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호

이회창 대선자금 ‘목격자’ 이두아 변호사 전격 증언

“昌측, 대선잔금 세탁하고 ‘이수연 보호’ 위해 검찰진술 조작”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8-03-10 15:1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삼성 채권, 수연씨 친구 5개 차명계좌로 현금화”
    • “이회창 가족이 대선잔금 보관·사용” 논란
    • “검찰 수사 앞두고 ‘이수연’이 ‘서정우’로 둔갑”
    • “가공의 인물, 시점, 장소, 정황 꾸며 말 맞추기” 논란
    • 핵심인사 “대선 자금, 한복 구입에도 사용”
    • 강훈 “서정우, 삼성 채권 교환한 수표로 昌 여비 제공”
    • “대선자금 보관한 적도, 사용한 적도 없다”
    이회창 대선자금 ‘목격자’ 이두아 변호사 전격 증언
    검찰은 2004년 5월 ‘2002년 대선자금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823억2000만원이고 민주당의 불법 대선자금은 113억8700만원이라고 밝혔다. 이후 한나라당은 24억7000만원, 민주당은 6억원이 추가로 드러났다.

    당시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은 삼성 측이 준 대선자금 324억7000만원 중 선거운동에 사용하고 남은 잔금 138억원(무기명 국민주택채권)을 이회창 전 총재의 최측근인 서정우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서 변호사는 대선 당시 삼성으로부터 대선자금을 직접 받아 한나라당 측에 전달한 당사자였다.

    서 변호사는 대선 잔금 138억원을 당시 삼성 구조조정본부 김인주 사장에게 반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검찰 조사결과에는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자금의 모금-사용-잔금 반환에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돼 있었다.

    이회창 측의 ‘시사IN’ 고소

    이후 검찰은 삼성이 2000년 10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전 삼성증권 직원 최모씨 등을 통해 명동 사채시장 등지에서 사들인 국민주택채권 837억원어치를 밝혀냈다. 이중 2002년 대선에 사용된 채권은 361억1000만원 정도(한나라당 324억7000만원, 민주당 21억원, 자민련 15억4000만원)여서 나머지 443억3000만원의 용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었다. 한나라당 측이 대선자금을 모두 선거운동에만 사용했다는 점을 믿을 수 없다는 의혹, 검찰 발표보다 더 많은 대선잔금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노무현 대통령 측에 대해선 한나라당에 비해 기업체로부터 받은 돈이 지나치게 적다는 의혹이 여러 언론에서 제기됐다.



    이회창 전 총재가 지난해 11월 한나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하자 2002년 대선자금 관련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이런 가운데 시사주간지 ‘시사IN’은 제11호, 제12호 기사에서 “이회창씨가 2002년 대선잔금을 직접 보관하고 그 중 일부를 사용했다”는 주장을 기사화했다.

    ‘출국금지’와 ‘고소취하’

    이 전 총재 측은 기사 작성자인 고재열 기자를 ‘공직선거법상 선고보도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공안1부는 기사의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대선잔금 유용 의혹에 대해 수사했다.

    그런데 검찰은 2008년 1월28일 이 전 총재의 차남 수연씨와 서정우 변호사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고소인 측에 대한 출국금지는 이례적 조치였다. 당장 이 전 총재 측은 “(자유선진당) 창당 방해공작”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한편으로 이 전 총재 측은 1월26일 고 기자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검찰은 고소 취하와 관계없이 대선잔금 유용의혹 부분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 문제는 대선잔금 의혹의 확산, 정치보복 논란 등 쟁점이 되고 있다. 상당수 언론 보도는 검찰이 출국금지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있는 점을 근거로, ‘정치보복’ 주장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회창 대선자금 ‘목격자’ 이두아 변호사 전격 증언

    이두아 변호사.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는 2월12일 두 당의 공식 합당(자유선진당)을 선언한 기자회견자리에서도 “대선잔금 수사는 사법사건으로 포장된 한나라당의 정치보복이며 정치탄압”이라고 맹비난했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재는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2002년 대선자금을 남겨 쓰거나 보관한 사실이 전혀 없다. 지난 대선자금 수사에서 다 조사되고 재판까지 끝난 일”이라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 총재는 ‘시사IN’에 대한 고소 취하에 대해서는 “추후 잡지사에서 사실과 다르다면서 유감을 표명했다. 기자도 마감에 쫓겨 그랬다며 취하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사IN’의 반응은 달랐다.

