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기관 배정, 시·도간 낙후도 차별성 무시한 정치적 고려
- ‘업무효율 저하’ 운위하는 자체가 수도권 중심적인 시각
- 나도 한나라당 소속이지만, 이번 배치방안은 청문회 대상 아니다
- 시·군간 이전기관 분산배치 경쟁은 무의미
- 도권 규제 완화? 수도권엔 ‘현찰’ 주고 지방엔 ‘어음’ 주는 격
발표 직후, 대형 공공기관 유치에 사활을 걸었던 광역자치단체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면서 반발도 없지 않았다. 가장 반발이 거센 곳은 부산. 허남식 부산시장은 발표 당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지난 5월 공공기관 이전 대상 12개 시·도지사와 합의한 기본원칙을 아무런 협의 없이 바꿈으로써 부산에 이전될 공공기관에 토지공사가 빠진 데 대해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모든 지자체가 눈독을 들인 한국전력공사를 배정받은 광주와 토지공사를 가져가게 된 전북은 ‘표정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혁명적인 국가 프로젝트
정부는 2012년까지 공공기관 이전작업을 완료할 방침이다. 우선 전문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의 용역결과를 바탕으로 혁신도시 입지 선정 기준을 7월말까지 각 시·도에 제시하고, 시·도는 정부의 원칙과 기준, 이전대상 기관의 의견을 수렴한 뒤 정부와 협의해서 9월 말까지 혁신도시를 선정하게 된다. 혁신도시 입지가 선정되면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할 예정이다. 또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는 공공기관 이전 예정지역의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인·허가, 용지보상 및 사옥설계 등 이전에 따른 제반절차가 완료돼 빠르면 2007년 후반부터 혁신도시 건설공사가 시작된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상 이제부터다. 이전될 공공기관과 해당 지역의 산·학·연이 유기적으로 연계돼 지역발전과 혁신을 주도할 신도시인 혁신도시 선정을 두고 다시 한 번 일선 시·군간 물밑 유치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인 데다 부동산 투기 가능성도 상존하기 때문이다.
7월7일 김진선(金振 ·59) 강원지사를 만나 이번 발표와 관련한 얘기를 들어봤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위원장·성경륭)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의거해 설치된 정책자문기구. 위원은 30명이다. 김 지사는 전국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선 유일하게 지난해 7월부터 위원으로 참여해왔다.
이번 공공기관 시·도별 배치방안에 따르면, 강원도에는 관광산업, 생명·건강산업, 광업자원 관련 기능군에 각기 속한 한국관광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한석탄공사 등 13개 공공기관이 이전 배치된다.
-정부 발표에 전체적으로 만족합니까.
“수도권에 몰린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겠다는 정책은 우리 헌정 사상 최초로 시도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로서, 가히 혁명적입니다. 프랑스가 이를 시행한 선례가 있을 뿐,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죠. 그 내용과 성과에 대해 논란이 없을 순 없겠지만, 원래 시·도지사들이 목표로 한 것이 수도권 과밀집중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인 만큼,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함께 그러한 목표의 달성을 위한 선도적 수단이란 점에서 획기적입니다. 보기에 따라선 176개라는 숫자가 많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좀더 과감하게 더 많은 공공기관을 이전대상으로 삼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었어요.
공공기관 배치 면에서도 제가 보는 견지에선 전체적으로 불만족스럽습니다. 시·도별로 배치된 기관의 수와 총 종업원 수는 물론이고, 지역 산업과의 연관성 측면에서 과연 100% 적합성을 갖느냐 하는 점도 그래요. 특히 기관 수나 총 종업원 수를 보면 시·도간 차등이 거의 없어요. 당초 공공기관 이전을 논의할 때는 해당 시·도의 발전 정도를 충분히 고려한다는 방침이었는데, 이번 배치결과만 놓고 보면 낙후도를 감안한 차별화가 미흡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타 시·도와 비교할 때 강원도는 비교적 내실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수도권과 가까운 강원도의 지역적 특성과 이전을 원하는 기관의 의견을 적극 고려했더라면 더 많은 기관이 배치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국가 전체를 이끌어가야 할 정부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결과만 놓고 냉철하게 보면 울산 등 지역경제 여건이 좋은 곳에까지 적지 않은 기관을 배치한 건 정부가 시·도간 균형 배분이라는 공평무사한 정치적 고려를 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떤 기관이 강원도를 선호했습니까.
“석유공사, 가스공사 같은 경우가 그랬죠. 그 외에도 많았어요. 앞으로 자원과 관련해 발전 가능성이 높은 기관들은 기왕 이전할 바에야 강원도를 선택하고 싶다고들 했죠.”
