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완책 적법하지만 적절성 의문’
- 용접재에 중성자 조사에 취약한 구리 0.29% 들어 있어
- 월성 1호기 지반 부등침하 허용치 59% 수준
- 두 원전 중단 시 전기요금 0.57~5.43% 인상 효과
- 폐로 관리 전문성 길러야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고리원전 1호기 수명연장 평가보고서. 고리 1호기 전경(오른쪽).
고리원전 1호기(설비용량 587MW)는 1978년 4월 상업운전에 들어가 2007년 6월 설계수명 30년이 만료됐고, 정부의 승인을 받아 2008년 1월17일부터 다시 10년간 재가동에 들어갔다. 경북 경주의 월성원전 1호기(발전용량 679MW)는 1983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상업운전에 들어갔고, 2012년 11월 설계수명이 끝난다. 한수원은 월성원전 1호기를 10년 연장 운전하기 위해 2009년 12월 교육과학기술부에 안전성평가보고서를 제출했고, 이르면 올 하반기쯤 연장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총 21개 분야 131개 평가 항목으로 구성된 평가보고서 제출 당시 원전 주변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고리 1호기 전기계통 고장으로 중단
고리원전 1호기의 경우 급기야 4월12일 오후 전기계통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리원자력본부는 “전원차단기의 연결단자가 과열돼 타면서 가동이 중단됐다”며 “원자로 안전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방사능 유출도 없다”고 밝혔다. 이번에 고장을 일으킨 차단기는 2007년 교체된 비교적 새 제품이고, 1992년에도 같은 위치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다른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진보신당에 따르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핵발전소 사고·고장 643건 가운데 고리1호기에서 일어난 사고는 모두 127건으로 19.7%나 차지하고 있고, 전체 21개 원전 가운데 최악의 지표를 보이고 있다. 고리원전 1·2호기는 해발 5.8m의 저지대에 들어서 있고, 호안 방벽의 높이는 해수면에서 7.5m에 불과하다. 후면과 측면에는 이 호안 방벽조차 없어 5.8m가 넘는 쓰나미가 오면 침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나라당 김세연 의원에 따르면 우리 원전이 일본 원전보다 비상 시 대응능력이 높다며 한수원이 자랑했던 고리원전 1~4호기의 대체교류전원 디젤발전기는 내진 설계가 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언론 최초 계속운전 평가보고서 확인
같은 날 오전 부산지방변호사회는 시민원고인단 97명을 모아 고리 1호기에 대한 가동중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부산변호사회는 가처분 신청서에서 ‘고리 1호기는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으로 사고 위험이 큰 데다 원전 가동을 오래 하면 외벽 등이 약해지는 만큼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은 그동안 설계 수명 시한을 앞두고 마련한 수명연장을 위한 안전성 평가결과와 사고일지, 기기 교체일지 등 내부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부산변호사회가 가처분 신청을 한 목적도 원전 가동을 무조건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수명 연장과정이 투명하지 못했고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검증하겠다는 차원이었다.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
한수원은 국회의원 등이 요구할 때는 열람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앞으로 일반인에게도 보안사항을 제외하고 열람할 수 있도록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경우에도 복사나 필사, 촬영 등은 제한할 계획이다.
