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군 합천병원 황경일(43) 원장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 대단할 게 없다”고도 했다. 10월부터 합천병원에서 원폭 2세 환자들을 무료 진료하기로 한 데 대한 설명이다.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곳. 비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피해를 본 조선인 중 60%가 합천 출신이다. 이들이 광복 후 하나 둘 귀향하면서 합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폭탄 피해자 진료소’가 생겼다. 피폭자들의 치료와 생활 보호를 위해 한·일 양국 정부가 자금을 지원했다. 문제는 그들의 자녀들. 태어날 때부터 장애와 질병을 가진 수많은 2세 환자다.
“원폭 피해가 2세에게 유전되는지는 아직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이든 한국이든 원폭 환자의 2세들에게는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고 있지요. 제가 이 분야를 제대로 연구한 건 아니지만, 저는 의사로서 분명히 이들의 질환에 유전적인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도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에 따라 그는 원폭 2세들의 모임인 ‘한국원폭2세환우회’와 무료 진료협약을 맺었다. 이 모임의 회원은 전국 어디에 살든 평생 합천병원에서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원폭 피해자 치료 전문가를 양성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2008년부터 1년에 한 번씩 일본 원폭 진료 병원의 전문의를 초청해 노하우를 배워왔습니다. 올해부터는 우리 병원의 신경과 전문의를 일본에 파견해 연수받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원폭 피해의 유전성이 입증되고, 원폭 2세들이 좀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