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기 2개월 앞두고 물러난 것은 신임 청장 인사권 존중했기 때문
- 교육 제대로 안 받고 경력관리 안 하면 청탁해도 소용없어
- 정치권 청탁, “챙겨보겠다” 해놓고 실제론 관여하지 않아
- 역대 청장 임기 짧은 것은 틈만 나면 흔들어대는 내부 분위기 탓도
- 경찰 내부 끄나풀 동원해 경찰 수뇌부 감시
이런 소문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최근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을 비롯한 경찰 고위간부들이 인사비리로 검찰에 구속돼 경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최 전 차장은 법조 브로커 윤상림씨와 부하 경찰관으로부터 45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전남경찰청 소속 총경급 간부 3∼4명은 인사청탁 혐의로 불구속 기소 또는 약식기소됐다.
4월7일엔 경위 근속승진의 길을 튼 개정 경찰공무원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경사 1700여 명(근속승진 대상자의 40%)이 항의성 집회를 열려다 무산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근속승진에서 탈락한 이들은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한 경찰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무궁화를 몇 개 더 달기 위해선 집까지 팔아야 한다”며 승진을 둘러싼 경찰 안팎의 오랜 소문을 기정사실화했다.
내부적으로 뇌물수수 등의 인사 청탁이 있었다면 외부적으로는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다. 정권 실력자들이 경찰 고위직 인사를 주물러왔다는 것은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얘기다.
최기문(崔圻文·54) 전 경찰청장. 노무현 정부의 첫 경찰청장이자 청문회를 거친 임기제 경찰청장 1호인 그는 재임 중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비교적 공정한 인사원칙을 지켰다는 평을 들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1981년 경찰에 입문한 그는 43세 때인 1995년 최연소 경무관으로 진급한 뒤 1999년 치안감 인사에서도 최연소로 승진해 치안총수에까지 올랐다. 그는 청장 재임시 경찰 업무 개혁에 주력해 ‘직급조정’ ‘소송전담부서 신설’ ‘수사경과제’ 등을 도입했다.
인사와 관련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던 그는 임기 만료를 2개월여 앞둔 2005년 1월 중순 갑자기 사직했다. 이를 두고 경찰 안팎에서는 그가 여권 핵심부와 인사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경북 영천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양말이 해어지도록 걸어요”
그는 사퇴한 지 1년 만에 경찰청장 재직 22개월의 기록을 모아 ‘험블레스 오블리주, 경찰의 길을 묻다’라는 회고록을 냈다. ‘험블레스’는 미천하다는 뜻의 humble에서 따온 말로 ‘노블레스’가 귀족 사회의 책무라면 ‘험블레스’는 세상의 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경찰의 책무를 빗댄 표현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험한 책무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한국 경찰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기자는 ‘험블레스 오블리주’를 읽고 나서 그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보다 경찰 인사에 관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때가 때이니만큼.
그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제 치안총수가 아니라 평범한 대학교수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지방대학에서 경찰학부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5월8일 대구 계명대 성서캠퍼스를 찾았다. 그는 초빙교수 신분이다. 하지만 학교측에서 3년 후 정교수 임용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는 “되도록 정치는 하지 않으려 한다”며 대학교수직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을 드러냈다.
“(대학교수 직업이) 우선 자유로워서 좋아요. 생각도 많이 할 수 있고요. (학생들이) 주로 실무 이야기를 듣길 원하더라고요. 요즘 순경시험도 경쟁률이 100대 1이라 붙기 힘들잖아요. 대부분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데 경찰 고위직 출신 교수가 있으니 좋아하죠. 전 꼭 학생들하고 점심을 먹어요. 학생들과 시간 보내는 게 참 행복해요.”
대학의 한 관계자는 “치안총수까지 지낸 양반이라 대접받기를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면서 그의 일상생활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때 치안총수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KTX 특실만 탈 줄 알았는데 일반실을 타고 내려와 대구 시내에서 지하철 타고 출근해 걸어다녀요. 늘 학생들과 함께 분식점이나 인근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요.”
많이 걷는 편인 그는 구두 대신 캐주얼화를 애용한다.