    ‘시사IN’은 이 총재 측의 고소 취하 이후(1월30일)에 발행된 기사에서 “이수연과 서정우를 조사해야 한다”면서 의혹의 강도를 오히려 더 높였다. 이 기사는 “이회창 총재 측의 반론을 들어줬을 뿐 기사의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한 적은 없다. 고소 취하를 종용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고재열 기자는 “이회창 총재 측이 갑자기 고소를 취하한 것은 이 총재의 차남 이수연씨와 대선자금 담당자였던 서정우 변호사에 대한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 때문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총재는 2월12일 기자회견에서 검찰 수사와 관련해 한나라당을 향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이 총재는 “검찰이 참고인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특보를 지냈고 대선 후 한나라당의 전국구 공천을 받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모 인사(이두아 변호사를 지칭)이며…”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고재열 기자, 이수연씨를 소환조사했으며, 12월12일부터 1월 초순까지 총 5회에 걸쳐 이두아 변호사를 조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판도라의 상자’ 열렸다

    이두아 변호사는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서정우 변호사를 위해 일했으며,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의 인권특보로 임명됐다. 이 변호사는 “내가 2002년 이회창 후보의 대선자금 사용 내역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라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11월8일 이회창 총재 대선자금 폭로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돌연 취소한 바 있다.

    ‘이회창, 대선잔금 유용’ 의혹 보도, 이회창 총재 측의 고소, 검찰의 이례적인 고소인 측(이수연씨, 서정우 변호사) 출국금지, 이회창 총재 측의 이례적인 고소 취하, 이회창 총재 측의 정치탄압 주장, 검찰의 침묵이 이어지면서 ‘이수연-서정우 출금’ 사건은 4월 총선 정국의 핵으로 급부상했다.

    ‘신동아’는 왜 이러한 이상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법조계와 정치권을 대상으로 총력 취재한 결과, 몇 가지 중요한 자료와 증언을 입수했다. 또한 취재 과정에서 2002년 한나라당 대선자금 문제 전반을 아우르는 세세한 스토리를 확보했다. 2002년 대선자금 의혹의 구체적 실체를 담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우선 ‘신동아’는 ‘이수연-서정우 출금’의 계기가 된 정모(39)씨의 2004년 3월10일자 검찰 진술조서를 입수했다. 정씨는 최근 검찰에 한 차례 소환된 뒤 이수연-서정우 출국금지 조치 직전 중국으로 출국해 귀국하지 않고 있다.

    진술서에서 정씨는 “2002년 11~12월 경 서정우 변호사로부터 부탁을 받고 국민주택채권 액면금 7억5000만원을 현금 5억원을 주고 매입했다가 2003년 여름 경 지인인 윤모씨, 이모씨, 박모씨, 유모씨, 차모씨 등 5명 명의의 계좌를 통해 매각해 현금화했다”고 밝혔다.

    당시 정씨는 모 회사의 차장으로 근무 중이었는데 검찰 진술조서에서 ▲서정우 변호사를 알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법무법인 광장에서 일하는 이두아 변호사를 통해 2002년 가을 무렵 같은 법무법인 소속인 서정우 변호사를 소개받아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두아 변호사를 알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저는 약 10년가량 증권회사, 무역회사 등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던 중 2000년경부터 프랜차이즈 제빵 회사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회사설립을 준비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던 중 2002년 가을 무렵 법무법인 광장에 소속된 이두아 변호사를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5개 차명계좌로 세탁 의혹

    이회창 대선자금 ‘목격자’ 이두아 변호사 전격 증언

    2004년 5월21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9개월간의 불법대선자금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어 정씨는 ▲서 변호사로부터 국민주택채권을 매입한 경위에 대해서는 “2002년 11월 말경 서울 중구 장충동 타워호텔 커피숍에서 서정우 변호사로부터 ‘국민주택채권 10억원어치를 매입하면 돈이 될 것’이라는 권유를 받고 채권 7억5000만원어치를 현금 5억원에 매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채권과 현금을 교환한 경위에 대해서는 “2002년 12월 초순경 타워호텔 앞 지상 주차장에서 채권 7억5000만원어치를 서 변호사로부터 먼저 받은 뒤 3~4일 간격으로 같은 주차장에서 현금 2억원, 현금 3억원을 서 변호사에게 줬다”고 했다.

