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호

중국의 부상浮上과 한반도 미래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입력2011-12-20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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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날 중국은 미국의 지위를 넘보는 패권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제력은 세계 두 번째이고 군사력과 과학기술 분야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과의 교역량도 날로 늘고 있다. 일본, 미국과의 교역량의 두 배를 넘는다. 한국은 대중(對中)교역 흑자로 대일(對日)·대미(對美) 적자를 메우고 있다. 북한의 경제적·군사적 중국 의존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중국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 지형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정인 교수의 강연회는 11월24일 오후 7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편집자>
    중국의 부상浮上과 한반도 미래
    반갑습니다.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은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입니다. 소설가 복거일 선생이나 박세일 선생은 중국의 부상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을 핀란드처럼 만든다는 거죠.(*이에 대해선 뒤에서 부연설명) 그런데 정말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한 번 검토해보지요.

    중국의 개혁이 시작된 건 1977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정권을 잡은 후 1979년 40개 원칙이라는 걸 설정하면서입니다. 이후 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빈곤과 저개발, 혼란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국가가 됐고, 현재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정도로 중국의 변화는 엄청나죠. 사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 이제 중국이 깨지는구나’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극복해냈어요. 2009년 건국 60주년 행사를 제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직접 봤는데 중국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하겠더라고요.

    패권적 부상

    지금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고 견제하려는 건 중국이 미국 말을 고분고분 잘 들으면서 기존 질서를 유지해주는 세력이 아니라 미국에 도전하는 국가로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수정주의 국가죠. 미국이 만들어놓은 기존 세계 질서를 바꾸어 새 질서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거든요. 만약 그렇다면 정말 큰 문제겠죠. 세계 질서가 바뀌는 거니까. 지금의 세계 질서는 대체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이 만들어놓은 겁니다. 가트(GATT), 즉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을 통해 자유무역 질서가 자리 잡았고 지금은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움직입니다. 미국은 또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통화체제를 만들어 달러를 기축 화폐로 삼아 세계 경제를 안정시켰습니다.

    미국이 만들어놓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중국이 바꿀 것인가. 이게 초미의 관심사이거든요. 미국이 걱정하는 건 중국의 단순한 부상이 아니라 패권적 부상입니다. 패권이라는 건 한 국가에 힘이 쏠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패권적 지도국가가 되려면 우선 힘을 갖고 있어야 해요. 힘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국력이라는 하드 파워입니다. 군사력, 경제력, 인구 규모, 영토 크기 등 눈에 나타나는 힘이죠. 둘째는 소프트 파워, 연성권력입니다. 문화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존경을 받는지 등이죠. 셋째는 스마트 파워입니다. 정부가 얼마나 정책을 똑똑하게 펴느냐. 국가의 힘이란 이 세 가지를 합친 거죠. 패권적 지도국가의 첫째 조건은 바로 이 국력입니다.

    그런데 힘만 있다고 패권적 지도국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두 번째는 의도입니다. 그 국가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또 정치적 의지도 봐야 합니다. 정권을 잡은 정치 지도자가 힘을 투사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능력과 의도와 정치적 의지를 가졌다고 해도 다른 국가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국제사회에서 수용해줘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그만큼 정통성이 있어야 하죠. 그 국가가 힘을 쓰지 않아도 다른 국가들이 알아주고 떠받쳐주고 그 국가가 원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춰야 패권적 지도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날 중국이 그런 능력이 있는가. 우선 국력을 볼까요.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해서 중국을 살렸습니다. 자본주의가 중국을 살린 거죠.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요즘 다른 얘기를 합니다. 1989년엔 중국이 사회주의를 살렸다고 주장해요. 소련을 포함해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가 다 망했는데 중국 홀로 사회주의 노선을 유지하면서 살아남았잖아요. 또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일어나 세계 자본주의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 누가 유일하게 굳건했습니까. 중국 경제만 살아남았거든요. 그래서 중국인들 말이, 중국이 자본주의를 살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회주의도 살리고 자본주의도 살렸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걸 보여주는 게 경제력이에요. 중국 경제력이 지난해 드디어 일본을 제치고 세계 두 번째로 커졌습니다. 국민총생산(GDP) 규모가 5조4000억달러 되거든요. 전엔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됐어요. 지금 미국의 GDP가 14조달러 될 거예요. 3분의 1 수준까지 따라잡은 거죠. 2017년 되면 중국 경제가 미국을 앞설 거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늦어도 2020년까지는 중국 경제 규모가 미국을 앞설 거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수출입니다. 2009년 이전까지는 독일이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였습니다. 2009년부터 중국이 독일을 앞질렀습니다. 한 나라의 부(富)를 측정할 때는 경제규모도 중요하고 수출도 중요하지만 외화보유고를 봐야 합니다. 우리가 1997년에 외환위기를 겪은 것도 외화보유가 간들간들했기 때문이죠.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화보유고를 자랑하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3조달러가 넘습니다. 그중 1조4000억달러는 미국에 잠겨 있습니다. 미국 국채와 공채를 산 거죠. 그뿐 아닙니다. 공적개발원조(ODA)는 아니지만 제3세계 국가들에 금융론과 차관을 가장 많이 주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의 불균형

