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림부가 MB 결단 방해’ 설명도 사실과 달라
- 대통령이 지시했으면 당연히 그렇게 했지
- MB 감싸려고 장관 희생양 만들기?
방역당국은 이 가축전염병을 차단하기 위해 발생 농장과 인근 지역의 소, 돼지를 살(殺) 처분해왔다. 이러한 예방적 살 처분으로 인한 매몰 두수는 2월12일 현재 329만두로 폭증했다. 사상 최대의 소, 돼지 홀로코스트(holocaust ·대학살). 그럼에도 구제역은 더욱 맹위를 떨치는 결과로 나타났다. 방역당국의 초동대처 실패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살 처분 대신 백신 투여에 의한 예방 방식을 좀 더 선제적으로 도입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여권 내부에서도 나왔다.
최악의 방역실패 · 천문학적 손실
구제역은 국가 경제에도 타격을 주는 수준이 됐다. 살 처분 보상비로 2조4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정부예산이 지출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같은 정부부처 1년치 예산을 넘는 규모다. 매몰 지역은 전국 4000여 곳에 달한다. 움직이는 가축들을 비탈지나 하천 부근 등 환경오염이 우려되는 지역에 졸속으로 묻은 사실도 드러났다. 비닐 등 차단막이 찢기면서 사체의 침출수가 하천으로 흘러내리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지하수·상수원 오염 우려가 일고 있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전례 없는 환경재앙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가 이미지도 손상을 입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안전기구(FAO)는 1월27일 “한국 내 구제역 확산 정도는 지난 50년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정도”라고 했다. 프랑스 ‘르몽드’는 2월10일 “한국에서 전례 없는 공중보건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면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채 가축이 매장돼 심각한 2차 오염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유정복 책임론 등장 배경
야권은 구제역 방역 실패와 천문학적 손실을 들어 이명박 대통령을 질타했다. 류근찬 자유선진당 최고위원은 1월17일 “170만 우제류를 땅에 묻고 1조5000억원에 가까운 경제적 대가를 치른 뒤에야 대통령이 구제역 현장을 방문했다는 것은 얼마나 무감각하고 한심한 정권인지 여실히 증명한 것”이라고 했다. 정범구 민주당 의원도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구제역 관련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살아 있는 소와 돼지를 산 채로 묻을 수는 없다. 최소한 안락사는 시켜줘야 한다. 완전 백치정부 아닌가? 비닐이 찢겨 나가고 침출수가 새어나오게 된다. 환경오염 대재앙이 목전”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뮤지컬 관람에 대해서도 호된 비판이 일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1월10일 “정부 초동대응 실패로 축산농가의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수만 명의 공무원이 40일째 방역과 살 처분에 동분서주하는 와중에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의 뮤지컬 관람이라니, 국정 상황을 모르는 무지의 극치를 보여준 꼴”이라고 했다.
‘서울신문’은 1월17일 “정부가 구제역 발생 1개월 후인 지난해 12월25일에야 백신 접종을 실시하기로 한 것은 구제역 확산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백신 접종을 미적거린 이유는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했다. 백신 접종을 하지 않고 구제역을 종결하면 청정국 지위 유지에 유리하다. 그러나 청정국 지위에 따른 육류 수출은 연간 20억원 정도로 알려진다. 이를 위해 가축 살 처분을 고수하다 훨씬 큰 경제적 손실과 방역실패를 불렀다는 지적인 셈이다.
구제역 사태는 이렇게 의심의 여지없이 정부를, 그것도 최고 수장인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정부 여당 내부에서 구제역 사태에 대한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책임론, 유정복 경질론이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다.
