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찍이 남편과 이혼하고 세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할머니는 서울에 사는 자식들과 떨어져 20년 가까이 홀로 지냈다. 이 기간에 그는 마을을 전전하며 할아버지들과 동거했다. 이웃의 소개로 만난 할아버지와 몇 년간 동거하다 그가 사망하자 할머니는 또 다른 상대를 찾아 나섰다.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선을 본 뒤 70대 초반 할아버지와 또다시 동거를 시작한 할머니는 얼마 못 가 ‘성격차이’로 헤어졌다. 할머니는 그 후 세 번째 할아버지와 교제하던 중 행방을 감췄다. 사건을 맡은 형사는 이렇게 말했다.
“외지에서 우리 마을로 들어온 할머니였는데, 홀로 농사를 지어 생활하고 있었다. 나이 든 노인이 농사를 지어봤자 얼마나 돈이 됐겠나.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가끔 용돈을 부쳐주는 게 전부였다. 서로 왕래도 없다시피 했다. 할머니도 굳이 여러 할아버지를 전전하며 구차하게 사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도시로 나가 살던 자식들은 그동안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랐다.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 와서야 그간 어머니의 행적을 알게 됐다.”
“참한 할머니 한 분 구하세요”
도시로 나간 자식과 떨어져 시골에서 홀로 사는 노인들의 ‘황혼 동거’는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지방 소도시나 시골마을의 미장원이나 다방은 이들의 사랑방이자 중매 혹은 맞선 장소가 된 지 오래다.
동네 분위기를 살필 겸 한 시골마을의 터미널 인근 다방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손님 한 명과 60대 초반의 주인 여자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영감님, 요새도 그 몸으로 혼자 밥하고 빨래하고 있어요? 자식들이 좀 안 들여다봐요?”
“밑반찬이야 갖다주긴 해도 가뭄에 콩 나듯 오지 뭐.”
“그러지 말고 참한 할머니 하나 구하세요. 돈도 있겠다, 뭐가 아쉬워 그러고 혼자 사세요?”
별 대꾸 없이 다방 문을 나서는 할아버지 등에 대고 주인은 “내가 한번 알아보고 연락 줄게요”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나가자 주인 여자는 “매일 오다시피 하는 단골 영감이다. 몇 년 전 풍(뇌졸중)을 맞고 쓰러졌다 이젠 웬만큼 거동이 편해졌는데도 혼자 사신다”며 말을 건네왔다. 그는 “그동안 할머니들하고 혼자 사는 영감님 대여섯쯤 다리를 놔줬다. 젊을 때처럼 농사일에 미쳐 사는 것도 아니고, 생활에 바쁜 자식들이 자주 들여다보는 것도 아닌데 나이 든 노인네들이 우두커니 방안에 틀어박혀 무슨 낙으로 살겠나. 그런 사정을 훤히 아니까 외로운 노인끼리 이리저리 엮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할아버지 몸도 불편한데 할머니가 무슨 재미로 함께 살려고 하겠어요?”라고 묻자 주인 여자는 말뜻을 눈치챈 듯 “저래 보여도 잠자리는 문제없는 영감님”이라며 큰소리로 웃었다.
시골 미장원은 이발비가 이발소의 절반 수준이라 할아버지들은 주로 미장원을 이용한다. 한 공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주 얼굴을 맞대다 보니 눈이 맞는 커플이 종종 생긴다. 그뿐 아니라 동네 사정을 훤히 꿰고 있는 미장원 주인이 홀로 사는 노인을 상대로 중매쟁이 노릇을 하기도 한다. 마을 경로당도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날 수 있는 장소다. 미장원이나 경로당에 드나드는 할머니, 할아버지끼리 눈이 맞아 함께 살림을 차려도 노인이 많은 시골에선 별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