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공사인 대주건설이 퇴출된 후, 시행사인 대주그룹 지에스건설이 이어받은 경기 용인시 공세지구 개발이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 계약자, 협력업체,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들을 다독이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지에스건설 박영석 사장. 정치권에도 몸담은 경험이 있는 특이한 이력의 박 사장에게 공세지구 개발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었다.
● 1962년생<br>● 원광대 토목공학과 졸<br>한양대 대학원 석사(행정학),<br>미국 뉴저지 주립대(RUTGERS UNIVERSITY) PALS 과정 수료.<br>원광대 대학원 박사(토목환경공학)<br> ● 원광대 이부대학 학생회장<br>● 국회의원 비서관<br>● 전북도지사 비서실장<br>● 전북도청 공보관<br>● 대주건설 대표이사<br>● 現 지에스건설 대표이사
박영석 사장은 2003년 대주건설 전무이사로 취임해 대표이사를 거쳐, 2009년 4월부터 지에스건설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박 사장이 대주그룹에 처음 몸담았을 당시만 해도 대주그룹은 대주건설 외에 대한조선, 대한시멘트, 대한화재 등을 거느린 견실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후 대주건설을 둘러싸고 탈세 혐의, 세무조사, 보증채무 갈등 등 잡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대주건설은 경영압박을 더욱 심하게 받았고, 금융기관의 채권 행사 유예 및 신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주단(貸主團) 운영협약에도 가입했다. 결국 대주건설은 퇴출을 맞이했고, 시공사의 퇴출로 공사가 중단됐다. 그럼에도 지에스건설이 공세지구 사업을 완료한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공세지구에 위치한 지에스건설 사무실에서 박 사장을 만났다. 박 사장은 2009년 2월부터 용인 현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고 있다고 한다. 560명이던 직원 중 500명을 내보내야 했고 현재 30명이 용인, 30명은 광주에 남아 있다. 공세지구 ‘대주 피오레’는 2011년 2월말 현재, 입주가 70%가량 진행된 상태다. 큰 고비를 넘긴 박 사장에게 어려웠던 지난 과정과 앞으로 남은 일들에 대해 물었다.
분양대금 선납부로 공사 재개
▼ 공세지구를 둘러보니 깨끗하고 넓어서 살기 좋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한데 대주건설의 퇴출과 부도로 인해 ‘대주 피오레’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은데요. 실제로 아파트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한창 위기 때는 공사를 반대하는 측에서 ‘쓰레기 아파트’라는 말까지 퍼뜨렸습니다. 입주 1년 후 입주자들이 용역업체에 의뢰해 하자 조사를 했는데요. 조사를 진행한 용역업체 담당자가 ‘수도권에서 이렇게 좋은 아파트를 못 봤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구조, 자재, 공간 활용 모든 면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 지금은 입주자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공사할 때 계약자이던 고객들의 반발이 아주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악재에 세계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2008년 대주건설의 14개 현장 가운데 13개가 보증사고 처리되고, 경기도 용인 공세지구만 공사를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약자들은 집값이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계약금 정도만 손해 보고 빨리 발을 빼고 싶어했죠. 부실 공사 우려 등의 트집을 잡아 계약 해지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지경이었습니다. 공사는 계속해서 총 네 차례 중단됐고, 계약자뿐 아니라 현장 직원의 이탈과 협력업체의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 사태를 어떻게 수습했는지요?
“전체 매출액이 1조5000억원인 공세지구 복합단지 개발만큼은 반드시 성공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여기마저 보증사고를 낼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계약자들에게 분양대금을 선납부받아 공사를 재개한다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부 임직원들의 반대부터 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금융권은 우리에게 자금을 주려 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자금을 받아오더라도 고금리를 감당할 수 없다며 설득했습니다. 고금리로 들어갈 비용을 차라리 계약자에게 이익으로 돌려주고, 공사비를 달라고 해보자는 얘기였죠. 임직원을 설득하고 나서 계약자 대표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 제가 직접 참석했습니다.”
▼ 계약자들의 불신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까?
“일단 분노와 원성을 다 들었습니다.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죠. 품질에 대한 계약자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나니까 300억원 정도면 해결이 가능한 문제들이었습니다. 다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분양 대금을 미리 납부해달라고 했지요. 1차 협상 때 중도금 이자 면제를 조건으로 760억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주 채권단도 놀랐지요. 4개월 지나 또 중단 위기를 맞았습니다. 결국 네 차례에 걸쳐 분양가의 15~20%를 할인해주고 32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계약자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박 사장은 다섯 시간 동안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개별적으로 만난 것까지 다 따지면 계약자와의 직접 만남이 무려 100여 차례가 된다. 그렇게 하는 동안 계약해지와 위약금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던 1200여 가구중 대다수가 속속 소송을 취하하기에 이르렀다.
구원투수로서의 부담감
박 사장은 2008년 11월에야 대주건설 대표이사 직을 맡았다. 회사가 한창 잘나갈 때 성장이나 수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고 사태를 마무리할 구원투수로 등판한 셈이다. 또 대주건설이 퇴출된 이후에는 공세지구 사업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시행사인 지에스건설 대표이사로 옮겨왔다. 억울함 혹은 아쉬움이 클 것 같다.
▼ 안정적인 회사의 대표이사가 된 것이 아니라서 부담을 많이 느꼈을 것 같습니다. 소회가 어떠십니까?
“제가 반 년 정도만 빨리 결정권한을 가질 수 있었더라면 만회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익금 수천억원을 포기하고서라도 위기를 극복할 만한 냉철한 판단력과 밀어붙이는 힘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말이죠.”
▼ 2003년에 전무로 입사했으니까 회사에 뿌리내리기가 어려운 점도 있었을 텐데요.