“용비어천가, 낯 뜨거운 일”
이명박 대통령은 1월23일 당·정·청 만찬회동을 가졌다. 다음날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회동내용을 소개하면서 “이재오 특임장관이 ‘구제역 발생 초기 대통령은 (살 처분) 방역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백신으로 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농식품부가 청정국 지위를 잃는다고 보고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내용이 조금 와전된 것 같다”고 했고 이재오 장관 측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가 전한 이러한 당·정·청 수뇌부 회동 내용은 여러 언론에 보도돼 구제역 확산에 대한 유정복 책임론, 경질론이 공론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 원내대표는 유 장관에 대해 “경질이라는 말까지 하고 싶진 않지만 초동 대응이 잘못됐다는 것은 법사위에서 지적했다. 구제역에 걸려도 많아야 소의 10%가 죽는다고 한다. 살 처분은 2~3차 피해가 또 있다. 거기에 대한 정책 전환과 발빠른 조처가 부족한 것”이라고도 했다. 유 장관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친박근혜계 의원 출신으로, 유정복 책임론은 미묘한 정치적 파장을 낳았다.
이후에도 유정복 책임론 기조가 계속된다. 4일 뒤인 1월27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들은 “이제 와서 무슨 설명이냐”고 유 장관에게 면박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김 원내대표는 “백신 접종을 초기에 생각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고 홍준표 최고위원은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한겨레 보도)
여권 수뇌부가 언론에 흘리는 이야기의 주된 의도는 ‘대통령은 구제역 초기에 백신을 투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등 사태의 해법을 정확하게 제시해 아무 책임이 없다. 반면 유 장관은 살 처분에 집착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등 방역 실패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런 의도에 대한 야당의 평가는 싸늘하다. 이춘석 민주당 대변인은 1월26일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은 백신 접종을 일찍이 주장했었다’며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정말 낯 뜨거운 일”이라고 했다. 야당은 여권 당·정·청 수뇌부가 전하는 말을 사실로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아부 내지는 대통령을 구제역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한 정치적 책략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인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1월28일 기자회견에서 “모든 상황을 말끔히 수습한 뒤 깨끗이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책임론이 집중되는 것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반드시 있고 시간이 지나면 책임소재도 분명히 드러나겠지만 정치인은 시시비비를 떠나 결과에 대해 깨끗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그렇게 할 리가 없는 거죠”
이후 ‘신동아’는 유정복 장관을 단독으로 만나 100분가량 인터뷰를 했다. 그는 2010년 8월 장관 취임 이후 우리나라 농업, 축산, 수산, 식품 행정을 이끌어온 과정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이 중 국민적 관심사인 구제역 방역에 대한 답변 내용부터 전하기로 한다.
유 장관은 당·정·청 수뇌부 회담 내용과 달리, 이 대통령이 구제역 발생 초기에 백신으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발생 초기에 이런 이례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며 단지 살 처분과 백신 투여에 대한 원론적 입장만 개진했다고 한다. 농림부 보고로 대통령이 (백신 조기 접종)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일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은 유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 이번 구제역으로 수많은 가축이 매몰 처분됐습니다. 주무장관으로서 축산농가에 한 말씀 하신다면….
“많은 축산농가는 가축 매몰 처분에 따른 고통을 겪었습니다. 또 방역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일정 부분 출하가 제한되기도 했고요. 이런 어려움에 대해 너무 안타까운 마음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방역활동에 함께 해주시는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지금은 구제역이 빠른 시일 내 종료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번 일을 경험 삼아 앞으로 방역체계를 제대로 갖추고 축산업 현대화, 선진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합니다. 축산인도 이런 부분에 협조체제를 갖고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정부와 축산농가가 협심해서 해야 하는 거죠.”
▼ 매몰 처분에 따른 보상비 등 이번 구제역에 따른 정부 지출은 어느 정도인지요?
“현재 2조4000억원 정도로 예상됩니다.”
유정복 장관은 구제역 초기 청와대·정부 내 의사결정 과정을 설명했다.
