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정이 넘도록 별을 보고 있는데, 산 아래에서 자동차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처에 민가 몇 채가 있었으니 거기 사는 분이었을 게다. 우리는 하나둘 담요를 걷고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차는 한참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중 누군가가 차로 다가갔다. 운전석에는 차를 몰던 아저씨가 사색이 된 채 놀라 우리를 귀신 보듯 바라보며 떨고 있었다. 지리산이 어떤 곳인가. 6·25전쟁을 전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기서 죽어 묻혔던가. 운전자의 눈에는 거적에 싸여 있던 시체들이 하나둘 일어나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별 보기 좋아하는 독자에게 부탁한다. 인적 드문 산길이라도 길을 막고 별을 볼 때는 안전 표지판이라도 세워두기 바란다.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죄송하다.
지리산 피아골의 밤하늘
한동안 잊고 지냈던 피아골을 최근 뉴스를 통해 접했다. 정부가 다목적댐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물론 자연 재해를 예방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댐을 건설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개발 정책이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시골 임야엔 땅 주인도 마음대로 집을 짓지 못한다.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을 다니다보면 어떻게 저런 곳에 건물이며 골프장이 들어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곳이 꽤 있다. 자연보호라는 말이 힘없는 서민들만 얽매는 굴레로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지리산 피아골 계곡에서 밤하늘의 별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과연 그곳에 댐을 건설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다. 물이 부족하면 물을 절약하는 방법을 찾고, 홍수를 막고자 한다면 나무를 더 심고 배수가 잘되게 하는 다른 방법을 먼저 찾을 순 없을까.
피아골 계곡에서 본 여름 별자리는 은하수 가에 자리한 백조자리와 헤라클레스자리다. 백조자리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변신한 것이고, 헤라클레스자리는 제우스의 가장 위대한 아들 헤라클레스의 별자리다.
맑게 갠 여름밤, 은하수를 따라 견우와 직녀 사이를 날아가는 백조자리의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멋지고 우아하다. 백조는 남쪽으로 향한다. 철새인 백조가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가는 걸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누군가 백조로 변신한 걸까.

백조자리는 밝은 별들로 이루어진 데다가 모양도 뚜렷해 찾는 데 큰 무리가 없다. 특히 이 별자리의 알파(α)별인 1등성 데네브가 역시 1등성인 직녀를 정점으로 견우와 직각삼각형 모양으로 놓여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세 별을 ‘여름철의 대삼각형’이라고 부른다.
데네브(Deneb·꼬리라는 뜻)는 이름대로 백조의 꼬리에 위치한다. 베타(β)별 알비레오(Albireo·부리라는 뜻)가 백조의 머리이고, 데네브와 알비레오 사이의 별들이 목과 몸통을 이룬다. 이 별자리는 전체적으로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기에 북십자성이라고도 불린다. 그림만 봐도 정말 그럴듯한 백조의 모습이다. 하지만 밤하늘에서 직접 보는 감동에 비할 수 없음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백조자리에는 여러 신화가 전해진다. 그중 하나가 이미 언급했듯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의 이야기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인을 유혹할 때면 대개 동물로 변신했다. 백조가 그중 하나다.
제우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Leda)에게 반해 그녀를 유혹하고자 하는데, 질투가 심한 아내 헤라에게 들킬 것을 염려해 레다를 만나러 갈 때마다 백조로 변신했다. 레다는 제우스와의 사랑으로 2개의 알을 낳았다. 그중 하나에서 아들 카스토르(Castor)와 딸 클리타이메스트라(Klytaimestra·훗날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가멤논의 아내가 된다)가 태어나고, 다른 하나에서 아들 폴룩스(Pollux)와 딸 헬레네(Helene·훗날 절세의 미모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다)가 태어난다. 성장한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로마를 지켜내는 위대한 영웅이 되어 쌍둥이자리의 주인공이 된다. 제우스는 레다와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이 별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