“처음 왔을 때는 사내에 곧 스쳐 지나갈 사람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죠. 20년 이상 근무한 임원들에게 배척받는 것 같기도 했고요.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했고, 급속 성장을 하는 동안 갖추지 못했던 기업 문화를 다지고 조직을 보강하는 사업에 집중했습니다. 직원들의 사고를 변화시키기 위해 자료를 일일이 만들어가며 팀장급을 모아 교육을 시켰습니다.”
▼ 대주건설 퇴출 이후에는 더 힘든 일이 많았겠죠?
“2009년 2월부터 공세지구 현장에 와 있었는데, 직원들이 불편하다고 하더라고요. 난 감시가 아니라 일을 돕기 위해서 온 것이다, 신속한 결정을 하려면 사장이 현장에 있는 것이 낫다, 권한은 현장소장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늦어진 공사기간을 앞당기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고요. 한편 구조조정으로 그만두게 된 직원들에게도 임금과 퇴직금을 줬습니다.”
1등과 10등이 공존할 수 있다
박영석 사장이 공세지구에 전력을 다해 매달리는 것을 보고, 엄청난 개인적 이익이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박 사장의 살아온 이력을 보면, 그 특유의 가치관과 삶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만하다. 박 사장은 유종근 전 전라북도 지사의 비서실장을 거쳐 도청 공보관을 지냈다. 도지사 그리고 대통령경제고문을 지내면서 유 전 지사가 평탄한 정치 가도를 달릴 때도 함께했지만, 뇌물 수뢰 혐의를 받아 구속될 때에도 항상 옆자리를 지켰다. 유 전 지사는 사면을 받은 후에 잠시 대주그룹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 기업에 오기 전에는 정치권에 몸담으셨지요. 어떤 계기로 건설사에까지 인연이 닿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공업고등학교 토목과를 나왔고, 대학에서도 토목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건설과 무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건설사에서 근로자 생활도 했고요. 그때 실무도 익혔고, 현장 직원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나중에 석사와 박사도 행정과 토목환경으로 학위를 마쳤습니다. 늦은 나이에 대학을 다니며 학생회장을 하게 됐는데, 졸업 후 취직자리를 알아보니 정치권에서 손짓을 해왔습니다.”
▼ 갑자기 정치를 그만두고 기업으로 옮겨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유종근 전 지사를 보좌하며 주변 사람들이 소위 잘나갈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게 됐습니다. 잘될 때는 비서실장인 저도 얼굴을 못 볼 정도로 구름처럼 사람이 모여들었는데,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손에 꼽을 정도의 사람만 남더군요. 배신감이랄까, 정치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유 전 지사가 저 같은 사람이 조금 더 있었으면 오늘날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죠.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님이 저를 신뢰하셨던 것 같습니다.”
▼ 정치와 기업 경영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기업 쪽으로 오신 것에 만족하시는지요?
“조직 경영에서는 정계의 경험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정치권력의 속성은 반드시 1인자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가치관에 따라 형제자매와도 갈등을 빚을 수가 있는 곳이 정치권입니다. 경제계는 1등 기업도 살지만 10등도 공존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복귀 뜻 있어
환멸을 느껴 떠나온 정치계지만, 돌아갈 의사도 있다. 전북의 한 지역에서 박영석 사장의 복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주변의 권유에 깊이 고민 중이라고 했다. 떠나 있는 동안 강의를 하고 경영을 하며 새롭게 배운 것들을 적용할 수 있겠다 싶다. 한편 정치와 경제에 걸쳐 큰 등락을 경험한 박 사장은 현 정부에 대해 쓴 소리도 했다. 대주건설의 퇴출과 부도에 정부 책임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대주그룹은 광주와 호남을 기반으로 한 기업이고, 이전의 두 정권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데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주그룹이 몰락한 것이다.
▼ 대주건설의 퇴출과 지에스건설이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힘이 들었던 주요 원인으로 정부 당국의 정책 실패를 거론했던데요.
“정부가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대주단(貸主團) 운영협약에 가입하라고 독려했을 때, 대주건설은 정부의 정책을 믿고 가입한 것입니다. 기업을 지원하고 건전성을 강화하겠다는 운영 취지와 달리, 1년간의 경영 정상화 노력을 무시하고 정부가 퇴출 발표를 해버렸습니다. 퇴출로 인한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항의하는 계약자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것이 힘들었고, 은행에서는 퇴출된 회사가 중도금 대출을 요청한다는 이유로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결국 신규 사업만 못한 채로 부도 없이 사업을 끝마치지 않았습니까? 정부 정책에서는 믿음이 가장 중요한데, 당국이 이를 지키지 않은 것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 다행히 공세지구 사업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돼왔습니다. 마무리까지 잘되면 지에스건설은 어떻게 됩니까?
“지에스건설은 현재 가지고 있는 미분양 아파트와 자산을 처분해 채권단의 채무를 상환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대주건설이 7000억원가량의 보증 채무를 대위변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채권을 추심하고 자산을 인수해 재기를 꾀해야 할 것입니다.”
▼ 공세지구의 사후품질 관리에는 문제가 없겠습니까?
“저희 아파트는 시공사인 대주건설의 퇴출 이후 시행사인 지에스건설이 하자보증서를 서울보증보험으로부터 발급받아 제출했습니다. 공세지구는 아파트만이 아닌 복합단지 개발사업이라 규정대로 전체 사업비의 3%인 265억원을 현금으로 예치해놓았습니다. 이 금액은 건축비의 2.5배가량이어서 사후 품질관리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채권단이나 회사 모두 보증기간이 끝난 후 예치금을 돌려받는 것이 득이 되기 때문에 하자보수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입주자들에게 어려운 가운데 좋은 아파트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