    정씨는 채권 7억5000만원어치를 되팔아 현금화한 경위에 대해서는 ▲2003년 6~8월 총 5회에 걸쳐 5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하여 채권을 매각해 현금화했다고 밝혔다(2003년 6월24일 지인 윤모씨 명의 차명 증권계좌에 채권 1억원을 입고하여 매각, 7월14일 이모씨 명의 차명 증권계좌에 채권 2억3000만원을 입고하여 매각, 7월18일 박모씨 명의 차명 증권계좌에 채권 1억원을 입고하여 매각, 7월30일 유모씨 명의 차명 증권계좌에 2억 5000만원을 입고하여 매각, 8월26일 차모씨 명의 차명 증권계좌에 7000만원을 입고하여 매각).

    정씨의 진술에는 ‘이두아’라는 실명이 거명된다. 이 변호사는 정씨의 채권 매입 과정에서 결정적인 연결고리다. ‘신동아’는 당사자인 이 변호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던 이 변호사는 여러 날 고심하다 응했다.

    이 변호사는 이중적 지위에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회창 총재 측 대선자금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이너서클의 멤버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선대위 소속 인사였다. 발언 내용이 파괴력도 높고, 동시에 편향성도 높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신동아’는 본인이 직접 보고 듣고 행동한 이 변호사의 ‘체험적 증언’만을 발췌해 소개하기로 했다.

    우선 정모씨의 검찰 진술서 검토 결과, 정씨가 바꿔준 채권 7억5000만원어치는 모두 2002년 한나라당 측에 불법대선자금으로 건네진 삼성 채권이었다. 이는 진술서에서 검찰이 “서정우 변호사는 채권을 팔면서 대금은 모두 현금으로 달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채권은 16대 대선을 앞둔 불법적 정치자금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은밀히 현금으로 팔았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질의하는 대목에서도 확인된다.

    정씨가 서정우 변호사로부터 사들였다는 삼성 채권을 5명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현금화한 부분에 대해선 ‘자금세탁’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 규모(7억5000만원)도 큰 편이다. 정씨가 2008년 1월 검찰 수사가 재개된 직후 중국으로 출국한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이두아 변호사는 “정씨의 진술 내용 중 절반은 거짓이고 절반은 진실이다. 진술의 앞부분은 모두 거짓이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이 변호사의 설명이다.

    “정씨의 진술서에 따르면 ▲정씨는 2002년 가을 나(이두아)를 처음 만났고, 이어 ▲내게서 서정우 변호사를 소개 받아 ▲한 달 뒤인 12월 서 변호사가 주는 채권 7억5000만원어치를 현금으로 사준 것으로 되어 있다. 세 사건이 모두 맞물려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2002년 가을 정씨를 만난 적이 없다. 이전에도 정씨를 본 적 없다. 나와 정씨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따라서 내가 정씨에게 서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내용도 거짓 진술이고, 서 변호사가 정씨에게 채권을 팔았다는 내용도 모두 거짓 진술이다.”

    정씨가 검찰에 소환될 무렵인 2004년 2~3월, 이두아 변호사는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서정우 변호사를 매일 접견하면서 서 변호사와 옥인동 이회창 총재 측 사이의 메신저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런 경험 덕분에 이 변호사는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된 이 총재 측 내부 움직임과 전략을 비교적 훤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두아 변호사가 목격한 삼성 채권 세탁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사이판 휴가 갔다 와 보니…”

    이회창 대선자금 ‘목격자’ 이두아 변호사 전격 증언

    ‘이수연 출국 금지’ 사건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두아 변호사는 “2004년 3월 이회창 총재의 핵심 측근으로부터 ‘이회창 전 총재 측이 삼성 채권(대선잔금) 7억5000만원어치를 갖고 있다가 수연씨(이 총재 차남)의 친구 정모씨를 통해 현금화했다. 그런데 세탁 과정에서 채권이 검찰에 적발됐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게 됐다”고 밝혔다.

