최소한 내 정도 나이는 돼야지요. 상투적 질문 같지만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 거느리기가 어떻습니까.
“CI 팀원이 26명입니다. 그 안에서 누가 나이 많고 적은지 몰라요. 업무를 처리할 때는 전혀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대하거든요. 일 자체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거든요. SK텔레콤의 분위기가 그래요. 여성사원도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남녀 가리지 않고 아웃풋(산출)으로 평가합니다.”
윤송이 박사는 자신을 천재라고 인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아니요.”
-아직도 열려 있어요?
“네.”
-결혼할 생각이죠?
“꼭 해야겠다는 것도 아니고 꼭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어요.”
-여자의 일생에서 결혼은 참 중요한 선택이고 분수령입니다. 전업주부의 경우와 달리 윤 박사는 커리어우먼이니까 결혼에 의해 달라지는 부분이 보통 여성보다는 적겠지만. 어떤 직종에 있는 어떤 타입의 남자와 결혼하고 싶나요.
“직종이 중요한 거 같지는 않고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거든요. 우선 소신과 철학이 뚜렷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 존경하는 사이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연계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학생들이 대부분 의대로 진학합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학교를 다닌 과학고 학생들도 의대를 지원하는 실정입니다. 그런가하면 서울대 공대생들이 대거 고시공부를 하는 판이라 고시망국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을 탓할 게 아니라 사회시스템을 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개인의 입장에서 커리어 선택은 인생을 건 투자지요. 투자엔 두 가지 옵션이 있어요. 채권형과 주식형이 있습니다. 국공채는 절대로 망하지 않거든요. 주식형은 크게 망할 수도 있지만 크게 잘될 수도 있지요. 잘 선택해 열심히 하면 채권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국가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면 두 옵션의 기대치는 비슷해요. 기대치가 비슷하기 때문에 채권에 투자하는 사람도 있고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도 있죠. 주식의 기대치가 채권보다 항상 높으면 모두 주식으로 몰리겠지요. 반대로 주식에 투자하면 거의 다 망하고 채권이 훨씬 낫다고 하면 다 채권으로 몰리겠지요. 지금이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이공계에 다양한 커리어 패스가 존재하지만 주식과 비슷한 성질을 가졌죠. 빌 게이츠처럼 크게 성공할 수도 있고 평균보다 잘못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고시는 일단 패스하면 생활이 안정되지요. 국가시스템이 받쳐주기 때문에. 사회시스템이 주식형 커리어가 다양하게 자기 가치를 발휘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밀어주지 못해 고시망국론이 생기는 겁니다. 학생들한테 장학금을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요. 그러나 커리어와 전공 선택은 단지 대학 4년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생을 보고 선택하는 겁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이공계를 나온 사람들이 창출한 가치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사회적 존경을 포함하는 것이죠. 이런 기대치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뤄야 소질에 맞게 이공계를 가는 사람도 있고 고시를 보는 사람도 생겨나게 되겠죠.”
술은 얼마나 할까.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종을 가리지 않고 한잔 받아놓고 제사를 지낸다.
-폭탄주를 마셔봤어요?
“2년 전 매킨지에 있을 때 일곱 잔까지 마셔본 적 있어요. 그런데 평소엔 잘 안 마셔요.”
-맛집 순례를 좋아하고 대식가라고 하던데 지금 보니까 아주 말랐군요.
“잘 모르겠는데요. 몸무게는 계속 그대로예요. 되게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어요.”
나이 어린 사람한테 사생활에 가까운 사항에 관해 미주알고주알 질문하자니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윤 박사도 가끔 “그런 것도 인터뷰 기사에 들어가나요”라고 물었다.
윤 박사를 인터뷰하면서 천재는 어떻게 길러지고 어떻게 공부했는가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독자들은 천재의 일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을 것이다. 윤 박사는 시종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취미는 요리와 바이올린 연주
-요리할 줄 압니까.
“요리하는 거 되게 좋아해요.”
윤 박사는 ‘되게’라는 부사를 빈번히 쓴다. ‘매우’ ‘몹시’ 정도의 뜻이다. 언어습관일 것이다.