    이런 점에서 본다면 가능성이 있죠. 이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GDP 5조달러라고 해도 13억 인구로 나눠보면 1인당 소득이 3000달러밖에 안 된다는 거죠. 전 세계 서열이 90위 정도밖에 안 돼요. 그게 현실이거든요. 그러니까 경제규모는 커지지만 내실을 짚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어쨌든 중국 경제가 뜨는 경제이고 최근엔 8% 이상 지속적인 성장을 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은 2%도 안 되고 일본은 제로 성장이지요. 중국 경제는 상승국면이고 중국과 견주는 국가들의 경제는 하강국면입니다. 중국 경제가 커진다는 건 우리에게 우려스럽기도 하지만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 군사력은 어떤가. 2010년 미국 국방비가 5700억달러입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쓴 전비를 뺀 순수 국방비만. 중국은 600억달러 쓴 걸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인민해방군의 인건비가 적은 걸 감안해 구매력으로 비교하면 중국의 군사비가 1219억달러입니다. 미국의 5분의 1쯤 쓰는 거죠. 그런데 지금 미국은 향후 10년간 국방비를 6000억달러 줄이려 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매년 600억달러를 줄이게 되는 거죠. 엄청난 감소죠. 반면 GDP가 계속 증가하는 중국의 국방비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죠.

    그간 중국이 군사비를 늘려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죠. 국방과학기술 수준이 낮으니까.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어요. 중국이 유인우주선을 발사하고 우린 계속 실패하고 있어요. 우린 무인우주선 발사에도 실패하는데 중국은 유인우주선 발사에 이어 도킹까지 성공했어요. 또 원자폭탄을 150개 이상 갖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지가 60개 된다고 합니다. 요즘엔 젠20이라고 해서 상대방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항공모함까지 진수했습니다.

    지금 미국 태평양 전력의 핵은 해군 전력이고 해군 전력의 핵심은 항공모함 전투단이에요. 항공모함에 호위함, 구축함, 잠수함, 헬리콥터까지 곁들여 엄청난 선단을 구축합니다. 그중 핵심은 항공모함이지요. 조지워싱턴호 같은 항공모함에는 해군 전투기가 70~90대까지 실립니다. 한국에 있는 미 7공군의 F-16 다 합쳐봐야 60대가 안 될 거예요. 그게 바로 힘이거든요. 이것과 정보정찰, 감시능력. 그런데 중국이 동풍이라는 대함탄도미사일을 개발했어요. 500~600㎞ 떨어진 데서 겨냥해 쏘면 오히려 항공모함이 엄청 취약해지거든요. 이런 것 때문에 미국이 걱정하는 거예요. 특히 놀라운 게 사이버 영역에서의 전투력 증강이에요. 전자전 능력이 엄청 향상됐거든요.

