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상하이 치안영사, 덩신밍 관련 소문 무성
- 보이스피싱 피해금액 처리 과정서 경찰청과 갈등
- 외사국이 내사하고 감찰도 나서고
- 국제범죄수사대 창설 두고 청와대·경찰청 갈등설
- “날 그만두게 한 사람은 감방에 있는데…”
경찰청 전경
궁금증만 남긴 채 경찰을 떠난 강OO(43) 전 총경이 다시 세간의 관심에 오른 것은 지난 3월 터진 일명 ‘상하이스캔들’ 때문이다. 중국인 여성 덩신밍(33)씨와 주(駐)상하이 총영사관 영사들과의 부적절한 관계, 영사들에 의한 기밀자료 유출 의혹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는 문제의 영사들 가운데 꽤 일찍 덩씨와 접촉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사랑이 변하면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각서를 덩씨에게 써줬던 지식경제부 소속 K 영사도 강 전 총경을 통해 덩씨를 소개받았다.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도 강 전 총경으로부터 덩씨를 소개받았다는 얘기가 있다. 강 전 총경은 2009년 8월까지 영사로 일했다.
상하이스캔들은 지난 3월25일 정부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나오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합동조사단은 ‘심각한 공직기강 해이 사건’으로 결론지었고 “관련자들 간에 금품거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사단 발표에 따르면 덩씨는 국가기밀 수집을 노린 스파이가 아니고 단순한 비자브로커다.
상하이스캔들이 터진 이후 강 전 총경의 사직과 관련된 소문이 다시 경찰청 주변을 맴돌고 있다. “덩씨와 관련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고, 꽤 설득력 있어 보이는 ‘비화(秘話)’도 들린다. 실제로 강 전 총경은 상하이 영사업무를 마치고 귀국한 2009년 가을부터 사직서를 제출할 때까지 경찰청 내에서 강도 높은 내사와 감찰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돼 궁금증을 더한다. 대체 그의 사직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신동아’는 이 소문의 실체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일단 그의 사직과 관련된 경찰청의 입장을 들었다. 경찰청이 국회에 보낸 공문에는 그의 사직 경위가 이렇게 설명돼 있다.
떠도는 소문의 진상
“2009년 12월22일 강 전 총경이 상하이 경찰주재관 근무 시, 경찰청 사전 보고 없이 범죄 압수금 환급절차를 진행한 사안에 대해 보고결략 이유 등을 확인하려 하였으나, 강 전 총경이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더 이상 조사치 못하고 조사 실익도 없어 내사종결 및 의원면직 처리(2010년 2월25일)”
강 전 총경이 상하이 영사관으로 발령받은 것은 2006년이다. 그가 부임한 직후 한국 경찰과 중국 공안은 공동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국제전화로 국세청 세금환급을 빙자해 한국인들을 속여 거액을 가로챈 중국인과 대만인을 검거해 피해금액을 돌려받는 수사였다. 당시 이 사건 수사를 주도한 사람이 강 전 총경이다. 특히 그는 범죄자들의 사기 사실을 입증할 피해내용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수사는 2년 넘게 진행됐고 마침내 범죄자들로부터 피해금액을 돌려받게 됐다. 당시 이 소식은 국내 언론에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따르면 중국 저장성 닝보시 공안국은 국제전화로 국세청 세금환급을 빙자해 한국인들을 속여 거액을 가로챈 중국인과 대만인 등 56명을 구속하고, 사기피해금액 가운데 339만위안(6억3000만원)을 회수해 이날 72만5000위안(1억3000만원)을 한국의 피해자 11명에게 돌려주었다. 나머지 회수금액은 이른 시일 안에 한국의 또 다른 피해자 78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이날 돈을 받은 11명은 피해액 전액을 회수했으며, 나머지 피해자들은 대략 피해액의 70% 정도를 돌려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잃었던 돈을 해외에서 찾아오기는 처음이다.”(한국일보 2009년 7월17일자)
지난 3월25일 류충렬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상하이스캔들과 관련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외사국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국장은 강 전 총경의 후임으로 상하이 영사로 나가 있던 이OO 영사(총경, 경찰대 1기)에게 보이스피싱 사건과 관련한 보고를 지시했고 이 영사는 현지에서 수집한 각종 자료를 모아 외사국에 서면보고했다. 외사국은 이 영사가 보내온 자료를 바탕으로 강 전 총경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당시 이 사건을 맡아 처리한 D법무법인의 상하이 현지 변호사였던 C씨는 서울 홍제동에 있는 경찰청 대공분실 내 국제범죄수사대 사무실로 불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현재 상하이에서 활동 중인 C변호사는 이와 관련, “2009년 11월 말인가 외사국에서 조사에 응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어 조사에 응했다. 강 전 총경도 ‘외사국에서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으니 수사팀에 이 사건과 관련된 일을 잘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C변호사는 “피해가 발생했을 당시 환율(1위안=120여 원)과 피해금액을 돌려받을 당시 환율(1위안=170여 원)의 차이 때문에 약 1억여 원의 환차익이 발생했다. 