“당시 가축위생시험소는 경북도 소속 방역기관으로 가축방역, 도축검사, 원유검사 업무를 맡고 있어요. 최초 발생농장의 신고 이후 지방자치단체 방역기관의 초기판단이 미흡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돼지는 태어나서 도축될 때까지 28%가 죽어요. 밀집사육으로 폐사율이 높습니다. 이 때문에 구제역으로 인한 것인지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경북도 가축위생시험소가 최초신고를 받아 처리했는데 현실적으로 거기에서의 판단이나 수의과학검역원으로의 신고 부분이 미흡하다고 보고 있는 겁니다. 그 사이 안동에서 차량으로 파주 등 전국으로 구제역이 확산된 거죠. 그게 아쉬움이 있죠.”
농림수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11월23일 안동 양돈장의 한 농장주가 경북도 가축위생시험소에 어미돼지 기립불능을 신고했는데 임상관찰결과 구제역 증상이 없었고 항체키트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됐다고 한다. 11월26일 같은 단지 내 인근 농가에서 폐가축신고가 들어왔지만 임상관찰 및 부검결과 염소중독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농림수산식품부는 “11월28일 수의과학검역원에 신고될 때까지 초동 방역조치가 늦어졌고 항체가 형성된 점을 볼 때 이미 11월 중순경 안동은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유 장관은 “구제역을 최종판단하는 수의과학검역원 기능을 권역별로 더 두는 방안, 시도에서도 항원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그에게 지난해 11~12월 구제역 발생 초기 청와대와 정부 내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본격적으로 물어봤다.
▼ 여권 내부에서 ‘백신 접종을 초기에 생각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살 처분에 따른 피해가 있다. (백신으로의) 정책 전환과 발빠른 조처가 부족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구제역 발생 초기 정부 대응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구제역 발생 초기엔 살 처분이냐 백신접종이냐 그게 아닙니다. 발생되면 발생지로부터 얼마 이내까지는 모두 매몰하는 거예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빨리 매몰해서 추가확산을 막는 것은 어느 나라나 공통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거든요.”
▼ 우리 정부는 백신을 잘 선택하지 않는 경향이 있나요?
“백신은 구제역 방역에 비효율적이라는 믿음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2004년에도 백신을 선택하지 안았어요. 백신을 선택하면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 데 문제도 있고요. 정부는 (살 처분이냐, 백신이냐를 선택할 때) 가축방역협의회 전문가들의 판단을 존중하는 경향이에요. 이번 백신정책에서도 가축방역협의회에 참여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백신에 대한 신중론, 부정적 견해가 많았어요.”
▼ 그런데 1월23일 당·정·청 수뇌부 만찬회동이 있었고요. 그 자리의 참석자가 ‘구제역 발생 초기 대통령은 (살 처분) 방역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백신으로 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농림수산식품부가 청정국 지위를 잃는다고 보고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구제역 발생 초기 대통령이 백신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나요?
“그거를, 대통령이 초기에 백신을 그렇게 할 리가 없는 거죠.”
▼ 사실과 다른, 틀린 말이라는 건가요?
“그러니까 (대통령은 구제역 초기에) 원론적으로 방역정책이 무엇이 있느냐, 검토보고를 받는 그런 것이죠. 대통령은 ‘어떤 방안이 좋겠나’라는 이런저런 원론적인 수준에서 ‘백신은 어떤가’, 이런 거지. 이런 정도였어요. 초기에 대통령이 백신으로 하라고 했으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겁니다.”
당·정·청 수뇌와 정반대 증언
▼ 농림수산식품부가 백신 부작용을 보고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못한 적이 있나요?
“그럴 리가 없는 거죠. 오히려 12월 들어선 내가 백신 (접종)을 빨리 하려고 했어요. 전문가들은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전문가들을 설득해 백신 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백신을 빨리 투약하려 결심을 했었는데 농림부 때문에 막혔는지….
“그런 게 아닙니다. (청와대와 같은) 다른 부처는 (백신에 대해) 잘 모르죠.”
▼ 청와대는 백신 조기 투여 의사가 없었다는 거죠?
“거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 확산 막는 거냐, 이런 원론적인…. 구제역 초기는 백신에 대해 그 정도 판단하기에 이른 시기죠.”
▼ 대통령이 구제역 초기 백신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네요?