“남이 욕해요. 서울-대구를 통근하면서 특실 탈 이유가 없잖아요. 대구에서도 지하철을 타요. 덕분에 서울에선 3000보 걷기가 힘든데 학교에 오는 날이면 1만보 걷게 돼요. 근데 지하철 타면 안 좋은 게 딱 한 가지 있더라고요. 양말이 잘 해어져요. 걸을 때 힘을 줘서 그런가 봐요. 자, 보세요. ‘랜드로바’ 신었잖아요.”
그는 신발을 벗어 보였다. 정말 편해 보이는 캐주얼화였다. 공무원을 연상케 하는 단정한 양복차림인데, 말투나 행동은 젊고 쾌활했다.
-첫 임기제 청장이셨는데, 임기를 2개월 앞두고 사퇴해 아쉬움이 컸을 듯합니다.
“시골 촌놈이 총수까지 지냈으니 감사할 일이지요. 아쉬운 건 일선 근무여건을 좀더 획기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나온 거예요. 경찰은 24시간 근무체제인데 경찰관 수가 크게 부족해요. 3교대로 근무해야 하는데 형사 파트와 지구대는 힘들어요. 강력사건이 있으면 집에 못 가죠. 일본만 하더라도 4교대로 운영됩니다.”
돈보다 진급
-3교대가 정확히 지켜지려면 형사 수를 더 늘려야겠지요.
“그럼요. 지구대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3만명, 형사 파트는 2만명이 더 필요해요. 그런데 정부 재정 탓에 힘들죠. 우리 사회에서 험한 일을 도맡는데 최소한 근무체제라도 인간다워야 할 것 아니에요.”
그간 경찰은 유고(有故)시에도 국가배상법상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했다. 베트남전 때 워낙 많은 군인이 배상청구권자가 되는 바람에 국가에서 감당하지 못하자 아예 헌법과 법률로 군인과 경찰을 청구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23일 국회를 통과한 국가배상법 개정안으로 경찰관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도둑을 잡아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둘 다 죽으면 도둑은 국가를 상대로 2억∼3억원을 받아낼 수 있지만 경찰은 규정상 받을 수 없었어요. 저는 또 청장 재임시 정부에 경찰의 근무특성을 감안해 상해보험을 들어달라고 줄곧 요청했어요. 그 결과 지난해 관용차 특별약관이 개정돼 순찰차로 순찰을 돌다 사고가 날 경우 사람과 차량에 대해 보험 보장을 받게 됐습니다. 또 군인의 경우 순직하면 당사자의 본봉과 상관없이 ‘소령 10호봉의 72배’를 받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경우 순직 당사자 보수월액의 36배를 보상금으로 받습니다. 36배라고 하면 꽤 많을 것 같지만 겨우 3년치입니다. 정부에 경찰 유족 보상금을 상향 조정해줄 것을 요청했지요. 지난해 법 개정이 이뤄져 보수월액의 60배를 순직유족보상금으로 받게 됐습니다. 경찰은 제복을 입은 죄로 외롭고 험한 공직생활을 하고 있어요. 100배 좋아진 근무 여건은 1000배의 치안서비스로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최근 경위 근속승진에서 대상자의 40%를 탈락시킨 것도 정부 재정 형편 때문 아니겠습니까.
“몇 년 이상 근무했다고 무조건 승진시키는 건 문제지요. 근무평정을 통해 사법경찰관의 책무를 맡을 자격이 있는 사람만 승진시켜야 해요.”
사법경찰관은 경위 이상 간부급 경찰관에 해당한다. 반면 경사, 경장, 순경은 ‘사법경찰리’로서 사법경찰관과 달리 수사 절차를 독자적으로 처리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승진 적체를 해소하고 사기를 올려주자는 개혁인데 잡음이 심하네요.
“(개혁은) 매끄럽게 해야 해요. 대상자들한테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소리가 나면 안 돼요. 제도를 바꿀 때는 이론으로 무장한 경찰과 해당부처가 중심이 돼야지 정치 쪽에서 나서면 안 됩니다. 이번 자동 근속승진 문제도 정치권에서 발의했기 때문에 소리가 났던 거죠. 내부적으로 의견을 충분히 듣고 신중히 시행했어야 했는데…. 외근자이면서 나이가 많고 양보심 많은 경찰이 많이 탈락한 게 문제가 됐잖아요.”