당시 우리 법무법인은 이 환차익을 변호사비용으로 받기로 하고 피해자들과 정식으로 계약서를 체결했다. 그런데 피해자 중 일부와 경찰청에서 이 돈과 관련해 계속 문제를 삼았다. 나는 상하이 영사관 자문변호사였고, 평소 알던 강 전 영사의 부탁도 있어 이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9년 7월경 국내 피해자들은 D법무법인의 서울사무소에서 피해금액을 돌려받았다. 연락이 안 되는 피해자들의 경우 법무법인에서 일일이 찾아다니며 돈을 돌려줬다고 한다. D법무법인 측은 당시 중국에서 받은 돈을 국내로 들여오지 못한 상태였지만, 일단 피해자들에게 피해금액을 돌려줬다고 했다. 이에 대해 C변호사는 “사건이 마무리된 게 2009년 7월이었고 강 전 총경은 그 다음 달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돼 있었다. 강 전 총경은 자기가 상하이를 떠나기 전에 일이 마무리되는 걸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우리 법인에 여러 차례 부탁을 해왔다. 고민이 됐지만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당시 중국에서 받은 돈은 아직 상하이에 보관돼 있다. 한국으로 가지고 가려면 25%의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덩신밍씨는 이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다. 나도 그녀를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명규 당시 외사국장은 “내가 그때 화가 많이 났다. 일단 강 전 총경이 경찰청의 지시를 받지 않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해 문제를 야기한 부분도 문제였지만, 법무법인과 강 전 총경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의심도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사를 지시하고 감찰도 요청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환차익 1억여 원이 문제
그러나 외사국이 주도한 내사는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일단 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보니 내사에 한계가 많았다. 결국 외사국은 이 문제를 감찰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외사국이 감찰로 이 사건을 넘긴 시점은 2009년 12월로 추정된다. 감찰로 사건이 넘어간 뒤 얼마 되지 않아 이명규 국장은 정년으로 경찰청을 떠났다. 그는 “조직을 떠난 뒤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강 전 총경이 사직서를 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고는 ‘큰 문제가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감찰팀에서 이 사건을 맡았던 사람은 A경감(현 OO경찰서 생활안전교통과장, 경정)이다. 2010년 1월 말, A씨는 감찰 시작과 함께 상하이로 날아가 C변호사, 이OO 당시 치안영사 등을 만나 조사했다. A씨는 상하이에 2박3일간 머물렀다. A씨는 “내가 알기에, 잉여금 분배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경찰청 외사국에 처음 한 사람이 이 영사였다. 그래서 그의 진술을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이 영사의 보고를 받고 이명규 국장이 내사를 지시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법무법인과 강 전 총경 사이에 부적절한 거래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9년 5월 우정사업본부가 주관한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캠페인.
▼ 경찰청에서 당시 강 총경에 대해 내사와 감찰을 동시에 진행했는데요.
“본격적인 소환조사 단계까지 간 것은 아닙니다.”
▼ 강 전 총경의 혐의는 구체적으로 뭐였나요.
“피해금액을 돌려주는 과정에서 경찰청에 보고를 부실하게 한 게 가장 컸죠. 환차손에 따른 잉여금을 처리하는 데 개입해서 문제가 됐고.”
▼ 감찰조사 도중 사직서를 냈는데….
“사실 중징계 사유라고 판단했다면 사표를 안 받았을 텐데 그렇지는 않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사직서를 받았죠.”
▼ 법무법인과 부적절한 금전거래 의혹도 있었죠.
“의심은 되는데, 증거가 없었어요. 그리고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피해금액 이상의 돈(잉여금)이 문제가 된 것이었기 때문에, 잉여금의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그 분들이 딱히 피해자라고 하기도 그랬어요. 나중에 경찰청에서 피해자들한테 알려줬어요. 현재 법무법인이 이런 잉여금을 가지고 있으니 알아서 받아가라고요.”
▼ 범죄행위가 있었는지는 감사를 해봐야 아는데, 사직서를 낸 것과는 무관하게 감찰을 계속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실 제보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거래가 있었다는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게다가 외국에서 있었던 일이고,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어요.”
▼ 감사는 외사국의 의뢰로 시작된 거죠?
“네. 강 전 총경의 비위사실을 조사해달라는 의뢰였습니다. 강 전 총경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원이 야기될 소지가 있으니 감찰해달라는 거였죠. 자기하고 뭔가 관계가 있는 사람을 변호사로 선임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고요.”
