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호

‘방사능 수치 낮으니 무해하다’는 정부 설명은 거짓말!

  • 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lhu@hanmail.net

    입력2011-04-21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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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는 처음에 남의 일인 양 지켜봤다.
    •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 그러다 어느새 한 수렁에 빠진 것을 알아차리고 있다.
    •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누출되는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 주변을 포함해 전 지구의 대기와 바다로 흩어지고 있다.
    • 우리는 진심으로,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경중(輕重)이 어떠한지 알아 보아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방사능 수치 낮으니 무해하다’는 정부 설명은 거짓말!

    3월15일 일본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시에서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방사능 오염 검사를 받고 있다.

    일본 소식을 듣고 있자면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 그 이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지난 3월11일 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어느새 옛일이 된 듯하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갈피가 잘 잡히지 않는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게 하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새로운 소식이 매일 나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발전소에 끊긴 전력만 연결하면 일이 다 해결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방사능을 띤 오염수 1만1000t을 바다로 버림으로써 세계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일본, 세계를 황당하게 하다

    세계가 사태를 오판한 것은 무엇보다 일본 정부의 책임이 크다. 일본 정부는 별것 아니라는, 스스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세계는 그 말을 믿었다. 설마 체르노빌 사고 같은 재앙이 빚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 사이 일본은 사태를 축소은폐하고 있었다. 사실, 일부 전문가는 그들이 찔끔찔끔 발표한 내용만으로도 이미 상황은 체르노빌 수준까지 와 있었음을 추론하고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중국은 더 이상 바닷가에 원전을 짓지 않을 계획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이 사고가 난 원전 4~6개를 폐쇄하는 데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여파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체르노빌은 사람들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을 주었다. 그러나 일본은 거기에서 별로 배우지 않은 것 같다.



    1986년 4월26일 소련(지금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원전이 폭발했다. 그것은 인재(人災)였다. 실험을 하기 위해 안전 조치를 다 해제했다가, 갑자기 원자로 온도가 상승하자 허둥지둥하는 바람에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사례였다. 원자로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폭발이 일어났고 방사성 물질이 섞인 연기가 1000m 이상 치솟았다.

    폭발이 일어나고 불이 붙자 지역 소방대, 의사, 간호사 등이 허겁지겁 몰려들었다. 그중 일부는 고선량의 방사선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화상 등 급성 방사선 노출 증후군으로 10여 명이 숨을 거뒀다. 정부는 불을 끄고 온도를 낮추기 위해 모래, 흙, 붕산, 납, 돌로마이트 등을 수천t 넘게 쏟아 부었다.

    하지만 불은 계속 탔다. 그러다 열흘쯤 지나자 방사능 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연료가 다 타버린 듯 보였다. 정부는 원자로 지하와 상공에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 원자로를 일종의 콘크리트 무덤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반경 약 30㎞ 지역은 지금까지 인간의 접근이 통제된 구역으로 남아 있다.

    소련 정부는 사고를 숨기려고 했다. 체르노빌 사고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발생 이틀 뒤 스웨덴의 원전에서 대기 방사능 수치가 상승하고 있음을 밝히면서였다. 체르노빌 발전소 옆에는 프리피야트라는 대규모 주거 단지가 있었는데 그곳 주민들을 피신시키는 조치는 폭발 다음날 이루어졌다. 주민들에겐 원전 폭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이들은 3일쯤 피해 있으면 된다고 해서 대부분 빈 몸으로 집을 떠났다. 그 뒤 프리피야트는 20년이 넘게 비어 있다.

    폭발 때 치솟은 방사성 물질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현 러시아 연방 국가에 주로 내려앉았고 나아가 서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날씨가 건조하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방사성을 띤 구름은 더 오래 떠다니다가 흩어질 것이다. 단기적으로 주된 피해를 주는 방사성 요오드는 반감기가 약 8일이다. 즉 8일이 지나면 방사능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들며 몇 개월이 지나면 거의 해를 입히지 않을 수준으로 낮아진다.