    수연씨의 친구를 통한 채권 현금화가 사실이라면 이는 이 총재 측이 대선잔금을 보관, 사용해왔다는 정황으로 볼 수도 있다. 대선잔금 수사에서 ‘이수연’ 이름 석 자를 빼기 위한 이 총재 측의 노력은 이때부터 진행됐다고 한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이 총재 측근은 “삼성 채권 7억5000만원의 현금화는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으므로 그건 인정하자. 그러나 이회창 총재 측이 정모씨에게 채권의 현금화를 요청했다는 점, 정모씨가 수연씨의 친구라는 점은 절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정모씨에게 채권 현금화를 요청한 사람은 ‘서정우 변호사’로 해두어야 한다. 서 변호사는 2003년 12월8일 구속되어 2004년 3월 현재도 수감 중이니 구속되기 이전에 서 변호사와 정씨가 만나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돼야 한다. 그런데 서 변호사(2003년 당시 62세)와 정모씨(2003년 당시 36세)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난 것으로 해둬야 할까?”라며 고민을 했다는 것.

    이 변호사는 “나는 3월11일부터 14일까지 사이판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그런데 휴가를 갔다 와 보니 정씨는 내(당시 34세) 소개로 서정우 변호사를 만난 것으로 이미 검찰에 진술(3월10일)이 돼 있었다. 그들이 당사자인 나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나를 자금세탁 혐의 건에 끌어들인 것에 대해 몹시 화가 났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변호사의 증언.

    “이회창 총재 측은 정씨를 내 사무실로 보내 그로 하여금 내 얼굴을 익히게 하고 내 명함을 받아가게 했다. 정씨 진술서에는 정씨가 2002년 가을경 나를 통해 서 변호사를 소개받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내가 정씨를 처음 본 때는 수사가 시작되던 시점(2004년 3월)이었다.”

    이상의 이두아 변호사의 증언을 종합하면, 정모씨의 검찰진술 중 ▲증권회사, 무역회사, 프랜차이즈 제빵회사 창업 등의 정황을 거론하면서 2002년 가을 이두아 변호사를 만났다는 부분 ▲‘법무법인 광장의 동료 변호사’라는 정황을 거론하면서 같은 시기 이두아 변호사로부터 서정우 변호사를 소개받았다는 부분은 완전한 거짓말이 된다.

    따라서 ▲서 변호사를 소개받은 직후 타워호텔 커피숍·주차장 등 구체적 지명을 적시하면서 서 변호사로부터 채권 7억5000만원어치를 매입했다는, 이어지는 정모씨의 진술 역시 정씨와 서 변호사의 만남 자체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가공의 이야기’가 된다.

    ‘당초 채권 10억원의 현금화를 요구받았으나 돈이 부족하다며 7억5000만원 어치만 현금으로 사줬다’는 진술은 거짓말을 좀 더 현실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보조 장치로도 볼 수 있다.

    검찰, 昌측 진술 그대로 수용

    이 같은 인물, 채권 교환 시점, 장소, 정황의 조작에 의해 삼성 채권을 사준 정모씨는 ‘이수연씨의 지인’에서 ‘서정우 변호사의 지인’으로 둔갑했다고 한다. 이는 이 삼성 채권 사건에서 이수연씨를 빼내 이수연씨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대검 중수부(부장 안대희)는 2004년 4월18일 서정우 변호사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및 범죄수익 은닉처벌법 위반으로 추가기소하면서 정모씨 사건 수사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당시 검찰은 “서정우 변호사가 2002년 11월 정모씨를 만나 액면가 10억원의 채권을 팔려다 정씨가 ‘가진 돈이 5억원밖에 없다’고 하자 ‘액면가 7억5000만원의 채권을 시세보다 싼 5억원에 줄 테니 대신 모두 현금으로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한겨레’ 4월19일자 보도). 이두아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조작된 진술 내용을 진실된 진술인 것으로 받아들여준 것이다.

    이회창 대선자금 ‘목격자’ 이두아 변호사 전격 증언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국민중심당 심대평 대표가 2월12일 자유선진당으로 합당하는 데 합의한 뒤 총선 승리를 다짐하며 악수하고 있다.