“그건. 그런 대통령 지시를 들어본 바 없습니다. 다른 비서관에게 어떻게 이야기했는지는 모르지만….”
▼ 그렇다면 청와대는 언제쯤 전국 단위 백신 접종을 생각하게 되나요?
“1월부터 백신 접종에 공감했어요. (*1월12일 대통령 주재 구제역 긴급 대책회의에서 전국 가축에게 백신을 투여하는 조치가 결정됐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백신 제조를 지시해놓은 뒤라니까요. 만약 내가 그 무렵 지시했다면 지금도 백신을 못 놓고 있었을 거예요. 나는 이미 12월20일 백신 제조 지시를 내렸어요.”
▼ 백신 제조는 어떻게 이뤄졌나요?
“내 지시로 우리나라는 영국, 네덜란드 회사에 백신 제조를 요청했습니다. 당시 우리에겐 30만두 접종 분량밖에 없었어요. 해외주재 31개 우리 대사관에 연락을 취해 백방으로 (백신 제조에 필요한) 항원을 구했어요. 이후 주당 200만~300만두 접종 분량이 지금까지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농림수산식품부 자료는 12월20일 장관으로부터 백신 제조 결정이 내려졌고 12월25일부터 접종이 시작됐다고 밝히고 있다.
▼ 백신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나요?
“그렇죠. 대통령께서 ‘잘했다’고 칭찬해주었습니다.”
당·정·청 수뇌가 전하는 내용과 정반대되는 증언들이다. 유 장관의 설명에 따르면 정부에는 구제역 초기엔 살 처분을 당연시하는 정책적 관례가 있고, 이번에도 그 관례대로 했으며, 대통령이 초기부터 살 처분 대신 백신으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장관이 이를 막은 적도 없으며, 오히려 장관이 주도적으로 백신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동아’가 이 대통령의 구제역 관련 공개발언들을 취합해본 결과, 이 대통령은 “살 처분하는 과정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굉장히 힘든 일을 하고 있다”, “빨리 청정국가로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12월27일 농림수산식품부 업무보고), “살 처분 동원 인력에 특별한 배려를 하는 게 좋겠다”(12월30일 장차관 종합토론회), “(서울대 수의대의 살 처분 참여에) 격려를 보낸다”(1월6일 구제역 대책 긴급 관계장관회의) 등 구제역 발생 초기부터 중기까지 주로 살 처분에 대해서만 발언한 것으로 나타난다. 백신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시기 대통령의 관심이 살 처분에 쏠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반면 유 장관은 12월에 이미 “발생지역 중심으로 백신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준비를 다 하고 있다”(12월22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 회의)고 발언한 것으로 나타난다.
“듣기 민망하고 편치 않아”
여권 내부에서는 여권 내 주류인 친이명박계와 비주류인 친박근혜 간 대립이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최근 개헌정국에서 양 계파 간 갈등은 심화되는 양상이다. 친박근혜 진영의 한 의원은 “여권 주류는 이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유 장관을 구제역 사태의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고 말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측근인 유 장관에 대해 구제역 책임을 씌우는 것은 차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까지 염두에 둔 ‘박근혜 흔들기’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유 장관의 ‘구제역 해결 후 사퇴’ 발표 이전에 친박 진영 내부에서는 유 장관의 거취 문제에 대한 자체적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유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유정복 장관이 자신에 대해 제기되는 ‘구제역 책임론’에 관한 입장을 기자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분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모르고…. 사실 그런 게 하도 많아서…. 농림수산식품부의 수많은 공직자가 밤낮 안 가리고 구제역 막느라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누구나 쉽게 이야기하는 거죠. (청와대에) 수많은 비서관이 있으니 개인의견이야 얼마든지….”
▼ 여권 수뇌부는 장관과 농림수산식품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기류인데….