    폭발 6년 후부터 갑상샘 암 급증

    ‘방사능 수치 낮으니 무해하다’는 정부 설명은 거짓말!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면서 흰 연기를 내뿜고 있다.

    일본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을 함유한 공기가 우리나라로 밀려올 때 우리 정부도 그랬지만 유럽의 각국 정부도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기대에 어긋나게 비가 내렸다.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프랑스에 방사성 비가 쏟아져 땅과 물을 오염시켰다. 방사능을 함유한 구름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이윽고 영국에도 상륙했다. 전문가들은 누출된 방사성 물질 중 최대 10%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동부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오염된 비를 맞은 각국은 즉시 채소, 물, 우유 등을 함부로 먹지 말라고 했다. 이미 방사성 물질이 쌓인 풀을 뜯어 먹은 소와 양 같은 가축들을 없앴다.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처럼 체르노빌과 가까운 국가뿐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영국은 지금도 농산물의 방사능 수치를 검사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 세계보건기구,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가 공동으로 참여한 체르노빌 포럼의 보고서에 따르면 폭발 당시 현장에 있던 인원들, 소방수 등 긴급 조치에 동원된 사람들, 주변지역 일부 주민들은 높은 수준의 방사선에 피폭됐고 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오염된 지역에 살던 500만명이 넘는 주민 대부분은 자연적인 수준보다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의 낮은 방사선에 접촉됐다고 한다.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지만 근거 없는 뜬소문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건강에 별 영향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사고가 건강에 미친 주된 영향 중 하나로 갑상샘 암 발병률의 증가가 꼽힌다. 낙진에 방사성을 띤 요오드가 섞였기 때문이다. 호흡, 식품 등을 통해 들어온 요오드는 몸속을 돌아 목의 갑상샘에 자리 잡은 뒤 방사선을 방출해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방사능을 쬐었을 때 투여하거나 방사능 위험 지역에 사는 주민에게 공급되는 요오드 제제는 몸이 필요로 하는 수준 이상의 요오드를 몸에 넣어서 몸이 방사성 요오드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방사성 요오드가 많이 함유된 우유를 마신 어린이는 충분한 조치를 취하기 전에 이미 몸에 방사성 요오드가 다량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들에게서 갑상샘 암 발병률이 높았다. 폭발 사고 6~16년 후인 1992~2002년 사이 오염지역 주민 중 4000명이 넘는 사람이 갑상샘 암 진단을 받았다. 그중 상당수는 방사성 요오드 섭취가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갑상샘 암 이외 백혈병이나 기타 암 발병률은 큰 증가를 보이지 않았다. 암을 일으키는 요인이 워낙 다양하기에 방사능 피폭이 정확히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 점은 방사능 피폭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다루는 역학 연구들에 있어 공통적인 난제다. 방사능 때문에 암 이외 질병에 걸렸는지, 출산율이나 선천적 장애 비율을 높였는지도 규명하기 어렵다.

    인간과 달리 식물이나 동물은 겉으로 보기에 큰 피해를 본 것 같지가 않다. 수명이 짧아 세대가 빨리빨리 교체된다는 점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폭발 당시 침엽수가 많이 죽었다. 체르노빌 근처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세포 수준에서 보면 기형이 많아졌다. 그러나 폭발 이후 외부에서 새로 동식물이 들어왔다. 접근금지조치로 인간의 간섭이 없어진 덕분에 오히려 생물 다양성은 더 높아졌다.