    그런데 소프트 파워는 좀 문제가 있어요. 중국이 아직 영어권 또는 서구의 문화문명을 능가할 실력은 안 되거든요. 반면 스마트 파워 면에선 중국이 미국보다 유리한 것 같아요. 지금 워싱턴은 완전히 동맥경화에 걸려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선 되는 게 없어요. 프란시스 후쿠야마 같은 역사학자는 이를 비토크라시(vitocracy)라고 표현했지요. 비토와 데모크라시를 합쳐서요. 거부 민주주의. 고용 확대정책도 공화당 반대 때문에 못해요. 반면 중국은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결정하면 당과 군, 국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요. 그 점에서 미국보다 유리할 수 있다는 거죠.

    심각한 양극화

    이렇게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 스마트 파워를 놓고 보면 중국이 과거 어느 때보다 향상된 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저는 중국이 미국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GDP 규모가 커졌어도 미국의 경제력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입니다. 군사력도 마찬가지고. 과연 미국을 넘어서는 패권적 지도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는가. 전 회의적입니다. 지금 미국은 68개 국가와 동맹 또는 준동맹을 맺고 있어요. 45개 국가에 미군이 파견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군사력은 동맹국 군사력을 합쳐서 봐야 해요. 중국의 동맹 국가는 하나밖에 없어요. 파키스탄. 북한도 동맹국이 아니에요. 해외에 나가 있는 병력은 전혀 없어요. 동맹도 한 국가의 힘을 키우는 수단이라고 본다면 중국은 미국과 비교할 수도 없는 거죠.

    두 번째, 중국은 정말 패권적 지도국가가 될 의도가 있나. 기본적으로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공식라인, 이른바 관방라인은 화평발전(和平發展), 화평굴기(和平·#54366;起)예요.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는 거죠. 이유는 뭔가. 그건 제 책(‘중국의 내일을 묻다’)에 있는 쩡피전 선생 인터뷰에 잘 나타나 있어요. 덩샤오핑의 그 유명한 남순강화(南巡講話) 초안을 잡은 사람입니다.

    이분 얘기는, 앞으로 50년 동안 인민의 삶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중국 공산당의 미래가 없다는 겁니다. 지금 중국은 엄청난 양극화 현상에 신음하고 있어요. 연안과 내륙의 양극화, 중앙과 지방의 양극화, 소득과 부의 양극화, 남성과 여성의 양극화. 이걸 극복하지 않으면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이 사라지고 미래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성장을 하면 뭐하는가. 13억 인구 중에 8억이 거의 절대빈곤 속에 살아가는데. 큰 도시를 가면 중국이 대단한 것 같지만 시골 가보면 40~50년 전과 달라진 게 없어요.

    개혁개방 후 중국 사회엔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어요. 그거 근절하지 못하면 인민의 지지를 못 받아요. 그리고 갑자기 중국 사회가 소비사회가 됐어요. 누구나 다 차 한 대 갖고 싶어하죠. 이 엄청난 소비 욕구를 만족시키려면 엄청난 자원이 필요해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자원대국으로 여기고 석유와 석탄을 수출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수입할 판이에요. 소비가 늘어 자원을 자꾸 투입하다보니 환경문제가 생겨요. 지금 중국의 환경이 얼마나 악화됐는지 몰라요.

    지금 중국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와 모순,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는 평화관계를 유지하고 대내적으로는 사회적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게 후진타오의 조화사회론, 조화세계론입니다. 대내적 조화와 대외적 평화. 그게 바로 화평불기론이죠. 그렇게 내적, 외적 여건을 조성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는 게 중국 공산당의 목표인데 무슨 패권을 갖고 힘을 투사하고 군사력을 증강시켜 가느냐. 이건 말도 안 된다는 거죠. 문화혁명 때 지방에 가서 고생한 나이 든 사람들은 다 이런 생각에 동의해요. 지금 중국이 잘된다고 하지만 언제 또 고난의 시기가 올지 모른다. 겸손하자. 조심하자.