그러나 노후 원전 운영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면서 이 평가서를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아’는 4월 중순 모종의 경로를 통해 언론계 최초로 이 보고서를 열람했다. 모두 9권 5440쪽인 이 평가보고서는 주기적 안전성평가보고서 5권, 주요기기 수명평가보고서 3권,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1권으로 구성돼 있다. 544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어려운 용어뿐 아니라 실험이나 결과를 도출한 과정 등에서도 생략이 많아 일반인이 이를 보고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수원 관계자는 “실제 시험 내용이나 절차 등까지 담으려면 보고서가 아니라 논문 수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자로 용기 용접재 취약화
기자는 원자력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평가보고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피던 중 원자로 용기가 생각보다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물론 이 보고서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심사 보고서에는 한수원이 적법한 방식으로 추가 보완 평가를 해서 원자로 용기의 건전성과 안전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문제는 이 결함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고, 이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대체검증방식이 과연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KINS가 한수원의 평가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든 ‘고리원전 1호기 계속운전 안전성 심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고리 1호기의 경우, 조사취화(照射脆化)에 취약한 용접재(Linde 80)의 사용으로 인해 설계수명(30년) 이전에 최대흡수에너지에 대한 허용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됨’이라고 나와 있다. 과학기술부 고시 제2005-03에 따라 원자로 압력용기 노심대 재료의 최대흡수에너지가 68J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보다 낮았다는 것이다. 전문용어를 사용해 말이 어렵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원자로 압력용기를 용접한 부위가 충격을 견뎌내는 힘이 기준점보다 약해져 문제다’는 뜻이다.
계속운전이란 수명 연장을, 조사취화란 방사선을 계속 쬐어서 그 성질이 약해지는 것을 말한다. 또 최대흡수에너지란 충격을 받았을 때 견뎌내는 힘을 말하는데, 원자로와 관련해서는 특정한 온도에서 수행된 모든 샤르피 시험편의 흡수에너지 평균값을 말한다. 샤르피 충격 시험이라는 말도 중요하다. 이는 샤르피라는 과학자가 만든 개념인데, 시험용 강판 가운뎃부분을 v자 노치로 파고 해머로 두들겨 절단하는 데 드는 힘을 파악하는 시험이다. 즉 충격을 가했을 때 그 물체가 갖고 있는 저항특성을 평가하는 방법이다.
1J(줄)은 1N(뉴턴)의 힘으로 물체를 1m만큼 움직이는 동안에 필요한 에너지를 뜻하는데 최대흡수에너지 68J은 샤르피 충격 시험을 통해 그 충격을 견디는 힘의 크기가 68J이라는 뜻으로 50ft-lb(feet-pound)와 같은 수치다. 한수원이 작성한 자체 평가 보고서에는 이렇게 서술돼 있다.
운전 중단 요건에 해당
‘(계속운전을 위해) 32EFPY에서의 최대흡수에너지가 50ft-lb(68J와 같은 크기) 이하로 평가됨에 따라….’
여기서 EFPY는 ‘용량을 전부 출력한 상태로 운전된 햇수’(Effective Full Power Year)의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원전 가동률은 90% 안팎이므로 32EFPY는 실제로 40년 정도 가동한 것과 같은 개념이다. 따라서 원자로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32EFPY까지 방사선을 조사시킨 시편을 사용했는데 1차 허용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원자로 용기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용기 안에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검사용 시편(시편)을 넣어두는데, 실제 용기의 강도 등을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 시편을 끄집어내어 파괴인성시험을 하도록 과기부 고시 제2005-3호에 정해져 있다. 파괴인성이란 파괴를 견디는 질긴 정도를 말한다.
놀라운 것은 과기부 고시 제15조에는 ‘시험 결과가 미국의 10CFR(원자력위원회의 연방 규제 코드) Part 50, Append ix G, Ⅳ 파괴인성 요건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 해당 원자로의 운전을 계속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 ‘파괴인성 요건’은 압력용기 노심대 재료가 처음에는 75ft-lb(102J)의 최대흡수에너지를 갖고 있어야 하고, 수명기간 내내 50ft-lb(68J)보다 적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요건을 적고 있다. 즉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고리 1호기 원자로 운전을 중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때는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돼 있다. 보완책은 △압력용기의 해당부분에 대한 100% 체적비파괴검사(초음파 검사) △추가적 파괴인성 시험 △ 파괴역학적 해석 및 안전성 평가 등 3가지를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 이들 요건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할 때는 압력용기의 파괴인성 회복을 위해 열처리를 할 수 있다. 한수원은 이 보완책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밝혔지만 열처리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위 3가지 평가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한수원은 최대흡수에너지가 기준치 이하임을 확인한 뒤 ‘저인성 파괴해석을 통해 건전성을 확인했다. 저인성 파괴해석은 (…)제5차 감시시험까지의 결과와 (…)속중성자 조사량 재계산 결과를 이용하여 40년의 운전기간에 해당하는 32EFPY에 대해 수행’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한수원 측에 이 저인성 파괴해석이 말 그대로 실험적 확인이 아니고 계산식에 의한 것인지 물었다.