“구제역 발생보고받고는 바로 헬기 타고 안동에 내려가 그때부터 내 모든 걸 이 일에만 바쳤어요. 여러 비판에 대해 때에 따라 듣기 민망하고 마음 편치 않은 경우가 있죠. 그러나 나는 이런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일일이 시시비비를 않고 다 받아들입니다. 더 책임성 있게 잘하라, 이런 뜻으로 생각해요.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이것만 하는 사람으로서….”
▼ 장관께선 일전에 기자회견을 열어 ‘구제역 해결 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이러한 발표는 사전에 박근혜 전 대표와 상의한 것인가요?
“하하.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세요. 구제역 종식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목표의 100%예요. 다른 거 개입하는 거 없습니다. 공직자로서 도리가 아니죠. 내 본분을 다할 뿐입니다.”
“여러 악운 겹쳤다”
매몰지 주변 환경오염은 큰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동아일보’는 “단기간 도살 처분한 가축이 워낙 많아 적절한 매몰지가 부족했고 얼어붙은 땅을 파서 가축을 파묻기 힘들었던 사정은 다소 이해가 된다”면서도 “한강 주변 매몰지 32곳 중 16곳에서 침출수나 붕괴가 예상됨에 따라 수도권 상수원 오염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 장관은 “붕괴, 유실 등 우려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4000여 매몰지를 전부 조사해 오염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 아직 ‘재앙’으로까지 확대해석하지는 말라”고 했다.
▼ 침출수에 의한 지하수, 하천 오염 가능성이 가장 큰 문제일 것 같은데요?
“철저하게 대응해야겠지만 국민이 지나치게 불안감을 갖게 해서도 안 되거든요. 과거 2002년, 2008년 구제역이나 AI(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시 매몰지를 전부 조사했는데 지하수가 오염된 사례는 한 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안 생기도록 할 겁니다.”
▼ 규정대로 하지 않고 산 채로, 졸속으로 매몰한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농림수산식품부가 매몰지침을 지자체에 전합니다. 지침엔 매몰지 입지선정, 매몰방법이 적혀 있어요. 지자체가 그대로 해야 하는데 잘 지켜지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구제역에 걸린 가축은 마취제 약품으로 가사상태를 만들어야 하는데 돼지는 쉽게 주사가 듣지 않고 꿈틀거리고 두수가 많았어요. 신속하게 매몰은 해야 하고 이러다 보니…. 매몰지가 200곳에 달하는 시군도 있어요. 앞으로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고 있어요. 소각이나 다른 방법도 검토 중입니다.”
▼ 매몰지가 크게 늘어난 것과 관련해 예방적 살 처분이 과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구제역 발생 농가를 중심으로 그 인근 500m, 3㎞, 10㎞ 단위로 살 처분합니다. 정답이 있거나 법이 정하는 건 아니지만 경험칙상 구제역이 발생하면 인근 500m 정도는 살 처분해야 해요. 물품이 자주 이동하고 쥐도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놔두면 확산됩니다. 특히 돼지는 소의 1000배, 하루 1억개 이상의 바이러스를 내뿜거든요. 이번 구제역에선 일반적으로는 500m 단위로 했고 위험성이 높은 곳은 3㎞로 했어요. 일본 미야자키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일본에선 ‘한국의 살 처분을 배우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일본을 배우라’고 합니다. 살 처분이 과한지 적정한지 평가하는 건 어려운 문제죠. 결과로 이야기하니까. 이번에도 발생지인 경북 안동에서 잡혔다면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을 거예요. 바이러스가 안동에서 가축분뇨차에 실려 경기 파주로 날아갔고 그걸 뒤늦게 알게 된 게 결정타였습니다.”
▼ 그렇게 보는 근거는 뭔가요?
“발생지인 경북은 오히려 살 처분 두수가 37만두밖에 안돼요. 우리나라 최대 한우단지인 상주를 비롯해 김천, 구미, 고령, 칠곡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어요. 경북에서 방역에 집중하는데 12월14일 파주에서 신고가 들어오는 거예요. 이후 경기도는 살 처분 두수가 170만두에 달하게 되죠. 구제역 바이러스의 생존에 적합하게 유례없는 한파가 이어진 점, 소독약을 분사해도 딱딱 얼어붙는 점, 돼지 감염이 잘 안 되는 A형 대신 돼지 감염이 잘 되는 O형이 유행한 점, 초동대처에 실패한 점 등 여러 악운이 겹쳤어요.”