대승적 차원에서 배정결과 수용
-이번 발표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시·도지사들이 김 지사에게 ‘어필’하는 사례는 없었나요.
“거의 없었어요. 발표 당일, 부산·전남 등 일부 시·도에서 기대에 못 미친다는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낙후도가 높아 종업원 수가 많은 큰 규모의 기관이 배치되길 바라던 전남의 경우, 인접한 광주에 가장 덩치가 커 ‘공공기관 이전의 몸통’으로 불린 한전이 배치되자 다소 볼멘소리를 한 거죠. 토공을 놓친 부산도 그렇고.
그러나 6월30일 이해찬 총리 주재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이번 배치방안을 대승적 차원에서 전면 수용키로 합의했어요. 정부에서 일정 기준을 설정해 일괄 배정하고, 시·도가 이를 따르기로 이미 양자간 협약을 맺었던 만큼, 배치결과에 대한 개별적인 만족·불만족을 떠나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수용한 거죠.”
-전국 광역자치단체장을 대표해 국가균형발전위 위원으로서 이번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을 심의했는데, 심의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나요.
“6월23일 열린 국가균형발전위 전체회의에서 ‘공공기관 이전 및 혁신도시 건설방안’에 대해 심의했어요. 이 자리에선 앞서 말했듯, 시·도간 낙후도를 고려해 기관 배정에 차등을 둬 형평성을 기해야 하는데 실제론 낙후도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죠. 또 배정의 원칙과 기준, 다시 말해 종업원 수라든가 비교표라든가 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도 나왔어요. 그래야 시·도 주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죠.
하지만 국가균형발전위 회의에선,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힐 순 있으나 그 기준이 하나의 답밖에 나올 수 없는 수학공식 같은 객관성을 담보하기가 힘들어 고민이 많았습니다. 큰일을 추진하는데 섣불리 공개했다가 자칫 또 다른 논란에 휘말릴 수 있겠다는 의견이 우세해 적정 시기에 밝히자는 데 위원들이 공감했습니다.”
-지방 일각에선 이번 배치방안이 ‘나눠 먹기’식이니, 정치적 고려에 치우쳤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치공세로 볼 여지도 있지만, 한나라당은 이번 배치방안에 대해 ‘정략적 나눠 먹기’라며 정책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저도 한나라당 소속이지만, 청문회 대상이 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정부의 결정방식에 시·도지사들이 합의했고, 배치결과도 다 수용했습니다. 배정작업 과정에 특별한 의혹이 있다곤 말할 수 없습니다.”
‘개별이전’은 제한적 허용
-이전 당사자인 일부 공공기관에선 지방으로 이전하면 업무효율이 떨어진다는 불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민원인을 자주 대하는 기관의 경우 그럴 수도 있을 법한데요.
“그런 불평은 당연히 나올 수 있죠. 하지만 그걸 이해하면서도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정말 어렵게 추진하려는 게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 아닙니까. 업무효율 면에서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익히 알고 시행하는 거잖아요. 게다가 ‘업무효율’을 운위하는 자체가 수도권 중심적인 시각에서 비롯되는 오류입니다. 공공기관 본사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쯤에 있다고 해서 지사들을 관할하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수요가 많은 지역엔 좀더 규모가 큰 지사를 설치하면 됩니다.
수도권에 있지 않아 업무효율이 떨어진다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세계 3대 자동차회사 중 하나인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본사가 독일 수도인 베를린에 있습니까? 인구 57만명인 슈투트가르트에 있어요. 공간적 거리와 업무효율의 연관성은 극히 미미합니다. 더욱이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이 발달해 전국 어디서나 업무를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어요. 1970년대에 대전으로 이전한 수자원공사도 정부의 경영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업무효율성에 대한 논란이 전혀 없습니다.”
-현재 일선 시·군 등 기초자치단체들은 공공기관 시·군 배정 문제로 여론이 분분합니다. 즉 공공기관의 집중배치냐 분산배치냐 하는 문제인데,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떻습니까.
“이미 갈등이 표출되고 있죠. 일부에선 지역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분산배치를 요구하지만, 이는 단순논리에 불과합니다. 이 문제는 시·도지사의 의지대로 임의적 기준을 마련해 배정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정부의 방침은, 공공기관 이전은 기본적으로 혁신도시를 건설해 이전토록 하는 겁니다. 다만 지역 특성과 이전 기관의 특수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개별이전을 제한적으로 허용할 방침이죠. 따라서 여러 시·군에 골고루 나눠줄 수 없게 돼 있어요.”