감시 시험재료를 재활용?
“고리 1호기 원자로용기에 대한 파괴역학해석에서는 미국 연방 규제코드의 규정에 따라 상세 응력해석을 수행하고, 재료의 파괴특성을 더 정확히 나타내는 실제 파괴인성 시험 데이터를 활용했다. 또 규정에 따라 비파괴체적검사를 수행해 결함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파괴인성시험을 어떻게 수행했고, 어떤 결과를 얻었나.
“파괴인성시험은 두 분야로 나누어 수행했다. 먼저 최대흡수에너지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상가동온도 영역에서 연성균열 진전을 알아보는 J-R 시험(ASTM E1820)을 수행한다. 이때 시험편(試驗片)은 기존 감시시험에서 남겨진 시험편이 사용되었다. 그 다음 가압열충격 기준온도와 관련해 연성과 취성으로 바뀌는 천이온도(遷移溫度) 특성을 나타내는 마스터 커브 파괴인성 KJC 시험(ASTM E1921)을 수행한다. 이때 시험편은 기존 감시시험에서 사용된 부러진 충격시험편을 재활용해 재생용접 시험편을 제작했다.
위 파괴인성 시험과 파괴역학 해석에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승인한 여러 가지 시험 및 해석방법이 적용되었으며 40년 운전기간 중에 모든 안전성 판정기준을 만족했다. 또 5차 감시시험까지의 추세 선에 따르면 50년 이상의 운전에서도 재질의 큰 변화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전문가 A씨에 따르면 J-R 커브를 그릴 수 있는 인성시험의 정상적인 시편은 감시시편 재료의 크기로는 제작이 어렵다고 한다. 감시시편은 손가락 굵기에 5㎝ 미만의 막대형태를 주로 사용한다. 이 가운데에 노치를 만들어 충격을 가하고 흡수에너지를 측정하게 된다. 그러나 인성시편은 대개 가로세로 10㎝ 이상 두께 1인치(2.54㎝)의 정사각형 시편을 사용한다. 시험조건상 규격 확보가 어려울 경우 절반 두께가 허용된다. 따라서 ‘감시시편을 재활용했다’는 한수원 측의 답변은 감시시편을 이어붙인 것으로 해석되는 데 의문의 여지가 있다. A씨는 “설령 적절한 인성시편을 사용했다 해도 실제 원전 상태를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보수적인 기준을 맞춰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파괴인성치의 합격선은 무엇인가.
“파괴인성치의 합격선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값이 아니다. 파괴인성이 조금 낮더라도 구조물이 작고, 하중이 적게 걸리면 안전할 것이고, 반대로 파괴인성치가 크더라도 하중조건이 극심하면 안전여유도가 더 작을 수도 있다. 따라서 파괴인성과 함께 해당 구조물의 형상, 가동조건, 가상의 최대 균열 크기 등을 종합 해석(실제로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계산)해 안전여유도를 평가한다.”(한수원 측)
▼ 또 다른 보완책으로 제시된 100% 체적비파괴검사 결과는 무엇인가. 재료공학 전문가에 따르면 초음파 체적검사는 현재의 균열 유무 등의 결함을 확인하는 데 쓰이지, 이것이 미래의 재료 안전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100% 체적검사(초음파 체적검사)는 균열 유무를 확인하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현 시점에서 원자로용기에 균열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 원자로용기의 파괴인성시험 및 파괴역학해석에서는 용기의 내벽에 이미 벽두께의 약 25% 깊이의 균열이 존재한다고 가정한 후, 이러한 경우에도 용기가 파손에 얼마만큼의 안전여유를 갖는지를 평가하게 된다. 따라서 100% 초음파 체적검사를 통한 균열의 유무 확인은 보수적인 해석적 평가결과에 추가로 안전성(보수성)을 담보로 하기 위한 것이다.”