그는 “거룩한 말씀보다 밥 한 술, 물 한 모금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다”며 승진이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경찰은 돈보다 진급을 더 중요하게 여겨요. 승진 경쟁은 곧 생존의 싸움이거든요.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거죠.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분위기마저 느껴집니다. 일반 공무원이 9급에서 6급으로 올라가기까지 평균 17년이 걸리는 데 비해 순경이 경감이 되기까지 평균 24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3년 전만 해도 순경·경장·경사가 전체 경찰관의 86%를 차지했어요. 말단으로 들어와 말단으로 퇴직하는 거죠. 고참 경사에게는 승진이 소원이자 한(恨)이더라고요.”
-그래서 직급조정을 하셨군요.
“그렇죠. 일반 공무원은 ‘복수직급제’라고 해서 한 직위에 계급이 서로 다른 사람을 배치해 일정 기간 근무하면 연금 혜택을 주는데 경찰은 그런 게 없잖아요. 일선 경찰관은 인간방패 노릇을 하면서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어요. 행정자치부와 예산부처를 설득해 정년이 3∼5년밖에 남지 않은 경찰관이 경위로 승진되도록 조치했어요. 고참 경사의 35%가 해당됐지요.”
인사는 권한 아닌 책임
-승진을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인사철만 되면 각종 비리의혹이 제기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사에) 구조적인 모순이 있어요. 지휘관의 주관적 요소가 많이 작용한다는 거죠. 객관적인 룰이 없어서 문제가 생겨요. 근무평정제도와 다면평가가 있지만 추상적이죠. 여러 항목 중 그나마 평가가 가능한 게 교육 점수인데 경찰 기본교육은 수료만 하면 돼요. 세상에 이런 교육기관이 어디에 있어요? 결국 지휘관이 매기는 주관적 점수가 서열을 정하는 겁니다. 이를테면 ‘총경 몇 년차부터 경무관이 될 수 있는데 총경 기본교육 점수가 몇 % 이내여야 한다’는 식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교육을) 수료하면 다 만점을 받으니 지휘관의 평점이 승진을 좌우하는 겁니다. 지휘관과 같이 근무했다던지 친분이 있다던지….”
-교육점수가 객관적인 자료가 돼야 한단 말인가요.
“그렇죠. 그래야 누구나 수긍하죠. 대규모 조직을 관리하는데 점수가 없다면 무엇으로 측정하겠어요? 또 사회 흐름에 대해 다른 공무원들보다 더 빨리 알아야 합니다. 옛날 형사 머리 가지고는 (범인을) 못 잡아요. 형사가 하는 일은 거칠다고 될 게 아닙니다.”
그는 교육에 관한 한 강력한 개혁론자였다. 경찰대학장 때 4개 전공학제와 교수평가제를 도입했고, 경찰대 사상 처음으로 성적불량 학생을 과감하게 퇴학 조치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강력한 개혁성향이 노무현 정부의 코드와 맞아 야당지역 출신임에도 치안총수에 올랐다는 얘기가 있다.
-승진인사 때 경찰총수의 주관적 판단이 결정적 요소가 되지 않나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내가 해보니 재량권이 거의 없더라고요. 치안총수는 승진 정원을 정해주는 노릇만 해야 합니다. 중앙승진심사위원회에 일임해야 해요.”
과연 그랬을까. 그가 경찰청장을 지낼 때 인사과장이던 손진우 안성경찰서장은 최 전 청장의 인사철학을 이렇게 전했다.
