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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왕’ 윤택영 후작의 부채(負債) 수난기

‘순종 임금의 장인이 300만원을 떼먹고 북경으로 줄행랑을 놓는데…’

‘채무왕’ 윤택영 후작의 부채(負債) 수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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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른둘의 나이에 ‘황제비의 아버지’인 부원군에 올라 권력과 명예를 한손에 거머쥔 인물. 그러나 그가 버리지 못한 것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수천억원의 돈을 빚지고 중국으로 도망쳐 끝내 타국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은 윤택영 일가의 수난기를 통해, 욕망과 허세, 비리와 친일행각이 빚은 구한말 최고지배층의 처참한 최후를 들여다본다.
‘채무왕’ 윤택영 후작의 부채(負債) 수난기

‘동아일보’ 1920년 7월11일자에 실린 윤택영 부자의 출국 관련기사. 베이징에 유람을 갔다가 한 달 후에 돌아오겠다던 윤택영 부자는 7년이 지나도록 귀국하지 않았다.

살다보면누구나 빚을 진다. 무심코 긁은 신용카드도 알고 보면 빚이고, 매달 갚아야 하는 자동차 할부금도, 은행에 집 잡히고 얻은 대출도 빚이다. 누구나 빚을 지고 살건만 빚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의 기질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대부분의 소시민은 빚을 벗어나고픈 멍에로 여긴다. 허리띠 졸라매고 바동바동 벌어서 일단 빚부터 갚고 본다. 반면 배포 큰 사람은 빚을 즐긴다. 안 빌려줘서 못 쓰지, 빌려준다면 천금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한 배포는 아무리 큰 빚을 졌어도 있으면 갚는 것이요, 배를 갈라도 없으면 못 갚는다는 ‘불변의 진리’에서 나온다.

세상 이치가 이럴진대 빚내준 사람이 답답하지, 빚진 사람이 아쉬울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빚진 사람은 빚쟁이보다 월등히 높은 지위를 점하기 때문에 아무나 빚을 끌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빚내는 것도 ‘능력’이요 ‘재능’이다.

돈이 필요한데 없으면 빌려야 한다. 고지식하게 빚내기를 주저하다간 평생 구멍가게 주인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기왕에 빚을 질 바에야 크게 지는 게 낫다. 1000만원 빌린 사람이 추가로 1억원 빌리기는 힘들어도, 1000억원 빌린 사람이 추가로 1억원 빌리기는 손바닥 뒤집기만큼이나 쉽다.

게다가 큰 빚을 지게 되면 ‘하늘 같은’ 빚쟁이에게 큰소리칠 수도 있다. 빚쟁이도 합리적인 경제인인지라, 잔챙이 채무자에게는 막 대할지라도 큰 채무자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자칫 거금을 떼여 알거지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됐건 ‘내 돈 아닌 내 돈’이라는 빚의 속성은 액수가 크나 작으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어서, 쓸 때는 좋지만 갚으려면 속이 여간 쓰라린 게 아니다. 또한 아무리 속이 쓰리다 해도 빚은 언젠가 갚아야 한다. 빚쟁이가 채무자를 막 대하지 못하는 것은 예뻐서가 아닐뿐더러, 빚쟁이의 인내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80년 전 윤택영 후작이 그랬던 것처럼, 제 나라 제 집에서 등 붙이고 살기 힘들어진다.



차금대왕 윤택영 후작

1926년 5월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국장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국장은 순종이 타계한 4월25일부터 인산일(因山日)인 6월10일까지 46일간 이어졌다. 온 나라가 애도 분위기에 싸여 있을 때, 언론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엉뚱한 인물이 있었다. 다음은 ‘개벽’ ‘회고 조선 500년 특집호’에 ‘뜬금 없이’ 실린 기사다.

부채왕(負債王) 윤택영 후작은 국상 중에 귀국하면 아주 채귀(債鬼·빚귀신)의 독촉이 없을 줄로 안심하고 왔더니 각 채귀들이 사정도 보지않고 벌떼같이 나타나서 소송을 제기하므로 재판소 호출에 눈코 뜰 새가 없는 터인데, 일전에는 어찌나 화가 났던지 그의 형 ‘대갈대감’과 대가리가 터지게 싸움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싸우지 말고 국상 핑계 삼아 아주 ‘자결’이나 하였으면 충신 칭호나 듣지. (‘개벽’ 1926년 6월호 ‘경성잡담’)

후작이면 후작이지 ‘부채왕’은 무슨 말일까. 근신하고 삼가야 할 국상 중에 웬 빚받이 소송이란 말인가. 빚 떼먹고 해외로 도망간 사람이 ‘나 돌아왔소’ 소문내고 귀국한 이유는 무엇인가. 윤택영과 ‘대가리가 터지게’ 싸웠다는 ‘대갈대감’은 또 누구일까. 좀더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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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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