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마’가 되고 싶던 어린 시절
- 눈으로 손으로 발로 찾아낸 ‘그곳’
- 길 위에 판타지가 있다
- “바로 그 자리에 장국영이 앉곤 했지요”
-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져도, 개같이 사느니 영웅처럼 죽겠다
“그 무렵 친구 일기장을 본 적이 있어요. ‘소마와 송자호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고 쓰여 있더군요. ‘멋지게 살고 싶다’는 얘기를 이보다 더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충격을 받았어요. ‘아, 이 말은 내가 먼저 했어야 했는데’ 선수를 빼앗긴 것 같아 분하기도 했죠.”
그 역시 미래를 생각할 때면 늘 소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웅본색’ 이후 극장마다 내걸리기 시작한 홍콩 누아르(noir) 영화는 남자가 살아야 하는 삶의 모범 답안 같았다. 스토리 전체를 짓누르는 짙은 우울함과 죽음의 미학에 매혹됐다. 개봉 영화는 빠짐없이 보러 다니고, 영화잡지 ‘스크린’과 ‘로드쇼’도 사 모았다.
영화 순례자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홍콩 영화에 대한 그의 사랑은 여전하다. 한국에서 개봉하는 모든 홍콩 영화를 보는 그는 때로는 한국에 수입되지 않은 영화까지 챙겨 본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촬영지를 꼽아 시간 날 때마다 직접 찾아다닌다. 직장 생활 틈틈이 1박3일, 혹은 2박4일 일정으로 홍콩을 다녀온 게 이미 수십 번이다.
“정확히 몇 번인지는 모르겠어요. 시간과 돈이 될 때마다 훌쩍 다녀오는 거라 굳이 셀 생각을 안 했거든요.”
확실한 건 어딘가로 떠날 수 있을 때는 늘 홍콩을 찾았다는 점이다. 여행을 즐기지 않는 그는 지금껏 제주도에조차 간 적이 없다. 경주, 설악산도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게 전부다. 그의 촉수는 오직 홍콩, 그중에서도 자신이 본 영화 속 공간을 향해 뻗어 있다. 홍콩은 섬 전체가 거대한 영화 세트라는 말이 있을 만큼 영화 촬영지가 많은 곳. ‘화양연화’에 등장하는 골드핀치 레스토랑처럼 유명한 장소에는 늘 관광객이 붐빈다. 그 역시 그런 곳을 들르곤 한다. 하지만 더 좋아하는 건 아무도 모르는 영화 촬영 장소를 찾아내는 일이다.
‘도화선’에서 마지막 격투가 벌어진 그 폐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저렇게 독특한 자연경관이 정말 홍콩에 있단 말인가. 궁금증이 생기면 그는 일단 눈을 크게 뜬다. 영화를 돌려보며 도로 표지판이나 간판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적어놓는다. 영화가 끝난 뒤 올라가는 장소 협찬 목록도 빠짐없이 메모한다. 그 뒤 홍콩에서 구입해 온 정밀지도 색인과 대조해 주소와 간판이 일치하는 지점을 찾는다. 아무래도 안 보일 때는 무작정 홍콩으로 떠나 택시를 탄다. 영화 속 거리 이름을 한자로 적어 택시기사에게 내민 뒤 내리라는 곳에서 내리는 거다. 그때부터는 눈에 익은 장소가 나올 때까지 무작정 걷는다.
2000년 처음 홍콩 땅에 발을 들인 뒤부터 지난 10년간, 그는 대략 이렇게 홍콩 거리를 밟아왔다. ‘도화선’의 그 폐가를 찾아 인적 없는 습지를 헤매다가 늪에 빠져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한 적이 있고, 째깍째깍 올라가는 택시미터기 소리에 숨이 막혀 ‘이제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래도 그를 계속 떠나게 하는 건 어렵사리 영화 속 공간을 발견했을 때 찾아오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다.