    2004년 대선자금 수사 때 서정우 변호사 변호를 맡았던 강훈 변호사는 “당시 수사팀에서 채권 현금화 부분은 정치자금법 위반(채권수수) 혐의를 입증하는 보강증거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다. 채권 현금화의 주체가 누구였는가는 수사팀의 관심 사안이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채권 현금화의 주체는 대선잔금의 실소유주-실사용자를 규명하는 핵심이 될 수 있다. ‘이 총재 측이 삼성 채권 7억5000만원어치를 이수연씨 지인의 차명 계좌를 통해 현금화했고, 이를 감추기 위해 이수연씨 대신 이두아, 서정우 변호사를 내세우는 등으로 검찰 진술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 총재는 걷잡을 수 없는 논란에 빠져들게 되는 형국이다.

    검찰이 수사 중이므로 이두아 변호사의 증언과는 상반된 증언이나 정황이 앞으로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불필요한 의혹의 확산은 이 총재 측에 피해를 주는 일이 될 수 있으므로 착오나 오해였다면 이 총재 측도 적극 해명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최근 삼성 채권 세탁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재개되자 정모씨는 출국했다. 누가 언제 삼성 채권을 정모씨에게 건넸는지, 정씨가 2003년 6~8월 5개 차명계좌를 이용해 현금화한 돈은 실제로 누구에 의해 사용됐는지, 특정인을 보호하기 위해 검찰 진술을 짜 맞춘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가 규명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중국에 체류 중인 정씨가 조속히 귀국해 검찰에서 사실을 밝히는 것이 불필요한 논란 없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시대 거스르는 행위 있었다”

    이 무렵 2002년 대선자금에 관여한 한 인사는 검찰로부터 또 다른 얘기를 듣게 됐다고 한다. 이 인사의 배경 설명이다.

    “서정우 변호사는 2002년 5~8월경 삼성채권 50억원을 현금으로 바꿨다. 이는 공소장에도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다. 죽은 친구의 아들 이모(당시 26세)씨가 상당한 재력가였는데 이씨의 재산관리 후견인 노릇을 해온 서 변호사는 이씨가 부동산을 팔아 현금을 넉넉하게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채권 10억원어치를 8억원에 사도록 했다. 그런데 이씨는 1억원 등 고액수표로 돈을 갖고 왔다. 그래서 서 변호사는 100만원권 수표로 바꿔 갖고 오도록 했다. 현금이 가장 좋지만 8억원을 전액 현금으로 달라고 하면 친구 아들인 이씨가 의심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에 비교적 유통시키기 쉬운 100만원 수표를 요구한 것이다.”

    이어 이 인사는 “이들 수표는 검찰의 추적에 걸려들었다. 검찰 수사결과,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이 수표를 격려금조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일부는 ‘OOO으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제공자의 실명을 진술했다고 한다. 또 일부 수표는 ‘한복(예단) 구매’에 사용된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구매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얘기를 못하겠다. 검찰 관계자는 내게 이런 얘기를 해주면서 ‘대선자금을 받아 선거운동에만 쓴 게 아니네…’라며 씁쓸해 했다”고 말했다.

    이 인사가 언급한 수표 사용처의 전모는 대선자금 수사결과 발표 때 공개되지 않았다. 검찰은 ‘수표 사용처’ 수사 결과를 정리만 해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인사의 주장과 관련, 대선자금 수사를 맡았던 한 관계자는 “불법 대선자금으로 건네진 삼성 채권이 수표로 교환돼 생활비로도 쓰였다”는 이 인사의 문제 제기에 대해 “그 부분을 수사한 사실이 있다. 그러나 수사결과를 발설할 수는 없다. 시대를 거스르는 행위들이 있었다”고만 말했다.

    대선자금으로 건네진 삼성 채권이 수표로 교환되어 이회창 총재에게 직접 건네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서정우 변호사의 변호인이던 강훈 변호사는 “이회창 총재가 대선 후 미국으로 떠날 때 서정우 변호사는 ‘여비에 보태 쓰시라’며 이 총재에게 수표로 5000만원 정도인가를 드린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그 수표는 대선자금으로 받은 삼성 채권을 교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강 변호사는 “서 변호사는 그 액수만큼의 자기 돈을 한나라당에 반환했기 때문에 그 수표는 대선잔금이 아니라 자기 돈이라는 논리를 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삼성이 채권 형태로 한나라당에 준 대선자금 324억7000만원의 대부분은 서정우 변호사 단일창구로 들어왔다. 그런데 서 변호사는 이 채권을 그대로 한나라당에 건네 한나라당이 현금으로 할인해 사용하기도 했지만, 서 변호사가 직접 채권을 현금화해 현금 형태로 한나라당에 주기도 했다고 한다.