    국제사회의 불신

    반면 젊은 사람들은 생각이 달라요. 톈안먼 사건에 관련됐던 친구들, 특히 미국 가서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들은 정말 ‘거침없는 하이킥’이에요. 대표적으로 중국 칭화대 옌세통 교수를 들 수 있어요. 그 양반 얘기는 지금 중국이 좀 잘나가니까 주변국에서 중국 위협론을 펴면서 견제한다는 거죠. 옌세통 교수 얘기는 간단해요. 중국 위협론을 없애는 방법은 중국이 진짜 강해지는 길밖에 없다는 거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데 거기에 걸맞게 군사력이 강해지지 않으면 균열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그냥 까버려요. 도광양회는 ‘빛을 가리고 실력을 배양하라’는 거죠. 이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공식방침이었어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 견제를 피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이제 그런 시절이 지나갔다는 거죠. 노(No)라고 얘기하면서 당당히 살아가자는 거예요. 그런 정서를 가진 사람이 많아요. 내년에 시진핑이 주석이 되면 그게 가장 큰 과제가 될 겁니다. 덩샤오핑은 중국의 경제를 일으켰어요. 시진핑의 역사적 사명은 군사력 증강이라는 거죠.

    그런데 제가 보기엔 중국이 아직 답을 못 찾은 것 같아요. 중국이 갑자기 부상한 것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건 때문이거든요. 중국의 부상과 부(富)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거예요. 전혀 예상치 못한 겁니다. 대전략을 갖고 부를 이룩해 국가를 강하게 만든 게 아니라 어느 날 눈뜨니 세계적으로 유망한 국가가 된 거예요. 이런 점에 비춰 중국은 아직 패권적 국가가 되겠다는 의도를 갖지 않은 게 아니냐고 보는 겁니다.

    그럼 정치적 의지는 어떤가. 제 책에 진찬홍이라는 인민대 국제학원 부원장과 인터뷰한 내용이 있어요. 거기서 진찬홍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찬홍에 따르면 지금 중국에서 진정한 정치지도자는 두 사람밖에 없다는 겁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장쩌민 이후 모든 지도자는 한결같이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기술관료라는 거예요. 매사에 조심하고 사고 치지 않으려 하고 윗사람 눈치 보고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국가 발전을 위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거죠.

    마지막으로 국제사회가 중국을 패권적 지도국가로 받아들이겠는가. 이건 상당히 회의적이에요. 중국은 중국식 민주주의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 자유민주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와 부합하는가. 또 인권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사회에서 존중을 받을 수 있는가.

    일본, 미국 교역량 합한 것보다 많아

    중국의 비중이 너무 커졌어요. 무역을 보죠. 지난해 우리와 중국의 무역량이 2010억달러예요. 우리가 흑자입니다. 우리 관세 기준으로는 480억달러, 중국 관세 기준으로는 690억달러 흑자를 봤어요. 미국과 우리의 교역량은 800억달러밖에 안 돼요. 지난해는 우리가 55억달러 적자가 났어요. 일본과의 교역량은 880억~900억달러 됩니다. 거기서도 350억달러 적자가 났어요. 중국에서 600억달러 정도 벌어 대미(對美)·대일(對日) 적자 메우는 양상입니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만큼 중국 의존도가 높아졌죠. 23%쯤 됩니다. 미국과 일본과의 무역량 합해봐야 1700억달러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두 개를 더해도 중국과의 교역량보다 300억달러 적어요.

    그뿐 아닙니다. 지금 한국 기업체 4만개가 중국에 들어가 있습니다. 대부분 한국에서 중간재, 부품을 수입해 중국에서 조립해 팔거나 수출합니다. 한국 채권시장에도 중국이 깊이 파고들어와 있어요. 제주도는 중국 관광객이 없으면 문 닫을 판이에요. 바우젠 같은 회사는 한 번에 관광객 1만5000명을 보내죠. 회사 직원들입니다.

    지금 중국 경제가 8% 성장률을 보이는데 5%로 낮아진다면 가장 타격을 받을 나라가 한국입니다. 요즘 차이나플레이션이라고 해서 중국 물가가 올라가고 있어요. 역시 가장 타격을 받는 나라가 한국이에요. 싼 물건은 다 중국에서 사오잖아요.

    그뿐인가요? 6자회담 의장국이 중국 아닙니까. 북한 핵 문제를 푸는 길은 제가 보기엔 6자회담밖에는 없어요. 그러니까 중국과 잘 협력해 이북 아이들 설득해 핵무기를 못 만들게 해야 합니다.