‘올드 보이’의 박찬욱 감독은 이런 주성철에 대해 “치고 박고 총질하는 영화들에 대한 그의 열광은 때로는 장엄하기조차 하다”고 평했다. 사실 홍콩 누아르는 1980~90년대 대한민국 거의 모든 소년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존재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홍콩 영화를 신물 나게 보다 지친 나머지 꽤 오래 끊고 지낸” 박 감독처럼 그 뜨겁고 매혹적이던 세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처음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주성철은 “내가 홍콩 영화에 빠져들던 시절에는 홍콩 영화 마니아가 주류 중에서도 주류였다. 영화 잡지의 메인 페이지에는 늘 성룡이나 장국영이 실렸고, 기자들이 그들의 홍콩 집에 찾아가 인터뷰하는 일도 흔했다. 내 또래 가운데 상당수는 나처럼 언젠가 홍콩 땅에서 오랜 판타지의 공간을 찾아다니겠다는 꿈을 꿨을 거다. 그걸 했을 뿐인데 괴짜가 되나”라고 했다. 그러나 당신 주위에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주성철이 특별한 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여전히 그 시절 가슴을 달구던 불꽃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를 롤 모델로 삼았던 열한 살 소년 때처럼.
유덕화의 계단
“‘영웅본색’에서 총상을 입고 장애인이 된 주윤발에게 옛 부하가 돈을 던져주던 코즈웨이베이 거리를 얼마 전에 찾았어요. 그 거리에 서면, 번쩍번쩍한 건물에서 슬로 모션으로 걸어 나와 주윤발에게 ‘밥이나 사 먹으라’며 지폐를 내던지던 부하의 모습과, 한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였던 주윤발이 바닥에 나뒹구는 지폐를 하나씩 주워 드는 모습이 떠오르죠.”
처음 이런 여행을 생각한 건 언제였을까. 이 질문에 그는 ‘천장지구’ 얘기를 꺼냈다. 주성철을 홍콩 영화의 세계로 불러들인 것이 ‘영웅본색’이라면, 결코 헤어나오지 못할 만큼 빠지게 만든 건 ‘천장지구’다. 모든 영화는 배우가 죽어야 비로소 마무리되는 것이라고 여기던 시절, 늘 죽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덕화는 그를 매혹시켰다.
그에 따르면 유덕화는 늘 죽는다. ‘투분노해’에서도 죽고, ‘천장지구’에서도 죽고, ‘복수의 만가’에서도 죽고, ‘지존무상’에서도 죽고, ‘천여지’에서도 죽고, ‘용재강호’에서도 죽고, ‘풀타임 킬러’에서도 죽고, ‘결전’에서도 죽고, ‘파이터 블루’에서도 죽고, ‘삼국지:용의 부활’에서도 죽고, ‘무간도’ 마지막 편에서도 죽는다. 실제 죽지 않는다 해도 ‘강호정’에서는 죽을 ‘뻔’하고, ‘암전’에서는 죽은 ‘척’하며, ‘열혈강호’에서는 거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죽음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그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천장지구’의 마지막 부분, 복수를 결심한 유덕화가 홀로 비탈길을 걷는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비스듬한 오르막길, 가스등이 밝히는 계단 위를 칼을 숨긴 채 천천히 걸어가지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코피를 쏟으며, 제대로 말도 듣지 않는 발을 한 걸음씩 옮깁니다. 그 부분을 볼 때마다 저기가 어딘지 알기만 하면 당장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쓰러지는 유덕화를 잡아주고, 그의 죽음을 막고 싶었죠.”
2000년 회사 출장으로 처음 홍콩에 가게 됐을 때 물어물어 ‘천장지구’ 속 계단을 찾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1800년대 말 설치된 네 개의 가스등이 서 있는 그 계단에서, 주성철은 웨딩사진을 찍고 있는 신혼부부를 만났다. 가슴이 먹먹했다. ‘천장지구’에서 유덕화는 연인 오천련과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 뒤 신부를 성당에 남겨둔 채 이곳으로 달려온다. 이어진 참혹한 죽음…. 행복의 정점에 서 있는 신혼부부의 웃음 너머로, 뜨겁게 사랑했지만 끝내 함께하지 못했던 ‘천장지구’ 속 두 청춘의 비극이 떠올랐다. 지독한 비극의 무게가 뼛속까지 생생히 전해졌다.