    “받아 쓰도록 지시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2년 대선 자금 수사의 전기는 김영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의해 만들어졌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총재와 김 전 총장은 후보와 당 사무총장으로서 호흡을 맞췄지만, 대선자금 수사 때는 서로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된 이회창 총재 측근 인사들과 달리 김 전 총장은 이 총재의 ‘통제력’ 밖에 있었다.

    이 때문에 이 총재 측은 김 전 총장이 검찰에서 어떠한 진술을 할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실제로 이 총재에게 불리한 내용이 김 전 총장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경우가 꽤 있었다. 김 전 총장은 한나라당이 삼성으로부터 받은 대선자금의 규모와 대선잔금 액수를 그가 아는 한도 내에서 솔직하게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 전 총장은 이 총재가 불법 대선자금 모금 및 대선잔금 처리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 인지하고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 총재 측과 상당한 견해차가 있었다. 한나라당 한 인사에 따르면 이 총재 진영은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대응에 있어 ‘이회창 총재는 포괄적으로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 그러나 이회창 총재는 대선자금이나 대선잔금과 관련해 상세히 보고를 받거나 직접 관리하는 일은 없어 구체적 내용은 모른다’라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김 전 총장의 견해는 사뭇 달랐다. 그는 ‘대선 후보는 대선 자금 내역을 상세히 알았을 것’이라고 보는 쪽이다. 김 전 총장은 진술서(2004년 1월5일)에서 “2002년 대선 때 최돈웅 의원이 기업을 특정하지 않고 몇몇 기업이 대선자금을 협조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고 보고하기에, 후보께서 이를 받아 쓰도록 지시하신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선자금 모금의 구조적 특성상 2002년 대선 당시 후보는 어느 기업이 얼마나 돈을 냈는지 알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선 과정에서 거액의 정치헌금은 후보의 역할 내지는 영향력이 아니면 도저히 유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향력이 막강한 중진 국회의원조차 직접 자기 선거인 총선에서 특정기업으로부터 수천만원의 헌금을 유치하기도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자기 선거도 아닌 대선에서 무슨 힘으로 거액 헌금을 받아낼 수 있겠습니까. 대선에서 거액의 헌금을 기부하는 기업의 처지에서는 대통령 후보에게 기부자를 확실히 인식시킬 수 있는 루트를 통해서만 기부하려 할 것이고, 정치헌금을 유치하는 쪽에서도 후보자의 ‘모금 대리인’이라는 인식을 상대방이 갖도록 해야 합니다.”(2004년 1월 20일 조사)

    김인주 사장 아닌 J부사장에 줬다?

    김 전 총장은 검찰에서 “대선 직후인 2003년 1월 이회창 후보를 찾아가 대선잔금으로 삼성 채권 138억원이 남았다고 보고하고 이를 서정우 변호사에게 줬다”며 ‘이 총재의 대선잔금 인지(認知) 사실’을 처음으로 진술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서 변호사는 김 전 총장으로부터 삼성 채권 138억원을 받은 지 10개월이 지난 2003년 11월 법무법인 광장 자신의 사무실로 김인주 삼성 사장을 불러 이를 돌려준 것으로 되어 있다. 즉시 돌려주지 않은 부분이 눈길을 끈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수사결과는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누군가 보관하며 쓰다가 2003년 10월 최돈웅 의원의 SK 대선자금 수수 사건이 터지자 부랴부랴 삼성 측에 돌려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정우 변호사가 김인주 사장에게 반환한 게 아니라 한나라당 인사가 삼성 J부사장에게 반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 변호사가 김 사장에게 채권 138억원어치를 반환했다’는 진술을 맞추기 위해 양측이 많이 노력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법무법인 광장의 회의실에서 만나 채권을 한지로 싸서 쇼핑백에 넣어주었다는 진술을 맞추기 위해 광장의 전화통화 내역과 방문자 대장까지 체크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당시 광장이 삼성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삼성과 광장 사이의 통화내역이 어느 정도 이상 분량이 됐고 광장에는 방문자 대장이 비치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전달자와 수령자의 조합을 다르게 했다’는 점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가 뭔지 의문스럽다. 원론적인 얘기이지만, 서 변호사가 한나라당 측으로부터 대선잔금을 반환받았는데 실제로 삼성에 이 돈을 돌려준 사람이 서 변호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이는 대선잔금이 이너서클 내에서 움직였다는 정황이 된다.