용접재 구리성분 중성자 조사에 취약
여기서 한수원이 실행한 이 보완책들이 어떤 연유로 마련됐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용접재가 왜 원자로용기 안에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원자로용기는 빈틈이 하나도 없는 매끈한 용기처럼 보인다. 이 용기는 두꺼운 강판합금을 둥글게 마는 형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양끝이 만나는 접점을 용접재로 붙여야 한다. 그런데 이 부위가 고속중성자에 계속 노출되면서 차츰 여리게 돼 약해지는 취화(脆化)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원자로는 중성자 조사뿐 아니라 온도변화와 압력, 지진 충격 등 강력한 힘을 견뎌내야 하지만 아무리 튼튼한 재료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저항하는 힘이 줄어들게 된다. 이를 경년열화(ageing degradation)현상이라 한다.
고리 1호기 원자로 용접재에는 구리 0.29%가 들어 있다는 것이 이번에 확인됐다. 구리 함량이 높을수록 재료가 조사취화에 더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리 1호기가 설계될 당시의 원전 규격에는 중성자 조사취화에 민감한 구리함량에 대한 고려가 없었기 때문에 고리1호기의 압력용기 노심대 지역에 위치한 원주방향 용접부에 잔류 구리함량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국내 발전소 가운데 조사취화가 가장 심한 곳이 고리 1호기 원자로 용접부로 보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문건(‘고리1호기 원자로 압력용기 용접부의 금속조직학적 특성 및 조사전 파괴인성 천이특성 분석’, 2000)에 따르면 특히 고리 1호기에 사용한 ‘린데 80(Linde 80)’ 재료는 1970년대 이전에 건설된 미국의 18기의 원자력발전소 압력용기에도 사용됐고, 이들 대부분이 저인성 및 조사취화 문제 때문에 발전소 수명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구리 성분이 함유된 용접재를 사용한 원전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위의 세 가지 단서조항을 만들었다. 한국의 과기부 고시 제2005-03은 미국 기준을 그대로 가져와서 쓰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의 말이다.
“과기부 고시 같은 것들이 우리가 어떤 기술기준을 알고 가져온 게 아니라 미국의 규제요건인 ASME(American Society of Mechanical Engineering) 코드를 원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기준입니다.”
이에 대해 원자력 전문가 B씨는 “세계적으로 같은 타입의 원전이라도 겪는 고장의 형태는 모두 다르다. 운전 이력을 비롯해 여러 가지 변수가 나라마다, 원전마다 다르다. 이제는 한국 원전의 현실에 맞게 법제를 바꿀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고리원전 1호기 용접재는 또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 규제가이드 조항에 따라 가압열충격을 평가한 결과 2013년께 허용기준(149도)을 만족하지 못한다는 1차 결론을 얻었다. 1994년 시점에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얻은 결론도 ‘수명연장을 고려할 경우 건전성이 불합격’으로 나왔다. 위 두 실험이 같은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 기준을 만족하지 못할 경우 미국 연방규제코드는 △조사량 감축계획수립 △안전해석 수행 △열처리 실시 △마스터 커브 방법에 의한 가압열충격 기준온도 재평가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따라서 한수원은 파괴인성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재평가한 결과 40년 운전 시점에서 기준온도가 127도가 돼 허용기준을 만족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가압열충격 기준이 중요한 이유는 금속재료들이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성자 조사 때문에 재료의 취화현상이 심해지면 아주 작은 열 변화에도 끊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지점의 온도를 천이온도(transition temperature)라고 하는데 원전 안전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고리 1호기 원자로 압력용기 용접부 분석’ 문건에 따르면 이 값이 불필요하게 높게 평가돼 적정 운전영역이 감소하면 원자로가 불시에 정지하거나 안전 계통의 보조 장치들이 자주 작동해 고장의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문건은 ‘향후 수명기간에 계속적인 불확실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시 시험편(충격 시험편)을 이용한 조사후의 파괴인성 시험결과를 실제로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차 기준 못 미치자 변칙’