“정치권에서 누구누구를 총경으로 승진시켜달라는 청탁이 들어오면 최 전 청장은 심사위원회에 귀띔을 하지 않아요. 또 청와대 ‘빽’으로 청탁이 들어와도 (심사위원회에) 미리 말하지 않고 결과를 보고 난 후 탈락된 이유를 알아가요. 대개 총경이 되려면 경정 4년차 이상이면서 주요 부서의 요직을 거쳐야 하고 5배수 후보군(群)에 들어야 하는데,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경정이 여권 핵심부 ‘빽’으로 밀고 들어오곤 했죠. 최 전 청장은 ‘인사란 모래와 같아서 한번 구멍이 뚫리면 연쇄적으로 압력이 들어온다’면서 인사 룰을 엄격하게 지켰죠.”
최 전 청장은 “인사는 권한이 아니라 책임”이라면서 “인사권자는 인사권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사라는 업무를 올바르게 수행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인사의 속성이 참 묘해요. 100명 중에 한 명이라도 잘못되면 전체가 매도당하거든요. 안 될 사람이 되면 온갖 추문이 돌아요. 저는 외부에서 청탁이 들어오면 ‘챙겨보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가 안 되면 그 이유를 꼭 설명해줬어요. ‘승진연도’ ‘2배수’ 등 시스템을 존중했거든요.”
-인사권자는 어떤 계급에 해당하나요.
“총경급 이상 지휘관이 인사권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위 경찰관은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흠이 없어야겠군요.
“그렇죠. 우선 업무에 정통해야 해요.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건 기본이고요. 또 자기 절제력이 있어야 해요. (절제력이 없으면) 권한을 남용할 소지가 있거든요. 경찰 생리상 지휘관에게 맹종하잖아요. 전 젊은 간부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최소한의 존경을 받아라.’ 조직에서 성장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절대 성장하지 못해요.”
자기 인사는 자기가 해야
-실제로 인사권자가 돼보니 어떻던가요.
“(인사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맑은 정신으로 원칙을 세워놓으면 (답이) 다 보여요. 누구나 조직에 들어와 10년 이상 일하면 평가가 따르게 마련이에요. 인사권자가 돼보니 인사는 자기가 하는 겁디다. 자기가 열심히 한 만큼 평가받게 돼 있어요. 지휘관이 바뀌었다고 해서 제로섬 게임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참여정부 출범 후 다면평가제도가 생겼어요. 같은 계급끼리 평가하고 위, 아래 계급이 평가하는 거죠. 의도적으로 자기를 포장하는 간부가 있는데, 다 드러나게 돼 있어요. 시스템을 놓고 따져서 ‘아니다’ 싶으면 아닌 거죠. 인사가 만사(萬事) 아닙니까. 잘못하면 ‘망사(亡事)’입니다. 인사를 할 때는 공인의식이 있어야 해요.”
-인사가 있을 때마다 억울하다는 직원이 많던데요.
“(승진에 탈락하면) ‘빽’이 없어서 떨어졌다고들 하는데 인사 시스템을 잘 몰라서 그래요. 최소한 5배수 안에 들어야 하는데, 5배수 안에 들려면 계급별 기본교육을 받아야 해요. 교육도 안 받고 3년간 경력관리도 안 했으면 청탁해봐야 안 돼요. 인사권자가 근무평정점수를 안 믿고 뭘 믿겠어요. 안타까운 것은 외근 형사들이 인사 시스템을 잘 몰라서 성적관리에 약하다는 거죠. 승진 때만 승진에 신경 쓰면 안 됩니다. 평소 공덕을 쌓아야죠.”
-항간에 ‘무궁화 한 개에 5000만원’이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경찰에는 뜬소문이 참 많아요. 정말 그랬다면 금방 들통이 나요. 될 사람이 안 되면 가만있겠습니까. 평생 한이 되는데 떠들지 안 떠들겠습니까. 돈이 개입됐다면 외부와 결탁된 거지 내부는 아닙니다. 승진을 앞두고 뭐든지 잡고 싶겠지요. (경찰관은)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해요. 남녀관계도 쉽게 진행되면 꼭 문제가 되듯이 쉽게 이뤄지는 것에는 마가 끼게 마련입니다. 저도 쉽지 않았어요. 경정 3∼4년 만에 총경이 되던 1980년대에 7년 만에 (총경을) 달았고, 경무관은 7년 만에 달았어요.”
