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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대통령을 파면하다

‘헌법 수호’ 마지막 보루는 헌법 만든 국민

헌법학자가 본 탄핵 인용 의미

  • 이준일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profyi@hanmail.net

‘헌법 수호’ 마지막 보루는 헌법 만든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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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와 관련,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핵심판 선고 이틀 전인 3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헌재 재판관 8명 전원이 대통령 ‘파면’을 결정할 것이라 진단한 바 있다. 헌법학자로서 바라본 탄핵 인용의 의미.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했다.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1월 31일 이후 임기 만료로 퇴임한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의 권한을 대행하며 재판을 이끈 이정미 재판관의 음성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의 파면을 결정하면서도 담담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해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됐고, 헌재는 그날로부터 92일째 되던 이 역사적 순간에 선고를 하기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3차례의 준비기일을, 17차례의 변론기일을 열었다.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한 대통령 최측근인 최순실, 수석비서관을 지낸 안종범, 또 다른 비선실세 차은택, 수행비서 역할을 한 정호성 등 25명의 증인이 변론기일에 소환됐다. 2017년 2월 27일 열린 최종변론기일까지 정확히 80일 동안 심리를 진행한 재판부는 열흘에 걸쳐 평의를 열고, 마침내 평결을 통해 만장일치로 대통령을 파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불성실’ 판단 제외 아쉬워

국회 소추인단은 대통령 탄핵사유로 13가지를 제시했고, 재판부는 이를 정리해 5가지로 재구성했다. 첫째,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및 법치주의 위배, 둘째, 대통령 권한의 남용, 셋째, 언론의 자유 침해, 넷째, 생명권보호의무 위반, 다섯째, 뇌물죄 등 법률 위반이 재판부가 요약한 탄핵사유다.

우선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및 법치주의 위배는 최순실 등 이른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력이 사익 추구를 위해 사용됨으로써 사유화되고, 그러한 권력이 법적 근거를 가지고 법적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행사되지 않음으로써 발생했다.



다음으로, 대통령 권한의 남용은 주로 인사권(임면권)의 남용과 기업에 대한 부당한 요구로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봉사할 사람들을 공직에 취임시키고,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을 좌천시켰을 뿐 아니라 사퇴를 종용했으며,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위해 기업에 재단 기부금 출연을 강요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언론의 자유 침해는 ‘세계일보’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에 관한 문건을 보도했다가 사장이 해임되고 공공기업 광고 수주가 중단됐으며, 통일교재단 소속 기업들이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게 핵심이다.

또한 생명권보호의무 위반은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부적절한 대처로 수백 명의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게 골자다. 마지막으로 법률 위반은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로 기소된 피의자들의 공소장에 대통령이 공무상비밀누설죄, 강요죄, 직권남용죄의 공범으로 기재됐다는 데 기초하고 있다. 이후 소추위원단은 법률 위반 부분을 헌법 위반으로 재구성하는 준비서면을 제출해 쟁점을 4가지로 다시 정리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및 법치주의 위배, 대통령 권한의 남용 부분을 인정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모금 과정과 최순실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회사 등에 이익이 되도록 여러 기업에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해 기업의 재산권과 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이들 재단을 통한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방치하거나 방조하고 심지어 은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검찰과 특검의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본인의 약속을 깨고, 검찰과 특검의 대면조사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특검이 법원의 영장을 받아 실시하려던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마저 거부했다. 헌재는 대통령에게서 헌법 수호 의지를 발견할 수 없고, 국민의 신임을 배반해 대통령을 파면할 수밖에 없다고 설시(說示)했다.

하지만 헌재는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공무원에 대한 좌천성 인사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경질은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대한 방해를 이유로 이뤄졌다는 점이 명백하지 않아 탄핵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세월호 참사 당시의 부적절한 대처로 인해 생명권보호의무를 위반한 건 아니며,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생명권보호의무가 대통령에게 부여돼 있다고 해도 대통령이 구체적인 구조 활동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고,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헌법적 의무라고는 해도 추상적 개념이라 헌재가 심판할 수 있는 성격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마지막으로 ‘세계일보’와 관련한 보복적 조치도 청와대 지시로 이뤄졌다고 추정할 순 있어도 그것이 대통령의 지시인지 명확하지 않아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공무원 인사권 남용은 대통령의 부당한 지시에 불복하는 공무원에 대해 보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규모 국가재난에서 대통령의 헌법적 책무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권한 남용과 불성실한 직책수행을 판단하지 않은 헌재의 결정은 아쉬움을 남긴다.



재심 청구, 각하 가능성 높아

대통령 대리인단은 그동안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절차에 흠결이 있어 헌재가 각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법제사법위원회의 조사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대통령 탄핵소추에 관한 토론절차도 없었으며, 개별적으로 의결했어야 할 13가지 탄핵사유를 한꺼번에 의결했다는 게 요지다. 하지만 헌재는 법제사법위원회의 조사절차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필요가 없는 선택적 절차이며, 국회 의결절차는 국회 재량에 맡겨져 있어 의결절차에 흠결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한 대통령 대리인단은 8인 체제의 헌재는 탄핵 결정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헌법재판관의 공석은 충분히 예정될 수 있으므로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심리 정족수가 7인 이상으로 정해져 있는 이상 8인 재판관의 헌재 결정에도 문제가 없다고 판시했다.