4월13일 민주당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구을)은 “고리원전 1호기 계속운전 평가에서 원자로 용기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자 다른 기준을 적용하거나 단서조항을 활용해 변칙 연장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 의원은 “고리원전 주변에 수백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 안전성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체르노빌 사고 못지않은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됐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일단 가동을 중단하고 민관 합동으로 가동 여부를 검토해서 결론을 내리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도 “고리원전 1호기의 안전성 평가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 해외 전문기관 등과 재평가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리 1호기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상업원전인 월성 1호기에 대해서도 가동 중지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경주지부는 최근 정기총회에서 월성 1호기의 가동중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기로 결정했다. 한농연 경주지부는 “농작물과 주민의 안전을 위해 노후화한 원전의 가동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에너지정의행동 등 환경단체들은 “고리 1호기에 이어 월성 1호기도 2009년부터 압력관 교체 공사가 진행되고 핵심 설비인 증기발생기 교체 움직임도 보여 사실상 수명 연장을 위한 사전 준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월성 1호기는 주변 지형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오창환 교수는 3월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우리 원자력발전, 과연 안전한가’라는 긴급토론회에서 “한반도의 역사적 지진을 고려했을 때 월성원전 주변에 리히터 규모 6.5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월성원전의 내진설계 규모 6.0~6.5에 맞춰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에는 월성 1호기의 지반 부등침하 현상이 발생해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한수원은 이 현상을 측정할 수 있는 자동계측기를 설치해 실시간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0년 12월 말 현재 약 28년간의 측정치를 따지면 월성 1호기의 부등침하량은 7.63㎜로, 허용치인 12.95㎜의 약 59% 수준을 보이고 있다. 2009년 대비 0.013㎜ 증가현상을 보이는 등 원자로건물의 기초지반은 거의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어 더 이상 급격한 부등침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월성 원전의 부등침하 현상
그러나 오창환 교수는 “월성원전 인근의 읍천단층이 활성이냐 아니냐에 대한 조사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도 조사자료의 공개적 검증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돼야 한다”고 3월 토론회에서 밝혔다.
후쿠시마 원전 1호기는 설계수명(40년)이 끝나고 10년 연장운전의 허가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이번 사고를 겪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독일 중국 등은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한국은 규제보다 진흥에 더 매달려왔다. 유일한 원자력 규제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연구원이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예산 일부를 지원받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원자력은 좁은 나라에서 대규모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매혹적인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후쿠시마가 가르쳐줬듯이 우리 원전 정책도 규제 강화를 비롯해 더욱더 치밀한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준위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경주 방폐장은 중저준위용 시설이다. 그러나 고준위 사용후 핵연료는 원전 현장에서 쌓여가는 형편이다. 폐기물을 보관할 용기도 세계적으로 300년간 안전한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확신할 수 있는 기술을 전세계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은 원자력을 도입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원자로를 폐쇄한 경험이 없다. 전세계적으로도 해체가 완료된 원자로는 14기에 불과하고, 관련 기술도 초기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원전 건설비용이 2조~8조원에 달하지만 폐로(閉爐) 관련 비용도 수천억원이 들어간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정부가 상업용 원전 폐로에 대한 정확한 비용과 데이터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다 원자력법 시행령의 폐로 관련 규정의 개정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노후 원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자 교육과학기술부는 고리 1호기에 대해 4월22일 추가 운영문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기로 했다.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의 진로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전개돼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