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br>●1950년 경남 남해 출생<br>●부산 브니엘고, 고려대 법대, 건국대 법학박사<br>●서울지검 특수부장, 국가청렴위원회 상임위원<br>●법무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이루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이 안타깝고,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들이 아쉽다. 시간은 나이의 무게만큼 점점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니 가는 시간이 야속할 따름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룰 때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그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버킷 리스트를 만들고 실천하는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있다. 물질적 풍요, 정신적 안정, 명예, 사회적 성공, 건강, 원만한 인간관계, 그러나 이런 것들을 다 가지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많이 가질수록 가지고 싶은 것도 빠르게 늘어난다. 인간이 완전하게 행복하기 어려운 이유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다음의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 즐겁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온전히 몰입하라.
둘째, 행복은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을 비우면 행복이 찾아온다.
셋째. 나누고 배려하라.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
몰입은 목표를 뚜렷하게 만든다.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일을 사랑하게 된다. 애플(Apple) 사의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대학을 중퇴했고, 후에 이를 자신이 내린 가장 탁월한 결정이라 자평했다. 목표가 뚜렷해지면, 그 일에 역량을 집중하게 된다. 그 무엇인가에 빠져 완전히 몰입하는 순간 비로소 인간은 환희를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일에 미쳐 몰두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어떤 여론조사에서 여성들에게 남자가 가장 멋있게 보일 때를 물었더니 답변 중 하나가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볼 때’라고 하지 않았던가.
검사 시절 나는 미친 듯이 일했다. 스스로 내 실력을 입증해 보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절대로 실수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남보다 몇 배는 더 일했다. 집에 못 들어가는 건 흔한 일이었다. 치열하게 일한 덕에 초임시절부터 특별수사부에 발탁되었다.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차출되어 성과를 거두었고, 인정도 받았다. 종종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일에 몰두했다가 어스름하게 여명이 밝아오면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행복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한없이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불행은 지나친 욕심과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갈구하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면 행복해진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면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된다. 건강도 좋아지고, 영혼이 맑은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좋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성공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버릴 때 비로소 채울 수 있다.
행복해지기 위한 마지막 관건(關鍵)은 나눔이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내가 누군가보다 무언가를 더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록펠러는 냉혹한 독점자본가라는 이유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로 지목된 적이 있었다. 그는 55세 때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마지막 검진을 받는 날 같은 병원에서 돈이 없어 입원을 거절당한 한 소녀를 돕고 난 뒤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실토하고 기부의 길로 들어섰다. 자선가로 놀라운 변신을 한 것이다. 그는 이후 44년을 더 살았으며 그가 설립한 록펠러 재단의 장학생 1만여 명 중 60명이 노벨상을 받는 위대한 일을 해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일은 자신의 기쁨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나는 가진 게 없어 남을 도와줄 수 없다’고 변명하며 나누는 일을 남의 일쯤으로 방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물이 마른 연못에 사는 물고기에게는 넘치는 강물이 아니라 한 동이의 물이 필요하듯이 한 끼의 밥, 한 번의 미소, 한 마디의 위로도 어려운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되는 법이다. 웃는 자와 함께 웃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사람들, 이런 휴머니스트가 많아진다면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주인공 카터 챔버스(모건 프리먼 역)는 이렇게 묻는다.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누군가 내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나도 다른 이들과 작은 기쁨이나마 함께 나누었다고 답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그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리스트를 실천해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은 중요치 않다. 바로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톨스토이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의 당신께 선을 행하는 일”이라고. 지금이라도 당신의 버킷 리스트가 작성되었다면 박차고 일어나 실행에 옮기라.
내 개인의 삶을 돌이켜보면, 나는 감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어린 시절 사회의 병리현상을 바로잡는 사람이 되고 싶어 법조인을 희망했고, 그 희망을 이루어 검사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나름대로 원칙과 정도를 지키고 살아온 결과 법무부 장관, 국가정보원장의 자리에도 오를 수 있었다. 그동안 받은 혜택을 국민께 돌려드리는 일 외에 특별히 욕심 부릴 일도 없다.
나는 공직생활 30여 년 내내 “어떻게 하면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국민의 ‘행복’을 화두로 삼고 살아왔다. 법무부 장관 재직시절에도 ‘행복국가 건설’을 비전으로 내세웠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지만, 재임 기간이 짧아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이룬 작은 업적조차 나 혼자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못다 한 일은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을 태우고 가는 가마꾼이라는 신념으로 공직을 수행했기에, 민간인으로 돌아온 후에도 행복국가 건설이라는 염원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마침 법무부 장관 퇴임 당시 직원들이 ‘김성호의 행복세상’이라는 홈페이지를 선물로 만들어주었다. 이에 힘입어 재단법인 행복세상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버킷 리스트에 가장 중요한 목표가 정해졌다. 바로 ‘행복국가 건설’이다. 지금은 NGO에서 일하기 때문에 행복세상 실현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 듯하지만.
행복국가, 즉 행복세상이란 정의의 실현, 경제적 번영, 국민의 안전 보장을 통해 국민 모두가 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의미한다.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나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 누구나 안전한 삶을 누리고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나라가 그 핵심이다. 이를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함께 법질서 확립이 꼭 필요하다.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자리 창출을 통해 파이를 늘려야 한다. 이념·지역·계층 간의 사회적 갈등도 발전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
이제 나는 내 버킷 리스트의 첫 줄이자 마지막 줄이 될 ‘행복국가 건설’에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한다. 재단법인 행복세상은 행복국가와 관련된 각종 법령, 정책, 규제에 관한 연구와 제안, 세미나와 포럼, 법질서 준수 운동, 사회적 약자 지원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행복포럼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이념의 확산과 여론 형성의 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다문화가정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으나 정부의 지원이 나눠주기 식 또는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문화가정, 특히 그 자녀들을 방치할 경우 미래사회의 장애로 다가올 수 있으므로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자녀 교육 문제에 중점적인 역할을 하고자 한다.
이러한 일들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전제로 한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가 재단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인 까닭이다. 물론 이런 일들이 몇 사람의 힘과 의지로 쉽게 이루어질 일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무언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공유하면서 동행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영화 버킷 리스트의 잭 니콜슨이 맡은 ‘에드워드 콜’은 자신과 함께 버킷 리스트를 실행한 카터 챔버스의 장례식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살아 있던 몇 개월이 나에겐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언젠가 내 삶을 마무리하는 날 누군가가 그렇게 이야기해주기를! 그리고 이 나라가 다함께 잘사는 진정한 행복국가로 거듭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