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하는데, 가능성이 있을까요? 시켜도 괜찮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됐다. 이렇게 컴퓨터, 인터넷, 온라인 게임 등에 대해 하소연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필자는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툭 던진다.
“그냥 내버려두세요.”
“아니, 아이가 공부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노는데 그냥 두라고요?”
하소연은 순식간에 항의로 바뀐다.
“그럼 ‘컴퓨터 그만하라’고 야단을 치면 아이가 말을 잘 듣던가요?”
이렇게 되물으면 대부분의 부모는 움찔한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명색이 부모인데.”
그렇다. 우리는 부모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
대한민국의 부모 세대들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망과 컴퓨터 보급이라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이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부모 세대는 자신이 실현해낸 그 일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모른다. 또 변화된 환경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컴퓨터와 관련해 부모들이 고민하는 일차적인 문제는 이것이 그들에게 낯선 활동이라는 점이다. 부모가 컴퓨터나 인터넷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그 의미가 다르다는 뜻이다. 컴퓨터를 생활환경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아이들과 달리 부모 세대는 컴퓨터를 대단한 것으로 봤다. 또 인터넷은 정보사회를 앞서 나가기 위한 최첨단 기술이자 무기로 여겼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컴퓨터는 그저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교구라고 믿던 부모는 차츰 이것이 시간이나 때우고 쓸데없는 짓을 하는 도구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한번 게임을 시작하면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심지어 밤을 새우기도 한다. 그러다 아이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부모는 컴퓨터를 탓한다. 컴퓨터가 쓸데없는 장난에 불과하다고 믿기에 걱정은 커져만 간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제대로 잘 자란 아이’ 또는 ‘제대로 된 부모 노릇’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의 충돌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기성세대가 가진 교육, 인성 또는 올바른 교육에 대한 생각과, 사이버 신인류(디지털 인프라가 발달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한국의 10대 또는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영향력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사람들. 이들은 자아형성, 사회화, 타인과 관계 맺기, 학습방법, 사회적 역할 수행에서 기성세대와 큰 차이를 보인다)의 가치관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충돌과 갈등의 해결책은 부모가 가진 의문을 사이버 신인류의 시각으로 풀어보는 데 있다. 부모 세대와 사이버 신인류는 서로 다른 인생의 숙제를 가지고 있다. 부모는 자신이 아주 당연하다고 여기던 대답을 자녀에게서 들을 수 없다.
컴퓨터 세계는 제2의 생활공간
한국의 아이들은 평균 4세에 인터넷을 처음 접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인터넷은 단지 놀이터일 뿐이다. 부모 세대가 동네 골목에서 놀았다면 요즘 아이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논다. 하지만 놀이에 대한 가치관은 부모와 자녀 세대가 크게 다르다.
1970∼80년대 입시지옥을 거친 부모에게는 놀이보다 공부가 중요했다. ‘인생의 목표는 공부’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공부했는지 물으면 대개 돈 때문이라고 답한다. 즉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공부한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사회가 아닌 정보사회에서 공부는 어떤 의미일까. 산업사회의 가치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부모 세대에게 학교교육은 성공의 지름길이자 모든 학습의 기본이었다. 학교교육이 산업사회의 산물이라고 볼 때 학교의 제도들은 인간 행동을 통제하고 관리하면서 산업사회에 적합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시간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현재 부모 세대에겐 컴퓨터와 인터넷도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다. 그러기에 정작 아이가 하는 컴퓨터 놀이가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모른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세계를 무시하는 ‘폭거’를 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