“그림 그리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림에는 정형이 없지요. 백지가 앞에 딱 놓이잖아요. 어떤 재료와 색깔로 디자인할 건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림이 좋아요.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해요. 건반악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만 바이올린은 0.1mm만 달라도 소리가 다르게 나거든요. 10번 연주를 하면 10번 다 달라요. 비브라토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런 느낌이 너무 좋아요. 요리도 마찬가지예요. 아무것도 없는 빈 냄비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요리할 때마다 달라요. 소금을 한 스푼 더 넣느냐 덜 넣느냐, 참기름을 많이 넣느냐 조금 넣느냐에 따라 요리가 달라집니다.”
-지금 삶이 만족스럽다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아마 모든 게 완벽하고 만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는 거죠. 만약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슨 일을 할래, 내일 모레가 마지막이라면 어떤 일을 할래라고 잘 묻잖아요.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이랑 똑같을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일을 계속 열심히 해야지요. 갑자기 안 하던 일을 할 수는 없잖아요.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혹시 울어본 적 있습니까.
“많죠. 영화 보면서 슬픈 장면에서 잘 울어요. 3년 전에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울었어요. 가까운 사람을 잃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어릴 때 무덤을 보거나 죽은 사람 얘기를 들으면 산 사람은 산 사람이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이 되는 트랜지션(transition)을 체험한 것이죠. 이런 게 죽음이구나. 그때 많이 울었어요.”
-살다보면 좋아하는 인간형도 있고 싫어하는 인간형도 있을 수 있잖아요. 지금까지는 좋아하는 인간형에 대해서 말했는데 싫어하는 인간형도 말해보세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제일 싫어요. 사람은 모두가 다릅니다. 생각과 관심사가 다르지요. 다르다는 걸 떳떳하게 인정하면 됩니다.”
“한국을 인재들의 ‘집’으로 만들 것”
말이 빠른 편이다. 질문을 70개 가량 준비했고 즉석 보충질문을 많이 했는데도 질문 재고가 거의 바닥났다.
11층 윤 박사 사무실에서 청계천 복원공사 하는 모습이 내다보였다. 썩은 하수구가 흐르던 청계천이 되살아나면 멋진 천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을 것 같다. 윤 박사는 “사무실을 옮기고 나서 아직 창문 내다볼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용돈은 주로 어디에 써요?
“친구들 만나 술 사고 밥 사고.”
-옷 치장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들잖아요.
“옷 쇼핑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옷가게 가서 입어보고 벗어보고,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관심의 차이죠.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이 바지는 정말 오래된 거 같다.”
휴일이라 윤 박사는 수수한 캐주얼 차림이다. 바지는 카이스트 2학년 때부터 입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10년 된 바지다. 검정 티셔츠는 카이스트 3학년 때 엄마가 사준 것이다.
그녀는 “이 바지가 오래 된 것처럼 보이나요”라고 필자에게 물었다. 윤 박사가 입고 있으면 “10년짜리 낡은 옷도 방금 디자이너가 만든 옷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조금 아첨을 섞었다.
-미국을 마다하고 한국에 들어온 이유가 뭡니까.
“저는 편하게 살기보다는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나는 한국사람입니다. 한국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주인답게 일을 해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그래서 별로 고민하지 않고 한국에 와서 일하기로 결심했어요.”
KBS 김동건의 ‘리얼토크’에 출연해서는 “왜 한국으로 돌아왔느냐”는 질문에 윤 박사는 ‘목수론’을 편 적이 있다.
“미국엔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남으라는 권유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한국을 일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재들이 오고 싶어하는 집을 만들겠다는 거지요. 친구들과 의논해 이것을 ‘목수론’이라고 네이밍했어요.”
윤 박사 같은 2%의 천재가 세상의 흐름을 바꿔놓는다는 말이 있다. 윤 박사는 2%가 아니라 0.2%에 속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3시간 가깝게 ‘늙다리 선생’ 인터뷰어가 쉴 새 없이 던지는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주었다. 엘리베이터까지 마중나올 때 보니 굽 높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중키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 속기사 장혜경씨가 “젊은 처녀가 말을 아주 논리적으로 잘 한다”고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