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비안베이는 물놀이 하나로 감각의 쾌락을 극대화하는 ‘어트랙션’의 집합처다
삼성에버랜드 전략기획팀의 김희진씨가 ‘한국관광정책’(2002년 2호 통권 제13호)에 발표한 ‘세계 테마파크 산업 동향’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세계 테마파크 산업의 두드러진 특징은 ‘대형 테마파크 체인의 약진’과 ‘복합형 리조트 단지 개발’로 나타났다. 김씨가 이 글을 쓸 당시인 2002년 현재 디즈니 계열의 경우 11개의 테마파크에서 연간 9470만명, 38개 체인의 식스플래그스는 5120만명, 5개 파크를 보유한 유니버설 계열은 3120만명을 각각 유치했는데 이는 이 대형 체인들이 단일 테마파크에 비해 일관된 디자인, 다양한 마케팅, 막대한 투자재원 조달 등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또한 대형 테마파크는 기존의 시설 기반에 복수의 차별화된 테마파크를 개발하고 여기에 숙박, 쇼핑, 식사, 엔터테인먼트 등을 결합해 이용자의 체재기간 확장형으로 발전해왔다.
김희진씨에 따르면 국내 테마파크 업계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장규모가 확대되었으며 1997년의 IMF 외환위기로 신규 개장 및 이용자 수가 일시적으로 감소했으나 곧 중소도시에까지 다양한 종류의 테마파크가 들어서는 활황세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1976년, 가족 단위 나들이 공원 개념인 ‘용인 자연농원’으로 시작한 이 공간은 1996년 ‘에버랜드’라는 브랜드로 거듭났고 바로 그해에 캐리비안베이까지 개장해 국내 테마파크 산업을 선도해왔다.
국내 최초의 워터파크
그러니까 캐리비안베이는 수십 년의 역사와 노하우를 가진 테마파크의 이란성 쌍생아로 ‘물놀이’ 하나만으로 감각의 쾌락을 극대화하는 ‘어트랙션’의 집합처가 되었다. ‘끌어당김’이라는 뜻을 지닌 어트랙션은 적어도 테마파크 관계자들에게는 이용자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뒤흔들어놓는 매혹적인 놀이시설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캐리비안베이 같은 테마파크, 즉 워터파크는 ‘물’이라는 기본적인 소재 자체가 강렬한 어트랙션이 되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캐리비안베이는 개장 10주년이 되던 2006년에 워터파크 사상 최초로 누적 입장객 1000만명을 돌파했고 2007년에는 미국 테마엔터테인먼트협회와 테마파크 컨설팅업체 ERA가 공동으로 조사한 ‘세계의 워터파크 순위’ 3위로 선정되었다.
현장의 안전과 시설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박재범 과장은 “개장 초기에는 워터파크 개념이 생소해서 이용자들이 설레면서도 조심스럽게 즐겼지만 10여 년의 역사가 흐른 이제는 좀 더 과감하면서도 짜릿한 즐거움을 원한다. 그만큼 ‘라이프가드’(현장안전요원)의 역할이 커졌다. 또한 애초의 개념을 최대한 살리되 한국형 물놀이 문화를 부분적으로 접목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사실 장년층 이용자에게 캐리비안베이는 가족들 짐을 지키면서 물끄러미 앉아 있어야 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휴가철 극성수기 때면 이 공간에는 2만명 이상이 운집하기 때문에 맘 놓고 쉴 만한 시설과 공간이 부족하기 쉽고, 그럴 때 장년층 이용자는 상당한 시간을 가족들 짐과 공간을 지키는 ‘마크맨’이 되는 것이다. 홍천의 오션월드가 후발업체의 특장을 최대한 살려 찜질방, 목욕장, 스파, 쾌적한 샤워시설 등의 ‘한국형’ 스타일을 구비한 경쟁상대로 떠오르면서 캐리비안베이도 애초의 ‘액션 워터파크’ 개념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기는 해도 13년 노하우와 정교한 시스템은 후발업체는 물론 세계 어디서도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박재범 과장의 설명이다.
카리브해 바다의 거대한 모사품
박 과장이 강조한 것처럼 캐리비안베이의 모든 시설이 수미(首尾)일관하게 지향하는 바는 ‘리얼보다 더 리얼한’ 가상세계의 구현이다. 이 점은 라이프가드 220여 명을 현장에서 통솔하는 박동영 대리도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다. 평소에는 40명 정도가 일하지만 여름철에는 220여 명이 현장에서 활동한다. 일시적으로 이 많은 인원을 충원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무엇보다 일정한 단계와 시스템을 거쳐 원기왕성한 젊은이들을 침착한 현장 라이프가드로 교육시키는 일은 만만치 않다. 박동영 대리는 “바로 자기 앞에서 누군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최고의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만약 바닷가로 떠났다고 상상해보자. 여러모로 불편한 게 많다. 파도는 찝찔한 소금기를 남기고 백사장에는 쓰레기도 많다. 고성방가 풍조도 여전하다. 샤워시설도 마땅치 않고 간식을 먹기도 불편하다. 그렇지만 캐리비안베이는 이 모든 불편함이나 불쾌감이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바닷가라고 해서 요금이 덮어놓고 싼 것은 아니다.”
박 대리의 말처럼 캐리비안베이는 중앙아메리카 바다를 흉내낸 일종의 거대한 ‘모사품’이지만 이 모사품은 적어도 시설 그 자체의 측면에서 오히려 실제보다 더 쾌적하고 편리하다. 게다가 다양하면서도 안전한 ‘어트랙션’까지 제공한다. 실제의 바다는 익사의 위험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 실제의 바다는 찝찔하고 샤워기에서는 졸졸 물이 새는 정도지만 이곳의 시설들은 바다를 단순히 복제한 차원을 넘어선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베이 코인’이다. 요즘이야 이러한 이용요금 결제 방식을 동네 찜질방에서도 적용하고 있지만 1996년 처음 개장했을 당시, 이용자들은 베이 코인이라는 획기적인 결제 방식에서부터 ‘충격’을 먹었다. 이전에는 어떠했는가. 동네 수영장, 해변, 계곡 등지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물건은 정말 사소하게도 ‘지갑’이었다. 사실 그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어디로 여행을 떠나더라도 반드시 지갑을 챙겨야 하는데 수영복 차림에 지갑이 든 가방을 소중히 간수해야 하는 일은 여간 조심스럽고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랬는데 캐리비안베이가 그 걱정을 일거에 해결한 것이다. 이용자들은 일종의 후불 결제장치인 베이 코인을 손목에 차고 맘껏 놀 수 있었다. 지갑이며 손가방 같은 일상 소품을 비일상의 레저 공간에서도 악착같이 건사해야 했던 과거와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레저용품을 빌리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간식을 사 먹을 때마다 손목에 착용한 베이 코인을 기계에 가볍게 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쾌락의 일관 관리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