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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의 재구성’, 이인제 의원 수뢰사건의 경우

오만과 편견의 덫에 걸린 ‘거물급 유죄 만들기’

‘수사의 재구성’, 이인제 의원 수뢰사건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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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김씨는 검찰수사 초기부터 원심의 변론 종결시까지 9600만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밝히지 않은 터였다. 김씨는 2004년 8월12일 검찰조사에서는 골프장 회원권 계약금 2600만원의 출처가 아버지의 돈이라고 강변했다가 자신이 4000만원을 아버지 계좌에 송금한 사실이 금융거래내역 조회 결과 새로 드러나자 10월7일엔 자신의 돈이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그러다 2005년 1월엔 9600만원을 장인에게서 받았다고 또다시 말을 바꿨다. 정당한 자금의 흐름이라면 이렇게 진술을 자주 바꿀 이유가 없다.

검찰은 1심 판결 선고 전에 김씨에게서 9600만원이 입금됐던 통장을 제출받았는데도 사건과 무관하다고 생각해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현금 9600만원의 출처를 둘러싸고 이같이 갈팡질팡하던 진술은 결국 김씨의 기존 진술의 신빙성마저 현저히 떨어뜨려 항소심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의 증거는 피고인(이인제 의원)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김윤수씨의 진술뿐인데 한나라당 관계자와 김씨, 피고인 사이에서 돈을 전달한 경위나 시점 등이 불명확해 김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김씨는 한나라당으로부터 받은 5억원 중 2억5000만원을 가로챈 뒤 자신의 돈 1억원을 합쳐 은행 대출금을 갚았다고 주장하지만 1억원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항소심에서 드러난 9600만원을 대출금 변제액 3억5000만원과 합치면 김씨가 한나라당으로부터 받은 5억원에 거의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횡령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씨가 자신의 죄를 가볍게 하려 허위진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횡령의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제2호에 의거해 3년 이상 15년 이하의 유기징역(반면 이득액이 5억원 미만이면 형법 제355조 제1항에 따라 단순횡령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김씨가 자신의 변호인 등을 통해 이미 인지한 상태여서 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일견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의원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그 범행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증거가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원심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사실을 오인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저지른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수뢰사건, 줄줄이 무죄선고

이인제 의원 수뢰사건의 수사 및 공소유지를 담당했던 Y검사는 “이 의원의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이 정당하다는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이 의원측에 2억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김윤수씨의 진술엔 신빙성이 있었으나 이 의원측은 계속 혐의를 부인하면서 묵비권을 행사하기도 했다”며 “법원이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해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리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검찰로서는 사실상 수뢰사건 수사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5억원 중 2억5000만원을 김윤수씨가 개인 채무 변제에 사용했고, 그 나머지인 2억5000만원에 근접하는 출처가 불분명한 돈의 존재가 김씨와 그 주변인물들의 금융거래내역 조회를 통해 드러났다. 검찰은 이 돈이 김씨의 차명계좌와 장인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하고, 변호인들은 한나라당에서 받은 돈이라고 팽팽히 맞섰다. 구속영장실질심사 당시 흘린 ‘이인제의 눈물’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그 자신과 김씨만이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이 의원에 대한 항소심 무죄판결에서 보듯, 이제 정치인 수뢰사건 수사에서 공명심을 앞세운 검찰의 ‘한건주의’는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의원에 대한 무죄판결 외에도 박광태 광주시장의 현대 비자금 3000만원 수수, 조희욱 전 자민련 의원의 불법정치자금 3000만원 수수, 최기선 전 인천시장의 3000만원(대우그룹) 수수,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의 150억원(현대그룹) 수수 혐의가 모두 돈을 줬다는 ‘공여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줄줄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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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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