-‘경찰의 꽃’이라 하는 총경들 사이에 경찰서장 보직을 둘러싸고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어요. 서울시내에는 서초·방배·강남 및 종로경찰서가 핵심 요직으로 꼽힌다죠. 이처럼 이른바 진급이 잘 되는 특별군 경찰서장이 되려고 인사청탁을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돕니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승진연도에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보직에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아예 보직공모를 했어요. 매년 서장이 비는 서(暑), 서장이 바뀌는 서를 공개해 총경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끔 했죠. 그래서 자기 인사는 자기가 한다는 겁니다. 자기를 제대로 파악해서 보직설계를 잘해야 합니다.”
-보직공모제도가 실제로 공정한 인사 시스템 확립에 도움이 됐나요.
“언론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어요. 경찰 내부의 고직절인 인사청탁 문화를 없애기 위해 시행한 것인데, 성공했어요. 보직에 대한 자격요건을 공모하고 지원자를 찾는 식이었어요. 인사위원회가 지원자들 중에서 적임자를 선발했는데, 면접이 엄격했어요. 외부 교수까지 불렀어요. 업무에 대한 비전 등과 관련해서는 구술시험보듯이 설명하도록 했습니다. (보직공모제를 해보니까) 인사정보가 공개돼 한결 투명해졌어요.”
‘참여정부’ 이후 경찰인사가 한층 투명해졌다는 여론의 배경에는 직위공모제가 한몫했다. 경찰청과 경찰서의 총경급 인사 과정에서 직위공모제가 도입돼 정정당당한 경쟁이 이뤄진 것이다. 경찰청이나 서울경찰청의 감사·인사·공보과장의 경우 경쟁률이 4대 1에 달했다. 반면 당시 총경들 사이에선 “최기문 경찰청장이 부임한 이후 인사원칙이 공정해졌지만 권력층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해야
대구 계명대에서 경찰학을 가르치고 있는 최기문 전 경찰청장.
“저는 정치권에서 청탁이 들어오면 ‘챙겨보겠습니다’ 하고 적어놓긴 해요. 나중에 그 사람이 왜 안 됐는지 알아봐 (청탁한 사람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줬어요. 아무리 부탁하더라도 2배수 이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경력관리가 제대로 안 돼 있으면 ‘안 된다’고 못박았죠. 문제가 터지면 경찰이 책임져야 하잖아요. 이처럼 승진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인사를 한 덕분에 청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어요.”
-청와대에서 경무관 이상 고위직 인사에 깊숙이 개입하는 편이었지요.
“저 있을 땐 그런 일이 거의 없었어요. 정부 출범 초기라 일정한 룰도 없었지만, 경찰 인사에 별 관심도 없더라고요. 노 대통령이 제게 ‘경찰간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통상적으로 경무관 이상의 승진과 전보는 행자부 장관에게 제청권이 있고 대통령 결재를 받아야 해요. 그 일정을 장관이 잡아요. (경찰 인사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청와대 관계 수석이나 장관과 함께 들어갔어요.”
실제로 경찰 인사에 정통한 청와대 관계자 A씨는 “최 청장 시절엔 청와대측의 경찰 인사청탁이 한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과거엔 총경 이상 고위직 인사의 경우 청와대가 대상자를 정해 경찰청장에게 내려 보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경찰 인사에 대한 권력의 입김이 셌다. 하지만 최 청장 재임시엔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그가 근무실적과 승진년도 등을 꼼꼼히 따져 인사안(案)을 올렸고 그것이 거의 그대로 반영됐다는 것이다.
-2003년에 유인태 정무수석과 김두관 행자부 장관이 경찰인사를 놓고 힘겨루기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2003년 4월26일 최 청장께서 김 장관과 함께 청와대로 가 노 대통령에게 치안감, 경무관 인사안을 재가받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대통령에게) 경찰 인사안을 보고할 때에는 정무수석이 배석하는 게 관례인데, 당시 김 장관이 (유 수석에게) 방문 사실조차 알리지 않아 유 수석이 강하게 반발했고, 그날 단행된 인사가 며칠 뒤에 번복됐다고 들었는데요.