서울사무소 남발은 어불성설
-정부에선 시·도별로 1개씩의 혁신도시를 건설한다는 방침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또다시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 열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농후한데요.
“정부 차원에서도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 중 하나죠. 혁신도시 입지 선정 전에 예상 후보지는 주변지역까지 포함해 사전에 토지거래허가구역, 토지투기지역으로 지정해 토지수요를 철저히 차단하고, 입지 선정 후 예정 지역의 난개발 및 환경오염 방지 등을 위해 일정 기간 개발행위 허가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겁니다. 또 혁신도시 건설로 인해 개발이익이 발생할 경우 환수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죠. 참 못 말리는 게 부동산 투기입니다. 없는 말을 만들어서 땅값 올린 뒤 치고 빠지고….”
-일부에선 공공기관이 지방에 이전하더라도 대부분의 주요 업무를 서울사무소에서 처리하고, 지역은 본사라는 명목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것도 큰 걱정거리죠. 어제도 성경륭 위원장을 만나 그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어요.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면 그곳에서 모든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기본인데, 현재 각 시·도에 지사를 둔 기관으로 서울에만 지사가 없는 경우엔 서울을 관장할 지사 설치가 여건에 따라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포스코같이 본사는 포항에 있지만 서울에서 활동이 많은 기관의 경우엔 실질적인 본사 기능을 수행할 서울사무소를 설치하는 일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 차원에서도 정부에 이러한 점을 강력히 건의할 겁니다. 프랑스에선 수도권 과밀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1960년대 초부터 파리에 있던 공공기관 400여개(직원 5만명)를 지방으로 이전했지만, 제반 업무는 이전한 지역에서 수행하고 있어요.”
-공공기관 이전은 지방분권의 대표적 수단인데, 현재 지방 주민이 느끼는 분권의 체감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김 지사께선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지방분권특위 간사장도 맡고 있는데요.
“한마디로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것이 주민 여론입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와 공공기관 이전이 공동화현상이 심화된 지방 살리기의 전부는 아닙니다. 정부는 지방분권을 주요 국정과제로 설정한 이래 지난 2년여 동안 ‘분권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개별과제를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지방분권을 이루기 위한 47개 과제 가운데 현재 예산편성지침·지방양여금 폐지, 주민투표법 제정 등 겨우 7개 과제만 완료된 상태입니다.
게다가 자치경찰제·교육자치제 도입, 특별지방행정기관 정비 등 진행 중이거나, 국세와 지방세 조정, 지방세의 신(新)세원 확대 등 계획 중인 과제가 훨씬 더 많은데, 그 진행이 늦어지고 내용도 축소·변질되는 등 본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렇게 지지부진한 이유는 정부의 분권의지가 점차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중앙부처 공무원의 반발과 저항도 한 이유고요.”
수도권 ‘공룡’화 막아야
-수도권 일각에선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이 발표된 후 ‘수도권 소외론’을 명분으로 추후 수도권 규제를 전면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특히 열린우리당 쪽에서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수도권의 상실감을 우려해 수도권 발전대책 마련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데요.
“최근 수도권 규제 완화와 관련해 심각한 움직임이 두 가지 있습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연계해 수도권 규제를 단계적으로 개혁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도권발전대책’ 발표(6월27일), 그리고 수도권과 중앙정치권 일각에서 차제에 수도권 규제를 전면 철폐하려는 움직임이 다른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 정책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아직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계획 발표단계인 상태에서 수도권 규제를 철폐한다면 공공기관 이전 효과를 반감시킴은 물론 지방의 공동화, 수도권의 ‘공룡’화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악순환을 초래할 겁니다. 이거야말로 수도권엔 ‘현찰’ 주고, 지방엔 ‘어음’ 주는 격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따라서 공공기관 이전작업이 완료돼 지방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기왕의 수도권 과밀 억제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랫돌 빼내 윗돌 괴는’ 식으로 가면 두 정책 다 실패하고 맙니다. 그런데도 이른바 국가경쟁력이란 이름으로 수도권 규제 철폐를 외치는데, 국가 백년대계를 놓고 정치적으로 가선 안 됩니다. 소신대로 해야지 그때그때의 표심을 의식해 정치적 고려를 하면 나라꼴을 완전히 망치는 겁니다.”
-수도권 규제 철폐 문제와 관련해서 지금껏 비수도권 시·도지사들은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는데,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겁니까.
“비수도권 시·도지사뿐 아니라 시장·군수, 시·군의회, 각 경제주체 등 비수도권의 모든 주체가 이제 한목소리를 낼 겁니다. 아주 강력한 반대운동을 펼쳐나갈 겁니다. 과도한 집중은 필연적으로 병리적 현상을 동반하게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