그곳에 영화가 있었네
“그동안 수없이 ‘천장지구’를 봤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 비로소 영화를 이해한 느낌이었어요. 홍콩 영화가 제게 주는 기쁨을 제대로 느끼려면 영화 속 장소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국영과 장만옥, 유덕화가 출연한 ‘아비정전’의 공간을 찾았을 때 이 생각은 확신이 됐다. 장만옥의 옛 남자친구(장국영) 집이 있는 곳은 셩완 캐슬로드. 한없이 비가 쏟아지던 날, 이 길에서 이별을 맞은 장만옥이 멍하게 서 있자 순찰 돌던 경찰 유덕화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영화 속에서 유덕화와 장만옥은 이야기를 나누며 밤거리를 느릿느릿 걸어요. 그때 경적을 울리며 천천히 트램이 다가오지요. 언덕 위 캐슬로드에서 트램이 다니는 아래 동네까지, 그들이 걸은 길을 따라 똑같이 걸어봤습니다. 30분 넘게 걸리더군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생각하며 걷는 동안 직접 그 길에 서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영화의 행간을 읽은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홍콩은 그에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판타지의 공간이 됐다. 한국에서 시름시름 기운 빠져 지내다가도 홍콩 첵랍콕 공항에 발만 디디면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처럼 힘 있게 걷게 되는 자신이 느껴졌다.
‘열혈남아’에서 장만옥과 유덕화가 뜨거운 키스를 나눈 공중전화 부스를 발견했을 때는 가슴이 뛰었다. 도무지 어딘지 알 수 없던 이 장소의 단서는 영화 속 장만옥의 대사에서 얻었다. 란타우 섬에서 온 친척! 그는 바로 란타우 섬과 홍콩 섬 사이의 교통편을 알아봤고, 홍콩 센트럴 지역 페리 선착장에서 1시간쯤 배를 타면 란타우 섬 무이워 선착장에 도착한다는 걸 알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달려간 그곳에 영화 속 공중전화 부스가 그 모습 그대로 놓여 있는 걸 봤을 때 느낀 기쁨이란…. 이런 성공의 경험이 그에게 계속 다른 장소, 또 다른 장소를 찾게 만들었다.
‘영웅본색’의 마지막 부분, 홍콩을 떠날 결심을 한 주윤발이 “다른 건 다 버려도 홍콩의 야경만은 정말 아까워”라고 말하며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그의 두 눈 가득 들어오는 야경의 촬영지도 특별했다.
“흔히들 홍콩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은 피크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광경이라고 해요. 저도 오랫동안 주윤발이 서 있는 곳이 빅토리아 피크일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영화 속에서 그가 얘기할 때 하늘 위로 비행기가 오가는 게 보이는 겁니다.”
아. 첵랍콕 공항이 생기기 전 홍콩의 관문이었던 카이탁 공항 근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근처를 뒤진 끝에 구룡성채가 내려다보이는 외딴 산에서 비로소 영화 속 야경을 만났다. 이 산은 ‘성항기병’과 ‘아비정전’에도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 홍콩의 영화 촬영지를 찾아다니다 보면 이렇게 수많은 영화가 한 군데서 만나고 어우러졌다.
홍콩 마니아
‘금지옥엽’에서 기분 좋게 취한 장국영이 동료들과 헤어져 퇴근하던 곳, ‘희극지왕’에서 학생으로 가장한 술집 종업원 장백지가 발랄하게 등교(출근)하던 곳은 모두 ‘천장지구’에서 유덕화가 비극적인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던 그 계단이다. ‘AD2000’에서 테러리스트 노혜광이 곽부성의 추격을 피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의 지붕을 타고 달아나는 장면 뒤로는 ‘중경삼림’ 속 양조위의 집이 스쳐 지나간다. ‘희극지왕’에서 주성치와 장백지가 키스를 나누는 섹오비치 마을회관은 ‘홍콩탈출’에서 유덕화와 이미봉이 키스를 나눴던 장소이기도 하다. 1989년 작 ‘홍콩탈출’ 당시만 해도 꼿꼿하게 서 있던 젊은 나무가 2000년작 ‘희극지왕’에 이르면 비스듬히 쓰러져간다. 최근 찾아갔더니 이제는 옆에 선 대나무에 의지한 채 간신히 생명을 이어갈 정도로 더 많이 늙었더란다.
“그런 걸 발견하면 대여섯 명 식구가 같이 사는 단칸방을 엿본 듯한 기분이 들죠. 똑같은 공간에서 큰아들은 공부하고, 엄마는 바느질하고, 아빠는 술 마시고, 애기는 잠도 자는…. 영화 ‘2046’에서 양조위가 이런 말을 해요.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스쳤다면 우리의 인연도 달라졌을까?’ 전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홍콩이 떠오릅니다. 같은 장소에서 늘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을 느끼게 하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주성철의 홍콩은 다른 여행자들이 느끼는 홍콩과 좀 다르다. 영화 속에서 빈민가로 묘사되는, 조금은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고흐 스트리트는 양조위가 ‘류맹의 성’을 찍은 곳이라 특별하다.