“사실과 다릅니다. 당시 김준겸 치안감의 경우 기획능력이 있어서 ‘혁신기획단장(태스크포스)’으로, 최광식 경무관은 수사를 많이 한 사람이라 ‘수사국장 직무대리’로 안을 올렸어요. 그때 유 수석이 경찰 인사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면 저한테 연락했을 텐데 전화 한 통 없었어요. 며칠 뒤 혁신기획단장과 수사국장 인사가 바뀐 것은,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치안감 숫자가 충분한데 경무관을 치안감 자리에 올렸다고 TO대로 운영하라’고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에요. 당시 최광식 경무관이 고참이라 수사국장 직무대리로 올렸는데도 시끄러웠어요. 그래서 재조정된 겁니다.”
출마설, 경찰 내부에서 흘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의를 표명한 이유가 청와대와의 인사 갈등이 아니었던가요.
“(청와대와) 불편할 이유가 있을 턱이 없잖아요. 임기 내내 얼굴 붉힐 일도 언성 높일 일도 없었어요. 제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어요. 경찰 인사엔 주기가 있어요. 3월 이전에 모든 것이 마무리돼야 하거든요. 지방에 내려간 간부들도 올라와야 하고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기동대도 정비해야 합니다. 제가 임기를 고수하려면 3월까지 있어야 하는데 곧 나갈 사람이 인사를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부담스러웠어요. 새 청장이 총경급 이하까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경찰 지휘부를 비롯한 간부 인사도 신임 청장이 주도하는 게 맞지요. 그래서 아쉬움은 있지만 이쯤에서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거죠. 퇴임사 시작이 ‘꽃이 아름다운 것은 져야 할 때 그저 다른 이들이 즈려밟고 가도록 흩날릴 꽃잎이 있기 때문입니다’였어요. 아쉬움이 남았지만 인사 메커니즘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어요.”
-어차피 시스템 인사를 했으니 경찰 수뇌부를 짜놓고 퇴임했어도….
“임기제가 정착된 조직이라면 인사를 해놓고 나갈 수 있습니다. 군이나 검찰처럼. 경찰은 임기제가 처음이라 룰이 없었어요.”
-첫 임기제 청장이자 임기제를 위반한 첫 청장이 된 셈이네요.
“…”
-허준영 전 청장도 못 지켰잖습니까.
“앞으로는 지켜져야 합니다. 경찰청장 임기제는 국회에서 두 명의 의원을 빼고는 다 찬성했잖습니까. 그렇게 했으면 지켜야죠. 경찰 내부에서도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청장이) 그만둔다고 해도 팔 다리 붙잡고 이건 지켜야 한다고 했어야 해요. 그래야 경찰이 발전합니다. 제가 직급, 인사, 예산 문제를 개혁하는 데도 임기제로 시간을 보장받은 게 큰 힘이 됐어요.”
-조직 내부에서 임기제 청장의 팔 다리를 붙잡지 않았다는 얘기인가요.
“부끄러운 얘기입니다만, 경찰은 조직문화가 건전하지 못해요. 틈만 나면 내부에서 흔들어요. 역대 청장이 1년을 못 넘겼잖아요. 청장에 취임하고 수뇌부 인사가 마무리되면 그때부터 청장을 흔들기 시작해요. 모두 승진인사 때문이에요. A라는 청장이 계속 있으면 차기 인사에서 불리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더구나 제가 야당지역 출신이니까…. 출마설도 다 내부에서 나온 겁니다. 선거요? 준비도 하지 않았어요.”
잠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최 청장의 임기가 8개월이나 남았는데 뜬금없이 교체설이 돌았다. 경찰 내부에서 권력 암투가 전개되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물론 확인된 바는 없었다. 경찰 수뇌부가 술렁거린 이유 중에는 경찰청장이 전례 없이 2년 동안 재직하면 계급 및 연령정년 때문에 심각한 인사적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 조직의 특성상 치안총수를 밀어내면 대규모 인사요인이 발생하므로 그만큼 인사에 숨통이 트인다는 논리였다.
관운 비결은 정치적 중립
-총수까지 올라간 비결이라면.