“이만의 장관이 사과해와”
▼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구제역 업무와 관련된 장관임에도 사돈 남 말하듯이 환경재앙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나와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그런 뜻이 아닌데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 야당은 ‘이번 구제역으로 매몰된 소, 돼지의 두수가 도합 300만을 넘어 국내 축산업이 붕괴위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제역으로 국내 축산업 기반이 취약해진 건지, 실제로 붕괴위기인지 말씀해주시죠.
“일부에서 우려하는 축산업 붕괴는 없을 겁니다. 이번 구제역으로 소 15만두가 매몰되었어요. 전체의 4.1%죠. 그러나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사육되는 소는 340여만두인데 2월1일이 되면 360만두로 오히려 늘어납니다. 쇠고기 값도 하향 안정세죠.”
▼ 최근 돈가스 값이 오른다고 하는데요. 돼지는 어떤가요?
“지난해 12월 988만두였다가 이번 구제역으로 300만두 이상이 매몰되었으므로 12월 대비 3분의 1 정도 감소한 셈이죠. 그런데 돼지는 특이한 게 번식력이 강해 개체수가 금방 회복됩니다. 2월1일이 면 880만두가 돼요. 당장 돼지 두수가 준 것은 사실이지만 붕괴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역 간 편차가 크다는 점은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160만두가 매몰됐어요. 그런데 호남, 제주는 없지 않습니까? 이 점이 시장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지켜보고 있어요.”
▼ 구제역은 언제쯤 사라질 것 같습니까?
“말하기가 겁나네요. 소는 안정됐다고 판단합니다. 돼지는 1차 접종 3주차에 80% 정도 항체를 형성해요. 경기 남부와 충청 일원에서 자꾸 돼지가 오염돼 긴장됩니다. 2월 한 달은 조심스럽습니다. 3월 초부터 전체적으로 안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이 대통령은 살 처분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1월12일 전국 단위 백신 접종을 시행한다고 했다. 이어 4일 뒤인 1월16일 “살 처분을 거의 제로에 가까운, 최소한으로 줄이는 그러한 정책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동아’ 취재 결과 이 발언 이후에도 수십만두에 달하는 가축이 추가적으로 살 처분됐다. ‘살 처분 거의 제로에 가까운’이라는 발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백신으로의 전환 효과를 과장되게 홍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유 장관은 “대통령의 말씀은 ‘구제역 청정국’에서 ‘구제역 백신 접종 청정국’으로 하는 게 좋지 않으냐는 의미로 보인다. 백신으로의 보다 적극적 정책전환을 피력한 정도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구제역이 발생하면 인근 가축을 매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구제역이라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지만 전반적으로 농림수산식품부는 국내 축산품 가격,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 국민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달걀, 우유와 같은 축산물을 즐겨 섭취하고 있는데요. 값싼 외국산을 더 수입해 먹지 않고 국내 축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재 우리 국민이 소비하는 쇠고기의 43%, 돼지고기의 81%, 닭고기의 80%, 오리고기의 99%를 국내산으로 충족하고 있어요. 축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로는 축산업이 우리나라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 축산물의 생산 유통 소비로 내수시장이 활성화되는 점, 국민의 국내산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원산지 표시, 직거래 등 품질과 유통혁신을 위한 지원 사업을 펴고 있어요.”
내 비전은 한마디로…
▼ 정치인 출신으로 농림수산식품 행정을 이끌고 있는 소회는 어떠한가요?