    체르노빌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에는 어떤 영향이 미쳤을까? 단기적으로는 방사성 요오드가 큰 피해를 주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반감기가 30년인 세슘이 더 영향을 미친다. 반감기가 길기 때문에 세슘은 먹이사슬을 따라 생물에 농축되어간다. 결국 인간과 같은 최상위 포식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경작지처럼 시시때때로 흙이 섞이고 바람과 비에 씻기기 쉬운 곳은 방사성 물질이 빠져나가는 속도도 빠르다. 흐르는 강물도 마찬가지다. 도시도 물이 잘 빠지고 수시로 청소를 하고 바람과 비 같은 자연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방사성 오염물질이 빨리 사라진다. 반면에 고인 호수나 넓은 숲처럼 물질의 대부분이 자체 순환하는 곳에서는 방사성 세슘 같은 물질이 오래 남아 축적되면서 계속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스칸디나비아 국가는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숲이나 고인 호수의 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후쿠시마가 체르노빌보다 더 위험

    ‘방사능 수치 낮으니 무해하다’는 정부 설명은 거짓말!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새로운 뉴스가 올라오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 등급을 체르노빌과 같은 7등급으로 격상했다는 내용이다. 이 등급은 국제원자력기구가 1992년 정한 것으로서 0~7등급까지 있다. 이에 따르면 발전소 외부에까지 영향이 미칠 때부터를 사고로 친다. 4등급부터가 그렇다. 일본은 지금까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5등급이라고 말해왔다. 이미 사고 규모가 그 이상이라고 온 세상이 짐작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7등급은 방사성 물질이 대량 유출되어 인간과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규모의 사고를 말한다. 7등급이라고 하면서도 일본은 체르노빌에 비하면 방사성 누출량이 훨씬 적다고 강조하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은 격납용기가 없어 폭발할 때 방사성 물질이 그대로 날아갔다. 그리고 감속재로 쓰이는 흑연이 고온에서 불이 붙는 바람에 피해가 더 컸다. 후쿠시마 원전은 격납용기가 있다는 점에서 더 안전하다고 여겨졌지만 결국 취약점을 지니고 있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전력이 끊기면 냉각수가 순환이 안 되어 노심이 녹게 되는 점이 그것이다.

    체르노빌 사고가 전적으로 인재라고 한다면 후쿠시마 사고는 지진, 해일이라는 자연 재해에다 안전 불감증, 대응 미숙이라는 인재가 뒤섞여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관점에 따라서는 오히려 후자가 더 심한 인재로 보일 수 있다. 체르노빌 사고는 문제가 발생한 뒤 거의 손쓸 여지 없이 급박하게 진행되었지만 후쿠시마 사고는 설령 최초의 원인이 자연재해였다고 할지라도 이후 피해 규모를 줄일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보다 세계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사고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사고는 4번 원자로 1개에서만 문제가 생겼고 신속히 원자로 무덤을 만들어버림으로써 단기간에 상황을 끝냈다. 반면 후쿠시마 사고는 적어도 4개의 원자로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한 달이 넘도록 방사성 물질이 계속 유출되고 있다.

    바다 방사능 오염, 결과 예측불허

    체르노빌 사고 땐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직접 들어가지는 않았다. 체르노빌 원전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 있었다. 반면 후쿠시마 사고에선 바다까지 심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바다와 접해 있다. 일본 정부는 고의로 방사능 오염수를 대거 바다에 방류했다. 이 행위는 한국 정부를 비롯한 여러 정부의 비난을 사고 있다. 국내외 수많은 네티즌이 일본에 대해 “전세계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러한 비난은 일정 정도 정당성을 갖는 것이다. 혹은 일본의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양의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방사성 물질에 의한 바다 오염은 전례가 없는 상황이다. 육지에서 나는 작물, 고기, 우유, 물뿐 아니라 수산물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이는 체르노빌 사고보다 후쿠시마 사고가 더 위험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바닷물 오염, 생선 등 수산물 오염, 인간의 지속적인 수산물 섭취, 인간 몸속에 방사성 물질의 축적이 예상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와 관련한 어떠한 예상이나 낙관론(아무리 섭취해도 인체에 무해하다 등)도 사실은 지금으로선 실증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

    일본은 질소를 주입하고 물을 퍼부어 노심을 계속 식히고 있다. 그에 비례해 오염물질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원전이 다시 충격을 받아 어렵게 연결한 전원이 끊기거나 격납용기가 파손되거나 오염수가 대량으로 방출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남아 있는 노심이 대거 녹아내려 더 큰 피해를 줄 가능성도 있다.