▼ 일각에서는 상하이스캔들의 당사자인 덩신밍이라는 여성이 당시 사건에 간여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런 얘기는 못 들었어요. 설사 그랬다 해도 당시에는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죠. 변호사를 선임해 문제를 처리하면서 왜 본청의 지시를 받지 않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었어요. 당시 이명규 국장이 화가 많이 나 있었어요.”
▼ 감찰 과정에 외압은 없었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강 전 총경이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을 찾아가 여러 차례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아는데 우리에 대한 외압은 없었어요. 그리고 공무원이 변호사를 소개해주는 것도 사실 문제가 됩니다. 금전관계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은 했습니다. 증거가 없었지만요. 만약 증거가 나왔다면 본격적으로 수사했을 겁니다. 한마디로 미완의 감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국장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경찰청 주변에서는 당시 감찰이 상당한 수준의 감찰을 진행했고 어느 정도 혐의를 파악했다는 증언도 나와 눈길을 끈다. 감찰팀 관계자가 상하이까지 가서 조사했다는 사실은 그러한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다. 익명을 요구한,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경찰청 관계자는 “상당부분 문제가 확인돼 강 총경에게 사직을 권고하는 정도가 됐다고 들었다. 감찰팀 내에서 파면이나 해임을 건의했다고 한다. 어디까지 조사됐는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관련자들에 따르면 당시 외사국은 감찰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기자회견까지 생각했다. 강 전 총경의 비위문제를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이명규 당시 외사국장이 공언을 하고 다녔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2009년 11월 말까지 진행된 내사에서 별다른 단서가 나오지 않자 이 국장이 기자회견까지 열려고 했다. 언론에 터뜨린다면서. 크리스마스 바로 직전에 하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무산됐지만. 이후에 감찰에 감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이 문제가 된 배경에는 외사국 내 갈등과 알력이 있었다. 사실 이 사건은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중국 공안의 협조를 받아 중국에서 재판에 이겨 피해금액을 환수받은 첫 사례라는 점에서 그랬다. 관련자들이 서로 공(功)을 차지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커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당시 외사국에서는 이 사건의 성과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 7월경 중국 현지 특파원발(發)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피해금액을 돌려받게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를 접한 뒤 외사국에서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강 전 총경은 나중에 ‘난 이번 일로 훈장을 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감찰을 받고 조직을 떠나게 됐다’며 아쉬워했었다”고 말했다.
이 인사의 증언에 대해 이명규 당시 외사국장은 “기자회견 얘기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환차익 금액을 피해자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있는 법무법인을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이다. 돌려준다고 한 뒤에도 계속 돌려주지 않아 그런 얘기를 꺼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피해자들에게 잉여금을 돌려주겠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경찰 관계자는 “감찰에서 확인한 것을 공개하기 어려운 내부적인 사정이 있었다. 조용히 사표를 받고 사건을 끝내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말했다.
권력다툼의 희생양?
결과적으로 보면, ‘신동아’는 강 전 총경의 사직, 덩씨와의 관련성 등과 관련해 경찰청 주변을 떠도는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는 데는 실패했다. 소문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 게 있다. ‘업무처리 과정에서의 독단적인 행동’이 과연 파면을 요구하고 사직서를 내야 하는 정도의 사안이냐는 점이다. 또 내사와 감찰을 동시에 진행할 만한 일이었는지도 짚어볼 일이다. 이와 관련, 경찰의 한 관계자는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 일각에서는 당시 강 전 총경이 조직을 떠난 이유가 국제범죄수사대 창설을 두고 청와대와 경찰청 간 다툼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흥미를 끈다. 서울경찰청 산하에 국제범죄수사대를 창설하는 문제로 당시 강희락 경찰청장과 조현오 서울청장이 갈등을 빚었는데, 그 문제가 청와대에서까지 논란이 됐다는 설명. 그 와중에 서울경찰청에서 국제범죄수사대 창설을 주도하던 강 전 총경이 희생됐다는 것이다. 경찰청 현직 고위간부는 이와 관련 “보이스피싱 관련 사건과 국제범죄수사대 문제가 공교롭게 같은 시기에 문제가 되면서 강 전 총경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으로 안다. 당시 강 전 총경이 버틸 것이냐, 그만둘 것이냐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또 다른 경찰간부도 “(국제범죄수사대 문제로 인해) 당시 강희락 청장이 강 전 총경에 대해 화를 많이 냈다. 내 사람인 줄 알았는데 배신했다며 사직서를 받아내라고 했다고 들었다. 강 청장과 조 청장 간 갈등으로 인해 희생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강 전 총경은 4월14일 ‘신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다 지난 일이다. 나를 그만두게 한 사람(강희락 전 경찰청장)은 지금 감방에 있고, 이미 많은 사람이 떠났는데 내가 이제 와서 무슨 이유로 그 문제를 거론하겠나. 더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강 전 총경은 덩씨에 대해서는 “덩씨와 보이스피싱 사건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리고 난 그 여자를 처음부터 멀리했다. 이상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