“김포시장, 재선 국회의원, 장관까지 30년간이 국민의 공복으로 봉사해온 시간이라는 점에서 닮은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그는 행정고시 23회로 공직에 들어왔다). 장관 부임 후 쌀값 하락, 채소값 폭등, 구제역 발생, AI 발생 등 연일 사건이 터졌어요. 당면 현안에 매달릴 수밖에 없죠. 이러한 현안에 대응하는 것이 우리 농수산식품의 근본문제를 치유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되도록 하고 있어요. 예컨대 배추값 파동 이후 유통구조 혁신에 성과를 냈어요. 이번 구제역 사태로 방역체계가 새롭게 정비될 것으로 확신해요.”
▼ 농림수산식품에 대해 장관께서 갖고 있는 비전을 단문으로 말한다면 무엇인가요?
“단순한 말이지만 ‘잘사는 농어촌, 행복한 국민’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국정방향도 농어촌 소득 증대, 값싸고 질 좋은 먹을거리 제공을 통한 국민행복증진에 맞추고 있고요.”
▼ 그러나 우리나라 농어촌은 지난 수십년간 산업화, 도시화에 밀려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는 평가인데요.
“전세계적인 현상이죠. 인류문명이 도시로 집중되면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농어촌은 상대적으로 저성장 상태에 머물러 있죠. 다른 부문에 비해 소외돼 있어요. 우리 농어촌은 영세화, 고령화, 이상기온, 시장개방으로 어려움이 더 해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느냐가 관건이죠. 이를 위해 우리 부처는 1·2·3차 산업 간 융복합화, 생태 환경 웰빙 전통문화 관광의 접목, 식품산업과 농어업 연계, 농어촌 교육·의료서비스 개선에 나서고 있어요. 귀농인구가 늘고 있는 건 좋은 징조입니다.”
▼ 농수산과 식품을 합쳐 농림수산식품부를 만든 데에는 어떠한 통찰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농수산과 식품이 다른 게 아니거든요. 농수산품이 식품의 원료이고 식품산업이 발전하면 농수산품 생산이 따라서 느는 거니까요. 농장에서 식탁까지 일원화해 시너지 효과를 거두려 해요. 현재 우리나라 농업규모는 연간 50조원, 식품산업 규모는 70조원 정도예요. 앞으로 농수산식품 산업의 규모를 훨씬 키워야 한다고 봐요. 정보통신과 자동차에선 세계적 기업이 있지만 식품 분야에서는 ‘네슬레’와 같은 세계적 기업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포브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식품회사 중 세계 1000위 안에 드는 회사가 한 곳도 없어요. 농림수산물에서 큰 폭의 무역수지 적자(2009년 164억3200만달러)가 이어지는 상황이죠. 식품회사와 농수산업이 동반해 크게 성장하도록 식품산업진흥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 식품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우리나라 농어촌은 또 한 번 위기를 맞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우리 농어업의 생산 감소액이 15년(2009~23년)간 10조5000억원 달한다는 보고가 있어요. 이러한 피해규모는 농어업계와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우리는 향후 10년간 품목별 경쟁력 강화, 농어업 체질개선, 단기피해보전 등에 21조1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대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중 대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투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개방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봅니다.”
유 장관은 “43개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식량부족을 겪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8개국 정도”라면서 “그러나 식량자급률(51%), 곡물자급률(27%)을 높여나가기 위해 국내 생산기반 확충, 해외 농업 진출, 곡물조달시스템 개편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가는 실적으로 말해야
일부 언론(중앙선데이 등)은 구제역 사태가 이명박 정권의 최대 오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와중에 여권이 대통령을 감싸기 위해 있지도 않은 사실로 특정 장관·부처에 정략적 책임몰이를 한 것이라면 씁쓸한 일이다.
앞으로의 일도 중요하다. 매몰지 주변 환경오염을 차단하는 일, 구제역의 추가 상습 발생을 억제하는 일이 큰 과제다. 정부는 상수원 오염이나 전염병 창궐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국민의 안전에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사실을 은폐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에 따라 민심의 평가가 갈릴 것이다. 유 장관은 구제역을 말끔히 마무리하고 물러나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행정가는 실적으로 자신의 말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그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막판 대반전을 이뤄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