    두 사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정부가 사고 규모와 피해를 축소하고 정보를 감추려고 애쓴다는 점이 그것이다. 옛 소련 정부야 ‘크렘린’이라는 은유적 표현이 나올 정도로 통제체제였고 당시는 서방과 정보 교류가 안 되는 냉전시대였으니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선진 민주주의 정부인 일본 정부가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프랑스, 미국은 자국의 전문가와 첨단 장비를 직접 동원해 실상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다. 일본 정부는 심지어 자국민에게도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다.

    ‘방사능 수치 낮으니 무해하다’는 정부 설명은 거짓말!

    후쿠시마 원전에서 한국에 까지 날아온 세슘덩어리. 인체에 들어오면 암을 일으킨다.

    정보를 올바로 제공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정보 제공자에게 더 큰 불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원전 사고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준다. 벨라루스는 한때 국가 예산의 20%를, 그보다 피해가 덜한 우크라이나는 국가 예산의 약 10%를 체르노빌 사고 대책에 써야 했다. 지금도 두 나라 예산의 약 5%는 그 분야에 쓰이고 있다. 체르노빌 포럼에 따르면 우선 사고 지역을 폐쇄시킴으로써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한다. 피해 정도에 따라 반경 30㎞ 혹은 그 이상의 지역은 아예 출입이 통제되는 유령 구역이 된다. 게다가 주변 지역과 수역의 농산물, 수산물도 언제든 방사능 농도가 높아질 수 있으므로 기피 대상이 된다. 오염 위험 지역의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데에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새로 부지를 마련해야 하고 주거지, 학교, 일자리도 만들어주어야 한다. 오염된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비용도 있다. 시시때때로 풀, 가축, 농산물을 검사해 오염됐다는 것이 드러나면 폐기해야 한다. 오염된 물, 토양 등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고 보관할 시설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수출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이런 대책들은 설득, 타협을 요하는 것들이다. 국민이 정부를 불신하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으며 비용은 더 커지게 된다.

    미량 방사능으로 DNA 손상될 수도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에는 늘 편서풍이 불고 있으므로 오염물질이 유입될 리 없다”고 말했다가 국민의 불신을 샀다. 아마 기상 전문가가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기 상층부와 저층부의 풍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전문가에게는 상식이다. 더구나 기상처럼 변수가 약간만 달라져도 크게 변화가 일어나는 시스템을 연구한 사람은 절대로 이러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정부와 전문가는 “방사능 수치가 낮으니 인체에 무해하다”는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그런 말은 솔직하지도 않으며 과학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각종 화학물질의 위해성을 이야기할 때 무해하다는 말은 ‘전혀 해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평균적인 사람이 평균 수명을 살 때 어느 한도까지 그런 것을 접해도 신체에 어떤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평균적인 사람보다 취약한 이는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방사성 물질은 무엇보다 우리의 DNA를 손상시킨다. 우리 몸속에는 손상된 DNA를 수선하는 기구가 있으며 그 기구는 당연히 방사성 물질이 일으키는 손상도 수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선 기구는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DNA에는 오류가 계속 쌓이게 된다. 또 선천적으로 이미 오류를 지닌 사람도 있다. DNA 오류가 쌓이고 쌓여 암세포로 변하기 직전에 있는 세포에 미량이라도 방사성 물질이 작용하게 되면 결국 유전자를 변화시켜서 암을 일으킬 수도 있다.

    먼 옛날 화산 연기가 뿜어지는 곳으로, 지진해일이 밀려오는 곳으로 호기심에 또는 용기를 뽐내기 위해 다가간 인간들은 다 죽었다. 혹시나 위험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멀리 피한 인간들만이 살아남아서 우리의 선조가 됐다. 막연한 두려움은 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는 생존 기구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이 이러한 생존 본능에 대해 “그건 잘못된 태도”라고 일축하면서 “안전하고 무해하니 안심하라”고 되뇌는 것이야말로 ‘심각하게 잘못된 태도’이다. 안전 사회는 안전하다고 되뇐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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