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폴레옹 1세의 무덤이 있는 파리 시내 앵발리드 앞의 어느 카페.
그렇게 프랑스어로 말하다보면 ‘서울에서의 나’와는 다른 ‘파리에서의 나’가 된다. 프랑스어로 말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프랑스 사람들의 ‘문화문법’을 따르게 된다. 프랑스어로 말하다보면 연령과 성에 따른 차이가 줄어들고 남의 눈치를 덜 보게 되며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프랑스어와 영어와 러시아어를 동시에 구사하던 러시아 출신의 작가 나보코프는 프랑스어는 귀에 아름다운 언어이고, 영어는 지적인 언어이며, 러시아어는 가슴에 호소하는 언어라고 말했다. 적절한 비음이 들어 있고 문장의 끝을 올리는 프랑스어의 어조는 귀를 즐겁게 하고 마음을 경쾌하게 만든다. 나는 프랑스어로 말하면서 자유로움을 누린다. 프랑스어로 된 글을 읽을 때면 현실을 벗어나 마치 다른 나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 나라에서는 서울에서 느끼던 온갖 무거운 감정이 사라지고 마음에 날개가 생긴다. 몸이 가벼워진다.
그런데 몇 주일을 파리에서 지내면서 프랑스 사회의 문제점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내가 오랜 세월 프랑스를 좋아하는 ‘프랑코필(francophile)’이라고 하지만 프랑스를 무조건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 17년 동안 살아본 나의 경험은 프랑스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에 비판의 시각을 덧붙였다. 그래서 나는 ‘비판적 프랑스 애호가(francophile critique)가 되었다. 프랑스 친구들은 프랑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추어야 진정한 프랑스 애호가라고 말한다.
거의 1년 만에 다시 보는 파리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침체되고 활기가 없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뉴스는 경제위기, 자동차 판매 대수 감소, 공장폐쇄, 해고, 실업률 증가 등의 소식으로 가득 차 있다. 거리에는 구걸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하철 객차마다 유럽연합 회원국이 된 동유럽 이민자들이 조야한 반주 악기를 들고 다니며 귀에 익숙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카페 지하층에 있는 화장실에 동전을 넣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점점 더 늘고 있다. 노숙자들의 화장실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거리 한구석에는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단체의 천막이 보인다. 어둠이 내리면 길거리에 내놓은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이 보인다. 파리의 안정된 중산층이 사는 동네에는 똑같은 쓰레기통을 한 사람이 뒤지고 간 다음 다른 사람이 와서 또 뒤진다. 그렇게 쓰레기통 뒤지기가 여러 번 계속된다. 버린 물건을 수집해 가져다 파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진행으로 소수의 부자는 더 부유해졌지만 중산층을 포함한 다수 사람의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풍경 #64 파리 드골 공항에서
1982년 내가 프랑스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파리 남쪽의 오를리공항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대한항공은 드골공항으로 비행장을 옮겼다. 당시로는 최신식의 화려한 공항이었다. 그러나 인천공항을 사용하면서부터는 드골공항이 그렇게 화려하게 보이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을 나올 때 여권 검사를 하는 창구가 열 개나 되는데 두 개만 열어놓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여권 검사를 마치고 짐을 찾는 시간도 지루할 정도로 오래 걸렸다. 비행장 대합실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10유로짜리 지폐를 냈는데 카페 종업원은 거스름돈이 없다고 투덜대더니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거의 5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서비스의 질과 속도에서 드골공항은 인천공항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서는 모든 일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된다. “고객이 왕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상점, 식당, 카페에 가면 종업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친절하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다르다. 물론 고급 식당이나 명품 매장은 예외이겠지만 일반적으로 식당과 카페의 종업원들은 불친절하고 서비스도 매우 느리다. 관공서에 일이 있을 때 서울에서는 몇 분 만에 처리될 일이 파리에서는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 언뜻 보기에도 프랑스는 불친절하고 일처리가 느린 나라다.
서울에 부임한 어느 대사 부인이 대사관저에 블라인더 설치를 주문했더니 이틀 만에 모든 일이 다 끝나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몇 년 전 학술 모임에서 프랑스 정보통신부 장관 부인을 만난 적이 있다. 남편을 동반해 한국의 정보통신사업 현황을 시찰하고 왔다는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렇게 오래되고 느린 나라 프랑스에 무얼 배우러 왔어요?”
풍경 #65 소시에테 제네랄 은행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파리에 거주할 때 동네에 있는 소시에테 제네랄(Societe Generale)은행을 주로 이용했다. 2011년 파리를 떠나면서 사용하던 계좌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열어두고 갔다. 그런데 신용카드를 새로 받으려면 주소가 필요하다고 해서 현재 머무르는 집 주소를 가르쳐주었다.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편지는 이틀이면 받아볼 수 있다더니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은행으로 갔더니 편지를 파리 주소가 아니라 2011년 파리를 떠나며 남겨놓았던 서울 주소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 주소로 다시 보내달라고 이야기해놓고 기다리는데 다시 이틀이 지나도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다. 신용카드가 있지만 비밀번호를 전달받지 못해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며칠 더 계속되었다. 다시 은행으로 갔더니 며칠 전에 그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상적인 업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일로 미루어져 신용카드 사용은 2주일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은행의 현금 인출기가 고장이 나서 며칠씩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파리 은행 조직의 비효율성, 그리고 은행 직원들의 무책임성에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졌다. 그러면서 서울에 있는 우리나라 은행 직원들의 친절함과 효율성이 생각났다.