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2TV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아이템 회의시간에 오간 말이다. 회의는 구성작가 2명이 제보된 사연이나 이슈가 된 사건 15~20건을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작가나 PD가 주변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도 한다. 많은 사연이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될 확률이 높다. 그만큼 현실은 픽션보다 강하고 독하다. 그래서 제작진은 소재 선정에 원칙을 두었다. 첫째, 시의성이 있는가. 둘째, 주변에서 있을 만한 이야기인가. 셋째,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소재가 정해지면 그 다음엔 일사천리다. 사연을 극화할 경우엔 이야기의 뼈대가 있어서 쓰기가 좀 편하다.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기에 마지막을 향해 가는 갈등을 고조시키기 위한 에피소드를 잘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연은 에피소드만 있고 뼈대가 없어서 뼈대를 만들기도 하다. 모두 드라마트루기(dramaturgy·드라마작법)에 맞춰 극을 만든다. ‘사랑과 전쟁’이 시청자에게 주목받은 이유는 시청자가‘사랑과 전쟁’을 리얼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드라마 형식이 아닌 다큐 형식이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픽션보다 강한 현실
또한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시청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한 이혼 찬반투표는 매 사안에 대해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제보된 사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제보자도 자신의 제보가 채택되고 방영된 뒤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른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은 1999년 9월부터 2009년 4월까지 9년6개월간 KBS 2TV에서 방송된 스테디셀러 드라마로 시청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왔다. 전체 479회 중 75%는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혼율이 30%를 육박하는 요즘, ‘사랑과 전쟁’을 쓰면서 현실 속 부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접할 수 있었다.
‘사랑과 전쟁’은 보통 4명의 PD와 4명의 작가가 짝을 이뤄 제작한다. 그러니 보통 4주에 한 번씩 차례가 돌아온다. 그곳에서 필자는 햇수로 4년간 20편이 넘는 작품을 썼다.
어떤 이혼도 쉬운 이혼은 없다. 모두 나름의 절박한 심정으로 이혼을 결정한다. ‘사랑과 전쟁’에서 극화한 이야기 중심으로 요즘 시대의 이혼을 얘기해보자.
우선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사연을 극화한 경우를 소개한다. ‘내겐 너무 무서운 그녀’(388화·2007년 6월 방영)에서 남편 승수는 대학친구 유부녀 은영과 ‘친구 사이’를 가장해 불륜을 저지른다. 아내 혜정은 승수를 추궁하지만, 되레 의처증으로 몰며 요리조리 빠져나가기만 한다. 은영을 찾아가 자제해달라고 부탁해도, 남편에게 자신감을 가지라는 은영의 충고만 듣고 들어온다. 마음 약한 혜정은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둘의 관계를 지켜보기만 하다 두 사람이 도를 넘자, 은영의 남편을 찾아가 은영과 승수의 관계를 털어놓는다. 은영의 남편은 연하로, 평소에 말로는 당할 수 없는 아내를 휘어잡기 위해 가끔 폭력을 쓴다.
그런데 얼마 후 은영의 남편이 의문의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을 당하고, 은영은 미망인이 된다. 그 사고에 은영이 관여되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남편이 죽은 뒤 은영은 적극적으로 승수에게 달라붙는다. 승수는 은영에 대한 연민으로 집을 나가 은영과 함께 산다. 혜정을 속여 집을 처분한 돈을 갖고. 혜정은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하루아침에 집까지 잃는다. 그래도 친정에서 해준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피아노 레슨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아간다.
승수와 은영의 동거생활은 돈이 떨어지자 다시 순탄치 않게 되고, 은영이 승수를 떠난다. 혜정은 집으로 들어온 승수를 아이 때문에 할 수 없이 다시 받아들인다. 승수는 혜정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그러던 중 은영에게서 연락이 온다. 다시 시작하자는 은영. 승수가 싫다고 하자 혜정에게 물러나라며, 의문의 오토바이 사고를 들먹이며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 혜정은 은영의 협박이 현실적으로 느껴져 승수에게 이혼을 요구해 조정위원회에 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