“촌놈이 아는 사람 하나 없이 경찰에 들어왔으니 최선을 다해 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운도 좋았고, 주위에 많은 분이 도와주셨고요.”
-그래도 관운(官運)이 따르긴 쉽지 않죠.
“우선 큰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해요. 두 번째는 정치 중립이죠. 정도(正道)의 처신을 해야 해요. 국민의 정부 초기에 야당지역 출신인 저에게 정보심의관을 시키더라고요. 경찰청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였어요. 제가 평소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정보계통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치권 인사들과 친해지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YS, DJ를 거치면서 (그분들) 전화 한 통 받아본 적이 없어요. DJ 정부 때 야당에서 경찰의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의원회관에 처음 가봤을 정도였어요. (제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면 김대중 정부 시절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치안총수에 오르기까지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확실한 ‘빽’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내가 힘이 없고 주위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른바 헝그리 정신이 있었어요. 헝그리 정신은 배고픔이 아니라 부족함을 알고 더욱 노력해 목표를 달성하는 거죠. 엘리트 코스를 밟는 요즘 젊은 간부들은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편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요.
“직속상관이에요. 직속상관을 업무적으로 편안하게 해줘야 해요. 그리고 조직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해요. 한번 흐름에서 떨어지면 영원히 흘러가버려요. 또 잊히지 않아야 하고요. (그러려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해요. 청와대 근무할 때 대통령 말씀 자료를 준비한 적이 있어요. 꿈에 그 업무가 나타나기에 새벽에 일어나 막 메모를 했어요.”
-‘영원히 흘러가버리지 않은’ 비결이 있습니까.
“인연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만나느냐’이거든요. 도움이 되는 사람과의 인연을 어떻게 죽 끌고 가느냐는 거죠. 그 점에서 전 행운아였어요. 제가 모신 분들이 모두 치안총수가 되셨거든요. 서울 동부서에서 방범과장을 지낼 때 20개월을 근무했는데도 보직이동이 없어 의기소침해 있었어요. 그때 본청 소속 모 경무관이 우리 서장과 학사동기였어요. 한번은 그가 동기인 서장을 격려한다고 방문했는데, 우연히 (제가) 그 자리에 끼게 됐어요. (경무관이) 제게 특별한 관심을 표시하면서 ‘어려움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고는 우연히 소줏집에서 만난 것이 인연이 돼 경찰청 정보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 경무관은 뒷날 경찰청장이 됐어요.”
‘살기 위해’ 등산 시작
-다들 꿈을 가졌던 분들이라 배울 점이 많았겠군요.
“그렇죠. 장차 크게 될 사람은 바르게 생활하거든요. 사생활을 포기하고 사무실에서 주무시더라고요. 사람이 성장하려면 좋은 조직에 있어야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멘티(Mentee·구성원)는 멘토(Mentor·인생을 이끄는 지도자)를 따라야 해요. 멘토야말로 인생의 내비게이션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의 항로가 되는 거죠. (그분들한테) 열성과 열정을 배웠어요. 생각해보세요.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사람 밑에서 일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는 승진에 대해 “다 조상이 보살펴준다”는 다소 낙관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기도하면 이뤄져요. 경정 때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총경 최기문, 총경 최기문’이라고 중얼거리곤 했어요. 총경 때에는 ‘경무관 최기문’ 했고요. 경찰대학장으로 있을 때는 ‘경찰청장 최기문’이라고 말했어요. 의식하고 생활하는 사람하고 그냥 사는 사람하고는 달라요.”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내무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내면서 건강이 나빠졌어요. 경무관 때였어요. 그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운동을 전혀 안 한 탓이었죠. 갑자기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안면마비가 오더라고요. 감기증세가 낫지 않기에 종합검사를 해봤더니 전반적으로 다 좋지 않더라고요. 당시 경무관 승진이 안 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거든요. 소변 색깔이 기분 나쁜 빨간색이기에 검사를 받았어요. 허리가 32인치에서 29인치까지 줄고 몸무게가 2주 만에 8kg이나 빠져버렸어요. 뒷날 김대중 대통령 주치의가 된 연세대 허갑범 박사한테 갔더니 ‘모든 장기의 기능이 나쁘니 어느 한 기능을 좋게 한다고 약을 쓰면 더 망가진다. 대신 매일 등에 땀이 나도록 운동을 하라’고 권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살기 위해 등산을 시작했어요.”