이 길과 연결되는 미룬 스트리트는 장국영이 한 아이의 양아버지 역할을 맡아 생전 가장 나이 든 모습을 보여준 영화 ‘유성어’의 공간이라 남다르다. 장국영이 4년간 키운 아들을 떠나보내고 쓸쓸히 걸어 올라오던 계단과 노천식당을 볼 때면 아직도 마음이 아리기 때문이다. 두 배우가 영화를 찍던 시절 종종 밥을 먹었다는 ‘까우키 식당’은 주성철이 홍콩에 갈 때마다 즐겨 찾는 곳. 어느 날 그는 이 식당에서 우연히 한국인 관광객들과 마주쳤다가 “볼 것도 별로 없고 지저분한데 괜히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거리 곳곳에 쌓여 있는 장국영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구나 생각하니 씁쓸했어요. 저한테는 너무 소중한 장소였으니까 왜 이곳이 의미 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죠.”
동행도 없이 홀로 홍콩을 떠돌았던 오랜 순례의 기록을 묶어내기로 결심한 이유다. 주성철은 최근 자신이 만난 특별한 홍콩의 이야기를 담은 책 ‘홍콩, 영화처럼 여행하기-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이라는 책을 펴냈다. ‘천장지구’에서 유덕화와 오천련이 결혼식을 올리는 성마가렛 성당, ‘영웅본색’에서 장국영 아버지의 묘가 있는 워합섹 공동묘지, ‘열혈남아’에서 유덕화와 장학우의 고향 마을로 등장하는 티우갱랭, ‘타이거맨’에서 주윤발이 조카를 안고 걸어가던 샤로퉁 시골길 등 홍콩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영화 속 공간이 그의 설명을 통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책을 정리하면서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직 찾지 못한 곳이 많거든요. 특히 ‘영웅본색2’에서 장국영이 죽어가던 그 공중전화 부스는 늘 마음속에 있지요. 그가 마지막 힘을 모아 ‘송..호..연’ 하고 딸의 이름을 지어준 뒤 쓰러지는 순간 ‘다다다당’ 음악이 울리며 카메라가 뒤로 빠지잖아요. 그때 화면 안으로 주위 전경이 들어와요. 그런 전망을 보여주는 언덕이 홍콩에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직 어디인지를 모르겠네요.”
밀크티와 에그타르트
주성철은 1980~90년대 대한민국을 사로잡았던 홍콩 영화뿐 아니라 최근의 영화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장소도 찾아다녔다. ‘중경삼림’에서 금발 머리를 한 임청하가 서양 남자를 유혹하던 완차이는 그가 특히 사랑하는 곳. 홍콩이 최초로 해외에 문호를 개방한 장소로,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2008년 두기봉 감독은 이곳에서 홍콩의 사라져가는 것들을 담은 영화 ‘참새’를 촬영했다고 한다. 완차이 헤네시 로드에 있는 호놀룰루 차찬탱(가볍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식당)은 장학우 탕유(탕웨이)주연의 영화 ‘크로싱 헤네시’에서 두 사람이 늘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간단한 음료, 면, 덮밥 등 없는 메뉴가 없지만, 특히 유명한 건 밀크티다. 그는 “장학우와 탕유가 늘 앉던 벽 쪽 자리에 앉아 혼자 밀크티를 홀짝거리면 현지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했다.
주성철을 처음 홍콩 영화로 이끌었던 ‘영웅본색’ ‘천장지구’ ‘열혈남아’와 최근 그의 마음을 흔든 ‘참새’ ‘크로싱 헤네시’ 사이에는 배경이 홍콩이라는 것 외엔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이 모든 작품 속 공간을 찾아 거리를 누비고 있다. “장르도 스타일도 전혀 다른 이 영화들을 ‘홍콩 영화’로 묶을 수 있는 건 그 아래 깔려 있는 홍콩만의 감수성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홍콩 영화가 좋은 걸까 저도 혼자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나를 설레게 하는 홍콩만의 특수성이란게 뭘까. 한국에 살면서 단지 영화를 볼 뿐인 제가 그 정체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홍콩만의 무언가가 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거든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지역적 특색이 굉장히 뚜렷하잖아요. 북방 남방에서 서로 다른 개성을 갖고 살던 사람들이 이 좁은 땅덩어리에 모여든 거예요. 거기에 서구 문화까지 더해지면서 세계 어느 곳에도 없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뭔가가 만들어진 거죠. 우리가 흔히 ‘키치’라고 말하는 것의 극단적인 형태이자, 소위 ‘퓨전 컬처’의 극치 같은 것, 그런 특별한 감수성이 누아르든 멜로든 무협이든 모든 ‘홍콩 영화’의 바탕에 깔려 있어요. 홍콩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간식인 밀크티와 에그타르트에도 그런 홍콩만의 정체성이 담겨 있죠.”