    중국은 휴전협정 당사자이기도 해요. 휴전협정 당사자는 세 국가입니다. 북한, 중국, 미국.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을 반대했기 때문에 한국은 서명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국은 법적 당사자가 아니에요. 대신 실질적 당사자라는 표현을 쓰죠. 우리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려면 휴전협정 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럼 종전선언을 해야 하는데 중국이 참여할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동북아 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함께 만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요. 키신저가 말한 대로 미국과 중국이 양자지도체제로 아시아태평양과 동북아의 안보경제 질서를 만들어 간다면 결국 그들이 우리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겁니다. 북한은 중국 의존도가 더 높죠. 교역의 8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생필품과 석유가 안 들어오면 아예 생존할 수 없는 국가예요. 그러니 군사적으로는 더 의존하죠. 그 점에서 중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봐요.

    어떤 중국 학자에게 “당신들, 북한을 동북4성으로 편입하려는 것 아니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북한 경제가 좋으면 편입하겠지만, 우리가 한참 돈 갖다 박아야 할 텐데 뭐 하러 편입하겠느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더라고요. 하여간 북한 경제는 지린(吉林)성, 랴오닝(遼寧)성, 헤이룽장(黑龍江)성이라는 동북3성 경제권에 포함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도 중국 경제가 활성화되면 발해만 경제권 틀 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아요. 아, 산둥(山東)성만 해도 인구가 얼마입니까. 거의 9000만입니다. 게다가 톈진(天津) 자치시와 다롄(大連), 랴오닝 일부를 포함하면 그것만으로도 한국과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어요.

    북한 급변사태와 중국의 역할

    이렇게 보면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거죠. 중국과 한국, 일본은 경제통합을 하지 않더라도 지리적 근접성과 상호의존성 때문에 자연적으로 경제지대를 형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하든 안 하든 3국의 경제는 분리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잘 다루느냐가 관건이죠. 요즘 한중 관계가 어렵죠. 천안함 사건 때나 연평도 사건 때 중국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천안함 때는 “북한이 안 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인정하겠느냐”고 했죠. “김정일이 두 번씩이나 후진타오 주석한테 안 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북한과 혈맹관계이고 그 지도자가 안 했다고 하는데 북한이 했다고 어떻게 동의해줄 수 있느냐”고. 그래서 우리 편을 못 들어줬죠. 연평도는 교전이었다고 말합니다. 객관적인 자료까지 내놓으면서.

    북핵 문제도 그래요. 우리는 북한을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중국은 안보리 결의안 내에서만 하자고 해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안 된다는 거죠. 이렇게 보면 한중 사이가 안 좋은 셈이에요. 제가 그 이유를 추정해보니 이렇습니다. 첫째는 동맹문제입니다. 현 정부에서 한국은 미국과 전략동맹을 맺었습니다. 신뢰동맹이고 특히 가치동맹입니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가치동맹. 그 같은 가치를 가진 국가들끼리 협력해가겠다는 뜻입니다. 한국 일본 미국 호주 뉴질랜드 인도 이런 국가끼리 협력해간다고 하니 중국이 보기엔 ‘이거 완전히 우리를 포위하고 견제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6자회담 문제도 그래요. 우리 정부에서 ‘비핵개방 3000’을 내세워 북한 핵 문제를 우리가 풀겠다고 선언했어요. 그래서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공동성명이라든지 2·13합의를 사실상 무효로 만들어버렸어요. 중국은 후진타오 주석 취임 이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외교정책이 6자회담입니다. 그런데 이걸 막아놓았으니. 미국이 우리와 동맹이라는 점도 중국을 불편하게 하죠.

    더 큰 문제는 아마도 이것일 거예요. 북한 급변사태와 붕괴. 북한에 곧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이고 그러면 붕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미연합군 전력을 투입해 북한을 안정화하겠다는 게 우리의 구상입니다. 군에선 그런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한미 특전사 쪽에서 준비를 하고 있어요.

