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기 500MD 배치와 2조원 규모 아파치 도입의 배경
- 고속상륙정·고속경비정 기지와 이웃, 실제 지역명은 ‘사설포’
- 연말 착공, 2월 초 30% 진행, 4월 중순 현재 70% 완성된 듯
- 3개 구역으로 나뉜 보관시설, 행정지원시설·진입로도 건설 중
- 강 하구 이동하는 동안에는 남측 레이더 무용지물
- 최대 1500~2000명, 3개 저격여단 수송, 기존 병력 2배 증강
북한의 공방3급 공기부양정.
1월 말 국내 주요 언론들이 군 관계자를 인용해 일제히 전한 소식이다. 연평도 포격을 전후해 착공된 것으로 보인다는 이 기지는 공기부양정(LCAC·Landing Craft Air Cushioned) 70여 척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고, 유사시 북한이 특수부대원 4000여 명을 수송해 순식간에 백령도를 기습할 수 있는 거리라는 내용. 사실이라면 북한의 기존 공기부양정 기지가 위치한 평안북도 철산반도에 비해 직선으로 150㎞ 이상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가까워진 극단적인 전진배치다.
스크루가 없는 대신 배 위의 프로펠러를 돌려 움직이는 공기부양정은 물이 없는 갯벌은 물론 육상에서도 이동이 가능한 수륙양용으로, 영어로는 ‘hovercraft’로 불린다. 주로 특수전 병력을 싣고 해안에 상륙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 함정을 대규모로 수용하는 기지가 신축 중이라는 사실은, 그간 경비정이나 잠수정 등을 활용하는 해전을 중점적으로 준비해왔던 북한이 서해5도나 인천 등에 특수부대를 기습 상륙시키는 작전형태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군 당국은 지난해 12월 중순 북한군이 서해5도 점령을 가상한 대규모 상륙훈련을 벌였다는 정보를 수집한 바 있다.
서해에서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흘러나온 소식은 곧바로 큰 파장을 낳았다. 북한군이 백령도나 연평도에 기습상륙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비판이 국회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쏟아졌다. 당초 이에 대한 대응임무를 맡아온 주한미군 공격헬기 아파치 72대 가운데 48대가 이라크 등으로 이동 배치됐고 나머지도 조만간 철수할 계획이기 때문. 이 때문에 국방부는 경공격형 500MD 헬기를 서해5도에 서둘러 배치하고 2조원의 예산을 들여 신형 아파치 공격헬기 AH-64D 36대를 새로 구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확인된 사실들
이렇듯 안보환경과 관련해 심각한 함의를 담고 있는 이 북한군 공기부양정 신축기지의 위성사진이 최근 외국 전문가를 통해 공개됐다. 2월2일 미국의 민간위성회사 디지털글로브가 촬영한 이 사진은 해당 기지의 신축공사 현장을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어, 시설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 내역은 물론 북한이 유사시 어떤 종류의 병력을 얼마나 빠르게 서해5도 등에 침투시킬 수 있는지, 이에 대한 한국군의 사전탐지가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 수 있게 해준다.
디지털글로브로부터 사진을 제공받아 공개한 조지프 버뮤데즈 영국 IHS제인스그룹 선임분석관은 북한 인민군을 해부한 다수의 저작으로 명성이 높은 군사정보 전문가다. 그가 2010년 1월부터 발간하고 있는 북한군 관련 온라인 전문지 ‘KPA저널’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관해 심도 있는 분석글을 연속 게재해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새로 건설 중인 공기부양정 기지 위성사진과 관련 분석 역시 ‘KPA저널’ 최신호에 실린 것이다.
사진을 통해 확인된 기지의 정확한 위치는 황해도를 흐르는 남대천이 장산곶을 향해 흘러나가는 룡연군 예성동 동쪽으로, 강 하구 깊숙한 안쪽에 방대하게 형성된 갯벌로부터 500m 내외 떨어져 있다. 남포급 고속상륙정(LCPF)이 배치돼 있는 해군기지로부터 남쪽으로 2.5㎞, 고속경비정 기지로부터는 남동쪽으로 2.5㎞ 거리다. 미국 측 해도(海圖)에 따르면 이 수역은 당초 알려진 고암포가 아니라 그 바로 옆인 사설포에 해당한다는 게 버뮤데즈 분석관의 설명. 가로 800m 세로 400m 규모의 부지에는 세 구역의 공기부양정 보관시설에 대한 신축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고, 두 개의 행정지원용 건물동과 진입로도 함께 건설되고 있다. 총 52개에 달하는 보관시설은 사진이 촬영된 2월 초 현재 30%가량 건설작업이 진척된 상태로 보이는데, 착공시점이 지난해 연말이었음을 감안하면 4월 중순 현재는 70% 이상 완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1 2 북한군이 새로 건설 중인 공기부양정 기지의 위치. 남대천 하구 안으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3 ‘KPA저널’을 통해 공개된 새 기지의 위성사진. 2월2일 미국의 민간위성회사 디지털글로브가 촬영한 것이다. A.3개 구역 52개의 공기부양정 보관시설 B.행정지원용 건물동 C.연결용 램프 D.추가 건설부지 E.진입로 F.부대원용 막사(추정).