20~30년 전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던 배우들이 여전히 현역에 있는 것도 그가 ‘홍콩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하는 요소다. 한때 그의 우상이던 오우삼과 주윤발은 할리우드로 떠나버렸지만, 유덕화는 5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홍콩에서 20대 시절처럼 사랑하고 고뇌하며 청춘을 산다. 장국영 역시 죽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생물학적 아버지 역할을 한 적이 없다. 주성철은 “미국 사람들이 ‘심슨 가족’ 시리즈를 좋아하는 건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오랜 시간 잊고 지내다 문득 TV를 틀었을 때 ‘심슨 가족’의 막내 매기가 입에 고무젖꼭지를 물고 있는 걸 보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거다. 내게 홍콩 영화도 그렇다”고 했다.
“가끔씩 언젠가 유덕화가 시아버지가 되고 양조위가 누군가의 할아버지가 된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가슴이 먹먹하죠. 지금은 나의 청춘이 여전히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즐기려고 해요. 그것 역시 홍콩 영화가 주는 판타지니까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래서 그는 가끔씩 추억을 찾아 홍콩 거리를 걷기도 하다. 장국영이 생전에 좋아하던 식당이나 마지막까지 살았던 집을 찾아갈 때도 많다. 언젠가 그가 즐겨 찾던 딤섬집 ‘예만방’에 갔다가 그의 특별한 사인을 구경했던 건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 집은 사인을 벽에 걸어두지 않고 사인북 형태로 따로 보관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음식을 먹는 내내 사인북을 보여달라고 할까 말까 고민하다 마치는 시각인 밤 11시가 다 돼서야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주인은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는 듯 사람 좋은 얼굴로 장국영의 사인이 담긴 앨범을 꺼내 보였다. 홍콩 영화 스타들이 적어놓은 수많은 사인 가운데 한 페이지, 오른쪽 한구석에 그의 사인이 있었다.
“주인 말이 아무것도 안 적혀 있는 새 면을 펼치고는 그에게 사인을 부탁했는데 장국영이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사인을 했대요. 마치 다른 사람들이 다 사인을 한 뒤 마지막에 빈자리를 찾아 한 것처럼. 제가 보기에도 딱 그런 모습이었어요. 다른 사람과 함께 페이지를 나누고 싶은 장국영의 배려심이었을까요. 그 사인에서 생전의 그가 보이는 것 같아 울컥했지요.”
2003년 4월 장국영이 하늘을 향해 몸을 날린 그의 생애 마지막 장소,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도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가 좋아했다는 2층 카페 ‘클리퍼 라운지’의 창가에 앉기 위해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침내 자리를 차지했을 때, 바로 건너편으로 홍콩 배우 관지림이 들어와 앉은 것이다. 관지림은 장국영과 여러 작품에 함께 출연했던 절친한 동료다. 그가 “장국영의 흔적을 찾아왔다”고 말하자 관지림은 “장국영은 벽 쪽 자리를 좋아해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에 종종 앉곤 했다”며 눈물을 비쳤다. 장국영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장국영의 친구와 대화를 나눈 그 시간은, 스스로가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는 지금 영화 전문지 ‘씨네21’ 기자로 일한다. 지금껏 많은 배우와 감독을 인터뷰했고, 영화 촬영 현장을 취재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의 홍콩 영화 촬영지 순례만큼은 휴가를 내 한 명의 ‘팬 보이’의 모습으로 돌아다녔다.
“따지고 보면 저는 아직도 어린 시절 판타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성숙한 인간인지 몰라요. 하지만 이렇게 영화 속을 걸을 때 늘 행복해요. 홍콩을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주윤발과 함께 하늘을 보고, 유덕화와 함께 비탈길을 달리고, 장국영과 더불어 차를 마실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계속 홍콩을 찾을 생각이다. 그리고 갈 때마다 꼭 한두 군데씩 영화 속 공간을 발견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