    여기에 중국을 포함시키려 했어요. 왜냐하면 중국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니. 그래서 중국을 전략회의에 초청해 북한에 급변사태가 나고 붕괴 가능성이 생길 때 한국, 중국, 미국 3국이 어떻게 공동대처할지 논의하려고 했는데 중국 쪽에서 노(No) 했죠.

    첫째,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적고 설령 일어나도 북한이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일·김정은이 물러나면 군부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서든지, 심지어 민중봉기가 발생하더라도 주권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라는 게 중국의 판단이에요. 제가 그 사람들 인터뷰해보니 그렇더라고요. 그러니까 문제가 있죠.

    다자안보 질서냐, 한미동맹 강화냐

    다음으로 중국이 섭섭하고 떫게 생각하는 게 우리 정부가 미국과 너무 가깝다는 거죠. 우리가 워싱턴 통해서 자꾸 중국에 압력을 넣으니 우리가 더 미운 거예요. 미국하고만 워싱턴하고만 통하면 만병통치처럼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아닌 걸로 드러나버렸죠. 요즈음은 미국 사람들이 한국을 대신해 얘기도 못하죠.

    그 다음에 우리가 북중관계를 너무 간과했던 것 같아요. 과소평가한 겁니다. 1992년에 한중수교하지 않았어요? 중국이 우리한테 1990년대 중반까지 얼마나 많이 의존했습니까. 중국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한국이 많이 도왔지요. 그래서 북중관계는 완전히 끝난 걸로 봤죠. 그러다 최근 반전됐어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첫째, 중국 젊은이 22만8000명이 6·25 때 전사했어요. 그때 미국 병사 4만명이 희생됐죠. 22만8000명이 죽은 것에 대한 그들의 기억이 아직 생생해요. 오죽하면 시진핑이 6·25-중국에서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해요- 참전용사들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그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까지 얘기했겠습니까.

    또 북한 군부와 인민해방군 사이가 매우 좋아요.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핵심 멤버들도 북쪽에 가까운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군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 4월 리창춘 외교 담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중국과 북한의 우호가 증진하는 것은 전략적 선택”이라고 처음으로 말했어요. 그러니까 한미동맹이 전략동맹으로 강화된 데 대한 대응책이라 볼 수 있는 거죠. 북한 광물자원을 중국이 싹쓸이하고 있어요. 이런 걸 봤을 때 북중관계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밀접하고 그걸 우리가 간과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현 정세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박세일 선생과 복거일 선생은 한반도의 핀란드화를 주장합니다. 작은 국가인 핀란드는 러시아와 국경이 접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과 싸우긴 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엔 살기 위해 중도 노선을 취했는데 사실상 소련 편이 되지요. 그래서 주변 국가들은 핀란드가 결국 소비에트화했다고 말하지요. 핀란드화했다는 건 강대국 옆에 있는 약소국이 강대국 입김을 받으며 좌지우지되는 걸 말합니다. 지금 중국 앞의 북한이 그렇다는 거죠. 중국에 대한 북한의 핀란드화가 이미 이뤄졌다는 얘깁니다. 만약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약화되면 한반도 전체가 핀란드화할 거라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죠. 그래서 더욱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결국 제2의 냉전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 남방 3각 세력과 북한, 중국, 러시아 북방 3각 세력이 맞붙는 구도. 반면 국제질서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고 현상유지가 좋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미국과도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거죠. 한국이 나서서라도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를 좋게 만들어 동북아의 다자안보 질서를 만들자는 주장입니다. 한중일 3국 간에 FTA 체결하고 북한도 빨리 개혁·개방시켜 유럽과 같은 질서를 동북아에도 만들면 굳이 동맹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중국의 부상浮上과 한반도 미래
    문정인

    1951년 제주 출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미국 메릴랜드대 정치학 석·박사

    미국 켄터키대 정치학과 조교수·부교수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글로벌아시아 편집장,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민간위원


    어느 쪽으로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정치적 결단과 관련돼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가급적 다자안보 질서를 통해 동맹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현 정부에서는 그것을 위태롭게 보죠. 중국이 부상할수록 오히려 미국에 모든 걸 거는 게 현명하다는 주장이 있죠. 아직 불투명해요. 아마 내년 대선에서 이런 게 중요한 외교안보 이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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