4 남측 공기부양정 보관시설을 확대한 사진. 다섯 동은 이미 완성됐고 한 동은 절반쯤 완성됐으며 나머지는 기초공사만이 진행된 모습이다. 토사를 쌓아 올린 방호벽이 둘러쳐져 있다.
평안북도 철산반도에 자리한 현재의 공기부양정 기지(왼쪽)와 늘어선 공기부양정의 모습. 2009년 3월과 2005년 5월 촬영된 것이다.
그러나 그간 제기된 몇 가지 정보나 분석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도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군 당국은 해당 기지가 수용할 수 있는 공기부양정의 숫자를 70척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고 보도됐지만, 사진에서 확인되는 보관시설의 숫자는 52개가 전부다. 별도의 경로를 통해 추가 보관시설에 관한 정보가 수집된 게 아닌 한 이러한 군 당국의 평가는 전달과정에서 다소나마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지에서 백령도까지의 거리가 20㎞에 불과하다는 일부 초기 보도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 남대천 하구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기지의 위치는 백령도로부터 직선거리 30㎞, 예상항로로 따져 50㎞가량 떨어져 있음이 사진을 통해 확인되기 때문이다.
새 기지 조성작업이 알려진 후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러시아제 무례나(Murena) 공기부양정 도입 시도나 새로운 공기부양정 개발 소식 역시 이 기지와 연관 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조선일보’는 4월12일자 기사를 통해 “북한이 공방급 공기부양정의 원형에 해당하는 무례나를 러시아로부터 도입하기 위한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으며, 지난해 10월 구글어스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된 신형 공기부양 전투함이 이 기지에 배치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새 기지의 보관시설은 길이가 31.6m에 달하는 무례나나 34m가 넘는 신형 공기부양 전투함을 수용할 수는 없는 크기다. 다시 말해 이들은 실전에 투입된다 해도 신축 중인 기지에는 배치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끝없는 상승효과
북한의 공방2급 공기부양정은 50명의 병력을 태우고 시속 90㎞까지 속력을 낼 수 있으며 공방3급은 40명이 탑승해 시속 75㎞ 내외까지 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말했듯 백령도까지의 항로 길이는 50㎞가량이므로 출발 후 30~40분이면 상륙이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더욱이 강을 따라 바다로 빠져나가는 동안에는 룡연반도 일대의 지형지물에 가려 레이더 탐지가 쉽지 않은데, 이 길이가 전체 예상항로의 절반에 육박해 한국군이 이동상황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시간은 15~20분 남짓에 불과하다.
새 기지에서 보관할 수 있는 52대의 공기부양정은 최대 1500~2000명, 3~4개 저격여단을 수송할 수 있는 숫자다. 이는 기존에 배치돼 있던 남포급 고속상륙정의 최대수송 병력 수에 육박하는 것으로, 서해5도나 연안을 기습할 수 있는 북한 특수전 병력의 규모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뜻이 된다. 이 같은 변화의 결과는 매우 이례적인 공격능력 증강이라는 게 버뮤데즈 분석관의 결론. 해군 관계자들은 북한이 특수전 병력의 상륙에 앞서 연평도 포격 때 등장했던 122㎜ 방사포 공격 등을 가할 경우 기습효과가 배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지의 규모와 시설내역을 감안할 때 북한이 투입하는 건설비용은 크게 잡아도 우리 돈으로 수백억 원대를 넘기 어려워 보인다. 반면 앞서 말했듯 증가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남측의 아파치 공격헬기 도입사업 예산은 2조원대로 알려져 있다. 경제규모나 군비투자가 압도적으로 큰 남측으로서도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북한 비대칭 군사전략의 엄청난 지렛대 효과다. 고전적인 해상전을 벗어나 포병 등 지상전력은 물론 항공전력까지 동원된 이 섬뜩한 상승효과의 끝은 과연 무엇이 될까. 서해의 파고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