    역삼동 대우 디오빌 오피스텔

    검찰 발표에 따르면 삼성이 한나라당에 제공한 2002년 대선자금은 324억7000만원이다. 이 수치를 놓고도 최근에는 말이 많다. 비율적으로 너무 정확해 오히려 의도적으로 맞춘 인상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정치권 한 인사의 평가다.

    “‘정치후원금 규모에 있어 삼성이 LG의 2배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치권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그 이하면 검찰이 안 믿어준다. 그런데 2002년 대선자금 사건의 경우 LG의 대선자금이 먼저 공개됐다. LG는 ‘차떼기 현금으로 150억원을 한나라당에 줬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얼마 뒤 삼성이 324억7000만원을 채권으로 줬다고 고백한 것이다. 채권을 현금으로 바꿀 때의 할인율을 감안하면 삼성이 준 채권은 현금으로는 300억원, 즉 LG가 줬다는 현금 150억원의 정확히 2배가 되는 것이다. 삼성이 고백한 대선자금 규모는 검찰이 믿어줄 만한 최소의 수치였던 것이다.”

    이 관계자는 “삼성이 한나라당에 준 대선 자금은 내용 곳곳에 구멍이 있었다”고 했다.

    “2002년 이전 한나라당에 정치자금으로 건네진 채권은 ‘골동품’이라고 부른다.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골동품도 좀 나온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 골동품이 324억원에 포함되어 있는지, 안 되어 있다면 왜 골동품은 뺐는지, 골동품은 아예 수사를 안 한 건지가 명확하지 않다. 324억7000만원의 사용처는 더욱 불분명하다. 삼성→서정우, 서정우→한나라당, 한나라당 자체 사용, 한나라당→서정우, 서정우→삼성의 대선자금 흐름이 입출고 액수가 딱 맞으면 좋은데 그렇지가 않다.”

    익명을 요구한 2002년 대선자금 관련 인사는 “실제로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될 당시 강남 역삼동 대우 디오빌 오피스텔에 마련된 안가에서 한나라당 측 인사와 삼성측 J부사장이 수사대응 방안을 놓고 긴밀하게 협의했다. 오피스텔 비밀번호는 ‘그날(12월19일 16대 대선 투표일)’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1219’로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2002년 대선자금 문제에 관여했던 다른 인사는 “미확인 대선잔금이 집결되는 ‘저수지’가 모 유력 인사 누나의 강남 자택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고 말했다.

    “보도의 적법성만 밝히면 된다”

    ‘신동아’는 전화통화와 e메일 질의서 발송을 통해 이회창 총재 측의 설명을 요청했다. 이회창 총재 측의 대선자금건 언론 담당자인 지상욱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2004년 삼성 채권 세탁 의혹 사건의 정모씨가 이수연씨의 친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삼성 채권 7억5000만원어치를 현금화하는 데 정씨의 5개 차명계좌가 동원됐는가”라는 질문에는 “차명계좌 건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지 대변인은 “이수연씨 이름이 안 나오도록 하기 위해 검찰진술이 조직적으로 조작됐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질문에는 “내용을 모르겠다. 대선자금 문제는 수사와 재판이 이미 끝난 만큼 결과가 달라질 게 없다”고 했다.

    지 대변인은 “이회창 총재는 ‘대선자금을 보관한 적도 없고 사용한 적도 없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그 입장에 변화가 없다. 이 사건(이수연씨 출국금지 등)은 본질적으로 ‘시사IN’에 대한 고소 사건이다. 보도의 적법성 여부만 밝히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우 변호사는 정모씨 사건에 대한 ‘신동아’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그 사건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