대통령 대리인단은 변론기일 내내 지연(시간 끌기)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특히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이후가 되면 7인 체제의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7인 체제에선 2명만 탄핵에 반대해도 탄핵 결정에 필요한 6명 재판관의 탄핵 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대통령 대리인단은 되레 7인 체제 혹은 8인 체제의 헌재는 위헌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하여 자기모순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또한 대통령 대리인단에 소속된 일부 변호사의 돌출 행동과 막말은 국가원수의 탄핵 재판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특히 주심 재판관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국회 소추위원단의 수석 대리인”이라고 지칭하며 기피신청까지 내는 장면은 탄핵 재판을 막장 드라마로 몰고 가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또 다른 전략으로 평가받았다.

심지어 탄핵 결정이 나오면 불복하겠다며 재심 청구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재심 절차에 관한 명문 규정이 없고, 헌재가 담당하는 5가지의 심판 절차마다 그 성격을 고려해 헌재는 그때그때 개별적으로 재심 허용 여부를 결정해왔다. 최근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관련해 재심을 허용했지만 적법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각하한 사례가 있다.

만약 대통령 대리인단이 재심을 청구한다면 탄핵심판은 모든 국민에게 효력이 미치는 일반적 효력을 갖지 않아 헌재가 허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대통령 대리인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8인 체제를 문제 삼아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라면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



탄핵 결정은 사면 안 돼

대통령이 탄핵 결정으로 파면되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보장하는 예우 가운데 경호와 경비를 제외한 어떠한 예우도 받지 못한다. 또 공무원연금법이나 같은 법 시행령에 따라 지급받는 연금도 감액되고, ‘국립묘지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후에 제공되는 국립묘지 안장에서도 제외된다. 대통령에게 부여된 사면권(헌법 제79조 제1항)에 의해서도 탄핵 결정은 사면될 수 없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대체적 견해다.

더욱이 현직 대통령이 누리는 불소추특권(헌법 제84조)도 사라져 전직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은 뒤 기소될 수 있다. 특히 강제수사도 가능하게 되어 검찰 수사를 거부할 경우 체포나 구속이 될 수 있는 개연성도 높아졌고, 검찰과 특검이 모두 실패한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번 헌재의 파면 결정에서 스모킹 건(smoking gun·어떤 범죄나 사건을 해결할 때 나오는 결정적 증거) 구실을 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과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와 같은 수준의 결정적 증거들이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발견될 수 있고, 이를 통해 대통령의 범죄 혐의뿐만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의 범죄 혐의도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결정으로 파면된 최초의 대통령으로 역사의 기록에 남게 됐다. 탄핵 재판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고위공직자를 파면해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제도다. 따라서 구체적인 탄핵 재판에서는 수호돼야 할 헌법적 가치의 중대성과 고위공직자를 파면함으로써 발생하는 국정 공백의 불이익이 함께 고려된다.



민주주의·법치주의 부활

이번 사건에서 헌재는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수호되는 헌법적 가치의 중대성이 대통령의 파면으로 발생하는 불이익보다 압도적으로 크다고 판단했다. 사실 이러한 정도의 심각한 법 위반은 흔히 발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쪽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앞으로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정치적으로 반복되거나 악용될 수 있다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적어도 한국 헌법체제에서 탄핵제도는 국회에 탄핵소추권이 부여돼 정치적으로 악용될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사법기관인 헌재가 탄핵심판권을 가지고 있어 최종적인 탄핵(파면) 여부는 법적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탄핵제도는 엄격한 권력분립 원칙이 적용되는 대통령제하에서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의 임기를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제도다. 그만큼 예외적 상황이고, 대통령을 파면시켜야 하는 헌재도 그런 이유에서 대통령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이 있는지에 대해 숙고할 수밖에 없다.

이번 결정에서 헌재가 특히 강조한 것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지’다.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범죄 혐의를 수사하는 검찰과 특검의 대면조사에 응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국민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한 약속을 어기고 정상적인 사법체계의 작동을 부정함으로써 헌법의 핵심 가치인 법치주의를 훼손했다. 이른바 비선실세를 통해 인사를 하고 국정을 운영함으로써 법치주의 본질인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예측 가능한 통치를 거부한 대통령은 법치주의 수호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마저 발로 걷어찼다.

그 결과는 파면이라는 무거운 대가였다. 헌법의 핵심 가치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사법정의를 통해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그 중심엔 지난겨울 찬바람을 뚫고 광장에서 20차례나 촛불을 든 연인원 1600만 명을 넘는 국민의 헌신이 있었다. 헌법적 가치를 파괴하는 대통령에 맞서 헌법을 수호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사실 헌재가 아니라 그 헌법을 만든 국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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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일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profy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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