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행 대변인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에 교육부 업무보고가 예정됐던 3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MB) 정부의 대표적인 입시정책인 입학사정관제 폐지 방침을 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검토한 바 없다”는 짤막한 해명자료를 내놨다. 하지만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교육부가 7~8월경 입학사정관제 폐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얘기가 이미 흘러나왔다. 정부 정책을 컨트롤하는 청와대에 이를 확인해보라는 데스크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비서관들이 그렇듯 교육비서관 역시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3시간이 지난 뒤 교육비서관으로부터 “누구신가요?”라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교육비서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라는 귀에 익은 기계음이 들려왔다. 이어 소속과 이름을 밝힌 뒤 “입학사정관제와 관련해 문의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콜백을 기다렸다. 하지만 교육비서관과의 통화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엔 “기자들과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장면 #2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내정 철회 요구가 이어지던 어느 날. 새누리당의 한 고위당직자가 당을 출입하다 청와대로 출입처를 옮긴 기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가장 핫(hot)한 이슈가 윤 내정자 거취 문제였던지라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다. 윤 내정자가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펴던 이 당직자는 대뜸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뭐하는 거냐? 기자들이 이런 의견을 잘 전달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출입기자가 무슨 힘이 있느냐” “통화도 안 되는데 의견 전달은 무슨…” “청와대보다 당 출입할 때가 훨씬 좋았다”는 하소연이 쏟아졌다. 대화의 주제는 청와대의 ‘언론 기피증’으로 이어졌다. 기자들의 불만에 귀 기울이던 당직자는 “새 정부 출범 초기라 아직 청와대 세팅이 끝나지 않아서 그렇다. 조금만 기다리면 원활하게 소통이 될 것”이라며 달랬다.
장면 #3
4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북측 노동자를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하는 등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로 불렸던 개성공단이 폐쇄 위기에 처한 급박한 상황이라 모든 언론의 관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내용에 쏠렸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어제 그동안 멀쩡하게 잘 돌아가던 개성공단 조업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또 “위기를 조성한 후 타협과 지원을 얻어내는, 여태까지 끝없이 반복된 악순환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겠나”라고 한탄했다. 그동안 북한의 도발 위협에 강경한 대응 의지를 밝혀온 박 대통령이지만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해왔던 터라 그의 발언 내용이 다음 날 각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문제는 헤드라인을 장식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해석이 매체마다 제각각이라는 데 있었다. 한 언론은 박 대통령이 자신의 대북정책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수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놨고, 다른 언론은 박 대통령이 북한을 비판하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유지할 것이라는 정반대의 해석을 내놨다. 안보위기 상황에서 나온 박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를 둘러싼 이렇듯 들쑥날쑥한 보도 내용은 아침마다 열리는 홍보수석실 회의 안건으로도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아니라 작가”
요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자주 하는 농담 가운데 하나가 “앞으로 나를 ‘기자’라 부르지 말고 ‘작가’라 불러달라”는 것이다. 기자라면 팩트(fact)를 열심히 취재해서 기사를 쓰는 것이 사명이지만,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출입기자는 취재를 하기가 워낙 어렵다보니 기사 작성보다 작문에 능하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다.
출입기자들이 취재에 애를 먹는 가장 큰 이유는 ‘장면 #1’의 경우처럼 주요 취재원과의 전화통화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통화에 성공해도 “말할 수 없다” “모르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이다. 수석비서관이나 비서관 등 주요 취재원을 만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기자들의 취재공간인 춘추관이 청와대 한 켠에 별도공간으로 마련된 데다, 청와대 비서동에 직접 들어가 취재할 수도 없다. 청와대 출입기자라기보다 ‘춘추관 출입기자’라는 표현이 더 낫다. 취재원을 만나 취재 기회로 활용해야 할 점심시간에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춘추관 구내식당과 운동시설, 주변 공원에서 어슬렁거리는 현실은 요즘 청와대와 출입기자 사이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