-고위 공직자들은 스트레스가 심하죠?
“고위직이 아니라 경찰관이라면 다 그렇습니다. 술 많이 마시고 운동 안 하잖아요.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되고 행동도 그렇죠. (건강검진을 받고 난 뒤) 점심시간이 되면 인왕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김밥 먹고 내려왔어요. 1년6개월 만에 회복되더군요.”
-요즘은 어떤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나요.
“시간 나면 등산 가요. 또 매일 아침,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30회가량 합니다.”
-공직생활 중 언제 가장 큰 위기를 느꼈습니까.
“1993년 종로서장을 지낼 때 조계사 폭력사태가 일어났잖아요. 여기서 내 공직이 끝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공무원 할 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며 보호해줬어요.”
올라갈수록 정권 감시 심해져
그는 경찰청장에 오른 과정에 대해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조직의 총수가 되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았을 터. 그는 첫 임기제 청장이 되기 위해 전국에 TV로 중계되는 청문회장에 서야 했다.
-청문회를 겪어보니 어떻던가요.
“청문회요? 지옥입디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까지 파헤쳐요. 시골 동장한테까지 가서 확인합디다. 각종 세금납부 현황, 재산신고 명세부터 병역사항까지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안 돼요. 초중고 시절 생활기록부까지 170여 항목에 대한 자료를 제출해야 해요. 배우자도 다 공개돼요. 주민등록 이전이나 재산형성에 흠이 있으면 안 돼요. 교통 스티커 발급 등 준법의식도 확인해요. 어쨌든 공직사회가 올바르고 건전해지는 데 청문회가 크게 이바지하는 것 같아요.”
-사생활을 거의 포기하셨겠어요.
“그렇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감시를 많이 받아요. 김대중 정부 시절 야당지역 출신 경찰 수뇌부라고 감시를 받았어요(그는 김대중 정부 때 경찰청 차장과 경찰대학장을 지냈다).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모임에 다니는지… 수뇌부가 되면 다 노출돼 사는 거죠. 역대 어떤 정권보다 DJ 정부 때가 심했어요. 경찰의 감찰조직을 활용해 수뇌부를 감시했죠. 정권의 끄나풀 노릇을 하는 경찰관들이 잠복도 하고 미행도 하면서 수뇌부의 동향을 매일같이 권력 핵심부에 보고했습니다. 집 주변에도 얼씬거리고 가족 외출에 따라붙기도 했어요. 또 얼토당토 않은 정보로 음해를 했어요. 야당지역 출신이라 아내가 이회창 후보의 비서를 했다느니…. (청장 될 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요. 경찰관은 사적으로 정치인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살길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정직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는 어머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2남4녀 중 장남으로 자랐습니다. 어릴 때 집에 불이 났는데 저를 먼저 밖에 던지시고 당신은 화상을 깊이 입으셨어요. 죽을 뻔했는데 어머니 덕에 살게 된 거죠.”
-인사와 관련해 후배 경찰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직원 스스로 인사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누가 청장이든 될 사람이 되어야지, 인사 원칙이 정권이나 청장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면 잘못된 세상이잖아요. 경찰은 사회의 최일선에서 인간담장 노릇을 합니다. 욕설과 주먹질, 발길질과 돌이 날아오는 현장을 지키는 존재예요. 그 어떤 공직보다 험한 공직 아닙니까. 경찰관이 공직자로 장수하려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또 경찰은 경찰다워야 합니다. 감정에 따라 법 집행을 달리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경찰이 너무 앞서가면 안 되잖아요. 그런 점에서 경찰은 보수에 가까울 수밖에 없어요. 또 지휘관으로 올라갈수록 직업냄새를 풍기지 않아야 합니다. 교양을 쌓으라는 거죠. 꿈이 있는 공직자라면 인생 설계를 스스로 잘해야 해요. 인사는 자기가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